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울어도달래주는사람하나없네.
   로그인
hit : 183 date : 2004-11-29 11:21:34
name :    
subject :    안경.
home :    http://





안경을 쓰고 바라본 세상은 내 앞에 무언가가 가로막아져있는 듯한 기분이야.

정말로 커다란 창이 하나 가로막혀서 그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무언가가 가로막혀서 .. 정말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애 -

둥그런 틀 안에 갇혀버린 듯한 느낌이야. 답답해 -







*








"난 안경 쓰는 애들 싫더라."

"왜?"

"범생이 티나잖아. 난 범생이 티 나는 애들 딱 질색이야."

"뭐 어때, 눈이 나쁘면 쓸 수도 있는거지."

"어쨌든 안경쓰는 애들 정말 싫어."



안경을 쓰는 애들을 유독 싫어했던 아이였다.

까탈스럽게 구는 그의 성격 때문에 내 옆의 친구들 중엔 안경을 쓴 친구가 없을 정도였다.

유독 안경 쓴 애를 싫어했던 그. 그 때문에 나 역시 안경 대신 렌즈를 끼고

그를 만나러 외출을 하던 때도 숱하게 있었다. 그래서 인지 거의 내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기 일쑤였고, 하루라도 그를 만나지 않는 날이면 난 무조건 안경을 쓰고

집 안에 밖혀있었다. 혹시라도 안경을 쓰고 밖을 나갔다가 그를 만나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기 때문에, 그런 공포감으로 난 집안에 있어야만 했다.







"여보세요."







오랜만에 울린 핸드폰 벨이었다. 한동안 잠자히 있더니 왠일로 핸드폰 벨이 울린 것이다.

아무생각없이 핸드폰 플립을 열자, 핸드폰을 열어주길 기다리기도 했었던건지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다짜고짜 소리부터 고래고래 터져나오는 상대편이다.

그 기세에 눌려 가만히 있자, 어느정도 진정을 시키곤 다시 차근차근 입을 연다.







"왜 지금 전화 받어."

"아, 그냥. 아무데나 던져놔서 몰랐었어. 전화는 왜?"

".... 잠깐 밖으로 좀 나올래?"

"밖?"

"응, 기다릴게."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더니 핸드폰이 뚝 끊겨버렸다.

목소리만으로도 누군지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이미 그에게 길들여져버린 내가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고나서 거울을 바라보자 반무테 안경을 콧잔등에 걸치고 있는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화들짝 놀래 안경을 부랴부랴 벗어던지고는 화장대 위에

놓여져있을 콘텍트 렌즈를 찾자 어디로간건지, 렌즈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아니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는데, 안경을 쓰면 안된다는 압박감에 안경도 쓰지않고, 렌즈도 끼지 않은채

0.1인 시력을 가지고 밖으로 나간 나다. 그래도 다행히 짝눈인 탓에 사물이 구분이

가긴 하지만 한 쪽 눈을 감으면 0.1인 눈은 아예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물의 위치가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허우적 거리며 가슴을 툭툭 쳐가며

그를 만나기 위해 거리로 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나를 툭툭 치고 지나간다.

눈도 잘 보이지 않는데 사람들에게 치이기까지 하자 앞이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아무생각없이 옆에 있는 난간을 붙잡은 채, 숨을 고르는데 갑자기 내 팔을 꽉

움켜잡는 느낌에 고개를 돌리자 그가 싱글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왜 이렇게 늦었어."

"아, 옷 좀 갈아입다가."

"너 눈 빨갛다, 어제 잠 못 잔거야?"

"아니야, 괜찮아. 나 왜 부른거야?"

"어떤 애가 자꾸 들러붙어서."







끝부분을 대강 얼버무리고는 나를 잡고는 어디론가 황급히 걸어가는 그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의 뒷꽁무니에 달려 졸졸졸 쫓아가는 내 모습이 웃기기도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있는가. 그를 놓치게 되면 난 이 많은 인파 속에 떠밀려 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두 눈을 열심히 깜박여가며 그를 쫓아가다가

갑자기 멈춰선 그의 등에 그대로 머리를 박아버린 나다. 아픈 마음에 머리를

부비적거리며 약간 기울어진 몸을 일으켜세우자 꽤 거대한 까페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어디야?"

"내가 아는 형이 일하는 곳."







딸랑거리는 경쾌한 종울림소리가 들리고 이내 그가 자연스럽게 그 까페안으로

몸을 들이민다. 나 역시 뒤에서 어정쩡한 모습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한 여인이 그를 보며 생긋 웃어보인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덧니가 귀엽게 보인다. 입을 열고는 재잘거리며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는 그의 팔에 척하니 팔을 껴보이는 그녀다.

순간 알수없는 기분에 휩싸여 나도 모르게 그를 외면해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 때문이었을까 -

아무것도 모른채 그녀의 옆에서 싱글싱글 웃고 있는 그의 모습에 그냥 까페의 문을

열고 되돌아 나와버렸다. 아무생각없이 까페앞에 가만히 서있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의 억척스러운 손길이 느껴진다. 뒤를 돌아보자 그녀가 웃고있다.







"한예빈씨죠? 얘기 많이 들었어요, 혜성이 애인이시라구요?"







*







그녀와의 첫만남이 끝나고 나서 나에 대한 그의 태도가 많이 바뀌어졌다.

부드럽던 그의 말투도 다소 신경질적으로 변해있었고, 왠지 모르게 나를 만나는

횟수도 상당히 적어진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그를 만나는 횟수가 적어진 것을 알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내 눈이 빨갛게 충혈되는 일이 별로 없어졌다는 말과 같았다.

내 눈이 빨개지는 이유는 그를 만나기 위해 렌즈를 끼는 일 밖에 없었었는데,

눈이 빨개지지않았다는 것은 렌즈를 끼는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뜻이었고,

렌즈를 끼는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뜻은 내가 그를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뜻과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 때의 단짝친구였던 진원이가 한턱 쏜다는 말에 덥석 약속부터 잡아놓고는

뭘 입고 가야하나, 렌즈를 껴야하나 안경을 써야하나, 하는 사소한 고민에 휩싸여

있는 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무의식적으로 들어올린 렌즈통을 가방에

깊숙히 쑤셔넣고는 반무테 안경을 집어들었다.







"여기야."

"오랜만이네, 못 본지 꽤 됐지, 우리?"

"그러게나 말이다."







시원한 까페안에서 오렌지 쥬스를 시켜놓고는 스트로우로 얼음을 이리저리 휘저어대던

진원이가 날 향해 웃어보인다. 까페가 어디서 많이 본듯한 까페다.

진원의 맞은 편에 앉자 긴 생머리의 여인이 걸어온다. 아, 생각났다.

이 까펜 전에 그가 날 데려왔었던 그 까페가 틀림없다. 그때 그의 팔에 팔짱을

끼며 웃어보이던 그녀가 나에게 주문을 받으러 걸어오고 있다.







"뭐 시키실거예요?"

"..... 아니요, 됐어요.
일어나, 나가자. 진원아."







나도 모를 노파심 때문이었을까, 난 그녀를 애써 무시한 채 까페 밖으로 빠져나왔고

긴 생머리의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가 빠져나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기분나쁨을 느끼며 그 까페를 나오자 후덥지근한 열기가 나와 진원이를 반긴다.

진원이를 향해 웃어보이자 진원이가 싱겁긴. 이란 말을 내뱉으며 어디론가 걸어간다.

저벅저벅 걸어가는 발걸음소리가 유난스레 확대되어 들리는 것 같다.

.................... ...... 안경을 썼다는걸 그녀가 알아버려서 였을까 -.







그녀와의 두번째 만남이 그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난 드디어 오랜만에

그에게서 만나자는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잔뜩 들뜬듯한 그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애써 렌즈로 갈아끼고 옷도 새로산 옷으로 바꿔입고는 거리로 나섰다.

저 멀리서 그녀와 함께 팔짱을 끼고 걸어오고 있는 그의 모습에 황당함을 금치 못한 채

혼자서 초조함에 손톱을 깨물어보고 있는 나였다. 이내 그와 그녀가 내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서고 그녀가 날 바라보더니 생긋 웃어보인다.







"오늘은 안경 안 쓰셨네요?"

"네? 아, 아, 네."







나와 그녀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던 그가 내 손을 꽉 움켜쥔다.

알수없는 불안감에 온 몸에 전류가 흐르듯 부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눈에서부터 무언가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알수없는 불안감과 알수없는 억울함에 무언가가 떨어져내리기 시작한다.

그럴수록 더욱더 꽉 쥐어지는 그의 손. 그와 함께 재잘거리며 웃는 그녀.

최악의 하루였다. 그날은. 내 인생에 있어서 정말로 최악이었다.

그와 그녀와 내가 있는 그 곳에서의 더 이상의 재미를 느끼지 못한 탓에

내가 자진해서 빠져나오기로 결심하고는 입을 열었다.






"나 이만 갈게."

"잠깐만."

"..... 응?"







다짜고짜 불러세우는 그 때문에 심장이 덜컹덜컹 뛰기 시작한다.

그의 입이 열리기 시작한다.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떨어지는 그의 입에 내 얼굴이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아까 마저 흘리지 못한 눈에서 떨어지는 그 무언가와 함께 -

그렇게 나의 첫번째 애인은 내 곁을 떠나가고 말았다.

그의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그녀와 함께 -






"..... 미안, 너와 이 관계를 유지시켜 나갈 자신이 없어."







*







그와 헤어진 후 나에게 있어서 안경은 필수적인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어딜 나가기만 해도 항상 안경을 들고 다니던 나였고, 나에게 있어서

콘텍트 렌즈라는 것은 필요없는 쓰레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 그와 만나기 위해 사용했던 렌즈 였기에

내곁에 그가 없는 이상은 렌즈란 것은 나에게 그닥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를 만나는 일이 없어지자 내 눈도 새빨갛게 충혈되는 일도 없었고,

그로 인해 내가 눈의 통증을 호소하는 일도 많이 사그라들었다.

난 요즘도 가끔가다 거울을 바라보면 새하얀 내 눈동자를 바라보는 일이 있다.

몇 달 전쯤만 해도 항상 새빨갛게 충혈된 내 눈동자를 바라보아야 했었는데,

요즘은 새하얀 내 눈동자만 보이기 때문에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 정말 가끔가다는 ..... ..

아직도 내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기를. .............

바라는 때가 .... .. 아직도 있긴 있다 .... ..


  달빛의차가움아악! 신혜성 이 나쁜노오옴~ 주인공이 불쌍하잖아~ 긴생머리 여자도 싫고. 11/29 23:47 x
name password memo


▲ 이전글 스토커.
▼ 다음글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