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분명히 교육을 계획, 장학하는 곳이 있고, 학교가 있고, 제가 난 자식을 바르게 길러서 학교에 보내 주는 가정이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부모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자식이 있는 나라이다.
교육이 없어 보이는 것은, 우리 조상의 군자의 빛난 얼을 무시하고 사리 사욕에 급급한 모리배 같은 부도덕한 부모들이, 돈으로 학문을 사고 학교를 사고 직업도 사고 정치적 지위도 사고 대통령도 사서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이 이 지경이 된 것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가는 원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와 인격 보다는 눈에 보이는 가치, 옷, 집, 가정 집기, 학벌, 직업의 귀격 등 소유한 가치를 더 숭상하게 된 부모의 마음과 의식이 도둑놈 같이 되어서다.
남을 생각하지 않고 돈을 벌어 모으는 것이 모리배나 하는 아주 천한 것임을 모르는 부모, 남보다 돈을 더 쓰고 자랑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임을 모르는 부모가 하는 말과 행동과 희망이 깨끗한 자식들을 철면피로 만들었다.
이런 교육 부재의 현상은 나라와 학교와 교사와 학생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의 교육 수준의 문제이다. 교육 부재의 부모가 길러낸 자식이 사회에서 덕망 없는 "소인배" 조상들이나 하던 군자 답지 못한 짓을 부끄러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라난 구성원이 많은 사회는 자각적인 정의의 일 보다는 눈에 보이는 대로 마치 초보 바둑쟁이 처럼 천방지축으로 온통 판을 혼란하게 하고는 자멸의 구렁으로 들어 가고 만다는 것을, 교사는 이것을 바로 가르쳐 주어야 한다.
어려서 잘못 입력된 사고와 판단과 훈련은 (생활로 다져진 습관은) 바르게 고쳐지기 어렵다. 이 사실은 속담이 말해 준다. "3살적 버릇이 80 간다" 고... 우리조상은 "동방 예의지국" 의 백성으로 일컬어 졌다. 지금 왜 이지경이 되었나?
서당개가 3년간 어린 아이의 글 공부 하는것을 들으면 개도 글을 알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개만도 못하단 말인가? 이와 비슷한 말에 "맹모의 3천지교" 의 말이 있다. 이런 말이 지금 우리의 교육 부재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좀 생각 해 보아야 한다. 교육 부재가 된 데는 6.25 동란이 가장 큰 원인이란 것을 거론하는 동지를 아직 만나 보지 못했다. 나는 스스로 해방둥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초등학교를 들어가기는 일제시대에 입학해서 1년간을 일본 교육을 받았다.
그 후 해방이 되어 ㄱ,ㄴ,ㄷ,...... 을 배워야 한다고 해서 1학년이 다시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해방 후 초등학교 1학년 부터 배운 해방둥이다. 14세에 중학교에 입학했고 입학 후 얼마 안되어서 6.25 사변이 일어났다.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었다. 우리의 평화와 모든 문화와 교육과 행복의 보금자리 가옥이 거의 다 파괴가 되었고 가족과 일가 친척 중 목숨을 잃지 않은 자가 거의 없었다. 참담한 환경이 되었다.
나는 그 당시 어려운 서민이어서 라디오가 없어서 (라디오가 있는 집은 아주 잘 사는 사람이었다) 50년 6.25 때 이북 군대가 남침한 줄도 모르고 학교에 갔었다. 나 같은 학생들이 많이 있었고, 학교는 군인들과 탱크가 운동장을 차지 하고 있었다.
그 날은 월요일 6월 26일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38선 가까이 살고 있던 친척이 피난와 있었다. 25일 일요일 새벽 부터 38선 일선 근방에서 총소리가 나더니 최전선 마을에서 모두 피난을 와서 자기들도 피난 왔다고 했다.
이 후 UN 군이 인천 항에 입항하고 서울이 9월 28일에 수복이 되었고, 그동안의 만 3개월간에 수많은 사람이 인민 재판으로 처형 당했고 인민군으로 인해 민간인도 가옥도 폭격 당했다. 9.28 수복 때는 후퇴하는 인민군의 파괴와 방화, 그리고 UN 군의 폭격으로 서울은 폐허!
북진 후 평양까지 전진 했으나 중공군의 합세로 51년도 1.4 후퇴로 서울은 거의 텅빈 땅이 되었고 53년 8월 여름 방학을 하면서 서울 수복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 나는 이곳저곳으로 피난 다니며 공부하다가 53년 9월에 수복했다.
피난 생활 중에는 대부분이 들과 길이 잠자리요 별을 세면서 잠이 들고 자다가도 폭격과 전투 소리가 나면 쉬고 있던 자리가 양군의 접전 장소가 되어 옆의 사람이 송장으로 변하고 자리를 걷어서 양떼처럼 무리가 떼 지어 길을 떠나야 했다.
가다가 전쟁의 접전을 보고 돌아오는 무리와 그 현장을 보러 가는 무리가 엇갈리고 가보니 시체들이 나둥그러 있기가 일수였다. 최전방 일선 지대가 따로 없는 이런 길을 먹을 것도 없이 떠난 무리가 많았을 것이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부모들이 얼마나 애탔겠는가? 아무튼 살아 남은 사람은 무엇이고 먹어서 살았다. 네것 내것 없이 살았는지 어땠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빈손 들고 나갔는데 산사람은 지금까지 살았다.
이런 지경에서 우리에게 무슨 수로 체면, "동방 예의지국" 의 말을 꺼낼수가 있었겠는가? 그런 생각을 했었겠는가 ? 아무튼 우리는 짐승 같이 살았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의 전쟁과 기근에 시달리는 그들과 똑같았다. 피골이 상접한 모습도 똑같았다.
생각해 보자. 이런 속에서 우리는 자랐고 우리의 부모들은 호구지책을 위해서 동분서주하면서 밤잠을 설치며 살았고 이런 와중에도 돈이 있는 자는 별 어려움 없이 살았을 것이다. 호의호식 하면서 산자도 있을 것이다.
이 속에서 고아가 되어서 형제끼리 거지생활을 하며 자라 공부는 생각도 못하고 "낫 놓고 ㄱ 자도 모르며" 60-70 이 된 사람도 있는 것을 본다. 이런 속에서 누가 교육을 잘 받았을 까? 누가 군자와 같이 예의를 지키며 사람답게 살았겠는가?
호의호식 부를 누린 자일까? 부를 누리며 제대로 학교 교육을 정상으로 밟은 자일까? 결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내 나이 70 이 넘었고, 일선에서 교단 생활을 20 년을 넘게 하고, 교육 행정을 입안, 장학, 관장하는 일을 20 년 넘게 한 사람으로서 "교육 부재" 에 대해서 무엇이라 딱 잘라서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교육이란 복잡한 관계로서 형성 되기 때문이다. 내가 6.25 를 장황하게 이야기한 것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지금과 같은 부를 누리고 높은 학력 수준과 문화를 누리게 되었으니 이렇든저렇든 간에 부모의 교육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교육이 없다고 통탄하는 것은 옛날의 군자의 나라 같이 눈에 뜨이는 예절 바른 (인격을 갖춘) 사람이 없는것 같기에 보편적으로 누구나 현실을 그렇게 남의 일같이 말을 잘 합니다.
그러나 동방 예의지국의 국민답게, 인격을 갖춘다는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자기가 바르게 살 줄 알아야 하고 그래서 남이 보고 배우며 살도록 수범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둘째는 남이 바르게 살지 못할 때는 바르게 살도록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여기서 남이란 자기가 아닌 모두 입니다. 부모로 부터 형제 자식 친구 동료들이 모두 남의 범주에 들어 가야 합니다.
지금 모두가 이와 같이 교육 받은 자로 자부하면서 이 두가지를 실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역할을 할 수 없는 풍토가 되어있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가 가슴 아파해야 할 일입니다.
이 두가지 일 중에서 첫째 일은 얼마든지 자기 의지만 있다면 또 자기 의지가 없어도 하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의지가 없어도 피동적으로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습니다. 아주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독교와 유교는 하늘을 두려워하는 것이 근본입니다. 그러나 유교에서 하늘에 대한 말이 나오지만 인간 조상을 근본으로 섬기는 것을 중히 여기다 보니 개인 수신에 대한 학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첫번째 거론된 것과 같은 생활은 조상이 어떻게 살았느냐, 조상들이 어떤 이상을 자손들에게 심어 주었느냐 하는것이 크게 판가름 하기 때문에 곤란한 대답이 되기 쉽습니다. 이런 것을 거론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옛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했기에 국민 전체가 동방 예의지국의 사람으로 살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당시 예의를 바르게 하는 사람을 숭상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갖고 보고 닮으려 했다는 사실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리고 바르지 않은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자식 네자식이 따로 없이 보는 대로 잘못된 것은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충고에 따랐다는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사들 자체가 윗사람, 상관의 충고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교사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10 여살 전후해서 생활 주변에서 보고 느낀 것이 있는데 할머니가 손자를 업고 마실을 가서 손자가 남의 물건에 손을 대고 마구 가지려 하니 말 못하는 엉금 엉금 기는 어린 손자에게 "그렇게 하면 못써 양반이 될 수 없어"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와 법도와 학문을 갖춘 닮아야 할 대상이 분명히 있었고 말귀를 알아 듣던 못듯던 말로 가르쳐주고, 바른 목표가 도덕과 학문을 겸비한 군자를 닮아야할 대상으로 분명하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교육 부재인 것 같으나 적재적소에서 굳굳이 일 할 줄 아는 자기 자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을 가정에서 길러서 사회로 내보내주는 고마운 살아있는 가정이 있어서 우리나라는 어떠한 혼란을 당해도 군자의 나라답게 재기하고 있습니다.
"화원 김득중" 선생님은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을 살리고자 "동방 예의지국" 복원을 위해 반평생을 투신하고 계십니다. 노구의 몸으로 젊은이 못지 않게 시민교육, 국민교육을 위해 열렬한 강의를 하시고, 그 문하생들이 방방곡곡에서 선생을 도와 일하고 있습니다.
"화원 사랑방" 이라는 간판을 달고 토요일에 교육을 하고 계십니다. 한국에 계시다면 5개월 코스로 20회 정도로 교육을 실시하고 계시니 참석하시면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공교육에는 기대를 걸기가 힘듭니다. 우선 교사 교육인 사범 교육이 되어 있지 않고 교사에게 교육을 맞기려 들지 않는 학부모의 불신이 자기 자식을 병들게 합니다. 그래서 부모 자신과 국가 사회를 무시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가정에서 바르게 자라 나와야 바른 교사가 되고, 바른 학생이 되고, 바른 사회인이 되고,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과 나라에 협조자가 됩니다. 이런 구조로 자라난 사람이 군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가정에서 바른 교육을 시키려면 가장과 안주인이 교육을 바르게 아는 것이 우선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3살 이전에 몸에 배도록 배웠어야 하는 예절 (생활습관) 교육을 바르게 익혀서 예절바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육의 씨앗입니다.
(2008-06-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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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8-07-03 04: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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