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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2000 년 미대선 이해 5
 작성자 : 주인
 홈 : 없음

제  목 : 미국 대통령 선거의 이해 5 
날  자 : 2000 년 10 월 10 일 
작성자 : GCI 

어제 ABC 방송에서 Peter Jennings Special 로 미국 헌법의 2nd Amendment 를  
둘러싼 논란을 다룬 "Gun Fight" 를 하길래 잠시 보았다. 

이 2 번째 미 헌법 수정안 (2nd amendment) 이 아마도 현재 미국에서는 가장 
큰 헌법을 둘러싼 이슈 중 하나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낙태 문제일 것이고.

곁가지로 먼저 흘러가서, Peter Jennings 는 미국 TV 방송의 빅 3 저녁 뉴스 앵커 
중 하나로, 현재의 빅 3 인 Rather, Brokaw, Jennings 가 모두 다 비슷한 나이에 
거의 똑같이 지난 15 년 넘게 그 자리를 길게 지키는 것으로 보아 셋 다 막상막하의 
실력을 지닌 것 같다.  예전에 이렇게 오랫동안 TV 의 빅 3 뉴스 앵커 3 명이 모두 
다 함께 공존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연봉도 아마 셋 다 5 백만 불은 넘겠지?  한 십 년 전에 셋 다 2~3백만 불 받는다고 
뉴스에서 들었었으니까.  특히, Jennings 는 캐나다 출신이면서 또 고졸의 학력이라는 
배경으로 성공한 것을 보아 매우 똑똑한 X이 분명하다.  알고 보니 Jennings 의 
아버지는 캐나다에서 유명한 라디오 방송인이었다고 한다.   

(註, 그 이후 이 3 명의 당대 최고의 TV 뉴스 앵커들은 각자가 20 여 년 동안 해 온 
뉴스 앵커 생활을 거의 동시에 은퇴하였다.  Brokaw 는 명예롭게 자신이 정한 날자에 
자신이 정한 후계자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를 하였고, Jennings 는 어느 날 
갑자기 앵커 자리를 그만 두었는데, 얼마 후 폐암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애연가였다고 한다.  Rather 는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앵커를 하면서 
동시에 참여하고 있던 “60 Minutes” 프로그램에서 2004 년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발생했던 아주 질이 나쁜 오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불명예스럽게 쫓겨나고 말았다.)  

미국의 헌법이 처음 제정되고 난 후, 새롭게 건국한 미국이란 나라의 연방정부의 권력이 
막강하게 되어 과거 식민지 시대의 영국 왕정과 비슷한 독재를 하지 않을까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당시 온 세계에서 공화정을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뿐이었고, 
다른 모든 나라들이 절대 왕정이라는 독재적인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걱정이었다.  

그러한 이유에서, 미국을 건국한 주축 세력들은 새롭게 제정된 헌법에 신속하게 
10 개의 헌법 수정안을 추가시켜 개인과 각 주의 권리를 보호하려 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미국의 건국 초기에 처음 추가된 10 개의 amendment 를 소위 권리장전 
(Bill of Rights)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첫째가 바로 의사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었고, 
그 두번 째가 국민이 총기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2nd Amendment 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은 각 주가 조직화된 
무장 민병대 (Militia) 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조직화된 무장 민병대의 
해석이 바로 미국 국민들은 모두 다 총기를 소유할 권리가 헌법에 의해 보장된다 
아니다의 논쟁을 낳게 하였다.

역사적이나 문화적으로 볼 때 이 헌법 수정안은 총기 소유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현대 사회에 와서는 총기 소유를 정부가 어디까지 규제하거나 
관리할 수 있느냐로 논쟁의 불씨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총기 규제를 찬성하는 쪽은 모든 총기 소유를 정부가 면허발급 등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반대 쪽은 국가의 건국 이념과 헌법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도 던질 
태세로 보인다.

미국은 이렇게 중앙 정부를 항상 의심하고 견제하는 것을 중요한 이념으로 건국된 
나라인 것이다.  즉, 2nd Amendment 를 무효화시킬 새로운 Amendment 가 
통과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전혀 없어 보인다. 

내가 미국에서 초/중/고등학교나 대학을 나온 사람이 아니므로, 뭐가 몇 번 째 
Amendment 인지를 외우고 있지는 않지만, 대충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Amendment 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면; 

처음 미국이 생겼을 때는 요즘의 대통령 선거에서 처럼 대통령과 부통령이 짝을 
이뤄 출마하지는 않았다.  즉, Running Mate 제도는 나중에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대통령 선거에서 1 등이 대통령이 되고, 2 등이 부통령이 되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까 서로 반대당인 사람이 대통령과 부통령을 함께 하는 우스운 
일이 생기게 되었다.  초대 대통령인 George Washington 이야 무당파였지만,
2 대 대통령인 John Adams 와 2 대 부통령인 Thomas Jefferson 은 서로 
반대파의 우두머리였다.  그리고 더 우스운 일이 그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일어나고 나서는 대통령과 부통령을 함께 후보로 지명하는 Running Mate 제도를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도 부통령 제도가 제1공화국 이승만 정권 시절에는 존재했다.
그때 우리나라에도 Running Mate 제도가 없었다.  우리나라 제1공화국에서는 
대통령과 부통령을 각각 따로 선출하는 방식을 채택했었다.  

그래서, 대통령은 국민적 지지가 높고 연로한 자유당의 이승만이 당선 되었지만,  
사실상 아무런 권력이 없던 부통령에는 야당인 민주당의 장면이 당선되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었다.  이 때문에 부통령에서 낙선한 이기붕이 더욱 심하게 
3.15 부정 선거를 획책하게 되어 정권의 종말을 자초하게 되었을 것이다.  
차라리 이기붕이 미국과 같은 정/부통령 Running Mate 제도를 도입하는 개헌을 
먼저 추진했었다면, 자연스럽게 부통령에 당선될 수도 있었을 것을... 

남북전쟁이 끝나고 나서 해방된 흑인들에게 선거권을 주기 위해 만든 Amendment 에서 
미국의 시민권을 현재와 같이 규정하게 되었다.  즉, 미국 국내에서 출생한 사람은 
모두 미국의 시민권자가 되도록 헌법 수정안을 만들어 추가했다.  이 Amendment 때문에  
오늘날, 아니 오래 전 부터, 소위 “원정 출산” 이라는 것이 생겨나게 되었으니, 
누구든 미국에 와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미국의 시민권자가 된다.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 갈 때 그 아이는 미국의 시민권을 증명하는 “출생 증명서” 와 독수리표 (미국) 여권을 
가지고 돌아가게 된다.  이 “원정 출산” 을 가장 애용하는 나라 사람들은?  물론, 당연히 
한국 사람들이 아니라, 멕시코 사람들이다.  이에 따른 폐해와 반발로 새로운 Amendment 를 
만들어서라도 속지주의 시민권 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남북전쟁/내전이라는 국가적 비극과 화합의 상징이기도 한 이 Amendment 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생각할 때, 불가능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여성이 참정권/투표권(Suffrage)을 가지도록 Amendment 가 추가된 것이 
1920 년의 일이다.  실로 Women's Suffrage 는 거의 50 년 이상을 미국 여성들이 
과격하게 투쟁하여 얻은 결과였다.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그러한 미국 여성들의 투쟁 
덕분에 여성의 참정권을, 일본 여성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해방과 함께 자동으로 
보장 받게 되었다.

원래 미국 대통령은 연임에 제한이 없었다.  하지만, 미국의 국부인 초대 대통령 
George Washington 이 한 번만 연임하고 더 이상은 사양했었기 때문에, 그 이후 
아무도 이 선례를 깨고 한 번 이상 연임을 하겠다고 감히 나선 사람이 없었다.
국민적 인기가 많았던 대통령이야 수도 없이 많았었고, 그들 모두가 원하기만 했으면 
대통령을 20 년도 30 년도 했을 것이다. 

특히, George Washington 은 자기가 원하기만 했으면 미국의 국왕이 되거나 
종신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  그 당시 세계 모든 나라들이 미국만 빼고는 
절대 왕정 국가였으니까.  하지만, George Washington 이 8 년만 하고 
사양했었기 때문에 그 이후의 모든 대통령들이 8 년 이상을 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여겼던 것이다.  물론 FDR 이 그 불문율을 깨기 이전까지는. 

FDR (Franklin Delano Roosevelt) 은 혼자서 4 번까지 13 년 동안 대통령을 
하다가 임기 중에 죽었다.  당연히 욕 먹을 짓을 했다.  누가 감히 George 
Washington 보다 더 잘났다고 8 년 이상 대통령을 해 먹는단 말인가?  아무리 
자기 당에 인물이 없어도 그렇지!  더구나 FDR 은 자기가 죽을 병에 걸려서 
얼마 더 살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마지막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  요즘 같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또한 용서 받지도 못할 일이다.   

그래서, 결국 미국 국민들(=연방 의회와 주 의회)은 대통령이 한 번 이상 연임을 
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대통령 연임 제한 Amendment 를 헌법에 추가하게 되었다. 
이 Amendment 는 FDR 이 죽고 Harry S Truman 이 재임하는 중에 통과되었다.
결국 이 Amendment 덕분(?)에 Dwight D Eisenhower 가 처음으로 연임 제한을 
받는 대통령이 되어 버렸다.  만약 Eisenhower 가 연임 제한을 받지 않고, 다시 
대선에 나왔었다면 Jack Kennedy 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date : 2008-08-17 20:3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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