정서현이 김이나에게...
사랑의 속성은 파멸이오. 사랑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오.
어쩌면 그것은 생과 반대편에 있는 것 같소.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이냐, 생이냐의 갈림길에서 종종 생으로의 투항을 강요당하는 것이고,
행복한 생이랑 자기의 사랑과 상대의 사랑, 그리고 유실되는 시간에 대한 기만을 무거운
관용으로 끌어안고 가는 서글픈 미학이라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결혼을 하거나 도중에 헤어지거나 간에 사실은 사랑을 잃는거요.
결혼한 사람조차 사랑을 잃고 삶을 선택하는 경우여서 결혼을 해보면 알겠지만, 사랑은 막상
오히려 저 강 건너편에 있는 거요.
결혼에 관한 근원적인 신화는 바로 견우와 직녀 이야기요.
그들의 눈앞에 그보다 더 급하게 꺼야 할 결혼한 사람의 의무를이 가로놓이는 거요.
견우가 소를 부리고, 직녀가 베틀을 짜야 하는것처럼 아이를 낳아야하고, 생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육아, 효도, 아이들의 교육, 사회적인 교류, 언제나 가족에게 속해
있어야 하는 구속성.. 그러면서 서로에게 실망하고 지치고 연민을 가지고 결혼한 사람들에겐
문화를 보존, 계승하고 종족을 번식시키고 다음 세대를 교육시키고 저축을
해야 하는 막중한 의무가 강요되지요.
그걸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행하지 않으면 바로 결혼의 파멸이 오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이 결국 결혼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한 형태가 아니겠소.
정서현 says,
산다는 건 믿을 수 없는 거야.
어느날 막다른 길에 접어들면, 모골이 송연해지지만 그러나 돌아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돼.
그들은 자신의 생이 어디서 잘못 접히기 시작했는지, 왜 걸을수록 삶의 저편은 활짝 펴진 부채의
다른 끝처럼 멀어지고만 있는지 어리둥절하지.
그리고 뮌가 결정적으로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때는 언제나 늦어.
알게 되어도 어찌 할 수가 없을 때쯤에야 알게 되는 거야.
알면서도 막다른 길 위를 서커스하듯 우울하게 산보해야 해.
그 막다른 길들은 관대한 척 하면서 명 버쯤은 우리를 용서해주지.
몇 번쯤은 풀어준 뒤에 마지막 골목길에서 기다리고 서 있다가 무거운 망치로 꽝 내리치는 거야.
너무 관대해서 때론 위암처럼 전혀 증상이 없을 수도 있어. 내게도 인생이 그랬던 것 같애.
지난 수년간 난 막다른 길들과 조우했어.
돌아설 때마다 누군가 나의 머리 위에 망치를 들고 세고 있는 것 같았지. 하나 둘 셋 넷...
새삼 내가 인생을 두려워해야 하겠니? 난 이제 두려운 게 없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사랑이란, 사람 그 자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유월의 한밤에 낯선 사람의 지붕 위에 올라앉게 만드는 그 이상한 초대를 사랑이라고 한다는 것을..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려온 한 지친 남자를 별빛 아래로 끌어내어 그네를 태우듯 깜박 졸게
만드는 그런 것을 사랑이라고 한다는 것을...
곧 피어날 여름꽃들이 습기에 젖는 풋내를 뿜어내는 그 어느 달의 밤이 향긋한 비누거품으로
가득찬 따뜻한 욕조처럼 부드럽게 그를 흔들면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별들을 바라보며 그네를 탄
아이처럼 흔들이는 착각에 깜박 조는 또한 그런 것을 사랑이라고 한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현실이란 비현실적인 것이오.
우리가 생생한 실존을 경험하고 삶과 부재 사이의 갈등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순간이
인생에 몇 번이나 오겠소. 삶은 언제나 결핍 아니면 환멸의 벼랑인거요.
그러니, 환멸과 결핍, 그 사이에 추억과 꿈의 세번째 공간이 필요한 거요.
그럴 경우 누가 추억과 꿈을 비현실이라 할 수 있겠소. 이 삶이 모두 현실이 아닌 것처럼.
그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쉴 수 있는 진정한 현실일 수도 있는 것이요.
우리가 삶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먼곳일 것이다.
꿈의 길이 벼랑이 되지 않고 그대로 흘러 현실로 걸어나가 아무도 모를 커튼 뒤로 사라지는 것,
사막에서 길을 잃은 동안은 누구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김이나 says,
르네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 처럼 그림 속에 그려진 길이 저 창밖의 풍경으로 뻗어나가
그대로 현실이 되어 있어요. 이상이 실현된 그림이죠. 저런 길을 걸어보고 싶어요.
너무나 짧아서 커튼 뒤로 숨어버리는 길이지만요, 저런 순간들을 위해서 우린 살고 있는지도 모르죠.
우린 늘 꿈에서 보면 현실이 낭떠러지이고, 현실에서 보면 꿈이 낭떠러지지만 간혹 그런 때가
있잖아요.
아주 간혹, 저런 일치의 순간과 그래서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 그런 전율을 느낄 때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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