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비 씨 디 이 에프 지"
"꼬마야, 꼬마야."
"...... 어어?"
한 소년이 꼬마애의 어깨를 툭툭 두들긴다. 꼬마아이가 두 눈을 땡그랗게 뜨고는 위를 쳐다본다.
어른이 보면 둘다 영락없는 꼬마아이들이지만 꼬마애의 눈에 소년은 마치 아저씨 처럼 보인다.
꼬마가 소년을 보고 베시시 웃는다. 헤헤헤. 꼬마애가 소년을 한번 보고 땅바닥을 한번 본다.
"거기까지 밖에 못하는구나?"
"아니예요! 나 음음 가나다라는 다 할수 있다구요!"
"체쳇, 난 영어를 말하는건데."
"으음. 난 그렇게 똑똑하지 않아요."
꼬마아이가 헤실거리자 소년이 마찬가지로 헤실헤실 웃는다. 꼬마아이가 흙장난을 하다가 온건지
온 손에 묻은 흙을 자신의 갈색빛 치마에 대충 부비적 거리면서 닦아내고는 소년을 향해 손을 내민다.
소년이 알수없다는 눈동자로 쳐다보자 꼬마아이가 어서요. 라며 손을 좀 더 쭉 편다.
"악수해요, 악수!"
"악수?"
"우리는 친구에요, 그러니까 악수를 해야죠."
"친구우-?"
황당한 듯한 소년의 말에 꼬마애가 생글생글 웃는다. 소년이 멋쩍게 뒷통수를 벅벅 긁자
꼬마애는 여전히 손을 내민 채 소년이 설마 손이 닿지 않아 잡지 못하는걸까 하고 좀더 손을 뻗는다.
낑낑 거리며 애쓰는 꼬마애를 위해 소년이 한발작씩 꼬마애의 앞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허리춤까지 밖에 오지 않는 꼬마애를 상대로 악수를 하자니 뭔가가 어색했지만 자신과
악수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꼬마애를 위해 마찬가지로 손을 쭉 뻗어본다.
"헤헤 아저씨 손 따뜻하다."
"넌 어디서 놀았길래 이렇게 차갑니."
"흙 장난!"
"에이, 더러워."
"재밌어! 아저씨도 할래?"
"난 별로."
소년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자 꼬마애가 다시 생글거린다. 정말 재밌는데. 입술이 댓발만큼 튀어나오자
다시 소년이 고개를 저으며 꼬마애 옆에 살짝 쭈그려앉는다. 갈색치마가 펑퍼짐하게 퍼지는 바람에
땅바닥에 끌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건지 두꺼비집을 지으며 꺄르륵 웃는 꼬마애를 가만히
쳐다보던 소년이 흙을 만질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그냥 가만히 앉아서 아이를 쳐다본다.
"에이 비 씨 디 이 에프 지~"
"에이치 아이 제이 케이 엘 엠 엔 오 피."
"와!!! 그런것두 알아요?!"
"내가 너보다 나이가 몇 살이나 더 많은데~"
소년이 자랑스럽게 브이자를 그리며 헤헤 웃어보이자 꼬마애가 존경스럽다는 눈빛으로 소년을 쳐다본다.
꼬마애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살짝 고개를 숙이다 말고 다시 고개를 들어 헤헤 웃는다.
소년이 무릎을 펴면서 흙을 탁탁 털자 꼬마애가 소년을 쳐다본다.
"벌써 가요?"
"늦었잖아. 하늘봐봐. 노을인걸?"
소년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자 어어. 라며 하늘을 쳐다보던 꼬마애가 화들짝 놀란다.
흙이 묻은 손으로 갈색치마를 탁탁 털던 꼬마애가 소년을 향해 생글 웃는다.
소년이 꼬마애의 손을 잡는다.
"어디 살아? 데려다줄게."
"아니야. 아저씨! 나 혼자서도 갈 수 있어! 아저씨는 또 언제와?"
"나?"
소년이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르키자 꼬마애가 고개를 강하게 끄덕인다.
살짝 웃어보인 소년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꼬마애가 가야하는지 갈색치마를 다시 툭툭 턴다.
"너가 알파벳 노래를 다 부를 수 있으면 올게."
"알파벳?"
"응. 아까 부른거."
".... 에이, 그러면 내일 와! 내가 꼭 연습할게!"
＊
"에이 비 씨 디 이 에프 지......"
놀이터 의자에 앉아서 알파벳을 G 까지만 부르던 한 여자가 갈색치마를 탁탁 턴다.
골든소재의 갈색치마를 차려입고 검은색의 긴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여자가 다시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리고는 지쳤는지 의자에서 일어난다. 일어나서는 놀이터를 한번 둘러본다.
"오늘도 없네."
한숨을 훅 하고 내쉬고는 갈색치마를 툭툭 치고는 한걸음 한걸음 놀이터를 빠져나간다.
놀이터를 다 빠져나왔을 무렵 멀리서 A B C …라는 소리에 여자의 얼굴이 홱 돌아간다.
"에이 비 씨 디 이 에프 지."
"에이치 아이 제이 케이 엘 엠 엔 오 피 큐 알 에스 티 유 브이 아이 더블유 엑스 와이 제트."
한 남자가 생글생글 웃으며 여자에게 다가온다.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남자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따뜻한 품.
남자가 여자를 품에 가두고는 살며시 중얼거린다.
"많이 기다렸구나."
"... 그럼요. 많이 기다렸어요."
"이젠 왔으니까.."
"............................ 꼭.. 같이 있어줘요."
붉은 노을빛이 타들어가듯이 남자와 여자의 사랑도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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