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아들

예술가 정률성의 삶과 중국 조선족의 비환

류연산

    3 피는 물 보다 진하고 

  우리 민족을 생각할 때면 나는 종종 위나라 조비(曹丕)와 조식(曹植)을 떠올린다. 그들은 조조의 두 아들이었다. 맏아들 조비는 동생 조식이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것을 은근히 질투하여 콩깍지로 불을 지피고 솥안에 콩을 닦으면서 《칠보작시》를 하라고 했다. 일곱발자국을 가는 사이에 시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엄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조식은 이런 시를 썼다. 

  콩 닦는데 콩 깍지를 때노니 
  콩은 가마속에서 읊조리누나 
  본디 한뿌리 태생이건만 
  어찌하여 이리 매정하게 달달 볶는거냐? 

  혈연의 관계로 보면 우리 민족은 뿌리를 같이 한 콩꼬투리 속에 있는 콩알과 같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가 된다. 

  그러므로 고향이 있어도 가지를 못하고 부모형제 있어도 만날 수 없는 혈육간의 비애는 정률성 한 개인의 운명이 아니였다. 

  그것은 조선족 모두의 비극이였다. 

  그것은 지구상 그 어디에 거주하든 20세기를 살아온 우리 민족 머리위에 무겁게 드리운 시대의 흑운이였다. 

  8천만 우리 민족이 뜨거운 가마속에서 달달 볶기우는 콩과 같다면 솥 밑에서 활활 타는 불길 그것은 이념이였다. 우리 민족 뿐만 아니라 지구상 모든 인류를 적아(敵我)로 편을 가르고 살육을 즐기도록 만든 장본인이었다. 

  다행이 지난 세기 80년대 중국에서부터 불어온 개혁개방 바람에,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동구라파 공산주의의 급속도로의 와해의 물결에 하늘이 열리고 해와 달과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혈육간의 뜨거운 상봉이 이루어지고 드디어 정률성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 민족은 뜨거운 솥안에서 달달 볶기우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콩 볶듯 한다는 표현이 우리 민족의 현주소이다. 왕래가 자유로와진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에도 해결하지 못한 여러 가지 갈등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모순이 바로 한국에서 말하는 6.25전쟁이다. 북한에서는 조국보위전쟁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조선전쟁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부르든 그 이름과는 무관하게 한차례 너무나 처절했던 악몽과도 같은 동족상잔이였다. 수백만이 무참히 죽어갔다. 당시를 살아온 사람들과 혈육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한 전쟁의 비극은 민족화합을 가로 막는 무형의 장벽이다. 

  전쟁은 군인들의 몫이다. 조선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은 군가를 부르며 남으로 진격했다. 미군이나 한국군한테 그 노래소리는 소름 끼치는 장송곡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한국이나 이른바 조선전쟁에 참가한 연합군 소속 나라의 입장에서는 적군의 군가를 만든 사람인 정률성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것을 혹자는 당연지사로 생각할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빗나간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 어떤 예술작품이든지 일단 발표된 후의 사회적 효과성은 작가의 주관적 의도에 의해 좌우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률성의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의 전신은 《팔로군 행진곡》으로서 항일가곡이며 당시 반파쑈 전쟁에 나선 모든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준 노래인 것이다. 그리고 《조선인민군 군가》의 전신은 《조선인민군 행진곡》으로서 평화와 정의를 위해 불의의 원수를 싸워 이기자는 민주와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노래이기도 했다. 이 두 노래는 두 나라 정부에 의해 군가로 지정되고 조선전쟁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군위를 떨치였는데 이같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작가의 책임으로 떠넘길 수는 없다. 더구나 두 노래는 가사 자체의 진보적 사상성과 곡 자체의 높은 예술성으로 말미암! 아 반세기도 훨씬 지난 지금에도 매력이 넘쳐나는 불멸의 명작으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한국의 입장에서 문제를 삼을 만한 작품을 든다면 정률성이 창작한 《조선유격대 행진곡》이나 《중국인민지원군 행진곡》과 같은 노래들이다. 이 두 노래는 정률성이 북한과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군과 연합군을 소멸하기 위하여 진 것임은 변명할 여지도 없다. 가정해서 조선전쟁 당시 정률성이 한국군이나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사형을 당한다 해도 억울할 것이 추호도 없었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