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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2000 년 미대선 이해 1
 작성자 : 주인
 홈 : 없음

제  목 : 미국 대통령 선거의 이해 1 
날  자 : 2000 년 10 월 5 일 
작성자 : GCI 

이런 글을 쓰는 별다른 이유는 없고, 너무 글들이 안올라오기도 하고, 그래서 
심심하기도 하고, 엊그제 첫번째 debate (대선 후보 토론회) 가 있기도 했고, 
미국에 사는 홈페이지 방문객이나 동창들도 많으니 우리 모두의 교양을 높이는 
차원도 있고, (대학 동창인) SG 까지도 여기는 글을 안쓰면서 90학번 아해들의 
유치한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찝쩍거리며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발견한 
충격도 있고,...  그리고, 내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기 전에 되새긴다는 의미에서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대해 전반적으로 두서없이 연재물을 적어 보기로 하겠다. 

질문이나 이견이 있으면 댓글을 올려주기 바란다. 

나는 엊그제 Bush vs. Gore (조지 워커 부시 vs. 알 고어 2세) debate 를 
생방송으로 자세히 보지는 않았고, 오히려 같은 시각 생중계 된 MLB play-off 에 
오른 Yankees 의 지는 게임을 더 많이 본 것 같다. 

Debate 에서 뭐 특별한 사건이 생기지도 않았고 (만약 그런게 있었다면 C-SPAN 
으로 재방송을 다시 보았겠지만), 누가 이겼다 졌다도 아니었고, 과거의 유명했던 
debate 에서 Ronald Reagan 이 보여준 것 같은 화려한 화술이나 H. Ross Perot 
와 같은 흥미진진함을 가져 올 등장인물도 없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토론 주제에서 (나 처럼) 자신의 정치 노선이 분명한 경우, 
그런 debate 를 보고 있으면 너무 반대 쪽 사람의 이야기에 짜증이 나서 
오랫동안 보고 앉아 있기가 힘들다.  차라리 야구 경기로 TV 채널을 바꾸게 된다.   

Perot 가 제3당의 후보로서는 역사상 유일하게 Presidential Debate 에 참여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Ralph Nader 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5~8 % 정도밖에 
안되었기에 두 명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1980 년 대선에서도 Reagan 과 Carter 에 이어 제3당 후보가 10 % 가까이 
득표를 하였는데도 debate 에는 끼워주지 않았었다.(¶1)  그게 누구였더라...  
하원의원 출신이었는데...(¶2)  아, 내 기억력이 옛 같지는 않아서... 

1992 년 Perot 는 그의 지지율이 20 % 까지 육박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해마다 있는 많은 선거들의 최종 선거일 (예비 선거들은 
각 주 마다 그 일정이 다르다) 로 지정이 되어 있는, 11 월의 첫번째 화요일에 
실시한다.  단, 첫 화요일이 11 월 1 일인 경우는 11 월 두번째 화요일이 선거일이다.  

그럼 여기서 그만.  집에서 점심 먹으러 오라고 전화가 왔다.  나중에 계속...  

P.S. 
점심 먹고 오다가 생각이 났다.  
1980 년 미대선에서 3등을 한 사람은 John Anderson 이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脚註

물론, 위에 옮겨 놓은 것은 8 년 전에 쓴 글의 그대로는 아니다.  다시 읽어 보니 
그 당시 일과 시간 중에 짬짬이 바쁘게 쓴 글이라서 내 중심으로 대충대충 쓴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자세한 설명이 부족하여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에 어려운 점도 있는 
것 같다.  어쨋든 다시 옮기면서, 부연 설명을 조금씩 추가하거나, 틀린 부분을 
수정하였다.  

2000 년 당시만 해도, 오늘날 같은 인터넷 검색이란 것도 없었고 인터넷 백과사전 
같은 것을 찾아 보며 사실을 손쉽게 확인할 길도 없었으므로, 전적으로 내 기억력에만 
의존하여 쓴 글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오류가 있었을 것이다. 

¶1. 
이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100 % 맞는 설명도 아니었던 것 같다.  
1960 년 선거에서 대선 TV 토론이 처음으로 시작된 이후, Perot 가 참여한 
1992 년 대선 토론이 제3당 후보를 포함한 최초의 三者 합동 토론회였다.  
하지만, 1980 년 선거에서도 三者 합동 TV 토론회가 열릴뻔은 했었다.  그러나,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Carter 후보의 반대로 무산 되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1992 년 대선 때에도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GHW Bush 후보가 Perot 의 TV 토론 
참가를 강하게 반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2. 
8 년 전 원문에서는 “하원의원 출신이고 UN 대사를 지낸 사람이었는데...” 라고 
썼었다.  하지만, John Anderson 은 UN 대사를 지낸 적은 없었고, 착각이었다.  

내가 이해하는 John Anderson 은, 마치 Barry Goldwater 가 대표적이듯이, 
젊은 시절에는, 그 당시 공화당의 주류이었던 사회/종교적으로 진보/자유주의적이고 
경제적으로만 보수적인 동부권/수도권의 엘리트 집단을 비판하면서, 사실상 오늘날 
공화당의 新주류가 되어버린 사회/종교적으로도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서민들을 
대변하며 당내 보수화 운동의 새 바람을 일으킨 정치인이었지만, 나중에는 
그 자신이 오히려 공화당의 新주류로 부터 지나치게 좌파/진보/자유주의적이라고 
매도를 당하고 소외되어 버린 경우이다. 

즉, 사람의 생각과 믿음은 일생 동안 그렇게 극에서 극으로 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아니면, 그 자신은 바뀌지 않았는데 세상이 그렇게 바뀌어 버렸을 수도 있고...  

십여 년 전 생전 Goldwater 의 TV 인터뷰를 본 기억이 생생하다.  오늘날 미국의 
新보수주의 운동의 鼻祖로 불리우는 그 자신이, 수십 년이 지난 후 커다란 권력을 
가지게 된 新보수주의 운동을 맹렬히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진정한 보수주의는 개인적 자유의 극대화를 주장하는 Libertarian 이념이라는 
그의 생각은 변하지가 않았는데, 세상이 변해 버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 세기 전반기는 공산혁명의 영향으로 전세계에 좌파사상이 대유행이었고, 미국은 
뿌리 깊은 노조 운동과 대공황이라는 여건으로 급격히 좌경화 되었다.  특히, 
FDR 의 장기 집권과 세계대전이라는 상황 아래서 사회와 경제가 국가와 엘리트에 
의해 통제 당하는 상태가 된 것이 사실이었다.  

이러한 변화와 진보(?)에 반대하여, Goldwater 는 본래의 건국 이념 중 하나인 
Libertarian 적인 사회로 돌아가자는 의도에서 新보수주의 운동을 전개한 것이었는데, 
수십 년이 지나서 정권을 잡은 新보수주의자들 중에는 Libertarian 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규제하려는 종교적/도덕적 보수주의자들이 더 많아진 것을 
보게 되었으니, 이에 반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등등...  Goldwater 의 생각은 
그런 것인 듯하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즉 보다 엄격한 청교도적인 종교 생활을 자유롭게 
영위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세운 나라가 미국이기도 하다.  이러한 
엄격한 종교 행위의 자유를 추구해 온 일반 서민들로 하여금 현실 정치에 참여하도록 
만든 것이 新보수주의란 것을 직시한다면, 그렇게 Goldwater 의 생각처럼 간단하게 
어떤 것이 진짜 보수라고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date : 2008-08-08 00: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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