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살아생전에 갈수 없는 고향
  대전 국립묘지에 가면 독립유공자 유자명(柳子明 본명 興湜 호는 友槿 충북 충주군 이안면 삼주리 태생 1894-1985년)의 묘소가 있다. 봉분은 하나이나 비문을 보면 그 속에 두 분 부인이 합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분은 정실부인으로 이란영(李蘭英 1892 - 1974년), 같은 충주 사람으로 나이 열여덟에 결혼하여 1919년 남편과 생이별하고 청상과부로 살아오셨다. 다른 한 분은 유칙충(劉則忠 1910 - 1985년), 그녀는 중국인으로 1935년에 상해에서 유자명과 결혼했다.
  묘혈속의 일남이녀는 역사속의 인물이다. 생전에 이란영은 아들 둘을 두었으나 오래전에 이 세상을 떠나고 현재 손자와 증손들이 있고 중국에는 유칙충의 아들딸과 손군들이 있다. 비록 그들은 동부이모(同父異母), 배 다른 형제의 후손이긴 하지만 자유로운 왕래로 남달리 애틋한 혈육의 정을 만끽하고 있다. 살아 생전에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고 문안편지 한 장 주고받을 수 없었던 그 분들의 한을 후손들은 끝내 합장으로 매듭지었던 것이다.
  그것은 2002년의 일이었다. 유자명은 후실 부인 유칙충하고 골회함속에 담겨서 국립묘지에 이장되어 살아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정실부인과의 만남의 염원을 풀게 되었다. 1919년 정든 고향을 떠나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만 65년을 이국에서 한 많은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국적을 고치지 않았지만 죽어서도 17년 세월이 지나서야 자기의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조국은 유자명과 같은 자식들까지 얼싸 안아줄만한 품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1919년 충주에서 3.1운동 주모자로 지목되어 일제의 검거를 피해 상해로 갔다가 이듬해 귀국하여 서울에서 얼마간 체유했지만 불과 반년도 못되어 독립운동가의 신분이 탄로 나자 다시 중국행에 오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1950년 대만에서 중국 부인과 자녀들을 데리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말미암아 홍콩을 경유하여 중국 호남성 장사에 정착하는 수밖에 없었다.
  유자명은 1950년대 후반 어느 한 때 조선으로 소환되어 갈 운명의 갈림길에 놓여 있었다. 그는 중국 교육부에 중국에 남아서 농학교수의 생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제기했다. 광복 후 북으로 갔던 김약산, 김원봉 등 그의 동지들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조국을 따사로운 어머니 품으로 여겨온 것처럼 유자명한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한테는 살아생전에 갈수 없는 조국 땅 한 귀퉁이에 고향 충주가 있었다.

  2 역사의 그늘에 가린 진실
  유자명은 중국에서 조교(朝僑)의 신분인 외국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귀국 방문 한 번 하지 못하고 타국인 중국에서 여생을 다해야만 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유자명이 한국 독립운동사상에서 대표적인 무정주부의자라는 것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무정부주의를 공산주의와 동일시하여 배척했던 것이다. 하루 한시 대만에서 귀국길에 올랐던 정화암은 홍콩에서 체유하다가 결국 귀국에 성공했다. 그러나 무정부주의자인 독립운동가 그를 기다린 것은 한국의 경찰이었다. 그는 오랜 세월 옥중생활을 해야 했다. 만약 그때 유자명도 한국에 갔다면 정화암과 같은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무정부주의를 받아드린 것은 1920년, 당시 한국인민의 앞에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반대하는 민족해방투쟁이 중요한 과업으로 나섰으므로 민족모순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계급투쟁에 관한 학설의 영향에서 해탈하여 무정부주의자로 성장하였던 것이다. 모든 국가권력과 권위를 반대하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무정부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일제를 반대하는 것으로 되며 일제의 우두머리를 암살하고 일제의 통치기관을 폭파하는 것은 반일애국행동으로 되었던 것이다.
  유자명이 김약산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한 다음부터 그의 무정부주의사상은 의열단의 지도사상이 되어 광복까지 맥을 잇는다. 신채호, 이회영, 김창숙과 같은 당대의 위걸(偉杰)들도 그의 영향을 받아 무정부주의에로의 사상 전변(轉變)을 가져오며 중국과 동방 아시아 여러 나라의 무정부주의자들과의 반 파시즘 동맹을 맺기도 한다. 당시 유자명과 깊은 관계를 가졌던 중국 무정부주의 대표적 인물들을 꼽는다면 군(軍)에서는 호종남과 장성백, 산업계에서는 오랑서, 교육계에서는 엽비영, 정계에서는 오치휘, 이석증(중국 국민당정부 고문), 과학계에서는 주세(朱洗) 등이 있고 문예계에서는 파금(巴金 1994-2005)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당대 중국의 각계의 대표자들로서 중국 현대사에 굵은 족적을 남긴 분들이다. 이들 중에서 파금은 중국에서 로신과 함께 손꼽히는 대 문호이다.
  파금은 중국 무정부주의 대표자의 한 사람이다. 그와 유자명은 만나자 지기가 되었고 그 우정은 생명이 다 하는 그 순간까지 연장되어 왔다. 유자명은 파금의 대표작 '머리칼의 이야기'의 주인공의 산 모델이었고 유자명과 그의 동지들의 형상은 파금의 '항전3부곡(抗戰3部曲)' '불(火)'의 제1부에서 열혈 청년 조선인 항일운동가들로 나타난다.
  파금은 '나세미(중국 현대 문학의 대표적 여유작가)를 기념하여'라는 글에서 유자명과의 만남을 이렇게 썼다.
  그녀는 많은 벗들을 자기의 곁으로 끄는 흡인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 간에 서로 접근하고 이해하게 하였다. 한 한국 벗은 일본인들의 추격이 심할 때 상해로 와서 언제나 그녀의 남편의 환대를 받았고 그들의 집에 유숙할 수 있었고, 주인들은 그 대신 연락을 해주었다. 그 벗은 또한 나의 친구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의 머리는 몇 달 사이에 몽땅 희어졌으나 그의 정신만은 쇠퇴되지 않았었다.
유자명도 '나의 회억'에서 파금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파금은 소년시대로부터 한국 혁명가들과 왕래가 밀접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자기는 어렸을 때부터 한국 인민의 고통과 투쟁이야기를 들었으며 안중근이 이또 히로부미를 쏘아 죽인 사적은 그에게 매우 깊은 감동을 주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안중근은 그의 소년시대의 숭배하는 영웅으로 되었다고 한다.
  ---1930년대 상해의 프랑스 조계지에는 한국 사람이 수백 명이 살았으며 한국 무정부의자들도 조직적 활동을 하고 있었다. 상해 일본영사관에서는 한국 애국자들의 행동을 감시하기 위하여 특무 망을 벌려놓고 내가 입달학원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모든 행동을 특별히 주의하였기 때문에 농촌교육과의 학생들은 나를 '신비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특히 나는 사선을 넘나들었기 때문에 머리칼이 일찍 흰 모양이라고 하였다. 그때 파금의 아우 이채신이 농촌교육과에서 공부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얻어듣고 파금에게 이야기해주었다. 파금은 동생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소설화하여 1936년 6월에 '머리칼의 이야기'라는 단편을 발표하였다. 파금은 이 소설에서 나세미의 사상성격과 나의 '백발청춘! '의 특징을 결합시켜 나세미의 국제주의사상을 구가하였고 한국 혁명가들의 투쟁정신을 찬양하였다. 이 소설에서 김(金한국의 혁명가)의 모델은 나이고 명(銘 중국의 여인)의 모델은 나세미다.
  진단신(陳丹晨 중국 현대 문학평론가)은 '파금평전'에서 이렇게 썼다.
  작품('불')은 한국의 애국 청년들의 고민을 아주 진실하게 묘사하였다. 한국은 벌써 나라를 잃은 지가 오래 되었으므로 한국 인민들은 일본침략자의 잔인한 통치에 대한 인식이 깊고 더욱 장시간의 체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애국지사들은 항일활동을 진행한지가 이미 상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제국주의가 중국을 침략할 때 그들도 아주 자연스럽게 중국의 항일활동과 한 전선에 서서 함께 전투를 진행하였다. 그들은 적이 그들 민족을 잔혹하게 짓밟고 있으며 그들 인민의 목숨을 개미보다도 못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절대 잊지 않고 있다. (207페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