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한 치의 감정도 담기지 않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소년이 말을 걸어왔다. 짙은 재색으로 가라앉은 눈동자는 그 어린 소년이 지니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심도였음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뇌리에 깊게 박혀 이따금씩, 폭풍우로 일어난 해일로 풍비박산이 나버렸던 우리 고향의 잔해물 위로 고여 있던 바닷물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짧게 뻗친 머리칼마저도 한산한 겨울바다를 뒤덮던 쪽빛과도 같았다. 더해서 팔부터 어깨를 지나 후드까지는 거멓게 죽은 물결의 색이였으며, 그 외에 윗옷 표면은 아침 햇살로 가득 담은 파도의 순한 노란 빛으로 되어 있었다.
아직 젖비린내가 풍기는 얼굴로 잘도 이런 뒷골목에 숨어들어왔다는 생각을 하며 찬찬히 뜯어봐주었다. 온 몸이 ‘바다’를 연상케 하는 어린 아이라니, 상당히 흥미로웠다. 뒷골목의 썩은 악취가 그대로 묻어나는 담벼락에 기대어 앉은 채 고개를 까닥였다. 녀석도 그런 내 모습에 웃음을 띤 얼굴로 좀 더 가까이 다가선다.
“어디 아파?”
천천히 무릎을 구부려 내 눈과 시야를 맞추며 근심어린 눈빛으로 잔잔하게 바라본다. 옅은 갈색으로 탄 소년의 파리한 낯빛이 오히려 보는 내 눈동자를 더욱더 아프게 죄여왔다. 외상에 입은 상처는 꼬마의 등장으로 어느새 잊혀지고 있었다. 가뜩이나 소년의 눈두덩이 거무스름했기 때문일까? 정말로, 정말로 소년이 이제 막 처음 만난사이인데도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진심 같아 심장 부근이 아릿함으로 넘실거렸다. 뭐하는 녀석일까. 단 두 마디만으로도 어떤 타인에게도 열리지 않고 굳게 잠겨있던 내 속내를 교란시켰다.
더 이상 ‘바다’에 애증은커녕, 증오만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만신창이의 몸이었다.
태생부터 너무나도 소중해서 당연시했던 모든 것들은 그것에 의해서 자취도 없이 사라졌었다. 급한 물살에 휘말려 떠내려가면서 수면위로 언뜻 나와 있던 가족들의 손을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다정하면서도 엄격하여 내가 해적이 되기를 꺼리던 아버지였을까, 아니면 너무나도 나를 사랑하여 그런 내 의견도 존중해주시던 어머니였을까. 혹은 얼굴도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이나 나를 따라주던 아기 새 같은 여동생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무척 많은 손들이 허우적거리며 가라앉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그 난리 통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인간은 나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탈수로 인해 스러져 내리는 의식을 간간히 붙잡고 있을 때 나는 몇 번이고 이렇게 웅얼거렸다. 짜증내서 미안해, 좋아한다고 자주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후회할 만 한 짓을 해놓고 후회해서 미안해.
어리석어서 정말 미안해-
“아아, 조금 몸싸움 했어요. 신경끄고 어린애는 이런데 오는 거 아니니까 갈 길 가세요.”
“조금이라기엔 너무 큰 상처 아닌가. 보니까 어깨도 빠지고 갈비뼈 몇 대는 나간 거 같은데? 복사뼈도 접질렸지?”
뭡니까 이 꼬맹이는. 제 몸 상태를 너무 잘 파악하고 있지 않습니까. 조금 머쓱한 기분에 눈썹을 꿈틀거리며 어느새 부채꼴로 벌려져있던 내 다리사이로 파고 앉은 소년을 바라봤다. 이리저리 상처가 난 부위로 길쭉한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진중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왼쪽 손으로는 바지 앞 섬 앞을 짓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재지 않은 손길로 옷 위를 찬찬히 훑이고 있었다. 녀석이 아무리 어린 소년이라지만 야리야리한 몸통을 뜨끈한 피로 한껏 달아오른 나에게 비비적거리니 이상야릇한 기분이 감돌았다.
“....... 저기요,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비키세요.”
“세워도 되는데, 지극히 당연한 거니까 괜찮아. 신경 꺼.”
“ㅁ...! 어린애가 벌써부터 그런 말 입에 담는 거 아닙니다!”
“일부러 그러라고 이런 손길로 진찰한 거야. 그리고 너도 어리잖아.”
게다가 어린애한테 높임말이라니 이상한 녀석.
소년이 쿡쿡하고 작게 조소하며 상체를 점점 더 아래로 숙이더니 그곳에 들러붙어있던 상의를 늘어뜨린다. 그 틈새로 얼핏 보이는 쇄골과 그 밑으로 배꼽까지 이어지는 살갗이 금방이라도 우리 둘 옆에 굳게 잠긴 단색의 간판 술집에서 튀어나올 법한 창녀를 보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내가 한 때(라고 말은 하지만 얻어터지기 전까지) 이전 선장에게 상당히 신뢰를 받아왔다가 다른 대장 놈의 기묘한 꾐에 넘어가 선박에서 퇴출당했다지만 남색을 밝힐 정도로 방황하고 있지는 않았다. 항해기술도 어느 정도 있고, 지리에도 눈이 밝았으며 그 어떤 독종들보다도 더한 독종으로 꽤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언제든지 다른 블루의 거대한 항구 도시의 허름한 술집에 들어가서 적당한 권력이 있는 집단에 말단부터 들어가면 됐었다. 다시 대장정도의 자리까지 오르기에는 상당히 재간이 있던 나였기에, 어떤 해적단에 들어가면 될 지 정도만 골라잡으면 만사 OK이었다. 단지 한 순간에 쌓아온 모든 것이 ‘바다’에 관련되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정신이 상당히 피로해져버렸다.
"당신보단 적어도 위일껍니다. 제가 훨씬 키도 크고."
"난 자라고 있으니까 괜찮아."
"하아. 그러세요."
아무리 방심한 사이에 대장자리에서 쫓겨나고, 얻어터지고, 한 순간에 직업을 잃고, 더해서 여태까지 잘 해왔던 섹스파트너였던 창녀한테마저 뺨을 맞아서 입 안이 터졌다지만 어린 남자한테까지 손을 벌릴 정도로 썩어빠지진 않았다. 특히나 비릿한 ‘바다’의 청아한 향을 아련하게 흘리는 야윈 소년이라면 더욱더 내 쪽에서 거절하고 싶다.
이제 더 이상 바다는 지긋지긋해졌다. 당분간 항해고 해적질이고 뭐든 그만두고 쉬고 싶었다.
“트라팔가 로우라고 해.”
“네?”
“내 이름. 너는?”
이름, 이름이라. 있기야 있었지만 이미 배신자의 낙인이 찍힌 이상 다시는 사용 할 수 없었다. 방금 없어졌어요. 상한 기분을 티내지 않기 위해 상당히 조심해가며 소년의 물음에 답했지만, 퍼렇게 상기 된 표정만은 금치 못했다. 살짝 벌려진 소년의 젖은 입술이 단말마의 탄식을 내뱉으며 눈동자를 굴려 어둠으로 농후한 골목과는 달리,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각색각양의 세상으로 고정했다.
“분홍색, 좋아해?”
잠깐이었지만 소년의 눈동자와 입술 끝이 미묘하게 떨리는 것을 시야에서 잡아챘다.
“아니요, 별루. 남자가 분홍색 좋아하면 게이 같아서 싫어요.”
“하하, 게이라니. 웃긴 녀석. 너 진짜 마음에 든다.”
“그러는 당신은 무슨 색이 좋은데요. 파란색? 노란색?”
아니면 바다색, 혹은 쥐색 혹은 썩어서 고인 물의 색은 좋아하나요? 정작 가장 묻고 싶었던 말은 왠지 소년에게 묻기에는 꺼림칙한 끼가 있어서 그 이상 말을 덧붙이지 못하고 끊어버렸다. 어린아이를 붙잡고 그런 우중충한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어봤자 나 자신의 인생에 대한 불만으로만 가득 찰 거 같다는 한심함에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나는 파란색과 빨간색이 좋아. 그리고 흰색도.”
그리고 지금 네 흰색 옷을 빨갛게 물들이는 선홍색 핏물이 네 녀석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
“그게 뭡니까. 오만가지 걱정은 다 해주더니 피가 좋아서 그랬던 건가요?”
“그래. 그러니까 너는 오늘부터 펭귄이다. 내 파란색과 네 하얀색의 조합이라니 딱 이군.”
“그런 귀여운 이름은 다 큰 청년한테 실없지 않나요.......”
처음으로 소년이 아이답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미소 지어버렸다. 아아, 가족을 잃고 죽을힘을 다해 선장의 신발 밑창에 머리를 조아리며 얻어낸 대장의 자리에 서서 충성을 맹세하고, 모든 것에 지쳤을 때 피로를 녹여주는 사람의 온기를 찾아 창녀 가에 갔을 때 마음에 드는 이상형을 골랐을 적에도 이렇게 인간답게 웃어본 적이 없었다. 인간답다, 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꾸며낸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알 것 같았다. 당돌하게 받아치는 소년의 직설적인 시선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펭귄, 펭귄이라니. 해안 근처의 차가움에 질색하며 살아가던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아기자기한 명칭이다.
“내가 붉은 색을 창출하면 그런 나를 너는 하얀 빛으로 엷게 띄우는 거다, 펭귄여.”
나보다 한 뼘은 작은 소년이 내 얼굴 옆의 벽에 양 손을 집고서는 나를 자신의 품 안에 가둔다. 서서히 콧등에 닿는 소년의 체온이 처음, 참담한 마을을 떠나 항해를 시작했던 그때보다도 심박 수를 더욱더 뛰게 만들었다. 찰그랑 거리며 풀리는 소년과 나의 차가운 금속 벨트 소리에 정신이 아득히 멀어질 것만 같았다. 두 시야에 완연하게 담기는 소년의 질긴 하늘빛의 청바지의 얇기가 입 안에 군침도 돌게 만들었다. 아아, 하의마저도 바다라는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소년이 만약 나의 선장이라면 나는 바다를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오늘 분홍색의 남자에게 몸을 건네는 날 이였거든. 충성을 맹세하는 대신에.”
“잠깐, 지금 뭐하시는... 읏!”
“뭐, 그 전에는 펠라라든가 다양한 걸로 조련 당했지만.”
조금만 참으면 이제 나도 해적단을 만들 수 있어. 그리고 네가 부선장을 하는 거지.
소년의 보드라운 손가락이 팬티 속으로 침투하더니 축 늘어져있던 내 살덩어리들을 천천히 조물거리며 유린했다. 어린아이라기엔 상당히 대범하면서도 숙련 된 손길이었기에, 뜨겁게 달구어진 피가 하체 쪽으로 몰리면서 딱딱하게 발기되기 시작했다. 천천히 밑 둥부터 귀두까지 빠르게 훑는 소년의 손가락에 축축한 땀으로 젖어가며 마찰에 더욱더 가속을 붙였다.
“하나도 안 풀었지만 뭐 괜찮겠지.”
“으..허...! 잠...잠깐만요. 설마 넣으려ㄱ...헉!”
소년의 은밀하게 주름진 곳으로 크게 팽창한 내 것이 조금씩 밀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발목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바지의 끝자락을 힘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꽉 잡으며 다른 빈손으로는 꼿꼿하게 솟아오른 성인의 검붉은 성기를 붙잡아 고정한 채 내려앉고 있었다.
“으..... 아파......”
남성이었기에 애액이 나올리는 결단코 없었고, 그렇다고 갑작스러운 삽입이었기에 윤활제로 넓히지도 못 했는데 소년이 억지로 자신의 좁은 곳에 밀어 넣다보니 모습이 상당히 버거워보였다. 얇은 허리를 한껏 비틀며 이를 꽉 깨무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나도 모르게 양 손으로 소년의 허리를 잡고 쓸어주자 물기 어린 신음이 소년의 입에서 터져 나온다. 소년이 천천히 밭은 숨을 내뱉으며 벽을 짚고 있던 손을 떼고는 이내 내 양 팔을 잡는다. 손톱을 세우지 않기 위해 손바닥만으로 그러잡은 모습이, 연령에 비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씨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소년이 밭은 숨을 내뱉으며 다시금 천천히 허리를 내 허벅지 쪽으로 내리며 완연한 삽입을 시도했다.
“안 풀고 그렇게 무작정 넣으면 찢어져요.”
“안 돼.”
색스럽게 물기어린 미성으로 단호하게 트라팔가 로우라는 소년이 답했다.
너는 이제 내 것이고, 그 증거로 나는 할 것이고, 그 분홍색의 남자에게 물들을 바에야 내 스스로가 만들어내겠어 없는 것을, 펭귄여. 그거 알고 있어? 붉은 색에 흰 색이 섞이면 분홍색이 나온다는 것을.
“그러니까 난 내 몸에 스스로 상처를 내서 피를 흘릴 거야.”
너의 하얀 것으로 물들여줘, 펭귄여.
그리고 이때부터가 소년과 나, 방황의 시작이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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