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노트

name :	boonaa

subject :	2008년 하반기 회화 작업들에 관한 질의서 (사색의 향기)

home :	http://boonaa.tistory.com

1. 머리에서 자라나는 식물 이미지에 대해서 설명 부탁 드려요.

저는 살아있는 한 계속 자라는 식물같이 살아있는 한 끈임 없이 자라고 싶다고 생각해서 사람의 몸에서 식물이 자라는 그림을 그립니다. 물론 사람이 식물이 될 수는 없겠지만..그 꾸준함과 평온함, 해치지 않음을 닮고 싶습니다.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 여름에 꽃을 피우는 식물, 행운목 같이 언제 꽃피울지 모르지만 오랜 준비 과정을 거쳐 꽃을 피우는 식물...이렇게 식물들은 저마다 꽃피우는 시기가 다 다릅니다. 식물처럼 사람도 누구나 일생에 한번쯤은 꽃 피우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언제일지 몰라도 또 어떤 줄기가 꽃 피울 줄기일지 몰라도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이미 꽃 아닐까요.

제 작품 소망피다를 보면 눈을 가린 채로 그것이 꽃 피울 줄기인지도 모르는 채 잘라버리는 사람, 자라고 있는 것인지 이대로 둬도 괜찮은 것인지 몰라서 어정쩡한 표정을 짓는 사람, 갑자기 핀 꽃(물론 오랜 시간 동안 준비를 거쳤겠지만)에 깜짝 놀라 하는 사람이 등장하고, 작품 자라다에는 엉켜버린 식물줄기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같은 맥락으로 보시면 됩니다. 모두가 자라느라 힘든 것이겠죠.

특별히 머리카락이 식물로 변해 자라는 이미지를 그리는 이유는요, 사실 작년 여름에 저는 삭발을 감행했습니다. 민둥머리가 잔디머리가 되고 까치머리가 되고 귀를 덮게 되는 시간 동안 식물을 키우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어쩐지 마음이 평온해지더군요. 그리고 보면, 우리 신체 중에 가장 식물과 비슷한 부분이 머리카락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2. 분위기는 판타지적이지만 자화상을 사실적으로 삽입함으로써 현실적인 느낌도 갖는 것 같네요. 본인의 자화상을 넣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언제나 제 작업의 시작은 꿈이고 꿈이라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내는 게 제 작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색조의 배경..그리고 판타지에 가까운 식물의 색감과는 반대로 얼굴은 사실적으로 그리는 이유도 마찬가지 입니다. 작업은 현실과 꿈의 공존상태니까요.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는... 제 생각과 마음을 제일 잘 담을 수 있는 사람은 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작업을 조금씩 확장시켜 나가다 보면 주변인들을 모델로도 작업 해 볼 생각이에요. 대신 영혼의 교감이 가능해야 하겠죠.

3. 얼굴 아래에 깔려 있는 뱀(?)같은 물체에 대해 설명 해주세요.

줄을 자세히 보시면 가운데 매듭이 지어져 있고 앞도 뒤도 알 수 없어요 양쪽 꼬리만 명확할 뿐이죠. 이건 자라면서, 살면서 풀어야 할 매듭입니다.

처음부터 의도 하고 그렸던 것은 아니고요, 어느 날 작업실에서 노트에 끄적 끄적 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수백 개의 매듭을 그려 놨더군요. 풀어야 할 게 많았나 봅니다. 그래서 그렸어요.

이 매듭은 상황에 따라 뱀처럼 혀를 내밀고 있기도 하고 풀리지 않는 고무줄처럼 표현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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