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은 '태지를 위한, 태지의 밴드'였다.
음악을 담당한 사람이 서태지였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은 전적으로 '태지에 의한' 밴드는 아니었다.
밴드의 활동 방향이나 전략 등에서는우리 모두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고 공동으로 결정했다.
팀을 위해 각자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했다.
나와 현석이는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을 시작하면서 백댄서가 되는 일만은 피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현석이의 지위나 위치가 백댄서가 아닐 뿐이지, 팀에서 가장 주목 받아야 할 존재는 당연히 서태지였다.
궁극적으로는 서태지가 대스타가 되어야 우리의 활동이 훨씬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3집 <발해를 꿈꾸며>를 만들 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태지가 새롭게 작곡한 노래를 들으며 한동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태지가 우리에게 들려준 음악은 댄스 음악이 아니라 '록'이었다.
'이런 음악을 하는데 춤꾼인 나와 현석이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갑자기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아이들'의 정체성에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태지 음악의 출발은 '록'이었고,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도 여전히 록음악을 하고 싶어 했으니까.
우리들은 이미 최고 스타의 반열에 올라 있었기 때문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어떤 음악을 해도 팬들은
받아들여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나는 태지의 심정을 이해하기로 했다. 내가 춤을 좋아하듯이 태지는 록을 좋아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 세계를 추구하는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누가 말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현석이는 겉으로는 태연하게 3집 활동에 매진했다.
하지만 3집 활동을 끝내고 휴지기에 들어가면서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태지를 불러 얘기했다.
"태지야, 이건 조금 아니지 않냐? 팬들이 원하는 형태의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
태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동안 태지를 보지 못했다. 태지는 조용히 집에서 다음 앨범의 음악을 준비했다.
태지의 호출을 받고 4집을 녹음하는 첫날의 일이었다.
태지는 나를 보자마자 인사말도 건네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계속 뜸을 들이고 있었다. 순간 한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태지가 상당히 지쳐 있구나.'
나는 태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태지는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4집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마지막 앨범이 될 터 였다.'
나는 태지에게 '왜 그러니', '좀 더 해보자'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현석이도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세 사람은 헤체 사실을 숨기기로 했다. 부모님에게도, 매니저에게도 비밀로 붙이기로 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활동하고, 해체의 시점이 되면 기자회견을 통해 해체 사실을 알리기로 했다.
그리고 반년 이상 그 사실을 숨겼다.
1996년 1월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나는 어느덧 서른 나이를 맞고 있었다. '아이들'이라는 호칭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이주노 <나는 영원한 춤꾼이고 싶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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