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정은 조선족의 문화의 발상지이며 반일투쟁의 책원지로서 유서깊은 고장이다. 그러므로 용정은 오늘 연변의 주요한 관광명소로 부상되였다. 용정 지명유래의 전설을 지닌 우물과 윤동주 시비와 대성중학교 옛 건물, 시인 윤동주 고향 명동과 일송정이 있고 그 외에도 민족문화교육과 항일독립운동과 관련된 유적지들에도 기념비가 세워졌다. 

  이러한 기념비에 새겨진 비문들을 읽기만 해도 우리 민족의 이민사, 교육문화사와 항일독립운동의 영광스러운 력사에 대한 공부가 된다. 만약 이러한 것들이 없다고 한다면 현대 건물에 의해 자취를 잃은 지 오래인 역사의 흔적들은 찾아볼 길이 없었을 것이다. 

  다행이 이러한 유적들이 기념비에 새겨지면서 음지에 묻혔던 역사의 주인공들이 드디어 역사의 전면에 솟아오르게 되었다. 독립운동가 리상설이며 간도 조선인 수령 격이었던 김약연이며 3.13운동, 15만원 탈취사건, 윤동주 등등 역사의 주인공들은 천추만대 기념해야 할 인물로 부활하게 된 것이다. 

  매번 이러한 유적지들을 찾아가서 기념비를 마주하면 경건한 심정에 저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 이러한 선조들이 있으므로 해서 조선족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자호감을 느끼게 된다. 

  바로 이러한 기념비들을 용정 땅에 세움으로써 잠자던 역사의 땅을 깨운 사람이 있다. 이름은 최근갑(崔根甲), 현재 용정시 '3.13'기념사업회 회장이다. 

  '당대중국조선족인물록'(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 1999년 출판)에서 그의 생애는 아래와 같이 집약되어 있다. 

  1926년 12월 화룡현 서성향에서 출생. 길림성립 민주학원 졸업. 화룡현인민정부 국장, 연변건축본공사 기술과 과장, 용정현 건설국 국장 역임. 1986년 정년이직. 

  (생략) 1985년부터 미국, 캐나다, 한국을 방문하면서 문화교유와 초상인자사업을 촉진하였음. 1989년부터 역사유적지를 발굴, 조사, 고증하는 사업에 진력하였음. 

  퇴직 전 그의 전공은 건축이었다. 그는 연변의 도로와 저수지건설에 공헌한바 크다. 그것은 1944년 용정 은진중학교 토목건축과를 졸업한 덕분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퇴직 후 그는 용정시 항일역사연구회 회장, 용정'3.13'기념사업회 회장으로 건축과는 전혀 무관한 분야로 전공을 바꾸었다. 그는 민족역사의 유적지를 발굴하고 기념하는 사업에 여생을 바쳐왔다. 

  '우리 민족은 이 땅을 지키기 위해 항일투쟁에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독립운동시기 연변의 조선인 항일열사는 3,026명입니다. 길림성 인구의 3%밖에 안 되는 연변조선족인구가 길림성 항일열사의 41%를 차지하며 연변 내 항일열사의 총 수의 97%나 됩니다. 우리는 이 땅을 개척하고 이 땅을 지켜 싸운 이 땅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역사란 당대에 발굴하고 조명하지 않는다면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발굴하여 사책에 올리고 형식이 부동한 혁명유적지를 복원하여 혁명전통교육의 기지로 만들고 관광유람지로서도 기능을 하도록 함으로써 세계 만방의 벗들이 와서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잘 건설해야 합니다. ' 

  최근갑은 이렇게 말했고 이렇게 실천했다. 

  우리는 최근갑의 이직 후의 심혈을 용정시 항일유적지마다에 세워있는 비석에서 실감한다. 1906년 리상설이 세운 현대학당인 서전서숙(현재의 룡정시 실험소학교), 독립운동가 양성을 목적으로 하고 1908년에 김약연이 창설한 명동학교(현재의 지신진 명동촌), 1920년에 카나다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은진중학교(지금의 용정시 동산), 3.13운동 대회장인 세전대야(용정시 제1유치원), 3.13운동 열사능원(지신진 합성리촌 산언덕), 15만원 탈취사건유적지(지신진 승지촌 앞 동량리어구 산언덕), 1920년 경신년대토벌 당시 일제가 무차별 촌민을 대량 학살한 동성용진 장암동참안(현재의 동성진 인화촌), 5.30폭동기념비(지신진 승지촌), 김약연공덕비(현재의 지신진 명동촌)---등등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보다도 '선구자탑'과 '간도기념비'며 '문익환생가기념비'며에 신경을 도사리고 있다. 이 세 개의 기념비는 이미 제거되고 없다. 그런데 묘한 것은 용정의 뜻 있는 곳마다 기념비를 세우는 것을 업으로 삼아온 최근갑옹이 위의 기념비하고는 관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하도 궁금해서 나는 최근갑선생을 인터뷰했다. 


  일송정의 선구자탑 

  1985년 이직을 앞두고 최근갑은 용정시 대외경제교유협회 회장이 된다. 그는 세계 각지에 사는 은진중학교 동창들의 초청을 받아 미국이며 캐나다며 한국 등 국가를 오가면서 외자 인입(引入)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1991년 용정 동흥중학교 졸업생들인 이해승(부산 기독교 목사)과 삼성그룹의 고문 박태원씨가 용정에다 '선구자탑'을 세울 것을 제의했다. 당시 연길시와 용정시 유관 영도동지들은 토론 결정하고 오태호(원 연변일보사장)와 최근갑한테 구체적인 일을 맡아하도록 했다. 그런데 중국 측(오태호와 최근갑)과 한국 측(박태원과 이해승)은 비문을 누가 쓰는 가 하는 문제를 두고 이 떨어진 치륜(齒輪)처럼 덜컥거렸다. 한국 측에서는 이해승이 맡아 써야 한다고 했고 중국 측에서는 부당하다고 반기를 들었다. ! 1941년부터 1944년까지 4년동안 용정의 은진중학교에서 공부를 했던 그로서는 '선구자'가 용정에서 불려진 독립운동가라는 것을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역사는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당시 그 일에서 손을 떼게 한 원인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돈의 힘을 입어 한국 측에서 비문을 쓰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고 그로 하여 '선구자탑'은 폭파되고 마는 비극을 공연하게 되었다. 1991년 가을에 제막식을 앞두고 이해승 등은 한국에서 매스콤을 통해 홍보하기 시작했다. 연변은 김일성주석이 항일투쟁을 하던 곳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김일성주석과 관련된 기념비 하나 없다, 그런데 용정 일송정에 노래 '선구자'를 기리는 탑이 세워졌다, 바로 이같이 어마어마한 일을 삼성그룹의 박태원씨가 성금을 내고 이해승씨가 노고를 아끼지 않고 세웠다는 식으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하였다. 

  결국 중국 정부의 간섭으로 '선구자탑' 제막식은 무산되고 말았고 이듬해 5월 어느 날 새벽 상급의 지시에 의해 용정시 유관 부문에서 사람을 파견하여 폭파해버렸다. 

  그에 앞서 은진중학교 졸업생인 강원룡(원 한국 방송위원회 위원장, 아시아 종교 이사장, 김대중대통령 고문)을 모시고 동훈(원 한국 통일원 차관)선생이 용정으로 왔다. 최근갑은 그때 선배인 강원룡과 함께 일송정으로 갔다. 강원룡은 '선구자탑'을 가리키며 무슨 탑인가고 묻자 동훈이가 '선구자노래를 기리어 세운 탑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난 강원룡은 '아무 짓이나 하고들 다니는구만. 쓸데없는 짓들이지. 거금을 들여 노래 비를 세우려고 하지말고 <3.13>에나 투자를 했더면 좀 좋아서---'라고 안타까워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최근갑은 얼굴이 화끈화끈해났다. 용정에서 불린 적도 없고 광복 전에 들어보지도 못한 노래 '선구자'를 독립운동가곡(獨立運動歌曲)으로 잔뜩 포장하여 탑까지 세우는 것을 번연히 보면서 미처 제지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한다. 

  탑을 세워놓고 제막식을 준비하는 때 '선구자탑'이 정치문제로 부상되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용정시 정부와 각계 대표들이 참가한 회의를 열었다. 최근갑선생은 이미 정치문제라고 결론이 났다고 한다면 깡그리 송두리째 없앨 것을 주장했다. 그런데 탑만 없애고 기초시설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그 기초 벽에 대리석으로 새긴 '선구자' 가사와 역사를 전도한 비문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결국 그것이 다른 한 화근을 불러왔다. 

  거제도에서 자금을 지원하여 '선구자' 기념비를 세웠고 2003년 글자가 지워지고 그 위에 조룡남시인의 시 '진달래'가 새겨졌다. 처음 선구자탑을 제거할 때는 정치문제로 인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의 제거는 역사왜곡이라는 당당한 이유가 있었다. 


  사이섬기념비 

  사이섬이란 한자로 표기하면 간도이다. 중국에서는 현재 용정시 개산툰진 선구촌의 두만강 섬을 일컬어서 간도라고 주장한다. 19 년에 선구촌에 세워진 '사이섬'비는 물론 중국의 관점을 증명하는 의미에서 세워진 것이었다. 

  그것을 세우면서 최근갑선생한테 협찬을 부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간도문제는 중국과 조선간의 분쟁점이므로 합당하지 않다고 여겨 단호의 거절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기념비는 세워져서 얼마 안되어 폭파되고 말았다. 


  문익환생가기념비 

  이 기념비는 명동촌 입구 길옆에 '윤동주생가' 기념비하고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한기장총회(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에서 자금을 내고 서울 정동교회 박목사가 와서 기념비를 주관했다. 
그때도 최근갑은 반기를 들었다. 

  '문익환은 한국이나 북한에서는 기념할만한 인물임에는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명동에서 태어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중국 사람이 아니고 더구나 중국에서 기념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의 기념비를 세운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를 않지요.' 


  정일권의 초상 

  현재 용정대성중학교 박물관 창고에는 정일권의 초상이 있다. 1993년 여름에 한국 자민련 양삼용(梁三容) 본부장이 가져온 것이다. 정일권이가 용정의 출신이므로 기념할만한 인물이라는 것이 그들의 추천이유였다. 

  그에 앞서 1990년 가을 한국에 갔던 최근갑은 자민련 안양지구당 이정환위원장을 만난 적이 있다. 이위원장은 만약 정일권의 초상을 대성중학교 박물관에 전시한다면 '3.13'기념사업에 미화 7,000불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최근갑은 거절했다. 아무리 일국의 총리까지 하고 그들 당의 수령이었다고 해서 기념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주국에서의 대표적 조선인 친일파를 어찌 기념한단 말인가? 나중에 이위원장은 700불을 협찬해왔다. 

  선구자탑, 선구자노래비, 사이섬비, 문익환생가비, 정일권초상 등 문제에 대해 한국의 매스컴은 대서특필하면서 중한간의 외교적 갈등으로까지 비화시키려는 조짐도 보였다. 그 속에서 일명 비석아바이로 통하는 최근갑선생도 난처한 처지에 처했던 때가 한 두 번 아니었다. 그 불똥으로 최근갑선생이 세운 기념비들도 물론에 올랐던 것이다. 

  그는 주(州)로, 성(省)으로 역사책들을 싸들고 다니면서 '3.13'기념비며 '서전서숙'기념비며 등등이 이 땅에 세워져야 하는 이유를 폈다. 
'민족문제보다도, 외교문제보다도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에 기념비가 정치문제를 만들어 내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다고 하면 선구자나 문익환이나 정일권이나 간도나 하는 것에 대해 기념비를 세우지 않았을 것이고 또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다고 하면 내가 세운 여러 비석들도 물론에 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매년 3월 13일이 돌아올 즈음이면 그 날 선구자탑을 못마땅해하시면서 하던 강원룡선배의 말씀이 떠올라요. 허영을 버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사업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충고라고 저는 믿어요' 
최근갑선생의 결론이였다. 

  한국에서의 '3.1운동'이 연변에서는 3월 13일에 만세운동을 전개되었다. 그러므로 '3.13운동'이라고 한다. 이 운동은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의 서막을 열어놓았던 것이다. 

  비석이란 수학공식으로 표시하면 '돌 + 생명'이다. 다시 말하면 돌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비석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석은 또한 땅에 역사의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다. 

  최근갑(崔根甲), 그 이름은 한자로 풀이하면 뿌리를 제일 으뜸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최근갑은 이름 그대로 역사의 땅에서 역사의 진실을 확인하는 사람이다. 
  2005년 9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