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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논리가인 악마
 작성자 :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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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을 읽으면서 나는 8년전 성탄절에 돌아가신 장기려 박사님과의 어린시절 
추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읍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시절 나는 부모님을 따라서 
장기려 박사님의 부산모임 주일집회에 자주 참석을 하였는데, 그때 집회에서는 
바로 단테의 신곡을 꾸준히 공부하고 있었읍니다.

아마 그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시절이나 나중의 학창시절에도 집에 있는 
단테의 신곡을 자주 뒤적거리며 읽곤 했던 기억이 남아 있읍니다.  물론 지금은 
그 내용이 하나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지만... 

오늘 왠지 그 시절 복음병원 사택에서나 청십자병원 원장실에서의 추억들이 
그립습니다. 

2003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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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가인 악마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백미(白眉)는 음욕죄를 다룬 제5곡에 나오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하는 장면, 그리고 향토와 당파를 배신한 자들의 
처벌을 다룬 제33곡에 나오는, 겔프당 소속으로 1285년 피사(Pisa) 시의 장관이 된 후 
자당에 분열을 일으켜 결국 반대파인 기벨린당에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넘겨주고 
자기의 두 자식, 두 손자와 함께 괄란디 가(家)의 고탑(古塔)에 유폐된 후 자식들과 
함께 굶어죽게 되는 우골리노 백작의 최후를 그린 장면이라고 한다.

나는 전자보다 후자를 더 높이 평가하고 싶다.  탑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그 리얼한 
장면은 너무나 박진감 있게 그려져, 다시 읽으려 해도 그 참혹한 광경에 책을 덮게 
된다.

그런데 내게는 우골리노 백작을 그린 장면 이상으로 머리에 들어박혀 전율을 느끼게 
만드는 또 다른 한 대목이 있다.  그것은 거짓 계책을 꾸민 자들을 벌하는 제8옥을 
다룬 제27곡이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귀도라는 인물은 로마냐 기벨린 당수인데, 
술수와 책략의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다.  여우라는 별명으로 명성이 높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도 어느덧 인생의 돛을 내리고 닻을 끌어올리는 60 고령에 이르러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프란체스코 교단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한 그에게 중세의 악명 높은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가 다가온다.  그는 자기에게 천국 문을 열고 닫을 권한이 
있다고 하며 온갖 감언이설로 꾀어, 교황 선거 당시 자신에게 반대했던 코론나 가문의 
요새를 무너뜨릴 계책을 알려달라고 물었다.

결국 귀도는 “교황이여, 당신은 내 죄를 씻을 수 있으니 내가 감히 말한다” 고 하며, 
“약속은 길게 하고 실천은 짧게 하라” 는 간계를 준다.  즉 많은 약속을 한 다음 이를 
지키지 말라는 것이었다.

귀도가 죽었다. 성 프란체스코가 그를 하늘로 데려가려 하자, 검은 천사 즉 악마가 
와서 “저 자는 나와 함께 가야 한다” 고 주장한다.  그는 “저가 기만적인 조언을 
제공한 이래 지금까지, 나는 (그가 죽으면 즉각 데려가기 위해) 저의 머리카락 속에 
있었다” 고 말한다. 

악마는 “뉘우치지 않는 자는 용서할 수 없나니, 악한 일을 뉘우치면서 동시에 악의
(惡意)를 갖는다는 것은 서로 모순되는 일, 그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는 없다” 고 
말하면서, 귀도를 붙잡고 “내가 논리가(logician)인 것은 아마 네가 생각지도 못했을 
거야” 하고 말한다.  귀도는 이 말을 듣고 두려움에 깜짝 놀란다.

실로 악마는 신앙에 대해 논리적이기 그지없다.  나는 누가복음 15장에, 아버지의 
앞을 떠나는 탕자의 마음 한구석에 논리적인 점이 있었을 것 같고, 돌아와 아버지 
발 밑에 쓰러진 탕자에게서는 논리가 산산이 깨지고 이를 뛰어넘은 그를 본다.  
이브에게 불신의 독을 넣은 것도 뱀의 이 논리였다.  신앙은 논리의 세계가 아닌 것을 
우리는 철저히 알아야 한다.

1951년 12월
盧平久


date : 2011-02-20 09: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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