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잠깐이야. 잠깐만 참아.
거기까지였다. 혜성이 말한 사라졌던 그 기간에 생긴 모든 일들은. 여기에서 끝이 났다.
내가 혜성을 바라보자 혜성은 덤덤한 듯 그저 날 향해 씩 웃었다.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이 상태에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가만히 혜성을 보자
혜성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뭐 그런걸로 울고 그래.
“결국엔 내가.. 내가 죽인거야..”
“니가 죽인 거 아냐, 걱정 마.”
“.. 내가 죽인거지, 뭐. 나 때문에 탄 거잖아..”
혜성의 말은 꽤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인걸.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산 사람은 산 사람이 아니던가. 이미 죽어버린 사람을 가지고 늘어져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혜성의 말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죽었다고 생각했던
신혜성이 살아 돌아왔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려고? 너희 아버지께 갈거야?”
“아니, 안가. 난 이제 죽은 인간이야.”
“.. 뭔소리야 너!?”
“나 이제 갈 데 없어 정혁아..”
“...........”
녀석의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갈 데가 없어졌다니. 그것도 딸랑 신혜성의 죽음이라는게
퍼졌다는 걸로 인해 그가 갈 데가 없어졌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사실이 아닌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자 혜성이가 씩 웃는다. 아무일도 없었던 사람 같다. 정작 그 일과는
무관한 나마저도 이렇게 심장이 벌렁거리는데 당사자는 오죽할까.
“나.. 이제.. 정말 갈데 없어.”
“그, 그래서?”
“여태까지 했던 것 처럼 살자, 우리.”
**
충격발언이었지만 난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신혜성 역시 아무런 신경도 없었고,
우리 둘은 예전처럼 친한 친구로서 지낼 수 있었다. 선호 역시 신혜성의 죽음은 거짓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는 우리 셋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모든 수레바퀴가 돌고 돌아 원래의
제 자리로 돌아오듯 그렇게 우리 셋도 어느 샌가 원래의 자리대로 돌아 가 버렸다.
“신혜성 생일이냐?!”
“응응! 내 생일인데?”
“오, 정말? 음. 기억해둬야겠어.”
선호 때문에 알게 된 혜성의 생일에 나는 아무런 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음, 뭘 줘야 좋을까나. 피식피식 웃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아 정말 이 시간에
휘쩍휘쩍 걸어가 전화를 붙잡자 쩌렁쩌렁 울리는 이민우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또 이자식이야. 으아아. 지겨운 마음에 왜 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자 이민우가 호들갑을 떤다.
“이 자식아 귀청 떨어지겠다!!”
“떨어지든 말든, 흥.”
“야야 나와라. 내가 술 사줄게!”
“오, 왠일이냐 니가?”
갑자기 호의적으로 바뀐 이민우 때문에 이 자식이 왠일이냐 라는 말을 내뱉고 집안을 보자
꼴이 말이 아니다. 선호 녀석까지 겹쳐 시끄럽게 뛰어댄 통에 음식물이 이곳저곳 있고
어느새 탈진해 쓰러진 선호 녀석이 소파를 차지하고 잠이 들어버렸고, 음식물들을 치우는
혜성이가 보인다. 할 수 없이 전화기에 소근 거리는 나다.
“신혜성 생일이래, 술이랑 안주 좀 사서 집으로 와.”
전화를 끊고 집으로 달린 건지 한 5분도 지나지 않아서 해피 벌스데이 혜성 이라며
대문을 벌컥 열어 제끼는 민우 녀석 때문에 신혜성이 피식 웃는다. 분명히 내가 말한걸
알아챘으리라. 괜히 쓸데없는 민우 녀석한테 신경질을 부리고는 소파에서 잠이 들어버린
선호를 방에 곱게 눕히곤 거실 가운데에 상을 떡하니 펼쳤다. 상을 펼치자 그 위로
새까만 비닐봉투에 담겨있던 과자와 땅콩을 쏟아붓는 민우와 다른 비닐봉투에서
소주 5병을 꺼내드는 혜성이다. 에에, 또 술이네.
“또 술먹게?”
“니가 술 사오라며, 자식아.”
“난 이렇게 많이 사올 줄 몰랐지.”
“또 헛소리한다. 주량 5병. 조용.”
민우 녀석이 내 입을 간단하게 막고는 술을 따른다. 투명한 잔 안에 투명한 술이 부어진다.
언뜻 보면 물 같은 게 참으로 맑아 보인다. 그런데 왜 저건 마시면 취하게 되는 걸까.
결국엔 또 술을 목구멍 안으로 꿀꺼덕 삼킨다. 우우우 신혜성 생일인데 재미 없다.
“야야 너무 칙칙한거 아니냐?! 모 이러냐, 생일이라면서!”
“그러게! 나도 그 생각했어! 야 뭐 재미난 거 없냐?”
결국 이민우 녀석의 꼬임에 넘어가 우리 셋은 진실게임을 하기로 했다.
“야 이 나이 쳐먹어서 왠 싱겁게 진실게임이냐?”
“너 그게 심심할 때 얼마나 좋은지 몰라서 그러지?”
이민우 녀석이 뒤로 자지러질 듯 웃어대며 어느새 비워버린 소주 한 병을 빙글빙글 돌린다.
끝도 없을 것 같이 빙글빙글 잘만 돌아가던 소주병이 민우를 지나치고 나를 치나 치고
혜성을 지나치더니 다시 민우를 지나치고 나에게서 멈춰선다. 멈춰선 소주병을 보고
민우가 비명을 질러댄다. 저건 왜 저렇게 기뻐해? 혼자 속으로 민우 녀석을 잘게잘게
씹어주곤 헛기침을 했다.
“물어 볼거 있음 물어봐.”
“음.. 뭐 물어볼까.”
“규칙은 한 사람 당 하나씩이다? 피할거면 소주 마시기.”
“야, 문정혁 넌 주량 세잖아. 그러면서 소주 마시기냐. 음 좀더 화끈한거 없냐?”
뭐 물어볼까 라며 고민하는 신혜성 녀석과 다르게 트집 잡는 민우 녀석이다.
민우 녀석의 뒷통수를 약하게 한 대 쳐주곤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소주 마시기면
소주 마시기지 뭐 그렇게 탈이 많아. 무슨 대답을 해야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신혜성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나 사라졌을 때 걱정했습니까?!”
“당빠지, 자슥. 뭐 그런걸 묻냐.”
“에에 시시해~”
신혜성의 반응은 무시하고 이민우를 쳐다보자 이민우는 궁금한거 없다는 투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다시 소주병을 휘휘 돌린다. 휘리릭휘리릭 잘도 돌아가던 소주병이
신혜성 앞에 멈춰선다. 그러자 입을 쫙 벌리는 이민우 녀석이다. 저거 뭔가가 수상해.
헤벌레 벌린 입으로 파리 열 마리 들어가도 모를 표정으로 신혜성을 바라보는 녀석이다.
신혜성이 어색한 듯 나를 쳐다본다. 나를 보면 뭐가 달라지나.
“내가 먼저 할래. 사라졌을 때 내 생각 한번이라도 했어?”
“음. 말하기 곤란하지만, 뭐 걱정하겠구나 라며 했음.”
신혜성의 대답에 꽤 만족한 듯한 웃음을 흘리는데 이민우 녀석의 말 때문에 조용해져 버렸다.
“문정혁을 사랑합니까?!”
“..........”
민우 녀석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소주를 들이키는 신혜성이다. 아 진짜 저 새끼.
뭐 저런 걸 묻고 지랄이냐고. 나를 보며 슬쩍 웃는 이민우 녀석 한테 당당하게 가운데 손가락을
쳐 들어 올려주곤 넌 좀있다 봐 라는 제스처를 취해보이자 이민우가 혀를 빠꼼히 내민다.
저저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약아 빠진 이민우!!
험악해진 분위기를 다시 추스르고는 소주병을 빙빙 돌리는 이민우다. 오 이런.
소주병이 내 앞에 멈춰선다. 이건 또 뭔 경우래.
“이민우 질문부터 받을래.”
내 말에 뜨악한 이민우가 헛기침을 해대더니 실실 웃는다.
“나 살려줘.”
“죽여 버릴테다.”
눈을 번뜩이며 대답하자 이민우가 뜨악 하며 뒤로 물러난다. 아주 생쇼를 떨고 있어요.
신혜성을 쳐다보자 날 향해 싱긋 웃는다.
“내가 널 좋아한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음. 좋아할 것 같은데?”
“에, 재미없게.”
“뭐가 재미가 없어. 원래 진실게임은 이런거야.”
이런 식으로 서로 돌아가며 한가지 씩의 질문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어졌다.
신혜성의 생일이 지나가버렸고, 우리 셋은 그렇게 술을 마셔대며 밤을 보냈다.
----------------------------------(+)
으음. 원래는 여기가 끝이 아니라 혜성군의 마지막 질문에서
확 끊어버리려고 했으나 상당히 짧을 것 같아서 이렇게 썻는데,
음.. 한글파일에서 보는거랑 인터넷에 올리는거랑 틀리네요;
에효 - 어느새 끝이 가까워져 오는 것 같네요.
그래도 이번 편은 영 - 뭔가가 두리둥실한게 ㅠ.ㅠ
수정 들어가고 싶은데 .. 에혀 -
18편 쓰기 전에 다시 한번 수정을 해야될 것 같아요.
저는 .......................... 단편을 ....... 쓰러 <-타탕
단편에 맛들렸대요 ~ 흐흐흑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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