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지옥에서 살아온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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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 타닥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일렁이는 불꽃들 사이로 모든 게 사라져만 가고 있다. 그 불은 꺼질 생각도 하지 않는 듯 더욱 더 커져만 가고 있었다. 불길로 인한 검은 연기는 하늘을 검게 물들인 것으로 모자라 대지에 짙게 깔려 있어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도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늘 위에는 검은 연기를 가르며 은빛의 무언가가 날고 있다. 게르메슈 제국의 전용 공군기. 슈틸 프레이어가 바로 그것이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검은 연기 속에서도 그 기체의 아름다움은 마치 어둠을 꿰뚫는 한 줄기의 섬광 같은 느낌이다. 문제는...지금 이 도시를 이런 지옥으로 만든 존재가 바로 슈틸 프레이어 라는 것이지만...
그것에 의해 부숴진 도시에는 제발로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간혹 가다 보이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부서진 건물 잔해에 끼인 채 신음하고 있거나 이미 목숨을 잃은 자들이 태반이었다.
"크윽..."
샤텐은 신음을 내뱉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자신은 건물의 잔해에 깔려 있는 채였다. 정신을 잃고 있었을 때는 몰랐지만 정신이 들고 나자 무지막지한 고통이 샤텐에게 밀려들었다. 그러한 고통을 참으면서 샤텐은 조용히 몸을 움직였다. 약간을 움직였을 뿐인데도 지금까지 느껴지던 것의 배는 족히 넘을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뼈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아니 이런 상황이라면 으깨졌을지도...
오른 쪽 팔과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왼팔과 다리는 움직이긴 하지만 끔찍한 고통이 그를 엄습한다. 하지만 샤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이니까...
"제길..."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이끌어 그는 천천히 하늘을 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얼굴을 하늘을 향한 채 쓰러져 있었던 탓인지 적어도 하늘은 볼 수 있었다.
하늘을 나는 은빛 궤적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아름답지만 반대로 저주스러운 존재. 자신을 이 차가운 바닥에 그리고 이 무거운 잔해 속에 묻어버린 그 것들.
샤텐은 그것들을 잊어버리기라도 할까 두려운 듯 두 눈에 가득 담아놓는다.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목 너머로 무언가 넘어오려 하지만 참아낸다. 그리고 눈으로 거친 분노를 담아 내보낸다.
그 분노가 저 하늘 위의 악마들에게 닿을리 없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 외에는 아무런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를 슬프게 할 뿐이었다.
"만약 내가 살아남는다면...아니 어떻게든 살아날거다. 그리고 네놈들에겐 살아도 사는 것같지 않은 지옥을 보여줄거다. 분명 그렇게 할거다."
낮았지만 분명한 목소리. 샤텐은 그렇게 내뱉고는 또 다시 정신을 잃었다.
+++++
"지금까지 발견된 사상자 5만명 이상으로 추정 중. 부상자 4만 명 이상 추정. 이라...젠장 정확한 정보가 하나도 없잖아 이거...게다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생존자가 있기는 있는거야? 아니 있을 수가 있는건가? 이런 폐허 속에서..."
미첼은 투덜거리면서 폐허 속을 걸었다. 15일 전 있었던 끔찍한 현장 속을 걷고 있던 그는 조심 스럽게 주위를 살핀다. 구조 작업을 시작한지 벌써 10여일 째 인간이 버틸 수 있는 기간을 족히 넘어버린 상황에서 이제 생존자가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나름대로는 생존자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살려줘..."
"???"
미첼은 희미하게 들려온 무언가의 소리에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설마? 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신경을 곤두 세워 주위의 소리를 찾는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소리가 들려왔던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희미하지만 소리는 들려오는데...사람의 기척은 없다. 설마하는 마음에 미첼은 귀를 바닥에 대고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쫓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나마 소리가 크게 들리는 곳에 도착해서 천천히 잔해를 파헤쳐 본다.
부스럭 부스럭...
"어? 제리 이쪽으로 와봐."
잔해를 파헤치던 미첼은 무언가를 발견 한 듯 자신의 동료를 부른다. 그리고 잠시 후 검은 색 제복을 입은 사내 제리는 어슬렁 어슬렁 다가와서는 미첼이 말한 잔해를 바라본다.
그 곳에는 건물 잔해에 깔린 채 쓰러져 있는 한 소년이 보인다. 한 15세 즈음 되었을까? 꽤나 어려보이는 그 소년의 얼굴과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그 날부터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말해주는 것 처럼...
"여기서...죽을...수는...없어...난...살....아야 해."
작고 희미한...지금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한 목소리. 살아야겠다는 집념 하나로 아직 목숨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한 모습이었다. 그것을 본 제리는 표정을 잔뜩 찡그린다.
"대단하군. 그날로 부터 벌써 15일 째야.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건가? 고통과 추위를 이겨내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손은 이미 잔해를 치우고 있었다. 큰 잔해는 인간의 힘으로는 무리겠지만 작은 잔해 정도는 어떻게든 치워줘야 살아있는 생존자의 부담이 덜 간다는 것을 알기에 하는 행동이었다.
"괜찮은건가? 정신이 들면 대답을 해보라구."
"나...살...아야 해..."
여전히 힘 없는 목소리로 똑같은 말만 읍조리는 소년의 눈을 손으로 벌려 눈동자를 확인했다. 정신을 차리지는 못한 듯 동공은 아직 희미했다. 그걸 보며 제리는 또 한번 놀랐다.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도...삶의 집착이 그렇게 강한건가?"
그렇게 중얼거린 후 그는 고개를 돌려 동료를 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동료는 고개를 끄덕인 후 몸을 돌려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동료나 잔해를 치울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러 간 것이 분명했다.
"너는 운이 좋아. 걱정마라. 니가 바라는 대로 어떻게든 살아가게 해줄 테니까."
제리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바삐 손을 움직여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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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첼은 한 생명이 걸린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빠른 속도로 뛰어갔다. 베른 공국의 공업도시 메르젤이 완전히 지도에서 지워진 지 벌써 15일이 지났다. 공국은 급히 제1급 비상사태로 선포하고 메르젤을 공격한 적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함과 동시에 불타버린 메르젤에서 죽어가고 있는 주민들을 한 사람이라고 구하기 위해 구조부대를 보냈다. 미첼과 제리는 그 구조부대에 속해 있는 기갑부대 소속의 파일럿이었다.
자신의 기갑기 모스피더에 탑승한 후 빠르게 시스템을 조작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스템을 조작하고 있는 손가락이 바삐 움직이고 있을 때 즈음 무선통신이 들어왔다.
[여기는 구조기지입니다. 모스피더에 탑승하고 계신 분은 누구십니까.]
[특수 구조 기갑대 소속 미첼 중위다. 잘됬군. 연락된 김에 의무병을 지원 해줄 수 있겠나. 모스피더의 행적은 레이더에 잡힐테니 그 쪽으로 와주게나. 난 먼저 그 곳으로 가 있을테니.]
[무슨...혹시 생존자입니까?]
목소리가 떨린다. 통신병 역시 지금까지 살아있는 생존자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미첼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살아있는게 이상하다. 라니...의료부대가 해야할 마음가짐이 아니잖아. 살아있을거라고 그렇게 믿어야 하는게 정상인데... 라고 생각했지만 곧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자기 자신도 처음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그래. 우연히 발견했다. 지금 꽤나 위험한 상황으로 보이니 최대한 빠른 조치를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곧 의무병을 그쪽으로 파견하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말하곤 미첼은 모스피더를 조작하기 위해 팔을 조종대에 꼈다. 마치 목이 긴 가죽장갑을 낀 것 처럼 손에 묵직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런 느낌은 이미 익숙해진 상태였다. 발에는 팔과는 달리 강철로 된 그리브 형식의 것을
장착시키는 형태였다.
그 두 가지를 완료한 그는 천천히 자신의 애기 모스피더를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기갑기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있는 것의 연장선에 있는 병기였다. 인간의 힘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인간보다 많아야 5배 정도의 완력을 가지고 튼튼하다는 것 외에는 그다지 메리트가 없는 병기였다. 물론 일반 병사들 30명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런 탓에 기갑기가 활용되는 것은 전략적인 것 이라기 보다는 지금 같은 복구 작업이나 구조작업등 생활 일상사에 자주 사용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쿠웅 쿠웅~
모스피더가 움직일 때마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대지가 울린다. 그리 빠른 편은 아니지만 크기가 15m에 달하는 만큼 일반 병사가 뛰는 것 이상의 속도를 보여준다.
잠시 후 제리가 있는 곳에 도착한 미첼은 건물 잔해를 들어올렸다. 아무리 기갑기의 힘으로 강화된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인간의 힘
기갑기의 손이 되는 가죽 건틀릿이 부풀어오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미첼의 팔이 천천히 움직인다. 그와 더불어 커다란 잔해가 들어올려진다.
"늦었잖아. 미첼!"
"아아 나름대로 빨리온다고 한거라구. 그것보다 생존자는?"
"아직 살아있어. 의무병은?"
"아아...이제 곧 올거야."
"그렇군 저기 오는 군."
"그것보다도 심하게 다쳤군."
미첼은 들어올린 잔해를 다른 곳으로 집어던지고는 드디어 소년을 덥치고 있는 잔해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이런 작업은 빠르게 한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그였기에 그의 행동은 조심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쿠궁~
소년을 덥치고 있던 잔해가 조금씩 들어올려지며 빈 공간이 만들어졌다. 제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소년의 몸을 잔해에서 끌어낸다. 제리가 소년의 몸을 완전히 끌어내자 미첼은 그대로 잔해를 내려놓았다. 아무리 기갑기를 타고 있다고 해도 건물의 잔해를 들어올린채 버틴다는 것은 꽤나 힘든 일임에는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아..하아...소년은?"
"무사해...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이거 빨리 가까운 병원으로 보내야겠어. 오른 쪽 팔과 다리가 완전히 으깨진데다...갈비 몇대가 나간 듯 싶은데."
제리가 표정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이 상태로 15일간 버텼다는 것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르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이대로 둬서 좋을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이 녀석 천운이로군..."
제리가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리자 미첼이 이죽거리며 대답했다.
"바보 이런 재해를 당한 것이 뭐가 천운이라는거야."
"그런가?"
제리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죽이는 것보다 보람찬 일이다. 그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자부심을 느낄 때가 바로 지금 같은 때였다.
"하아..하아...제리 중위님. 생존자는? 죄송합니다만 환자 좀 보겠습니다."
그 때 마침 도착한 의무병은 제리에게 간단한 거수경례 후 제리의 품안에 누워 있는 생존자 소년의 앞에 앉은 후 눈과 간단한 정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갈비뼈 몇 대 나간 거 같고 오른 팔과 다리는 완전히 으깨졌어. 아직도 제대로 정신을 못차리는 것 같으니 간단한 응급조치 후 병원으로 대려 가는게 좋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자네 생각은?"
제리가 묻자 의무병은 잠시 소년의 몸을 확인하고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15일이란 시간을 버틴게 용할 정도의 몸 상태입니다. 확실히 제가 치료 마법이나 신성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라 안타깝게도 제대로 된 치료는 못하겠군요. 간단한 부목으로 으깨진 팔과 다리 그리고 가슴을 고정 시키고 빠른 시간 내에 병원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나무가 필요하겠군."
"한 1m정도 되는 나무 6개 정도는 있어야 할 겁니다."
"걱정마. 아무래도 여긴 부목으로 할만한 것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의무병은 자신이 가져온 의료가방에서 간단한 치료도구를 꺼내어 소년을 치료하기 시작했고 제리는 미첼의 도움 아래 나무 판자를 구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제리가 가져온 나무판자를 엮어 팔과 다리 그리고 가슴을 고정시키고 간단한 약품으로 소년의 얼굴에 난 상처를 치료 하고나자 의무병이 고개를 들었다.
"제리 중위님 어느 정도 치료는 끝났습니다. 그 다음은 병원으로..."
"알았다. 자네도 수고했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