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RU에 있는 친구 Sela 박사로부터 연말 안부 전화를 받았다.
한참 이야기를 하던 중, 이성규 박사께서 한 달 전쯤 교통사고를 당하셨고, 그 후 2주 정도 Columbia대학 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셨다는 뜻밖의 슬픈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군복무를 마치고 잠시 HMS에 있다가 다시 RU로 돌아왔을 때 이전에 보지 못하던 한국 분이 한 분 계신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내가 RU를 떠나있었던 4년 동안에 새로 오신 분이 분명했다.
바로 그 분이 이성규 박사셨는데 연세가 70 가까와 보이셨고 같은 실험실에 계신 분도 아니라서 친하게 지낼 수는 없었지만 궁금해서 그 분의 과거 논문 등을 검색하여 보았다.
알고 보니 이성규 박사는 이미 70년대에 RU에 계시면서 유명한 생화학자/노벨상 수상자인 Fritz Lipmann과 함께 많은 연구를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90년대 말에 뉴욕시립대에서 RU로 다시 오게 되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후 몇 년이 흘러 이성규 박사 부부께서 우리가 다니던 교회에 나오게 되면서 좀 더 친해지게 되었고, RU에서 나와 절친하게 지내던 Sela 박사가 몇 년 전 이성규 박사가 계시는 실험실로 옮겨 가게 되면서 이성규 박사의 진면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전해들을 수 있었다.
Sela 박사에 의하면 이성규 박사는 실험실 안에서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분이었다고 한다. 그 분의 과학적으로 뛰어난 능력과 명석한 아이디어들 때문만이 아니라, 말은 없으셨지만 늘 친절함과 유쾌함으로 실험실의 모든 사람들을 대하고 도와주는 모습이 세계 어느 나라의 사람들(보통 미국 실험실 연구원의 과반수는 미국인이 아님)에게서도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인품이셨다고 한다.
이성규 박사는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이라는 찬송가의 저자로도 유명한 이호운 목사의 장남이다. 그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성규 박사는 작곡가이기도 하셨다. 교회 예배 중에 작곡하신 새로운 찬송가를 발표하기도 했었고, 실험실에서도 작곡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던 것 같다.
내가 RU시절 밤낮주말 없이 실험실에 일하러 나갔었기에 잘 알지만, 이성규 박사는 정말 밤낮주말 없이 RU Housing과 캠퍼스를 연결하는 구름다리를 건너다니시던, 자신의 연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과학자셨다.
부친과 비슷한 연배(우리 아버지가 한 살 더 많으심)셨고, 우리 아버지도 희수가 넘은 나이에 매일같이 자신의 연구농장을 찾으시는 분이기에, RU시절 깊은 밤 구름다리 위에서 이성규 박사를 만날 때 마다 깊은 사색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성규 박사는 과학자로서 본받고 싶은, 존경하는 모델과 같은 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옛날에 비슷한 글을 썼던 기억도 있지만, 과학자에게는 박사나 교수 같은 쓸데없는 허명은 필요가 없다. 이성규 박사처럼 일개 연구원으로 죽는 그날까지 연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P.S. 이성규 박사는 몇 년전 가벼운 중풍을 겪은 이후 올해 초 공식적으로 은퇴하고 강건너 뉴저지로 이사를 하셨지만, 그 후로도 계속해서 강을 건너 맨하탄의 RU 실험실로 출근하셨다고 하며, 그렇게 사고를 당하신 것 같다.
P.P.S. 구글에서 찾은 관련 기사
Sung Gue LEE Obituary LEE Sung Gue, age 76, of Fort Lee, on Friday December 6, 2013. Memorial Service Saturday in the Funeral Home at 1:30 PM. For information call (201) 944-0100 or www.frankpatti.com Published in The Record/Herald News on Dec. 12, 2013 http://www.legacy.com/obituaries/northjersey/obituary.aspx?n=sung-gue-lee&pid=168491085&fhid=50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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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3-12-28 10: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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