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지사 심여추
류연산
1987년 "연변조사실록"(연변대학출판사)이 출판되면서 심여추는 조선족사회에 드디어 얼굴을 드러냈다.그가 세상을 떠난 지 꼭 57년 세월이 흐른 뒤였다.
그 동안 세상은 바람 잘 날 없었다.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이듬해 만주국이 서고 14년 동안의 일제의 식민통치가 지겨웠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시작된 5년여의 국내 해방전쟁이 있었고 다시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고 나서도 전쟁에 못지 않은 인위적인 재앙은 계속되었다. 바로 반우파투쟁과 문화대혁명이었다.
생각만 해도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세월 속에서도 용케도 심여추의 재기를 불러일으킨 것은 <<연변조사실록>>이었다. 1930년 심여추는 이 글을 <<민성보>>에 연재를 하고 나서 오라지 않아 용정 일본총영사관 밀정에 의해 암살되었다. 바로 그의 육체적 생명을 앗아간 글이 반세기가 넘어서 그의 정신적 생명을 살린 것이었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까지만 해도 심여추는 함경도 길주 고향의 언덕에 묻힌, 해골이나 다름이 없는 존재었다. 풍진세월 속에 근 4년동안 발행된 민성보(조선문과 한문으로 발간 1928년 2월부터 1931년 9월까지)도 몇장 남지 않아서 심여추의 연재물도 바이 찾을 길이 없었다. 요행 1930년 11월 지기들에 의해 출간된 <<연변조사실록>>마저 겨우 한 권이 남았었는데 볼품이 없이 낡아버린 그 책을 1964년 연변역사언어연구소에서 타자하여 내부자료로 보관하지 않았었다면 아마 심여추는 역사의 음지에 파묻혀 영영 볕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연변조사실록>> 재판은 당시 조선족 문인의 시집 한 권 보다도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만치 그는 우리한테 생소한 존재였고 우리 또한 그에 대해 너무나도 무심해왔다.
필자가 심여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책이 출간되어서 꼭 10년 후였다. 어느 날 자료실에서 책을 뒤적이다가 <<연변조사실록>>이라는 제목에 우연히 눈길이 갔다. 오래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서 먼지가 부옇게 앉은 책꽂이에서 나는 무심히 그 책을 뽑아 들었다. 조선문과 한문으로 된 150여 쪽의 소책자에 가까운 책이었다.
나는 저자의 <<서언>>에 눈그루를 박고 읽어내려갔다.
본 책의 서술 목적을 세 가지에 두었다. 첫째: 중국의 동북변방을 공고히 하자는 것, 둘째: 동3성의 정치, 경제, 교육에 대한 일본인의 침략을 저지하자는 것, 셋째: 중국 거류조교들에게 안거낙업의 처소를 마련해주자는 것이다. 이 삼자는 서로 불가분리의 관계를 갖고 있는바 어느 면에 치우쳐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되 제3목적은 본문의 목적이기도 하고 또한 제1, 제2목적을 이루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것은 조선인들이 만약 중국의 양순한 통치밑에서 중국인과 평등한 공민권리를 향수할수 있다면 일본인의 침략행위가 성사될수 없고 동북의 변방은 자연히 공고히 될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조선인은 만몽을 침략하는 일본인의 선봉대와 도구로 충당될 것이며 동3성의 전도는 상상조차 할수 없이 위험한 것이다.
몇 줄 읽어내려가자 나는 가슴이 뭉클 하는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글줄과 글자들에서 튕겨나오는 저자의 정열에 감화되어 저도 모르게 책 속에 혼신이 녹아 버렸다.
책은 연변의 역사와 20세기 20년대의 연변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제 분야의 실제 상황을 자상하게 서술하고 일본군국주의 침략확장의 죄악을 폭로한 동시에 중국 집권자들에게 조선이 멸망한 교훈을 거울로 삼아 미연에 침략을 방지하는 구체적인 방책을 제기하고 있다. 특별히 <<연변구원책략>>이라는 장절을 설정하여 정치, 경제, 교육 등 부문에 있어서의 일제의 침략을 방지하는 대책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였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조선인에 대한 입적문제와 연변 4개 현을 특별구역으로 만들데 대한 건의이다.
조선인의 입적문제에서 심여추는 이렇게 썼다.
일본인은 중국적에 입적하지 않은 조선인을 그들의 국민으로 간주하고 통치한다. 중국관방에서는 마땅히 입적비를 낮추고 조선인들을 전부 입적시킨 다음 중국인과 혼합민단을 조직하여 민회와 일본경찰서의 활동을 막아나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연변을 특별구역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심여추는 10가지로 개괄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핵심적인 것은 아래의 몇가지를 들수 있다.
(1) 거민중 80%를 차지한 조선인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고 풍속습관이 다르며 모든 제도가 실정에 맞지 않는다.
(2) 다같이 외적의 침략을 받는 처지에서 강토를 따질 것 없이 일치 단결하기 위해서이다.
(3) 중국인들이 이에 주의하지 않으면 외적의 침략을 쉽게 받을 수 있다.
심여추가 이 글을 쓸 당시 만주에 거주하는 조선인은 이미 백만을 넘었다. 그 중에서 연변에만 36만 8,827명(당시 연변의 총 인구는 46만 5,846명)이 살고 있었다.그들의 운명은 일제의 침략방침과 중국의 주권수호의 갈등 속에서 칼도마위에 놓인 고기덩이나 염라대왕의 제사상에 놓인 제물과 같은 처지에 빠져 있었다.. .
심여추는 이렇게 썼다.
일본정부는 만주를 통해 인구와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제침략정책을 30년 래 줄곧 개변시키지 않았으며 민국 이래에는 이른바 <<21조약>>의 제2항 제2조목에 비추어 상조권(商租權)실시를 요구함과 더불어 남북만 일대에 산재하고 있는 친일조선인들을 충동하여 개간선봉대를 조직하고 상조권실시에 종사하게 하였으며 더욱이는 연변일대에서 중국 적에 입적한 조선인을 앞잡이로 내세워 도처에서 중국인의 토지를 수매하게 함으로써 동3성의 토지이익을 직접 침해하고 일본농민의 조선이주문제를 간접적으로해결하려 든다. 이와 동시에 정치상에서는 조선인 거류민회를 조직하여 중국 영토내에서 일본의 내무행정을 실시하여 교육권을 독점하고 동3성에서의 일본의 근본적이고 영구적인 세력을 자래우고 있다.(<<연변조사실록>> 제2페! 지)
일본의 침략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그 첫 시도가 <<간도협약>>이였다. 일제는 이 협약을 통하여 간도 영유권을 청나라에 귀속시키기로 하고 조선간민을 <<한국신민>>으로 취급, 하여 대한제국은 <<한국인>>, <<한국교민>>이라고 주장하고 재만조선인들 역시 민족적 감정으로 하여 조상의 분묘가 있는 모국을 탈리하기를 꺼려 하였다. 그리고 <<한일합방>> 이후 일제는 재만 조선인에 대한 기본방침을 내세워 <<일본신민>>으로 간주하였다. 재만조선인을 <<식민지 노예>>로 통치하고 또는 법적으로 장기 외국거주 일본인은 자연 국적포기가 되므로 재만 조선인들이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날 것을 두려워 일본 국적법을 조선인한테는 적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해외 거주하는 ?! 瞿뻥탁括막? 간주하여 치외법권을 실시한 동시에 <<조선인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만몽에서의 침략세력범위를 확대하여 왔던 것이다. 이와 반대로 중국은 영토주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귀화입적을 강요하였다. 이에 일본은 재만 조선인이 중국 국적에 들었다고 하더라도 일본신민으로 일본의 영사재판권을 행사한다고 중국 정부를 위협하였다. 하여 중일 양국의 복잡한 모순 갈등속에서 재만 조선인들은 <<이중 국적>>을 가진 자로 되어 이중 삼중의 압박, 착취를 받았다.
<<이중국적>>문제는 중일 양국간의 모순을 더욱 격화시키는 요소의 하나로 되었다. 일본은 조선에 대한 일제 식민통치의 유지와 만주침략에 유용하게 이용하기 위하여 재만 조선인의 중국 국적가입을 완전 부정하고 나섰다. 그리고 만주로의 조선인들의 이주를 자극하고 <<일본신민>>보호를 구실로 삼아 저들의 세력권을 부단히 확대하였다.
동시에 일제의 침략음모를 간파한 중국 국민당정부도 조선인을 국제분쟁의 화근으로 보았고 가능하게 중국의 망국의 도화선이 될는지도 모른다고 인정하고 재만조선인에 대한 탄압과 구축정책을 실시하기 까지 하였다.
그러나 1928년 7월 9일 중국공산당 제6차 전국대표회의는 <<민족문제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중국 경내의 소수민족문제 (북부의 몽골, 회족, 만주의 고려인, 복건의 대만인, 남부의 묘족, 여족과 신강과 티벳)가 혁명에 대하여 중대한 의의가 있음을 인정하고 조선 이주자를 중국 경내 소수민족의 하나로 명확히 규정하였다. 그후 중국 공산당의 소수민족정책에는 시종일관 변함이 없었다.
바로 이러한 때 심여추는 <<조국광복의 목적을 이룩하자면 중조 두 민족이 손 잡아야 한다는 도리를 알았>>(<<연변조사실록>>에 쓴 하앙천의 <<서문>>에서)고 <<자기 조국의 멸망을 근심하고 이 아름다운 강산이 망국조선의 뒤를 따르는 것을 차마 볼수 없어 이 책을 씀으로써 우리 나라 사람들을 각성시켜 경각성을 높이고 구국을 도모할 것>>(<<연변조사실록>>에 쓴 장군실의 <서문>에서)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결속어>>에서 <<연변을 망하지 않게 하려면 먼저 구체적 방침이 있어야 한다. 구체적 방침을 가지려면 먼저 특별 구역을 설치해야 한다.>>라고 호소하였다.
단숨에 책을 읽고 난 나는 감개무량했다. 고리끼의 단편소설 <<이제르길리노파>>에 나오는 단꼬의 형상이 우렷이 떠올랐다.
옛날 한 유쾌하고 강하고 용감한 사람들이 초원과 수림이 어울린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디서인지 다른 종족들이 나타나 그 사람들을 수림 속으로 쫓아냈다. 수림 속은 나무가 너무 빽빽이 들어서서 해빛이 스며들지 못하였으며 진펄로 뒤덮인 땅에서는 악취가 풍겼다. 사람들은 수림 속에서 하나 둘 죽어갔다.---되돌아가 원수의 노예가 되느냐 아니면 수림을 뚫고 나가느냐 하는 두 길이 그들 앞에 놓여 있었다.---
이때 영준한 청년 단꼬가 사람들 앞에 나섰다. ---
<<일어나시오! 수림을 뚫고 나갑시다. 수림도 끝이 있을 것이요. 세상의 모든 것은 끝이 있는 법이요! 갑시다! 자, 어서요!>>
그 다음 단꼬는 두 손으로 자기 가슴을 찢어 헤치더니 그 속에서 자기의 심장을 쑥 꺼내어 머리 위에 높이 추켜 들었다. 심장은 해 보다도 밝게 빛났다.---
드디어 수림과 우레소리는 뒤로 물러가고 사람들 앞에는 해빛이 넘치고 맑은 공기가 시원한 넓은 초원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기쁨과 희망에 넘쳐 환성을 질렀다.
단꼬는 <<자유의 땅>>에 시선을 던지고 자랑스럽게 웃고서는 쓰러져 죽었다.---
심여추는 추호도 손색이 없는 우리 민족의 단꼬였다. 그는 26살 홍안의 청춘을 통째로 불살라 부패한 군벌통치와 일제의 식민통치가 병행하는 암흑 속에서 방황하는 그 시대 사람들한테 나아갈 길을 밝혀 주었다.
그가 죽고 22년 세월이 흐른 뒤에 연변 땅에는 끝내 조선족자치주가 성립되었다. 그것은 바로 재중 조선인들이 한족과 다른 민족과 어깨 곁고 광복을 위해 싸워서 얻은 피의 대가였다.
가석하게도 그는 단꼬처럼 <<자유의 땅>>을 보지 못했다. 그는 죽은 단꼬의 시체 옆에서 불타고 있던 심장이 수많은 불꽃으로 피어나면서 사라졌듯이 역시 이름 석자만 남겨 놓고 미련 없이 역사의 뒤안길에 숨어버렸다.
그 날 이후 나는 혹시나 심여추의 행적을 찾으려고 못내 애를 썼다. 옹근 4년 세월 만주 땅을 지려 밟고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자료들을 뒤졌지만 심여추의 신상에 대해서는 실오리만한 단서도 잡지 못했다. 오직 하앙천선생의 <<서문>>에서 그의 고향이 조선 길주군 장백면이라는 것밖에 심여추의 일상에 대해 바이 알길이 없었다.
그러던 지난 2001년 가을이었다. 류자명에 대한 조사 차 심극추선생을 찾았을 때 뜻밖으로 심여추를 만나게 되었다.심극추선생이 바로 심여추의 친 동생이라는 것이었다. 애석하게도 심극추선생 역시 몇 달 전에 불귀의 객이 되고 없었다. 그러나 선생은 생전에 <<나의 회고>>라는 제목의 글을 써두었었다. 참으로 천우신조라고 해야 할만한 행운이었다.
그 날 밤 나는 <<나의 회고>>의 글줄을 타고 세월을 거슬러 20세기 초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심여추와 함께 험난한 시대의 가시덤불길을 헤쳤다.
심여추의 본명은 용해이고 고향은 함경북도 길주군 장백면 합포동이었다. 부친은 능숙(能淑 1871-1938),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고향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일본인 교장과의 불화로 오라지 않아 교단을 떠난다.구체적으로 독립운동에 참가했다는 근거는 없으나 14살 어린 아들 여추를 간도로 유학을 보낸 사실로 미루어 조선 선비의 굳은 지조를 읽을 수 있다.
1918년 심여추는 연길도립 2중학교에 입학한다. 당시 간도 조선인 학교들에서는 모두 일본총독부에서 지정한 교과서를 배웠으므로 중국 관방에서 꾸리는 학교에서 중화의 교육을 받는 것은 일종 다른 형식의 반일이기도 했다. 당시 그의 동창들로는 한국광복회장으로 있다가 지난 해 사망한 이강훈(李康勳), 박관해(朴觀海), 류수인(柳樹人 일명 柳絮, 柳基石 1905 - 1980) 등이었다. 특히 류수인의 부친 류찬희(柳纘熙 1883 - 1930)는 독립운동조직인 간도국민회 재무부장을 맡고 있었으므로 아들과 동창들한테 준 영향은 막대한 줄로 안다. 하여 그들은 이듬해 3월 13일 간도에서의 만세운동에 자위대원으로 참가하기도 했던 것이다.
경신년대토벌 이후 심여추는 길림성립 제1중학교로 전학을 한다. 거기에서 그는 진보적 지식인 장운책(張雲責 중국 문호의 한분인 곽말약과 일본유학 동창,후에 장학량장군의 막하에서 월간 <<군광(軍光)>> 주간을 맡아한다. 1927년 도산 안창호선생 등 많은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이 길림에서 체포되었을 때 장운책의 힘을 입어서 풀려나온다)선생의 교육을 받았다. 장운책은 <<교육의 과학화, 지식의 생활화, 실학실용, 건성건국(建省建國)>>을 주장하는 아나키스트였다. 그리고 1923년 졸업 후에는 또 그의 추천을 받아 장춘에 가서 <<대동보(大東日報)>>의 기자로 취직을 한다. 이 신문은 1921년에 창간되었고 주편은 초단봉(肖丹峰), 공산주의자였다. 그리고 신문사의 편집과 실무자들 대부분이 아나키스트들이었으?! 퓐? 20세의 접수력이 강한 심여추는 당시의 새로운 사조 - 아나키즘과 마르크스주의를 그대로 접수하기 시작했다. 이시기 그는 아나키스트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기초를 다지었다고 볼수 있다.
일년 후인 1924년 심여추는 북평 <<국풍일보(國風日報)>>의 부간 <<학회(學匯)>> 편집으로 취직을 한다. 1919년 5.4운동(중국의 신문화운동) 이후 진보적 자산계급 혁명파의 후설이었던 이 신문사의 사장은 삼진명사(三晉名士)의 한분인 경매구(景梅九), 주간은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문예계 인사 화림(華林)이었다. 심여추는 저명한 청년작가이고 <<학회>>지 편집인 색비(索非)와는 단칸방에 동거하였다. 그리고 또 일본군 탈주병 사노(佐野)와 마쯔모도(松本)도 함께 했다.심여추는 망국노의 신세로 망명했고 일본인들은 조선을 병탐한 제국주의 일본을 배반하고 망명을 한 것이었다. 하나는 피해국의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가해국의 병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인류평화에 대한 공동한 염원을 지니고 <<천하?! ? 한 집안이고 사해의 모든 사람은 한 형제이며 인민지간에는 그 어떤 원수나 적이 없다>>(심극추 저 <<나의 회고>> 제14페지)는 대동주의(大同主義)사상을 바탕으로 한 동지로 되었다. 훗날 심여추의 <<연변조사실록>>에 반영된 여러 민족의 화합과 일제의 침략에 대한 공동 저항 주장은 바로 이때에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심여추는 <<학회>>의 편집을 하면서 당대의 저명한 진보인사들의 글을 다루면서 친분을 맺었는데 그 중에서도 파금과의 교분이 가장 깊었다고 한다. 1925년 여추는 파금(주해)의 번역작품들을 편집하여 발표하였다. 훗날 파금은 이렇게 썼다.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쏜 사적은 나한테 아주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는 어린 시절 내가 숭배한 영웅이었다. ---1925년 나는 남경에서 동남대학 부속고중을 졸업하고 북경에 가서 북경대학을 지망하고 응시했다. --- 나는 북경에 반달남짓 있었다. ---나는 당시에 북하연동흥공우(北河沿同興公寓)에 들었는데---그것은 한 신문사 부간에서 편집으로 있는 성이 심씨인 친구의 소개로 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조선인이었다. 어느 날 밤 그는 고향사람을 데리고 왔다. ---심씨는 꽤 말씨가 무거웠지만 그의 친구는 아주 열정이 넘쳐서 조선의 애국지사들이 일본침략자들과 싸운 이야기를 도도하게 하였다. 나는 처음으로 조선인민의 간고하고도 영용한 투쟁을 알게 되었고 조선의 혁명자들에 대한 경의를 지니게 되었다. 나는 후에 그러한 이야기들을 <<머리칼! 의 이야기>>에 썼다. ---몇몇 친구들한테서 그들의 망명생활과 항전 초기의 활동을 알게 되었다. 나는 <<불>>의 제1부에서 자성(子成), 노구(老九), 명성(鳴盛), 영언(永言) 등이 일제의 간첩을 징벌하는 장거(壯擧)를 썼다.(<<파금창작론>> 제398-400페지)
파금이 말한 심씨가 바로 심여추이고 심씨의 친구는 바로 류수인을 가리킨다. 경신년대토벌 이후 아버지 류찬희가 독립군부대를 따라 러시아로 가고 류수인은 남경 금릉학원으로 갔다. 졸업후 그는 곧장 북평 조양대학(朝陽大學) 경제학부에 입학하였다. 오라지 않아 그는 독립운동가 안정근(安定根)의 소개로 안창남(安昌南)을 알게 된다. 그리고 1923년 여름에는 일본군에서 탈출하여 염석산(閻錫山)의 공군부대에서 비행기술을 가르치는 교관 안창남의 통역관이 된다.
심여추는 바로 류수인의 소개로 북경에 거주하는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인 안정근, 김승만(金承萬), 이탁(李鐸) 등을 만나게 된다. 그 후 그는 김승만의 셋째 딸 창근(昌根)한테 장가를 들게 된다. 1926년 북경대학 3원(三院 정치학부)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면서 다물단에 참가하여 일제 간첩 진국신, 문시록을 처단하려다가 실패하고 되려 그자들한테 부상을 당하는 봉변을 겪기도 한다. 그리고 1927년에는 류수인이 통역으로 도산 안창호선생을 모시고 길림으로 갔다가 수백명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체포된 후 심여추는 길림성립 제1중학 당시의 선생이었던 장운책선생을 통해 장작림한테 구원을 요청하기도 한다. 심여추의 독립운동사적은 자세히 밝혀진 바는 없다.
1926년 겨울 여추는 북평에서 중문판 신문 <<고려청년>>을 발간했다. 신문의 문장은 여추가 직접 썼다. 그는 상해에 있는 파금한테 원고를 부탁하면서 이렇게 썼다.
당신은 우리 이 민족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굳세고 투쟁분발정신을 가졌다고 말하는가? 아니다.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우리의 생명은 아마도 한 마리 개미 보다도 못할 것이다. 내가 어릴 때 벌써 많은 일을 보았다. 마을의 무고한 사람들을 마음대로 잡아다가 땅을 파고 그 속에 집어 넣고 석유를 뿌려서 태워 죽였다. 다른 사람들은 넓은 길에 서서 보고만 있어야 한다. 말 여섯 필이 끄는 네 바퀴 마차에 마을에서 붙잡은 청년들을 가득 싣고 형장으로 갔다. 이러한 일은 매일 볼 수 있었다. 이같은 범의 굴에서 살아나온 청년들한테 중국은 유일한 피난소이다. 이 피난소마저 잃게 될가 두렵다.---(<<파금 창작론>> 제97- 99페지)
파금은 즉각 <<공개편지(公開信)>>를 보냈다. 편지는 이렇게 썼다.
---8월의 밤, 하늘엔 밝은 달이 높이 떠있고 대문 옆에서는 홰나무 이파리가 미풍에 속삭이었다. 나는 조용히 류(柳)의 빛나는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그들의 투쟁의 전경을 나의 눈앞에 펼쳐보였다. --- 그는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어떻게 산 중턱에서 적들과 맞띄웠고 백양나무숲 속에 숨어서 반나절 저격하였는가를 이야기했다. 그는 그들 중 네다섯이서 5, 6십 명의 적들의 포위에 들어 산꼭대기에서 밤을 보냈으며 이튿날 아침 매인 두 자루의 권총을 거머잡고 산 아래로 돌격해내려가 적지 않은 적들을 죽였으며 그들 자신도 적들의 어지러운 총탄에 맞아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
---나는 비록 그들의 전투에는 참가하지 못하였지만 나 역시 그들 속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적어도 그들의 생활, 그들의 사상, 그들의 위인에 대해서는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장렬한 피의 투쟁은 사람들 마음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순도자(殉道者)의 피는 영원히 사람들의 혈관 속에 흐를 것이다.(<<파금 창작론>> 제97 - 99페지)
<<고려청년>>은 자금난으로 오라지 않아 페간되었다. 그러나 발행인 심여추가 고인이 된 후에 파금의 소설 <<봉화(烽火)>>에서 중한 두 나라 청년들이 연합으로 꾸린 네겹으로 된 항일신문 <<고려청년>>이 재생하였다.
심여추는 우리 민족의 선각자인 동시에 중국인민의 항일투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 지사였다. 그러므로 당시 중국인 하앙천은 <<고 여추 심용해군은 나라를 위해 강개하게 몸을 바친 지사>>이며 <<배움에서 포부를 세운 그의 원대하고 활달한 도량은 푸른 바다 아득한 수평선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같았고 구김없이 소탈한 지조는 만길 구리 기둥위에 서있는 박학에 비기리라.>>(<<연변조사실록>>에 쓴 하앙천의 <<서문>>에서)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쉬은 것은 우리들이 심여추를 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여추가 구상했던 자치는 어떤 형태의 것이었는지는 바이 알길 없다. 그러나 어쨌든 연변조선족자치주에 몸을 담고 사는 우리들은 심여추를 조선족 역사에서 선각자로 기리여야 할 줄 안다.
2004년 2월 2일
약력: 심여추(沈茹秋, 1904년 음력 6월 1일 - 1930년 양력 4월 6일) 원명 용해(鎔海), 호 여수(如囚), 자 여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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