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후 10년 동안만 하여도 우리는 문제삼지 않을 수 없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아니 과연 참을 수 없는 원통/애절/통분한 민족적인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에 부딪쳐 왔다.
반세기 동안의 이민족의 지배에서 그 굴욕과 압박과 고통, 죽음 가운데서 정치적인 해방이라고 왔다는 것이 국토와 민족의 양분이라는 절름발이 해방이었다.
그러나 게다가 절반이나마 주권이라고 세우고 독립국가로서 출발할 무렵, 또 다시 그것도 이민족 아닌 민족상잔의 참변으로써 모든 것은 파괴 가운데 무너지고 말았다. 또한 외인의 침습 아닌 자민족끼리 하는 이 싸움은 더욱 말할 수 없는 인물의 손실을 가져 왔다. 모든 것이 쇠잔하여졌다. 정치는 무력/부패하고, 경제는 파탄/혼란되고, 종교/교육/문화 역시 속화/타락하여 버렸다.
이때에 5.15 선거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국민은 정신 없는 단잠에서 꿈을 깨는 듯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새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왜 또 하필 중망을 지닌 신익희씨가 그렇게 쓰러진다는 말인가! 운명의 장난이냐, 천운을 못 탄 것인가? 그저 이렇게 한없이 곤욕 가운데 누워 있으라는 것인가? 저주의 심연에 떨어진 것인가? 이때에 나에게 들려 온 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노우(No), 간섭이라는 소리였다.
과연 민중의 자각이라, 결속이라 하지만 그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잘 입고 잘 먹고 잘 살아 보자는 정도의 현실적인 욕심이었지, 진실한 정신적인 각성, 도덕적인 자각, 깊은 양심의 뉘우침에서 오는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자기의 죄악에 대한 회개나 통곡은 천만 아니었다. 물론 하나님에 대한 신뢰, 간구도 아니었다. 우리는 제발 문제를 천박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투표로 민족이 개조되고, 투표함으로 이상국가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다. 10년 전에 우리는 역시 일본의 총독정치만 무너지고 일본만 물러가면 만사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역시 오산이었다. 결국 정치적인 각성이란 불평, 시기, 욕심 정도를 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은 결국 정치로써만 무엇이 될 줄 알고, 닭 쫓던 개같이 언제든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그러면서도 뒷구멍으로는 호박씨가 아니라 실로 추잡하고 악독한 죄만 까고 있는 우리에게, 당장 이 현실에서 이 시간부터 무엇보다도 먼저 선을 행하고, 정의를 행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된다는 경고인 것이다. 이를 명심하지 않는 한 우리의 현실이란 백년하청일 것이다. 두고 보라.
盧平久 1956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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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1-04-24 13: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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