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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2000 년 미대선 이해 2
 작성자 : 주인
 홈 : http://www.goodcapital.org

제  목 : 미국 대통령 선거의 이해 2 
날  자 : 2000 년 10 월 6 일 
작성자 : GCI 

앞에서 하던 이야기를 조금 더 계속하면; 

Perot 가 역사상 처음으로 Presidential Debate 에 초대된 제3당 대선 후보였고 
실제로 20 % 정도 득표도 했지만, 사실은 Perot 가 역사상 가장 성공한 제3당 
대선 후보는 아니었다.

그럼 누구?

그 사람은 Teddy (=Theodore) Roosevelt (TR) 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TR 은 이미 미국 대통령을 그것도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서 임기를 이미 
지내고 난 이후, 다시 재출마를 제3당 후보로 해서 거의 30 % 가까이 득표를 하며  
미대선에서 2 등 까지 차지했던 제3당 대선 후보라는 역사를 만들었다. 

TR 은 1901 년 부터 1909 년 까지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을 지낸 기록을 
가진 사람이다.

누군가 “Jack Kennedy (JFK) 는요?” 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군. 

TR 은 JFK 보다 아마 1 살 정도 어린 나이에 대통령이 되었다.  단, TR 은 
그의 선임자인 William McKinley 가 Buffalo 에서 총에 맞아 죽는 바람에 
졸지에 부통령에서 최연소 대통령으로 취임한 경우였고, JFK 는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 중에서 최연소인 경우이다. 

아마 TR 은 당시 최연소 부통령의 기록도 가지고 있었을텐데, 그 기록은 나중에 
깨진다.  Dick Nixon 이 39 세에 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TR 은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인기가 매우 높을 때, 같은 공화당의 신복인 
William Taft 에게 성공적으로 정권을 이양하고 물러났다.  하지만, 나중에 
Taft 에게 너무나 실망해서 Taft 의 재선을 막기위해 다시 1912 년 대선의 
공화당 경선에 나섰지만 당내 경선에서 패배하자 스스로 신당을 창당하고 
제3당의 후보가 되었다. 

오늘날 처럼 (= 1960 년대 이후에나 정착된) 당내 경선이 예비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국민이나 당원의 투표로 결정되는 공정한 방식이었다면, 당연히 TR 이 공화당내 
경선에서 승리했을 것이고, 물론 본선거에서도 이겨서, 이전에 Cleveland 가 
그랬던 것 처럼, 두 번의 다른 시기에 취임한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20세기의 세계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이 
공산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에 끝났을 것이고 (그랬다면 소련의 공산화가 실패했을 수도), 
세계대전 후의 유럽 안보와 질서 체제가 베르사유 체제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즉,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을 포함한 20 세기 세계사의 대부분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었다.  
 
TR 은 인기가 일반 국민들에게 폭발적으로 높았던 전직 대통령이었기에 신당을 
급조했어도 거의 30 % 가까운 표를 얻어 대선에서 2 등을 할 수 있었다.  그가 
만든 신당 이름은 "Bull Moose Party" 였다.  그가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 이라는 
제도를 도입한 자연보호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 때문에 현직 대통령 Taft 는 대선에서 3 등을 하면서 물러나게 되었고
민주당의 Woody Wilson 이 당선되었다.

그리고, 4 년 후 다시 TR 이 대선에 나올 거라는 소리도 있었지만, 이미 건강이 
안좋았고, 그 보다는 Wilson 을 너무나 싫어했기 때문에, Wilson 의 재선을 막기 
위해 비록 성공은 하지 못했어도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었다.  1916 년 대선에서 
Wilson 은 선거에서 진 것으로 예상하고 거의 포기했었는데, 마지막 순간 
캘리포니아의 개표로 막판 뒤집기를 하여 겨우 승리했다. 

참고로, TR 은 유명한 일화가 많은 사람이다. 
일찍 정치에 나서 여러가지 뉴욕주의 관직과 주지사에까지 선출된 걸로 기억하는데... 
그만큼 국민적 인기가 대단했기에 젊은 나이의 그를 부통령으로 지명했을 것이지만. 

뉴욕 시를 창시한 네덜란드계 후손이며 하버드 대학 출신인 TR 은, 첫사랑인 부인이 
병으로 죽자 부와 명예를 버리고 홀홀단신 서부로 떠나 대자연속에서 몇 년간 
정처없이 cowboy 생활을 한 적도 있다.  왜 그가 자연을 사랑하고 국립공원운동을 
시작했는지 알 수 있다.

큐바가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을 하려고 스페인과 싸우자, TR 은 미국 정부가 
개입하기 이전에 스스로 자원자로 의용병을 조직하여 큐바로 떠났다.  그는 의용병 
대장이었음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최전선에서 총알을 맞으면서 싸워 일약 영웅이 되었고,
결국 미국이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큐바와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등을 스페인에게서 
빼앗는 결과를 낳았다.  

TR 은 대통령 시절 그동안 법률로만 존재하던 반독점법(anti-trust law)을 시행하여 
Rockefeller 의 Standard Oil 을 박살내어 버렸다.  그래서 독점으로 인해 야기된 
고유가를 안정시켰다고 해야 되나?  요즘 필요한 이야기 같군. 

또 곁가지로 흘러 가면... 
반독점법은 정확히 말하면 Sherman Ant-Trust Law 로 John Sherman 의 주도로 
1800 년대 말에 만든 독점금지법이다.  이 법으로 인해 Standard Oil 이 분해되었고
AT&T 가 쪼개졌고, 지금 Microsoft 가 그 꼴이 나려한다.  이 Sherman 은 
남북전쟁의 영웅 William Tecumseh Sherman 의 친동생이다. 

WT Sherman 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확실히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기를 거부했던 사람으로 기록된다.  나중에 다시 19 세기 미대선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는 군인으로 만족했다. 

참고로, WT Sherman 이 바로 소설/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에서 본, 
남부를 초토화시킨, 물론 전쟁을 일찍 끝내기 위해서였겠지만, 장본인이었다.  
Sherman 이 1864 년 대선 직전에 거둔 이 승전보 덕분에 Lincoln 은 아슬아슬하게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뉴욕에 와 본 사람은 Central Park 의 입구에 커다랗게 
서 있는 Sherman 의 황금 기마상을 보았을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인기가 높았던 TR 이었든지라 그가 South Dakota 주의 
Rushmore 산에 새겨진 위대한 대통령 4 명의 큰바위 얼굴 중 하나가 되는데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으리라.

또, TR 의 유명한 곰사냥이야기 때문에, 영어에서 곰인형을 Teddy Bear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TR 은 재임 중 노벨 평화상을 받은 아마 유일한(?), 
그리고 첫번째의 미국 대통령이다.  그의 공로가 러일전쟁 종전의 중재자였기 
때문이란 건 알테고...  학회 참석 등으로 Cold Spring Harbor 연구소를 
가 본 사람은 그 근처의 Oyster Bay 에 TR 의 집이 박물관으로 보존되어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참고로, Taft 는 단명으로 끝난 대통령이었지만, 나중에 그는 종신직의 대법원장이 
되어 20 세기의 가장 뛰어난 대법관으로 칭송을 받게 된다.  아마 Taft는 
정치 보다는 법원이 그의 자리였는데 그 걸 일찍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가 
전직 대통령이었기에 대법원장을 시켜줬는지도 모르고... 

(註, 이 글을 쓴 이후 알게 된 것이지만, Taft 는 원래 대통령이 되기 싫었다고 
한다.  남들이 억지로 시켜서 하게 되었는데, 특히 그 부인이 대단한 야심가여서, 
남편은 대법관을 하고 싶어 했지만, 억지로 대통령이 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역사 공부 열심히 한 사람은 Taft-카쓰라 밀약이란 것 때문에 이 Taft 를 기억할 
것이다.  이 사람의 아들인 Robert Taft 도 유명한 정치인이었다.  다만, 
대통령이 되는 것에는 운(?)이 없어서 실패했다.  

참고로, Wilson 은 대통령을 하기 전에 대학교 (Princeton 大) 총장을 역임한 
첫 대통령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상만 높았지 성과를 거둔 게 별로 없었다.
그 때문인지, 실망으로 임기 말년을 보내다가 또 중풍으로 고생하면서 임기를 
마쳤다.  또다른 대학총장 출신 대통령은 Eisenhower 인데, 정치하기 전에 
Columbia 大 총장을 했었다. 

어제 Vice-Presidential Debate 가 있었다.  그냥 옛날 생각, 내가 유학생이던 
시절인 1992 년 대선 때 Perot 의 부통령 후보였던 Stockdale (예비역 미해군) 
제독이라는 특이한 인물이 Debate 에 나와서 만들었던 재미있는 상황이 생각나서 
그냥 웃었다.  Perot 도 미 해군사관학교 출신 예비역 장교이고, 월남전에서 
포로가 되거나 실종된 미군을 구하는 일에 자신의 돈을 많이 썼다고 하니, 그런 
인연으로 알게 된 사람일 것이다.  아다시피 Perot 는 억만장자 부자이다.      

어제의 Vice-Presidential Debate 는 확연히 각각의 부통령 후보들이 
왜 선택되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Cheney 는 그의 명성 대로 탁월한 능력과 경륜을 갖추었기 때문에 Bush 가 
절실히 필요했음이 분명했다.  Cheney 는 (아마도 최연소로?) 30 대 중반에 
백악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고, 그 후 의회와 행정부의 요직을 다 거친 
최고의 정치인 관료이다.  

Lieberman 은, Gore 에게 절실한 동부와 서부, Florida 에서의 Jewish 표를 
위해 선택되었음이 분명했다.  물론 Lieberman 은 특이하게도 민주당 내에서 
동북부/뉴잉글랜드 출신이면서도 가장 보수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다른 자세한 이유는 나중에 선거인단 (Electoral College) 제도를 설명하면서 
더 이야기하기로 하고...

또 밥 먹으러 오라고 전화가 왔다.  그럼, 나중에 계속.

Have a nice weekend!


date : 2008-08-09 09: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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