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 울다

몇달전 두 사람이 서로 그러자~ 하여 헤어지던 날.
그녀는 마지막 순간, 막 돌아서려던 남자를 불러 세워 그런 말을 남겼습니다.
"날 기억은 해 줄거지? 이렇게 헤어진다고 다 잊진 않을거지?
가끔 생각은 할거지? 별일이 없이도 한번씩은 생각해 줄거지?"
그녀는 왜 갑자기 눈물 찬 얼굴로 그런 말을 했을까?
억지로 내가 버린것도 아닌데...
그녀는 왜 그렇게 버림받은 사람 얼굴로 그런 말을 했을까?
그저 누구에게든 잊혀지기 싫다는 욕심이었을까?
잡아달라는 말이었을까?
남자의 복잡한 궁금증을 알아차린 그녀는... 묻지도 않은 말에 대답하듯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잊혀지는건 너무 슬픈거 같다구...
지금은 헤어지는것만으로도 견디기 힘든데 잊혀진다고 생각하면 견딜수 없을거 같다구...
남자는 그녀의 뜻을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 표정이 너무 슬퍼 보여 고개를 끄덕여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가끔은 생각나겠지? 같이 해온 세월이 있으니까...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날짜가 그녀의 생일인걸 발견했을때나
그녀가 살던 동네에서 팔던 칼국수의 맛이 그리워질때나
그 집앞을 지나가던 버스의 번호를 볼때나 그럴때는 가끔 생각도 나겠지!
그저 그렇게만 예상했을뿐...

하지만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던 그 약속은
남자의 예상 혹은 의지보다 훨씬 더 오래~ 더 자주 지켜졌습니다.
오늘같은 휴일,
비닐포장지의 공기방울을 하나씩 터뜨리다가
테이블에 쏟은 커피를 닦아내다가
소파밑에 굴러 떨어진 리모콘을 주우려고 허리를 숙이다가
문득 궁금해진 단어가 있어서 아주 오랜만에 영한사전을 펼치다가
냉장고를 열다가
컵에 물을 따르다가
남자는 그녀의 말이 자꾸만 생각났습니다
날 기억은 해줄거지?
가끔 생각은 할거지?
마지막까지 너무 마음 아프게 만들던 그녀.
더 사랑할 자신 없으면서 잊혀지는 것도 싫다던 욕심많은 그녀.
남자는 대책없이 슬퍼지는 마음이 당황스러워
그녀를 잠시 원망 했다가~ 금새 그녀를 이해합니다.
니가 바라는게 이런거였구나
가슴터지게 그리워하라는게 아니라, 이렇게 문득문득 떠올려 달라는거였구나
그래, 그럼 가끔 이렇게 기억하지 뭐.
사랑하는동안 좋았으니까 잠깐씩 슬퍼하지 뭐.
대신 다음에 만나면 부탁하지 뭐.
그땐 이젠 그만 잊어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해달라고 부탁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