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네온사인의 불빛 밑으로, 각양다색 입혀진 얇은 옷을 대충 껴입은 각국의 여성들이 밀집해 있었다.

자신의 젖가슴에 자신감이 충만한 여성은 스스로의 손으로 한없이 늘어난 상의를 더욱더 늘어뜨리며 갈색으로 진해진 유두를 내비쳤다. 

그런 자신의 유혹에 완연히 넘어가버려 눈길을 돌리는 것도 잊은 채 입을 떡 벌리고 멍청하게 바라보는 남성을 향해 마디가 길고 얇은 손가락을 움직인다. 

이리와.

마치 어느 산기슭에서 자신의 외모로 나그네를 홀려 정기를 빨아먹는다는 요괴와도 같아 보인다.

유린하듯 허공에서 부드럽게 움직이는 자신의 매혹적인 행위에도 상대방이 선뜻 다가서지 않자, 이번에는 입은 것 같지도 않아 보이는 핫팬츠 안으로 서서히 손을 집어넣는다.

언제 멈추었는지 알 수 없는 여자의 손을 바라보던 상대는 그제야 자신이 바라보던 여성의 대담함에 결국 모든 것을 사로잡히고 만다. 어느새 그 여성은 여러 갈래로 찢어져 나염으로 물든 청바지를 소중한 아이 다루듯이 더딘 손길로 발목까지 벗어 내렸다. 

그리고 이어서 딱 한 마디만을 건넨다. 팬티 좀 벗겨 주실래요?



"창녀촌이 따로 없군."



보기 민망할 정도로 야스러운 광경이 양 옆으로 펼쳐져있던 간에 개의치 않고, 내 옆에서 유유자적하게 걸으며 그런 무리들을 탐문하는 녀석을 향해 질타했다.

내 아무리 뛰어난 집 안에서 태어나고,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재빠른 잔머리를 소유하여 일찌감치 사회생활에 접한 나머지, 그 부작용인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평균보다는 훨씬 빠른 나이에 건강한 성생활을 즐겼긴 했다.

하지만 이런 곳에 와서 굳이 침 흘리며 어떤 녀석이 뚫었을지 모를 구멍에 헐떡일 정도로 부족함도, 아쉬움도 없었다.

'이태원에 가서 한 번 뺄래?' 라고 말을 꺼냈을 때에는 조금 꺼림직 했다만 워낙에 아랫물은 모르겠지만 윗물이 괜찮다고 들었기에 흔쾌히 허락했다.

 물론 전국적으로 알려진 게이 바 혹은 창녀촌, 원나잇 헌팅 장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 동네를 내가 모를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건 정도가 심하다.

아랫물이 더러워도 너무 더럽지 아니한가.

개나 소나 옷을 훌러덩 벗어재끼며 성병에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 알 수 없는 아무 남자에게나 돈을 위해 대시를 한다는 것은 큰 대학 병원의 주인으로써 인정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설마 내가 이런 걸로 오자고 하겠냐."

"그럼 왜 왔는데. 사업 공부하러?"

"아니, 전설 좀 찾으러 온 거다."



전설? 뜬금없이 웬 전설? 전설이라 함은 전설의 고향같이 어느 한 지네가 죽고 나서 한을 품고 사람들을 죽여서 간을 빼먹는다든지 심장을 터트려 씹어 먹는다는 고전소설에 나올법한 스토리를 시각적으로 풀이해놓은 귀신계의 진정한 버라이어티를 일컫는 것일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킬러 녀석의 같잖게도 진중하게 가라앉은 두 눈동자가 굳건하였기에 함부로 말장난 칠 생각이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녀석이 도대체 눈알이 빠지도록 남들이 드러내고 섹스를 해대고 있는 이 더러운 골목길에 어떤 전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새삼스레 녀석의 의중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였기에, 이 동네에 온 지 한 시간 여 만에 가까스로 녀석에게 이 건에 대하여 질문을 건넸다.



"남자건 여자건 지옥을 맛보게 해주는 인간이 있대."



남자건 여자건? 그 말인즉슨, 여자와 여자끼리는 거시기가 없으므로 굳이 기구를 쓰면서까지 비싼 돈 들여 창녀와 잘 미친 여자는 없을 것이라는 간단명료한 가정 하에서 추측해보건대, 녀석이 말하고 있는 전설의 대상은 남자인 모양새다.

잠깐. 그럼 지금 이 새끼가 뻔히 에이즈에 대한 협회 회장이라든지 논문이라든지 이것저것 연구를 하고 있는 나를 가지고 지금 사내새끼 똥구멍에 좆을 박으러 가자는 건가.

이 새끼가 지금 날 엿 먹이려고 환장한 건지 아니면 여태껏 나에게 쌓여있던 것을 이참에 풀어버리자는 생각에 머리가 돌아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 녀석의 진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이유다.

녀석이 나를 이곳까지 굳이 끌고 온 이유.

동성연애에 대한 부주의로 일어나는 성병에 대해 남들보다는 배로 깊은 혐오감을 품고 사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의사 중 하나인 나로서는 심히 달갑지 않다.

중증일정도로 게이포비아인 것을 녀석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게이 존나 싫어하는 거 알면서 지금 나 데려 온 거냐? 엉?"

"어이, 키드.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그 소리냐. 너 그렇게 말하고 다니면 무뇌아 소리 듣는다?"

"지금도 귀에 딱지가 생길만큼 뻔질나게 듣고 있으니 난 돌아간다. 존나 게이혐오인거 알면서 이러는 거냐." 



포비아의 발단은 동창인 이 녀석과 함께 3년을 다녔던 고등학교 교내에서 급작스레 유명세를 탄 게이 한 명으로 인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안줏거리에 지나지 않는 이야깃거리에 그쳤더라면, 나는 동성연애에 관해서 제 아무리 에이즈에 관한 연구원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이빨을 득득 갈아대며 혐오할 정도로 되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상 그 무더운 여름 날 끈덕지게 달라붙던 열기에 뒤섞여 산산조각 나버린 추억들 중, 그 게이 녀석과 살을 맞대고 부비고 했던 찰나의 방황도 있었다.

녀석은 그 어느 누구에게나 타인의 입에서 오르내리며 전달되고 전달되어 더러워질 대로 뒹굴 린 자신에 관한 소문에마저 눈 하나 깜짝 안하던 위인이었다. 

마치 밤하늘을 옅게 흐리던 대지 위의 수많은 인공적인 빛들에 굴하지 않으며, 고고하게도 그들 바로 머리맡에 떠오른 달처럼 말이다. 자신을 모질 나게 대하는 녀석이든, 자신에게 혹하는 마음이 있기에 접근하던 녀석이건 간에 언제나 대등하게 대했다. 

손짓도, 몸짓도, 언행 그 모든 것이 세월의 흐름에 몸을 내맡긴 듯 위험할 정도로 한결같았다. 

그랬기 때문일까? 저린 땀과 흙냄새에 뒤섞여 악취를 풍기는 다 큰 또래 녀석들과는 달리 녀석에게서는 언제나 잔잔하게 흐르는 청아한 바다 냄새가 시원하게 풍겼다.

그 끊임없이 지속되는 시간들과 함께 홀로 경과하는 물결과도 같이, 녀석도 그러했다. 

더해서, 어렸을 적에 누구나 얼굴에 하나 쯤 달고 살 만한 기름기에 절절 절은 여드름, 모공. 그 어느 것 하나도 녀석의 얼굴에게선 발견 할 수 없었다.

그렇다. 그럴 정도로 녀석은 너무나도 완벽, 그 자체였다.

흔히들 모질 난 곳 하나 없는 사람을 일컬어 엄친아라고 했다면, 남성미를 풍아하게 뽐내는 우리 학교 녀석들에게 있어서 녀석은 엄친딸이였다. 

물론 그러건 말건 이성에 부족함이 없던 나에게 있어서 사내새끼 한 마리에 왈왈 짖어대는 그 꼬락서니들에 콧방귀만 꼈다만.

앞에서 언급했는지, 안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여하튼 나와 킬러가 나온 고등학교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바로 옆 동네에 위치한 명문남자고교였다.



"키드. 아직도 그 녀석 못 잊고 있나보네."

"어떻게 잊냐? 그 살인범을. 씨발."

"대학 왔으니까 됐지, 뭘."

"못 갈 뻔했다고 그 새끼 때문에!"


적어도 SKY대학교 이상은 졸업해야한다는 가문의 뼈대어린 정통은 개뿔이고 나발이 고간에, 단순히 시대에 발하지 않던 부동산 투기에 일찍이 손을 뻗쳐 한 밑천 벌은 부모덕에 코피 터지게 공부를 했다.

험상궂은 인상과 어딜 가나 눈에 띄는 붉은 머리에 다부진 체격으로 인해 존나 모범생 잘 패게 생겼단 소리만 들었지만 이래봬도 전교에서 날리던 공부벌레였다.

지금 내가 운영하고 있는 큰 대학 병원? 청진기는 껴 본적도 없는 한낮 돈 좀 있는 대한민국의 시민이 병원을 제 집 드나들듯 들락날락거리는 게 귀찮아서 사버린 야산하나 통째로 밀어버려 세운 그 병원? 게다가 그 무식이 일자인 인간이 바로 내 부모인데다가, 본토 내에서 상당히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병원을 남에게 맡기자니 경영이 어려워지거나 혹은 망하거나, 빼앗길까 두려워 하나뿐인 아들새끼 줘 패가며 공부시켜 맡겼다는, 수많은 영화들과 드라마의 배경으로도 했었고 VIP룸은 하룻밤 자는 데에 백으로 5장 깔아도 부족하다는 그 말세인 병원?

그딴 것을 위해 공부에 취미라고는 쥐꼬리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는데다가 잔머리에 비해 뇌세포 개수가 특출 나게 적은 나로썬 욕지거리가 절로 나오게 하던 것이 공부였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재산 한 톨도 물려줄 수 없다며 열 장 남짓 하는 골든 카드가 빽빽이 들어있던 검은색 악어가죽 지갑을 빼앗아간 부모의 언행에 심한 충격을 받아 킬러와 함께 고등학교에 입학 하자마자 고액과외를 시작했다.

여하튼 내가 왜 이런 지랄 맞은 생각을 꺼냈는가 하면은, 그 병원에 가기 위해서 중3때까지 즐겨왔던 내 수많은 섹프들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큰 돈 들여 그 명문고교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외고에서 그런 짓 한 네 녀석도 잘못했지, 뭘."

"그래도 그 새끼가 다 망칠 뻔 했어."


뭐더라, 그다지 내가 원해서 등록한 곳이 아니다보니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도 외고였던 듯싶다.

다시 생각해보니 어쩐지 수업이 전부 양키 언어로 진행한다 했네. 외고 맞나보네.



"아무튼 이제 잊을 데도 됐잖아. 천하의 키드가 아직도 그런 짝사랑에 얽매이는걸 보아하니 아직도 미련 있나 보네."

"뭐? 미쳤냐? 그런 미친년한테 누가 목숨 걸 정도로 사랑하겠냐. 일단 살고는 봐야 하는 게 사랑 아니냐?"



사랑. 내 입에서 급작스레 터져 나온 익숙지 않은 단어에 한여름 밤에 참으로도 걸맞지 않는 소름이 쫙 끼친다. 

우두둑하고 솟아오른 팔뚝의 살을 죽은 색으로 뒤덮고 있는 손톱으로 벅벅 긁어대자, 킬러 녀석이 그런 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찾고 있던 것을 찾기 위해 눈길을 돌린다.

언뜻 보이는 녀석의 옆모습으로 입 꼬리가 살살 기어 올라가는 것을 보아하니 자신이 말하고도 역겨워하는 내 모습이 우습기 짝이 없나 보다.

하긴, 나같이 깔끔한 관계인 원나잇을 선호하는 타입이 사랑 운운해가며 자신의 성 경향을 조목조목 읊는다는 건, 이제 막 입을 뗀 돌이 지난 아기가 온라인 총 게임을 하며 개새끼! 말새끼! 소새끼! 씨발새끼! 를 연속으로 운운하는 것과 같이 언매치적이지 않을까싶다. 

그런 내가 딱 한 번, 한 사람에게만 머리에 털 나고 처음으로 온 열정을 쏟아 부은 적이 있었는데, 그 대상이 그 게이새끼였다.

물론 남들의 눈에 비친 건 그저, 심하게 폭행과 언행으로 녀석을 괴롭히던 선생 앞에선 모범생, 그 게이만 나타나면 변하는 싸움꾼의 인격을 지닌 나였지만 나름 그 녀석을 겉으로 티내지도, 행동하지도 않았다만 속으로는 아끼고 너무 아껴서 결국은 소유욕이 쩔어줬을 정도엿다.



'너 게이냐?'



고등학교에 갓 입학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때였을 것이다. 

이대로 집, 학교, 집, 학교만을 몇 개월 내내 왕복하자니 건강한 성생활에 충족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끝없는 지루함의 표본인 학교 생활이었다. 

자위에 대해서 배우기도 전에 이미 세 살 위, 연상의 누님에게 동정을 떼인 나로서는 자위란, 그저 욕망을 분출하고 싶지만 여자와 섹스하기에는 나이고 그렇거니와 파트너도 없고, 장소도 콘돔도 경험도 턱없이 부족했으며, 사회의 윤리 상 이룰 수 없는 루저들에게나 해당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한심하지 않는가?

자기 자신이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거시기를 훑어대며 헉헉대며 좋아하는 꼬락서니라니, 그 모습을 보는 이는 얼마나 눈이 썩어나겠는가.

차라리 눈알에 염산을 뿌려도 그보다는 덜한 충격일 것이다. 아니 이 비유는 좀 무리수를 둔 것 같군.그 이전에 그딴 짓을 하면 일단 병원에 가더라도 실명은 100% 인데다가 거시기를 구두에 차여도 그보다 덜 아프지 않을까.

일단 각설하겠다.

아무튼 그런 환경에서 무난하게 자라온 내 17년의 인생살이에 있어서 가장 큰 대 핀치였다. 

섹스는 하고 싶어 죽겠는데 방과 후 잠시라도 짬을 낼 시간이 도저히 없었던 것이다.

자위는 죽어도 하기 싫고, 주말도 물론 아침부터 새벽까지 풀로 잡혀있는 과외와 과제와 숙제와 시험으로 인하여 집 밖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꺼내놓을 새가 없었다. 

미친 척 하고 딱 한 번만 해적들이 수감되던 감옥과도 다름없는 그곳에서 탈출하여 옛 파트너들 중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고 난 후, 택시를 타고 달려가 으쌰으쌰했다면... 나는 아마 지금처럼 추억을 회상할 수 없을 정도로 머나먼 여행의 길을 떠났을 것이다.

지옥으로.



'왜 그런 걸 묻지?'



그 정도로 욕구불만에 쌓여있었던 내 눈앞에 홀로 떡 하니 나타난 녀석은 호리호리한 몸태를 지니고 있던 옆 반의 소문난 게이새끼였기에 그랬을까, 여태까지 생겨나지 않았던 호기심이 싹 트기 시작했다.

드레이크 녀석이라든지 킬러 녀석도 주위 녀석들의 감칠 맛 나는 게이 녀석과의 홍콩행 이야기를 듣고서 혹한 나머지, 두 번 다시 성행위로 접근하지 않을 것이라는 각서에 지문찍는 것을 담보로 녀석과 잤다고 했다. 

자기 내키는 대로 수업을 진행하거나 아예 학교에 나오지도 않던 홍학새끼도 강당 구석에 있는 체육 창고 실에서 게이와 한 판 하고 난 후, 단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꼬박꼬박 출근하기 시작했다는 후일담마저 있었다.

뭐더라, 녀석은 한 번 잔 사람과 다시는 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룰을 지킴으로써 뭇 사내새끼들의 가랑이를 간질이게 만들었다. 

어쩐지 홍학 녀석의 기분 나쁘게 가라앉은 웃음소리가 언제나 게이 녀석의 주위에서 맴돈다고는 생각했다만.



'내 불알친구가 네 녀석이랑 잤다 길래.'



설마하니 내 십년지기 친구들마저 잠자리만큼은 배태랑 인데도 불구하고 녀석과 한 판 하고나서부터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제 정신으로 돌아오질 못 했다. 

틈만 나면 건방지게도 내 멱살을 두 녀석들이 잡아끌고는 옆 반의 게이를 찾아 삼만 리를 떠나기 일쑤였고, 곰과 관련된 상품들을 좋아한다는 녀석의 프로필 중 하나를 그대로 수용한 나머지, 마지막 수업시간에 학교를 몰래 빠져나가 계집애들의 로망인 인간 한 명이 들기에도 벅찬 거대한 흰 곰을 사 와 교문 앞에서 한없이 기다리기도 했었다.

물론 언제나 그 옆에는 한껏 구겨진 미간에 자못 심각함까지 곁들여 검붉은 입술을 깨물고 있던 나 역시도 자리했었다. 

아, 그 곰 인형 사건은 아마도 킬러 녀석일 것이다.

녀석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무엇이든지 해주는 애처가 타입 이였기에 대충 어림짐작은 했다만... 설마 사내새끼에게 그러기까지 할 줄은 그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유유상종이랄까, 녀석도 나와 같이 한 성깔 했으니까. 뭐, 공룡새끼는 더 했다만. 

그 이야기는 너무나도 충격적이니까 나중에.



'.....아하.'

'사실이냐?'

'그럴걸.'



그럴 걸은 또 웬 그럴 걸이냐, 지 이야기인데. 

녀석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본 것도 처음이었던 그 때, 녀석과 나의 첫 대화란 참으로 청소년이 하기엔 불건전하면서도 자극적인 주제였다.

매주 바뀌는 주번활동으로 인하여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방과 후 한 시간 정도 반마다 각기 다른 주번들이 모여 학급회의 비스 무리한 것을 하는 것이 있었다. 

근데 하필 학급회의를 하기로 한 반도 바로 옆 반, 게이 새끼가 속한 반인 것도 모자라서 그 주번마저 녀석이었다.

키순으로 정해져있었던 학급번호로 인하여 내 번호는 반에서 가장 끝이었는데, 어째선지 내가 주번이 된 날이 이런저런 게이새끼에 관해서 발에 불똥 떨어진 것 마냥 뛰어다니던 친구들에게 합류하여 바쁜 새내기 활동을 한 지 어언 한 달 즈음 지난 후인데다가 말이다. 

그렇기에 녀석에 관해 전혀 모른 상태에서 지금처럼 단 둘만이 기척하나 없이 노을에 잠식되어가는 교실에 남아있었다면, 아마도 저런 이상야릇한 이야기가 아닌, 평범하고도 간략하게 서로에 대해 물으며 또래 아이들답게 자기소개를 하며 교감하지 않았을까.

한창 물오른 여가수 그룹의 실력이 아닌 외모와 몸매에 관해 점수를 매겨가며 토론한다든지, 혹은 어제 철학 숙제 하나 좀 안 해왔다고 전교 3등 이내에 드는 나를 출석부로 북 치듯이 머리를 강타하던 쿠마 선생의 뒷공론을 한다든지 말이다. 



'이름이 뭐냐?'

'......'

'말하기 싫냐?'

'어.'



흐응. 

여리여리한 외관과는 달리 똑 부러지게 자신의 의견을 서슴없이 내뱉는 녀석의 대답에 조금 황망해하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 샤프로 책상을 두어 번 두드렸다.

뭐, 지가 말하기 싫다면야 어쩔 수 없다만. 오히려 싫을 때는 싫다고 확실하게 말해주고 뒤로 까지 않는 녀석들을 나는 오히려 좋아한다.

그런 녀석들은 대체로 배신 때리지 않으니까.

별 의도 없이 물은 질문인데도 불구하고 녀석의 잿빛 눈언저리에 서린 냉기가 내 온 전신을 훑어가며 무언으로 거부감을 표출하며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

분명 녀석은 몇 십 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 함께 존재하고 있었는데도 마치 녀석과 나 사이를 갈라놓는 경계가 자리한 듯 느껴지지 않는 원근감이, 지금 생각해봐도 참으로 묘한 느낌을 감돌게 했다.



'......'

'......'



내 손끝으로부터 퍼져나가는 소리에 맞춰, 다시금 교실을 채우는 녀석의 발소리가 창가 쪽 분단의 맨 끝자리에 앉아있던 내 옆으로 이어져 온다.

익히 들어왔던 녀석의 악행과는 차원이 다른 여리한 부드러움에 입 꼬리가 절로 씰룩거렸다.

얼씨구, 아주 온 몸에 여성스러움이 배어 있군.

자라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묘목의 표본이나 다름없는 얇은 체구를 소지한 것도 모자라서 걸음걸이마저 잔음 하나 없이 사뿐거리는 꼬락서니가 가관이다.

남자는 남자다운 야성미를 지녀야한다는 것이 모토인 나에게 있어서 매우 눈에 거슬리는데다가 결코 친해지기 싫은 타입이다. 

이 새끼한테 홀랑 넘어간 친구 놈들 때문에 뒤 꽁무니 빠져라 쫓아다닌 것을 재차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주먹에 힘이 저절로 들어갈 정도다.

물론 내 성격이 좋지 않다는 것도 한 목 하는데다가 사소한 일로도 쉽게 욱하는 게 남들의 배인 것은 인정하다마는.



'옆에 앉는다.'

'그러든가.'



바닥을 끄는 의자의 소리를 들으며 이내 녀석을 전부 담아내지 못하는 시야를 거두어 열기 실린 얕은 바람을 받아들이는 창문으로 돌렸다. 

지금부터 쓰잘대기 없는 주체를 가지고 토론하며 학급일지를 휘갈겨야 할 상대였기에 괜스레 짜증내봤자 좋을 거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죄 앞에선 그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한다는 염라대왕이라는 별칭마저 떠돌 정도이니 이 녀석도 한 성깔 할지도 모른다.

아니 근데 그런 칭호로 부르기엔 오히려 죄 짓게 만든 원인인건 이 녀석인데다가 사내새끼 주제에 어울리지도 않게 풍겨대는 야한 페로몬 때문이지 않나?

입술을 삐죽이 내밀며 녀석으로부터 눈길을 돌려 어두워져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처럼 탐닉하고 싶을 정도로 익어가는 일출이 들어갈 곳을 찾지 못해 깊숙한 곳에서 말라가고 있는 내 아들내미에게 더한 슬픔을 안겨준다.

슬프도다, 인생이여. 



'관심 있어?'

'하?'

'관심 있냐고.' 



거무스름하게 이어져 나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며 욕구 배출에 관한 번뇌를 한 번 하고 있자, 남자를 좋아한다는 남자 놈이 내 옆 자리에 앉아 회의록을 양 옆으로 펼쳐놓더니 서서히 오른 팔을 들어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피식, 눈동자도 맞춰오지 않는 주제에 네 녀석의 단순한 생각 따위 표정에 다 드러난다는 듯이 자조하는 그 숨소리에 괜스레 울컥 속이 치받쳐 올라왔다.

여성과는 달리 볼륨 없이 빼빼마른 구릿빛 체형에, 덥수룩한 나머지 부스스하기까지 한 흑색의 숏컷 헤어는 관리마저 하고 있지 않아 보였다. 

여섯 갈래로 갈라진 짧은 턱수염과 그에 이어진 턱관절까지 뻗친 구레나룻은 더할 나위 없었으며, 자신을 향해 무구한 사랑을 주는 남팬들을 향해 실없이 웃던 그 입술에는 진실함이 묻어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친구 녀석들에게 끌려 다니며 항시 봐오던 그 모습에 체형 값 한다며 조롱했다가 구타 맞은 적이 있는데, 씨발. 

그래서 내 손톱이 거무죽죽해진 이유는 전부 이 게이 새끼 때문에 잘못 쳐 맞았기 때문이다.



'너한테?'



있을 리가 없다. 완벽하게도. 

이 녀석은 내가 바라는 이상형과 함께 여지까지 침대 위에서 뒹굴었던 파트너들의 공통적인 취향들을 요모조모 면밀히 따져보더라도 극과 극, 남극과 북극, 빨강과 파랑이나 매한가지.



'아니, 나 말고.'



그리고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해낼 수 있는 녀석과 나 사이의 거리를 척도해주는 일말의 추억이었다.

분명 거절하는 의사로 답문하며 강건한 눈빛으로 쏘아보던 녀석의 말문이 계속 됐던 것도 같다만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아마도 그 후로 겪었던 일들이 너무나도 강하게 뇌리에 박혔기에, 그 외의 자질구레한 것들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다지 기억해 내지 못 한다 할지라도 큰 지장은 없으니까 말이다. 

살인자.그래, 녀석은 살인자다.

나에게 있어서 녀석은 무미건조한 살인을 저지른 녀석일 뿐이다.



"그 녀석이랑은 완전 지옥이었다며."

"맞는데. 지옥이나 다름없었지."

"사랑 맞네. 그럼. 어쩐지 그 녀석 너무 괴롭히더라."

"아니라니까, 병신아! 넌 지옥이 천국이랑 같냐?"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어져만 가는 과거 따위에 연연하며 회상할 바에야, 이곳으로 날 끌고 온 키드를 어떻게 반 죽여 놓고 귀가할 것인가를 검토하는 것이 더욱더 요긴할 듯싶다.

킬러 녀석이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운운하며 자신과도 같이 나 역시 그 게이를 짝사랑했던 것 아니냐며 힐책한다.

녀석에게서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얼토당토아니한 질문 세례에 손 사례를 치며 가뜩이나 주름 진 이마에 한 획 더 긋게 만들었다.

섹스가 사랑이고, 사랑이 곧 섹스며, 사랑 없는 섹스는 섹스가 아니란 말이지.

요컨대, 그 게이새끼와 나는 침대 위에서 서로의 살을 더듬으며 얽히고설키고 했다 하더라도 사랑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달콤하기는커녕 오히려 독이 되어 씁쓸함과 짜증을 동반하던 녀석과의 하드한 정사는, 홍콩행을 맛 볼 기회조차 없는 것도 모자라 단지 쌓인 성욕을 배출하기 위해 당연하단 듯이 치룬 본능에 그쳤었다.

나날이 쌓여만 가는 스트레스를 분출하기 위한 일이였을 뿐,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는 언제 어디서든 없었다.



"천국과 지옥은 별 차이 없어, 키드. 적어도 이 세상에선."



다 왔어, 요 앞이야. 킬러 녀석이 벌겋게 달아오른 내 눈동자에 실린 화딱지를 바라보며 어루더듬는 듯이 한 마디 했다.

유료 주차장에서 한 없이 걸어 온 지저분한 골목의 끝에 자리 잡은 목적지는 다른 곳으로 빠지는 길 하나 존재하지 않는 한길에만 매진해 있었다.

구름이 드리운 저녁 하늘이 적색과 남색으로 채도를 이어가며 기분 나쁠 정도로 일렬로 열리어진 가게들의 욕정어린 색을 띄운 홍등을 뒤로 한 채, 서서히 검은 색으로 잠식하고 있었다.



"이 가게냐?"

"응."



분홍색, 그 원색 딱 하나만으로 채워진 가게의 간판에는 웃을 笑 , 뜻 情 을 합한 소정이라는 옅은 노란 빛의 글자가 오른편에 크게 새겨져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업종을 간략하게 걸은 간판과 오래 된 옛 한옥을 개조하여 지어진 것을 보아하니 제법 힘 있는 매춘 업소인 듯싶다.



"그것보다 조금? 존나 큰 차이거든? 넌 천국이 고통을 맞보는 곳인 줄 아냐?"

"이 세상에서 천국이란 무의미 하지 않나. 종교인이라면 몰라도 말이지."

"무슨 의민지 통 모르겠군. 시답잖은 소리 그만둬."



이런 정육점 같은 빛깔을 띄운 조명을 받으며 아직 앳되어 보이는 여성들의 나체를 가게 앞에 내세운 비정상적인 이 거리는 기분 나쁘단 말이다, 지금 킬러 네 녀석의 이해할 수 없는 말들도.

킬러답지 않고도 익숙치 않게 꼬여져 버린 이야기를 속내로부터 들끓어 오르는 욕정으로 뒤덮인 한적하고도 붉은 골목에서 들어서 그럴까, 급작스레 역류해오려는 기분 나쁜 속을 다스리기 위해 눈살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입술 끝을 매만지고는 지그시 내리 눌렀다.

한옥을 두 손으로 살며시 밀며 문턱으로 한 걸음 내딛던 킬러가 슬며시 고개를 뒤로 돌리며 눈을 맞춰온다.

녀석의 번들거리는 두 눈동자에 실린 홍등의 불빛을 발하며 입을 막고 서 있는 내 모습은, 마치 한 여름의 저녁노을을 받던 그 날과도 비스무리 했다.

게이 녀석과 처음으로 말을 섞었던 그 미숙한 판단에서 일어난 뒤틀린 일상의 시발점. 



"관념으로는... 별 차이 없어."


그 말을 끝으로 킬러 녀석은 완연히 나로부터 등을 돌린 채 가게 안으로 들어섰기에 느릿한 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어느새 문호를 넘어선 녀석과 나라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뛰어나온 여성들과 그 곳을 통솔하는 우두머리쯤으로 보이는 우락부락한 금발의 청년이 익숙한 몸짓으로 다가섰다.

킬러와 같은 머리색을 가진 갈색 피부의 남자는 큰 눈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동공을 잔뜩 찡그린 것도 더해, 이마의 구석진 곳에 네 땀 정도의 상처를 달고 있었기에 조폭과도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긴, 이런 업소 하나 잘 관리하려면 저 정도의 인물 하나쯤은 있어야 술 처먹고 가게의 상품에 손찌검을 해대는 손님정도야 정리하기 식은 죽 먹기겠지.

녀석은 킬러를 향해 그 큰 덩치를 90도로 꾸벅 숙이고는 말씀대로 잘 처리해뒀으니 걱정 말라며 한 두 마디 짤막하게 건넨다.



"당장 준비할까요?"



킥킥거리며 가볍게 웃어재끼며 뒷 말을 잇는 청년의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킬러는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다 말고는  다시금 입을 굳게 다문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런 킬러에게로  무리들로부터 빠져 나온 잘빠진 몸매의 여성이 금발의 청년을 뒤로 하고는 왼쪽 손을 들어 올려 킬러의 오른 어깨에 가벼이 올려놓고는 귀로 입술을 가져다대곤 싱긋 웃는다.

예약절차가 뭐 이리 복잡한 건지, 킬러 녀석은 언제 이런 가게에 단골손님으로 자리 잡은 것인지,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심심한 나머지 커다란 마당 한 가운데에 서서 우리 둘을 둘러 싼 무리들을 빙 둘러보았다.

그다지 눈에 띌 정도로 특출 난 외모를 가진 여성은 지금 킬러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는 여자 단 한명 뿐인 것을 보아하니, 아마도 가게의 간판이나 다름 없는 모양이다.

대다수의 창녀들은 어디 단체로 요가를 다니는 모양인지 곱게 잘 빠진 몸태를 지니고 있었고, 외양마저도 일반인이라고 보기에는 다수 무리가 있을 정도로 잘 갖추어져 있었다.

꽤 괜찮은 가게군. 조금 있다 명함 하나 받아가든지 해야겠군.

그러고 보니 그 게이 녀석도 여기에 있는 창녀들 못지않게 부드러운 몸에 여들여들한 맵시를 가지고 있어서 한 동안 정신 못 차리고 달려들었었지.



"키드." 



또다시 떠오르는 녀석의 마지막으로 나를 향해 차갑게 조소하던 얼굴을 떠올리며 기분이 설핏 가라앉을 때 즈음, 킬러 녀석의 부르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돌렸다.



"왜." 

"네 파트너는 여기 없어."



하? 뭐야, 예약이라도 해 뒀다는 말인가? 오늘따라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탓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녀석의 힘없이 터지는 웃음소리를 타고 잔잔한 바람이 불어든다.

아아, 킬러 녀석을 바라볼 때에 마저 이제는 그 게이 녀석과 보내온 시간들이 하나 둘 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째서일까.

그렇게 치고받고 서로의 자존심을 긁어내리는 모욕감을 안겨 주기까지 한데다가, 폭행은 기본이거니와 가슴을 짓이길 정도로 심하게 멸시했던 녀석과 나였다.

물론 그 대다수는 녀석의 이 남자 저 남자 붙잡던 가벼운 언행에 대해 화를 참지 못한 나에 의한 것이었을 것이다.



'남자랑 섹스 하는 거에 관심 있냐고.'



그렇게 한 동안 자신의 이름을 물어온 나를 눈길로 질타하던 녀석이 한 삼십 분간 조용히 일지를 쓰고 있었을까, 창가에 턱을 괸 채 멍하니 운동장을 바라보던 나를 향해 그리 물어왔다.

왜였을까, 녀석의 눈가에 일렁이던 그 의미에 대해 알아내려고 선뜻 나서지 않았던 이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에게 그렇게까지 안타까운 눈길로 마주봐 준 사람은 그저, 녀석이 처음 이였기에 당황해서였을까.

아니면 마치 이생에 미련 없다는 듯, 끝없이 가라앉아 가던 녀석의 흐릿한 미소가 나마저 시선을 돌려버린다면 이 세상의 어디에서조차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는 느낌이 와닿았기에 그랬을까.

아니, 적어도 나란 녀석은 그런 연민이나 동정심 따위에 마음을 내줄 정도의 위인은 아니었다.



'아니라고 하면 어쩔래.'



너 말고도 나랑 자 줄 여자들은 많거든? 뻐기지 말아줄래?

녀석이 남자와 잔다는 기정사실을 얻어낸 것에 불쾌함을 느끼며 조롱이 그득 섞인 입술로 비죽이며 조롱하자 뜻밖에도 녀석은 여태껏 본 적 없었던 미소로 답해왔다.



'…그럼 고맙군.'



그것은 수일을 녀석의 스토커이자 나의 오래된 친우인 두 녀석들과 함께 수업을 병행하며 몰래 게이 녀석의 뒤를 쫓았던 때에도 접하지 못했던  일이였다.

처음으로 녀석에게도 나와 같이 숨이 붙어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더러운 세균마냥 녀석을 취급했다는 사실에 한 없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어느 정도 머리 좀 자랐다고 뻐대겼던 나란 녀석은 자신과 다른 취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녀석을 비웃었던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든 간에 녀석이 남자와 자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인 것이고, 따지고 보면 녀석은 한 사람과는 두 번 다시 잔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녀석은 욕망에 휩싸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건장한 청소년들의 구세주일지도 모른다. 웃긴 이야기지만.



'넌 왜 아무하고나 자는거냐?'

'글쎄, 별 이유 없는데.'



그냥 좋아해주니까 그런 거 아닐까- 녀석이 사각거리며 종이 위로 자욱을 남기는 펜 소리에 뒤틀려 들릴 듯 말 듯 작게 읊조리듯이 대답했다.
 
자신을 향해 구애를 해 오는 사내새끼들을 거부하자니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내어 헛소문을 퍼뜨려 미움을 살지도 모르는 일이거니와, 혹은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서 녀석을 억지로 앉는 일까지 일어나 교장에게까지 불려갈 정도로 큰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사춘기의 세대가 응집한 곳이 고등학교였다.

혹은 녀석은 이미 그러한 일을 한 번 당한 적이 있거나 트라우마가 생겨버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런 탈출구를 선택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짧았군. 잊어라.'

'뭐?'

'사과는 할 줄 몰라서 안하니까 잊으라고.'



그런 말은 해 본 적도 없고, 그렇게 까지 해 줄 정도로 나는 친절하지도 않은데다가 나 하나 책임지기에도 빠듯한데 굳이 저 녀석까지 신경 써 줄 필요는 없앴기에 그저 잊으라는 명령밖에 할 수 없었다.

게이 녀석과 그다지 접점이 없던 나였기에 녀석이 상처받던 말든 신경 끄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이란건 제각기 다양한 자아를 가지고 있었기에 똑같은 말이라 할지라도 상처를 받는 정도가 상당히 틀리다.

그러니까 하나하나 일일이 진중하게 챙겨줄 수 있지 않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기에 달리 무언가를 해 줄 의무는 없었다.



'친절하군.'



그럴 리가 있냐? 너 같은 새끼가 쳐 울어 싸던 말든 나랑 거리가 멀다만 괜스레 뒤 끝이 찝찝해지니까 그런 식으로 말한 거다 병신아.

원래 동성연애를 하는 놈들일수록 사람의 정에 급급해 조그마한 친절에도 툭하면 감동받는다던데 그게 사실인가 보군.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사회 속에서 섞이기 힘들다면 동성연애 따위 그만두면 그만이지 않은가?

제 스스로 자학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면서도 목숨 걸고 그런 짓거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의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 나로서는 자신을 가벼이 여기는 족속들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기에 무척이나 불쾌한 존재였다.

나름 양아치라는 단어라 따라 붙는 몸 이다만, 뼛속까지 자리 잡은 어린 시절의 교육으로 의사로써는 부족함 없는 자질을 갖추고 있단 말이다, 이래 뵈도.



'키드여.'



왠지 모르게 자신의 완벽성을 추구하며 뿌듯해하고 있었을 때, 녀석이 낮게 속삭이며 내 이름에 이상한 언미를 붙이고는 내 이름을 불러 왔다.

그 잿빛 눈동자도, 오물거리는 그 얇은 입술도, 이리 저리 뻗친 짧은 남색이 어린 검은 머리칼마저도 무언가 상당히 눈에 익었기에 찬찬히 시야를 녀석에게로 돌려 두고 직시하였지만, 특별히 머릿속으로부터 떠오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굉장히 중요한 것이 가슴 언저리로부터 빠져 나간 듯 공허함이 가득 차올랐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두 친구 녀석들을 군말 없이 뒤따라 이 녀석을 관찰하기 시작한 연유는 아마도, 자기 자신의 과욕을 충만 시키기 위해서, 혹은 지나칠 정도로 답답한 속내에서 일구어진 호기심을 없애버리고 싶기에 시작한 일이였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마이너스적인 감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라난 다른 감정이 '욕정' 이였다는 것만 뺀다면, 녀석과 나의 취미와 성격은 형제라고 보더라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닮았었기 때문에 킬러 녀석 이상으로 좋은 친구가 됐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녀석의 입장에서는 무리였겠지만.



"키드"



그 후로도 이어지던 녀석과의 대화를 간신히 떠올린 지금, 그 이상을 꿈꾸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이 적절한 타이밍에 킬러의 일언으로 깔끔하게 끊어져 버렸다.

위험했다. 새삼스레 그 녀석에 대한 감정이 다시 살아나서는 안 됐었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더구다나 그 의외의 모든 사정을 알고 있고, 나와 같은 심정을 겪어본 적 있는 킬러 역시 지금 바로 내 눈앞에 있었기에 알려져서도, 깨닫게 해서도 안 됐다.

킬러 녀석도, 나란 녀석도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해서는 안 될 일 까지 저질렀었다.

그 녀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후미진 곳에 지니고 있을 폭력성을 일으키게 할 정도로 이성을 잃게 할 감미로운 매력을 지닌 무서운 녀석 이였기에 두 번 다시 빠져들고 싶지 않을 정도로 중독성이 강했다.

그래, 녀석은 마치 쉽게 손 댈 수 없으면서도 한 번 손 대면 너무나도 쉽게 잡고 싶어지는 마약과도 같았다.



"왜. 내 파트너 확인은 끝났냐?"

"...그래. 들어갈꺼야?"

"뭐야. 네 녀석이 데려왔잖아."


그건 그래. 녀석의 표정에 알 수 없는 씁쓸함이 걸려 지더니 뒷말을 더 이상 잇지 않았다.

녀석과 나를 두고 양 옆으로 갈라진 창녀들과 청년은 넓은 잔디로 깔리어진 마당 구석에서 크게 뻗은 소나무와 비난잉어 두,세 마리가 거닐고 다니는 연못으로 둘리어진 별채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저 곳이 예약한 곳이라는 건가? 생각보다 근사한 정경에 입이 저절로 벌어지며 별채 한 번 바라보고, 그런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지 않은 킬러를 한 번 엇갈려 바라보았다.



"어이, 무슨 속셈이냐."

"나는 속셈따위 없어, 키드."



나는? 이 예약을 한 것도, 이런 자리를 마련 해 준 것도, 여기까지 궁시렁 거리며 짜증을 한 바가지 쏟아 붓는 나를 묵언으로 끌고 온건 네 녀석이나 다름없는데 너 말고 다른 이가 있다는 뜻인가.
 
무언가 매끄럽지 않은 녀석의 말과 행동에 언짢아 졌다만, 천국 지옥 운운한 걸 보아하니, 그 어떤 창녀도 견주어 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테크닉을 가진 이 가게의 간판 미녀는 저 곳에 따로 있는 듯 하다.

분명 녀석도 그런 여성과 잠자리를 하고 싶었지만, 하루에 손님 한 명만 받는 다는 룰이 있을터이니 녀석의 표정이 울상인 이유는 나에게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아쉬움에서 우러나온 것이겠지.

이왕 녀석이 큰 돈 들여 거하게 준비해 준 것이니 더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이 친구로써의 예절이라 생각하며 조용히 그 쪽을 향해 발을 들었다.

"키드. 천국이랑 지옥의 차이는 그닥 크지 않아."



끊어진 줄 알았었던 킬러 녀석의 말을 뒤로 한 채, 별채로 이어지는 낮은 다리를 조용한 발걸음으로 건너갔다.

종아리까지 무성하게 자라난 풀들이 별채를 둘러쌓고는 그 속에서 띄엄띄엄 벌레 소리가 차갑게 내려앉는 이슬을 흘러내리게 할 정도로 서럽게 울어대며, 별채의 문을 눈앞에 둔 내 발치를 무겁게 만들었다.

킬러 녀석들이 별채로 들어가야 할지, 들어가지 말아야할지 고뇌하며 조용히 서있는 자신을 향해 가만히 주시하고 있는 것이 서늘한 식은땀으로 흘러내리는 등으로 느껴졌다.

누군가가 나를 비웃으며 조롱하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셀 수 없이 많은 눈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동물원에 가만히 눌러앉아 웃음거리나 되며 자유를 빼앗긴 동물이 된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혀 버렸다.

미친 새끼들. 저 녀석들은 비정상임에 틀림없다.

손님이 창녀가 있는 별채에 들어가는데 그 모든 행동에 주목한다는 건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구경이 아니다.

이 자리에 자신을 옹호해 줄 녀석은 킬러 녀석 단 하나 뿐이건만 녀석도 저 무리들과 같이 나를 주시하며 모멸감을 안겨 주고 있었다.

네 녀석도 창녀를 찾을 정도로 단순히 욕정을 우선시 할 정도로 특별한 것 하나 없는 사내새끼일 뿐이라는 것을 알려 주듯이 말이다.



"둘 다"



킬러 녀석의 그 말을 끝으로 얇은 창호지로 발라진 별채의 문에 오래되어 녹이 슨 문고리를 있는 힘껏 잡아당겨 결국 열어버리고 말았다.

열리어진 문 틈새로 새어 들어온 달빛이 조금씩 새어나오는 청아하고도 단아한 향이 여태껏 그리워하면서도 증오하고 있었던 바다의 향을 흐트러뜨리며 그 존재를 조금씩 내 눈에 담도록 해주었다.

아아... 그래, 네 말대로 천국이나 지옥은 아마도 그렇게 큰 차이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 녀석이 있는 곳은 지옥이라고 불 수 있지만 욕정을 배불리 채울 수 있을 것이고, 이 녀석이 없는 곳은 천국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자유롭다 할지라도 인정받을 수 없을 만큼 달콤함으로 채워진 욕정을 즐길 수는 없을 것이다.



"영원히 모든 것을 끝낼 수 없어."



그래,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그 두 장소에서, 나는 지루해 미치겠지.

그렇기에 나는 고등학생 시절 그 게이 새끼를 안았지만 버릇처럼 이어진 녀석만의 룰을 깨버리고 그 후에도 강제로 섹스를 하거나 반항할 시에는 두들겨 패서 철저히 교육을 시켰지. 섹스 없이는 살 수 없을정도로 강렬한 충격을 앉겨 줘 기억하게 만드는 주입식 교육을 말이야. 대한민국에서 흔하디 흔한 교육 방식이잖아 그런건? 그러니까 그 녀석도 가능 했었던 거지.

그 실험이 성공하고 난 뒤로 트라팔가 로우, 그 게이 새끼는 어떻게 됐더라? 떠올리면 정신이 돌아버릴 것 같아서 잊고 있었는데.


이번에야말로 나는 이 별채에서 나갈 수 없겠지. 오히려 녀석에게 교육 받은건 나인가?

아아, 기억나지 않는다. 그 뒤로 계속되던 녀석의 마지막 말이 별채를 울린다.

"키드여, 네 녀석도 같이 HIV 감염된 소감이 어때?"

개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