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류연산
백두산 정상에 처음으로 국경비가 세워진것은 1712년,3백여년이 가까워오는 때 그 정계비는 자취를 감추고 지금은 세멘트로 만든 계장(界檣)이 백두산 천지와 두만강,압록강발원지와 그리고 50년대 국계를 정한 이후로 강곬이 바뀐 훈춘현 사타자경내와 단동시 고루자향 경내에 세워졌다.
그러한 국경비를 마주하고 서면 나는 번마다 감회가 새롭다.더구나 백두산 정상에 세워진 국경비를 바라보는 순간 나의 가슴속엔 갈고기같은 의문부호가 고드름처럼 얼어붙는다.
<<나는 누구인가?>>
한글로 <<조선>>이라고 쓴 쪽에 발을 놓아본다.순간 이 땅이 바로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태를 묻은 땅임을 가슴 뭉클하게 느낀다.나의 몸을 흐르는 피는 이 땅에서 흘러온것이다.
나는 다시 한문으로 <<중국>>이라고 쓴 쪽으로 돌아온다.순간 분명 이땅에서 태여나 이 땅의 정기를 마시며 자란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조선땅에 왼발을,중국땅에 오른발을 놓고 두손으로 계장을 짚고 선다.차가운 기운이 세멘트 계장을 통해 손바닥을 선뜩하니 쏜다.겨우 한뼘 두께의 이 차거운 계장이 백두산을,그리고 백두산 품에 안긴 하나의 천지를 둘로 나눈 장본인이란다.그 둘로 된 천지물이 두만강이 되여 동으로 흐르고 압록강이 되여 서로 흐르면서 산과 들을 중국과 조선으로 금긋는다.그리고 이 계장이 날카로운 무형의 칼이 되어 이 마음을 두쪽으로 썩뚝 가른다.
백두산도 둘,천지도 둘,나도 둘이란다.내 마음도 계장의 양면처럼 이중적이란다.
나는 조심스럽게 두쪽이 된 마음을 안고 두만강,압록강을 따라가며 두개의 시선으로 한줄기 강물을 바라본다.
물결을 타고 흐르는 떼목군과 강가에 앉아 빨래 방치를 토닥이는 조선의 녀인을 바라보면서 동행이 된 한국인들은 목메여 흐느끼기도 하고 갈린 소리로 인사수작도 한다.나는 부지런히 초점을 맞추어 샤타를 누르기에 열심한다.전에 없었던 남북간의 화기로운 대화의 장면을 화면에 담고 싶은 욕심이였다.그러나 나는 그들처럼 그러한 감동은 없었다.
하기야 리별의 눈물을 할아버지께서 다 흘리셨고 또 애향의 한숨을 아버지께서 다 거두어가셨다.
할아버지한테 두만강은 눈물의 강이였다.20세기 10년대 할아버지께서는 강원도 춘천을 떠나 남부녀대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오셨다.부패한 중국 군벌정부의 이민족에 대한 진압,그리고 괴뢰 만주국통치하에서의 망국노의 설음은 그대로 눈물이 되였고 그리고 할아버지의 눈물에 전 강은 오열을 터뜨렸다.
아버지한테 두만강은 애환의 강이였다.1984년 화룡시 서성진 북대촌에서 74세로 생을 다하실 때까지 아버지께서는 고향(강원도 춘성군 남 후동리)에 대한 그리움으로 노상 한숨을 지으셨다.국경 보다 군사분계선때문에 고향에 갈수 없었던 아버지의 한에 맺혀 두만강은 흐느꼈다.
나한테 두만강,압록강은 혈연의 강이다.이주민 3세인 나는 이 땅에 잠드신 아버지의 아들이고 할아버지의 손자이다.하지만 이 시간 현재 강원도 춘천시 남면 후동리 앞산에 잠드신 증조 할아버지의 증손이기도 하다.이 몸의 피(血)의 뿌리는 한반도임은 분명하다.하지만 그 피를 이 몸의 혈관속을 달리도록 밀어주는 기(氣)는 중국의 것이다.역사의 낭만에 들뜬 량반들은 잠꼬대처럼 멀리 고구려,발해의 기를 운운하기도 한다.하지만 나는 중국땅에 태를 묻고 중국땅의 주인으로 성장했다.이것이 바로 꿈이 아닌 현실이다.
언젠가 정판룡교수는 중국조선족을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시집을 온 며느리에 비유했다.그렇다면 강건너 한반도는 <<친정>>일 것이고 중국은 <<시집>>일것이다.<<친정>>을 <<친정집>>이라기도 하지만 그것은 본가(本家)라는 뜻으로 부모의 품을 떠난 딸의 현실적인 집이 아니라는 말도 된다.
림연이라고 하는 녀인이 <<친정집과 시집>>(<<흑룡강신문>>2000년 9월 23일)이라는 글에서 <<시집에서 지친 심신을 끌고 친정에 가면 친정에서는 이러저러한 말로 위안을 한다음 <집>으로 돌아가라고 타이른다.---결혼한 그 시각부터 나에게 집이라고는 <시집>밖에 없었다.>>라고 <<출가지외인(出家之外人)>>의 서러움을 그렸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 여성들은 <<백두산이 높다이 시아바이처럼 높으랴/ 고추후추 맵다이 시어머이처럼 매우랴>>고 시집살이 고달픔을 타령에 담아 불러왔다.그것처럼 중국조선족의 백년 력사도 돌이키면 자욱자욱 피눈물이 고여있다.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고 중국 조선족으로 되면서 그 어떤 나라에 거주하는 조선족에 비해 우리는 <<시집>>을 잘 만난 셈이라 하겠다.소수민족에 대한 강제적인 동화정책을 실시한 구쏘련을 <<사나운 시어머니>>에 비한다면 소수민족에 대한 우대정책을 실시해온 중국은 <<무던한 시어머니>>라 하겠다.
무던한 <<시집>>의 대표자였던 모택동은 <<한족(漢族)과 소수민족의 관계를 꼭 잘 처리해야 한다.이 문제의 관건은 대한족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라고 한 동시에 <<지방민족주의가 존재하는 소수민족들은 응당 지방민족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말로 <<시집>>과 <<며느리>>의 처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른바 <<소수민족에 대한 우대정책>>의 실질은 자연동화정책이다.정치상 평등한 지위를 가진 민족간에 장기적으로 밀접한 경제와 문화교류를 하는 과정에서 상호 락후상태를 보완하고 선진적 민족의 영향을 받아 평화적으로 <<민족융합>>이 이루어지는것을 말한다.
오늘의 중화민족은 력사상 90개 소수민족이 선진적인 한족에 동화되여 이루어진 민족이라고 한다.현재 중국땅에 실재하는 55개 소수민족도 장차 한족에 융합될것이다.이는 력사의 필연추세이다.벌써 많은 소수민족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이래 반세기 동안에 상당한 수준으로 한족에 동화되여있다.그러한 민족들은 대개 인수가 적고 문자가 없다.그리고 해외에 독립된 자기의 민족국가가 없다.말하자면 <<시집>>만 있고 <<친정>>은 없는 셈이다.
다행이 중국 조선족은 두만강,압록강 건너에 <<친정>>이 있다.우리는 일명 고국 혹은 모국이라고 한다.
1952년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성립되기 전까지 조선족들은 푸른 뚜껑의 <<림시거류민증>>을 가진 조선인으로 북한과 문화권을 같이 했다.당시 조선족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는 북한의 것이였고 그리고 신문이나 언론매체에서 조국이라고 불렀다.연변조선족자치주가 성립되면서 림시거류민제도가 페지되고 조선인이 아닌 중국 조선족으로 되였다.그래도 한동안 북한의 문화영향을 떨쳐 버릴수가 없었다.50년대와 60년대 초반 국경연안에 사는 조선족들은 강건너 조선에 가서 학교를 다니기도 했고 중국에서 발행된 조선문 도서들도 대부분은 북한에서 출판한것들이였다.
문화대혁명 전반기에 중조관계에 잠시 구름이 끼면서 조선족들의 삶도 험악해졌다.강청이 <<소수민족의 말은 까마귀가 우는 소리와 같다.>>고 비난하면서 한어를 강요하는 바람에 조선족의 문화와 교육은 많은 타격을 받았다.연변은 물론 잡거지구의 많은 사람들이 자식들을 조선족학교에서 한족학교에로 전학을 시키는 붐이 일기도 했다.
집안시 태왕향조선족소학교는 원래 학생이 백명도 훨씬 넘는 학교였다고 한다.그러나 지금은 학생 20명에 선생 여섯을 가진 복식교육을 하는 학교로 되였다.그나마도 중한수교가 이루어지고 우리 말과 글의 실용성과 위상이 높아지면서 조선족학생 수가 대폭 불었기때문이라고 한다.전 향에 사는 70여호 조선족들은 아이들을 예전에는 한족학교에 보냈었다는것이다.
9월 8일부터 15일까지 나는 일행과 동무했다.단동에서부터 장백까지 2천리 압록강 굽이굽이 물결을 거슬러 봉고차는 내처 흥분을 실고 갔다.단동,환인,집안,임강,장백 등지에서 신의주,만포,중강,혜산 등 강 건너 조선을 바라보면서 손을 넣으면 파랗게 물이 들건만 같이 맑은 압록강에 나는 때묻은 생각을 깨끗이 헹구어 빨았다.
남북정상회담은 평화적 통일의 서막을 열어놓았고 중국 조선족사회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장래의 통일된 고국은 어차피 중국대륙상대투입으로 후속발전을 기할 수밖에 없다.세계의 최대 시장이 바로 중국이기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번 답사에서 드디여 고드름처럼 얼어붙었던 갈고리같은 의문보호가 나의 가슴에서 녹아내렸다.
<<나는 고국의 피와 조국의 기로 이루어진 중국 조선족이다.기가 흐르지 않으면 피가 흐를수 없고 피가 흐르지 않으면 육체의 기가 사라지듯이 조국도 고국도 버릴수 없는 이중성격의 중국 공민이다.>>
이 글을 맺는 순간 나는 <<사돈이 한 호족이다.>>라는 말을 머리에 떠올린다.정판룡교수의 비유처럼 중국 조선족이 며느리라고 한다면 나는 시집에는 참한 며느리로,친정에는 착한 딸로 거듭 태여나 조국(중국)과 고국(한반도) 이 두 <<사돈>>간의 우의를 돈독히 해야 할 의무감을 새롭게 가슴 깊이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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