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의 계속) 동시에 한국 독립운동가들 속에서 무정부주의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민족주의 계열의 김구 등과 공산주의 계열의 김원봉 등 그리고 기타 여러 종파들 사이에서 무정부주의는 모두가 거부감 없이 받아드릴 수 있는 사상이었고 그러한 세력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중일전쟁이 폭발한 후 유자명은 여러 파의 단결을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그리고 전지공작대를 조직하여 일본군 속에 있는 한국인 청년들을 교화하는 선전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같이 유자명의 무정부의 사상은 독립운동가들 뿐 아니라 적군 속에 있는 동포는 물론이거니와 적군까지도 아우르는 폭이 넓은 아량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한국독립운동사에서의 유자명의 탁월한 공적을 꼽는다면 한국인 독립운동가들과 중국인들과의 유대관계를 이루는데 있어서의 가교역할이다.
한국 독립운동사를 보면 윤봉길 거사가 있은 후 국민당 정부는 한국임시정부를 승인하고 물질적, 도의적 지지를 하기 시작했다는 식으로 적고 있다. 결과만 있고 과정은 빠져 있다. 물론 그 사건이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하루, 한시에 그러한 결과가 생겨난 것은 아니다. 그 전부터 중국 정부의 고위층과 지성인들과의 친분관계를 꾸준히 유지해왔던 유자명과 같은 분들의 입김이 중국정부의 대폭 지원을 이끌어내게 된 역사과정이 삭제되어 있다.

유자명은 현재 서울대학 수원농업대학 전신인 수원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충주간이농업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었다. 따라서 농학자로서의 유자명의 활동은 직접적으로 중국의 최고위층과의 접촉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또한 중국 국민당정부에서의 한국독립운동에 대한 지지성원을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1929년 봄 남경에서 한복염기념농장에 취직하고 이듬해 여름 복건성 천주 여명중학에 갔다가 다시 1931년 1월 상해 입달학원에서 교편을 잡는다. 한복염기념농장이나 천주여명중학이나 입달학원은 중국 무정부주의 산실이기도 했다. 특히 입달학원 교장 광호생(匡互生)은 물론이거니와 기타 교사들 모두가 당시 중국사회를 주름잡던 진보적 인사들이었다.

상해 교구인 남상에 위치한 입달학원은 농촌교육과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의 아지트였다. 현재 북경에 거주하는 광개인(匡介人 80세 입달학원 교장 광호생의 셋째 딸)은 자기가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늘 남상으로 갔는데 그때면 유자명선생한테는 조선인들이 많이 찾아왔었다고 하면서 당시 그들이 불렀다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노래 한 구절을 부르기도 했다.
광호생은 중국 5.4운동의 맹장이었고 중국 아나키스트의 대표자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유자명을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 요해하게 되고 국민당 고위층과의 접촉을 적극 주선했다.
하루는 유자명이 한무리 청년들을 데리고 와서 광호생과 밀담을 했다. 광호생은 무석(无錫)에 있는 국민혁명군 육군 제1사 사장 호종남(胡宗南) 앞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 하여 그들은 입달학원의 학생의 명의로 무석으로 갔다. 그들은 대한 애국반일지사들이였다.
광호생은 중한지사들로 중한호조사(中韓互助社)를 조직하여 대한애국지사들의 반일운동을 적극 도왔다.

광호생 등 중국인들의 지지와 성원에 감사하여 김구선생은 광호생한테 편지를 써 보냈다.

광일휴(匡日休)선생 태감(台監)

---근일 여러 인사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원조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력한 단체는 한국친우회(韓國親友會)입니다. 오늘 또 선생께서 중한호조사를 설립하고 함께 기를 들었습니다. 귀방은 인인군자(仁人君子)로서 공동한 적을 증오하고 상부상조한다면 감히 누군들 멸시를 하겠습니까. 선생의 인애의 마음과 정의로는 심정은 공리(公理)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 ---
대한민국 3년 4월 4일 명정구(名正具)

소양문사총서(邵陽文史總書) 제19집으로 된 광호생선생 탄생 110돌 기념집(2001년 11월 출판)에는 광호생은 대한민국 망명정부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고 윤봉길의 거사의 막후에도 광호생의 지원이 있었다고 적혀있다.

3 이념의 거울에 비친 역사의 치욕

사람들은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지만 사랑하는 남녀의 결합은 국경의 제한을 받기 마련이다. 진정 국경이 없는 것은 과학이다. 과학은 그 어떤 계급적 제한도 받지 않고 전 인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의 유자명은 국적을 가진 조선사람이지만 과학자로서의 유자명은 국적이 없는 세계인인 것이다.
유자명에 대한 중국과 조선의 시각하고 한국의 시각은 다르다. 중국과 조선에서는 농학자로 기리고 있다.
1984년 중국 농학회에서는 중국에서의 유자명의 공적을 기리어 표창장을 수여하였다. 유자명은 중국 농업과학분야에 우뚝 솟은 하나의 봉우리이며 중국역사상 저명한 농업과학자들 중의 하나의 빛나는 별로 떠올랐다.
197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해외에 있는 조선인으로서 유자명이 중국 농업과학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을 기리여 국기훈장 3급을 수여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독립운동가로 추대한다. 1991년 한국 보훈처에서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고 2002년 유자명의 골회는 대전 국립묘지에 이장되었다.
이처럼 유자명의 삶은 이중성을 띤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한 인간을 마늘쪽 가르듯 하는 것은 잘못이다. 모든 사물은 서로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자명은 독립운동가인 동시에 농학자이며 두 가지 같지 않은 유자명의 삶의 양면을 하나로 통일시킨 것은 바로 그의 무정부주의사상이다.
그렇다면 유자명의 무정부주의사상의 근간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농학자로서의 과학적 태도이다. 무엇보다 먼저 농학자는 먹는 것을 연구한다. 그 연구는 자연이 준 혜택을 감사히 받아서 인유 모두한테 축복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유자명의 농학연구에서의 가장 뛰어난 성취는 벼의 기원에 대한 이론이다. 기원을 밝히어 벼의 생장법칙을 더한층 투철하게 파악하고 질적으로 더욱 좋고 양적으로 더욱 많은 벼를 생산하는데 이론적인 근거를 제공하였다. 그 다음 성취는 장미의 연구이다. 원래 장미는 중국이 고향인데 그것이 유럽으로 가서 상품화되어서 다시 중국으로 역수출 되었다고 한다. 세 번째 성취는 일본 감귤! 을 중국 감귤에 접종하여 보다 영양가가 높고 보다 맛있는 감귤을 생산한 것이다. 그것도 일본제국주의가 침화전쟁에 한창 발광할 때에 연구했다. 과학은 그 어떤 시대적 제한이나 이념의 속박을 받지 않고 자연의 법칙에 따를 뿐이라는 견해이다. 네 번째 성취는 중국 북부의 포도를 남방에 재배하는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일 년에 한번 생산하는 포도를 남방에서 일곱 번 수확하는 다수확 품종을 개발하였다. 현재 중국 양자강 이남의 포도와 포도주는 유자명의 심혈이 깃든 명품이다.
유자명의 농학연구의 최종 목적은 모든 인유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과학적 연구정신이 그의 무정부주의 사상에 녹아 있다.
바로 그러한 무정부주의자라는 것 때문에 유자명은 오랫동안 조국으로부터 배척을 받는 인물로 되었다. 광복 후 공산주의나 민족주의나 자본주의나 색깔 논에 미쳐서 너나없이 무정부주의를 일종 페스트마냥 멀리했다.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조선에서도,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한국에서도 자기중심의 항일(독립)운동사만 고집해왔다.
오늘날 세계 모든 인류가 더불어 살아가야 하며 자연과 공생해야 하는 때 국가와 민족의 계선을 넘어, 이념과 주의의 한계를 초월하여 인유의 정의와 문명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유자명의 삶과 그의 삶속에 용해되어 있는 무정부주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2006년 3월 5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