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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동의 진정한 주인
한국인들은 '용정' 하면 윤동주를 생각한다. 그들은 윤동주의 생가를 보기 위해 용정을 찾는다. 절대로 용정을 왔던 김에 윤동주가 나서 자란 명동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용정에서 삼합으로 가는 큰길로 30리 정도 가노라면 길옆에 '윤동주생가'라는 글이 새겨진 거대한 돌을 본다. 바로 그 관광안내비를 안고 돌아 비탈길을 내리면 명동촌이다. 마을의 맨 서쪽에 새하얀 회칠을 한 한옥 한 채가 있다.
1994년 한국 해외한민족연구소 이윤기소장이 발기를 하고 금성출판사 김낙준회장이 협찬하여 삼합에서 옛집 한 채를 떠다가 윤동주의 생가자리에 복원한 것이다.
관광객들은 이 집 앞에서 기념사진들을 찍는다. 그리고 감개무량해한다. '서시', '별 세는 밤' 등 주옥같은 시로 지금까지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시인에 대한 그리움에 잠기기도 한다.
그래서 명동촌에 다녀온 사람들을 만나면 대개 윤동주의 생가에 대한 추억으로 구구하다. 바로 생가 옆에 명동교회집이 있다. 윤동주생가로 가는 길목에 있는 관광필수코스이기도 하다. 그러나 관광객들의 마음을 붙잡기엔 턱 부족이다. 옛 성당은 명당역사박물관으로 탈을 바꾸었다. 사진을 몇 장 걸어놓고 안내자가 몇 마디 설명을 덧들이면 끝, 모금함만 문 옆 유표한 자리에 크다. 그리고 마을 동쪽 켠에 '명동학교터'자리도 있다. 그러나 어물전에서 밀려난 꼴뚜기 신세이다.
윤동주는 바로 명동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할아버지 윤하연은 명동교회의 장로였다. 교회에서의 영적인 성장이 없었다면 윤동주의 시가 그처럼 아름다울 수가 없다.
윤동주는 명동학교에서 5년 세월을 공부했다. 그의 아버지 윤영석도 이 학교의 출신이다. 독립 운동가를 배양 목적으로 한 명동학교에서 조선역사와 민족독립사상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하면 그의 시는 순수한 서정에 흐르고 말았을 것이다.
흘러간 역사를 뒤돌아보면 명동의 주역은 결코 윤동주가 아니다. 윤동주와 같은 인물이 자라날 수 있는 기반(基盤)을 만든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명동교회 옛집 동쪽 켠 비술나무 아래 정자 속에 세워 있는 '김약연공덕비(金躍淵功德碑)'에서 진정한 명동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 1942년 그가 사망한 후 간도조선인사회 유지들과 명동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들어 세운 것이다. 그러나 광복 후 토지개혁 당시 김약연 일가가 지주로 되어 청산을 맞게 되면서 이 비석도 버려졌다. 마을 앞개울의 징검다리로 씌었다. 1980년 대 마을 사람들은 흙속에 묻힌 이 비석을 찾아서 원 자리에 복구를 했다. 그런데 세월의 비바람에 다슬어서 돌에 새긴 글이 희미해져서 전문가의 눈이 아니고는 내용파악이 어렵다. 그리고 비석 윗 모서리도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그가 남긴 역사의 자취는 날이 갈수록 돋우어지고 있다. 광복 후 방앗간으로 되었던 교회건물도 복원되고 명동학교 옛터에도 기념비가 세워졌다.
2선각자
김약연은 1868년 10월 24일 조선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태어났다. 1899년 그는 김하규, 문치정, 김정규, 남위언 등 우국지사들과 함께 현재의 용정시 지신향 장재촌으로 집단이민을 해왔다. 동한이라고 하는 중국인 지주의 집 땅을 사서 22호 141명의 식구들이 정착했다. 김약연은 풍전등화의 운명직전의 조선을 구하기 위한 구국교육의 뜻으로 1901년에 자기의 호 규암을 따서 규암재(圭巖齋 )라는 서당을 꾸리고 한학을 가르쳤다. 이것이 중국 땅에 처음으로 세워진 조선인 학교였다. 그후 1906년 이상설(�怏相卨)의사가 용정에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세웠다. 그러나 오라지 않아 이상설은 고종의 위임을 받고 이준, 이위종과 함께 헤그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 평화회의에 밀사로 참가하러 떠났고 학교는 폐교되었다. 1908년 김약연은 서전서숙의 학생들까지 받아 명동서숙(明東書塾)을 창립했다. 그때로부터 이 마을 이름도 명동이라고 불리였다. 밝아오는 동이(東夷)라는 뜻이다. 작가 이혜선씨는 "명동은 선각자들의 목적성 있는 구국인재양성 실천에 의해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형성해갔다"고 썼다.
1909년 명동서숙은 이듬해에 사립명동학교로 이름을 고치고 중학부를 증설하였으며 1911년에는 여학부를 만들어 중국 조선인교육사상 첫 여성교육의 시대를 열었다. 당시 학생 수는 중학부에 160명(남학생 114명, 여학생 46명)이었고 소학부 보통과에 121명, 고등과에 159명, 여학부 보통과에 53명, 고등과에 12명으로 무려 500여 명, 조선 국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러시아 연해주에서도 유학을 왔다. 그리고 명동부근의 마을들에는 명동학교의 분교 격인 야학을 설치하여 문맹퇴치와 계몽교육의 장을 마련하였다.
김약연교장은 조선으로부터 사학자 황의돈, 언어학자 장지영 등 지식인들을 교원으로 초빙하여 명동학교는 민족교육기관으로서 국내의 오산학교와 쌍벽을 이룬 애국지사 양성기관으로 성망이 높은 학교로 되었다. 독립운동의 선구자인 이동휘 등도 특강을 하였다. 소학부의 학과목에는 국어, 한문, 산수, 주산, 이과, 작문, 습자, 창가, 체조, 지리, 역사가 있었고 중학부 과목에는 역사, 지지(地誌), 법학, 지문(地文), 박물, 이화, 생리, 수신, 수공, 신한독립사, 위생, 식물, 사범교육학, 농림학, 광물학, 외교통역, 대한문전, 신약전서, 지나어(중국어), 작문, 습자, 산수, 대수, 기하, 창가, 군사 등이 있었다. 교학의 착안점은 반일민족독립의식을 가진 인재양성에 두었다.
1915년 김약연은 간민교육회를 조직하여 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명동학교 졸업생들이 연변 각지의 조선인 교육의 주력으로 되었다. 김약연은 연변에서의 조선인 교육의 개척자이고 만주사변 이전 연변 조선인 교육의 대부였다.
김약연이 기독교를 접하게 된 것은 19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8월 이상설은 용정 장로파 교회의 박무림, 여준 등 예수교신도들과 합의하고 예수교 신도 최병익의 70여 평방미터 되는 사인주택을 사서 교실로 고쳐서 서전서숙을 창립하였다. 그때로부터 이상설, 박무림, 여준 등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김약연은 서전서숙이 문을 닫자 그 학생들을 명동서숙에 받아들인다. 그리고 1909년 신민회 회원이고 서울 상동청년학관 출신 정재면이 명동학교 교원으로 왔다. 김약연은 그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 신앙인이 되어 명동교회를 설립하고 학교에는 성경과를 개설하였다. 그는 기독교의 전도활동을 서방의 문명을 전파하고 애국투쟁을 진행하는 경로라고 인정하여 민족독립을 위해 기독교에 적극 참가할 것을 호소하였다.
1920년 10월 경신년대토벌 당시 일제는 독립군 양성기지인 명동학교를 불 질렀다. 1922년과 1923년 이년 동안의 노력으로 불타버린 폐허 위에 또 학교가 세워졌다. 그러나 이듬해 특대흉년으로 중학부가 문을 닫게 되자 여러 선생들도 떠나갔고 적지 않은 학생들도 용정 각 중학교로 전학을 해갔다. 학교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김약연은 학교경영을 교회에서 맡아하도록 하였다.
1920년 김약연, 구춘선 등은 황병길과 협상하여 1907년에 창건한 교민회와 한민회를 합쳐 간도국민회를 조직하였다. 국민회의 활동장소는 일본영사관이 간섭할 수 없는 용정의 영국더기에 있는 캐나다 제창병원 지하실에 두었다. 제창병원은 천주교에서 꾸린 병원이었다.
3.13반일시위가 실패하자 국민회는 '자유의 종소리' 신문을 발간하고 군자금을 모집하고 명동촌에서 충렬대와 암살대를 조직하고 이 두 조직을 기반으로 국민회군을 창설하고 안무가 총 지휘를 맡았다. 이 부대는 500명으로 발전하여 청산리전투에 참가한다.
김약연의 등에 업혀서 교회와 학교로 다녔다는 이종순옹은 소중한 기억을 우리 앞에 펼쳐보였다.
'김약연목사는 언제나 조용하신 분이었습니다. 천둥이 쳐도 끄떡하지 않을 그런 분이시었습니다. 언제나 한복차림을 정히 하고 넓적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구변과 웅변에 능하셨고 사리가 밝고 인정스러운 분이시었습니다. 내가 어릴 때 부모들을 따라 교회에 나갔는데요, 목사님이 나를 업어주었어요. 목사님은 남을 욕하는 법이란 없었답니다. 그분이 교장으로 계실 때 강의를 하시다가도 누구든지 강의에 집중하지 않으면 회초리로 자기의 종아리를 쳤다고 하데요. 학생을 책망할 대신 자기가 강의를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자책을 했다는 겁니다. 정말 하나님처럼 선량한 분이시였지요.'
독립운동은 저조기에 들어가고 대신 조선공산당의 공산주의 사조가 머리를 쳐들면서 학교에도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교원들이 교편을 잡고 반종교운동을 일으켰다. 1980년대 명동학교 교장으로 있었던 김재현선생의 말을 들어보면 김약연은 자기가 배양한 학생들한테 쫓겨난 셈이었다고 한다. 1924년 조선의 유명한 공산주의자인 김사국이 명동에 체류했고 명동학교 8기 졸업생 송산우도 연해주로부터 명동에 와서 조선공산당 지하활동을 벌렸던 것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반종교투쟁을 일으켰다. 1928년 김약연은 학교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고 학교에서는 교회의 운영권을 박탈하였다. 그리고 학과목에서 성경과를 취소하였다. 학교는 다시 사립학교로 되고 그때로부터 명동학교는 공산주의 혁명가를 양성하는 곳으로 되었다.
김약연은 용정으로 이사하고 이듬해 평양에 가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부터 목사로서 신앙생활에 전념했다. 그는 은진중학교의 이사장으로 추대되어 민족교육에 만년을 빛냈다. 은진중학은 캐나다 천주교 자선교육기관이었다. 일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캐나다 조계지 속에서 은진학교는 1920년대와 1930년대 해마다 국치기념일과 단군절을 기념하였다.
'민족기개를 잃어버리는 것은 나라가 망한 고통보다 더 슬픈 일이다.'
이것이 당시 은진학교 민족교육의 중심사상이었다.
김약연이 용정으로 간 후 생질 윤동주 역시 은진중학으로 진학하여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청년문사로 불리는 송몽규 역시 은진중학을 졸업하였다.
1925년까지 명동학교 졸업생은 무려 천여 명이나 되고 26년의 역사를 가진 은진중학도 983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들 중 대부분이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사업에 나섰다. 이 학교 졸업생 중에서 한민족사에 길이 남을 인물을 꼽는다면 윤동주와 송몽규 외에도 영화인 나운규가 있고 문익환목사가 있고 유명한 공산주의자 김광진도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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