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빈만족자치현 상협하진 오룡산성 일별

윤재윤기자


신빈현에서 남잡목쪽으로 나오다보면 상협하라는 자그마한 진을 지난다. 이곳에서 다시 신빈쪽으로 거슬러 조금만 가면 북쪽으로 오룡촌으로 들어가는 아스팔트길이 나지고 그옆으로 작은 개울이 흐르는데 이것이 오룡하라고 했다. 길을 따라 얼마 안가니 길가에 세워진 돌비석 하나가 눈에 띈다. 오룡촌에서 약 4리 떨어진 이 돌비석에는 “시급문화재보호단위 오룡산성(고구려)”이라고 새겨져있다. 무순시인민정부에서 1987년 4월에 세운것이다. 비석 바로 동쪽으로 보이는 산이 오룡산성. 당지에서는 이 오룡산성을 “고려성자”라고도 부르며 사료에서는 “남소성(南蘇城)”이라는 기록도 보인다.

산성 남쪽에 남아있는 성벽의 모습. 오른쪽이 바깥벽이다.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는 약 1메터, 길이는 약 20여메터.

필자가 이 산성을 찾은것은 지난 3월 25일,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전날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그칠줄 모르고 내려 산야가 온통 눈세계를 이루고있었다. 4월을 눈앞에 두고 나무가지들이 움을 틔우는 이때 눈이라니 참 계절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였다. 이런 모진 날에도 바쁜 시간을 쪼개여 필자를 배동해 길잡이로 자청한 최철씨와 박경상씨가 그저 고마울뿐이였다. 최철씨의 주선으로 상협하진에서 과외민정조리로 일하고있다는 조영강씨가 불편한 다리를 끌고 우리를 산성까지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우리가 눈을 맞으며 길가 비석이 있는 곳에서 사진 한컷을 찍고 논판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약 300메터 산기슭까지 가니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이 나지는데 이곳이 바로 오룡산성 서문이라고 조영강씨가 설명했다.

이곳을 살펴보니 왼쪽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맨손으로는 올라갈수 없을 정도의 절벽이고 오른쪽으로는 가파른 비탈을 바깥으로 그리며 등성이가 남으로 이어지고있었다. 서문 골짜기를 들어서니 군데군데 돌로 쌓았던 흔적이 보이는데 그것은 산물이 밑으로 빠져나갈수 있고 방어도 할수 있게 축조된 돌벽이였다. 이곳에서 약 100여메터를 더 들어가니 동쪽을 향해 활짝 펼친 새의 날개처럼 물매가 작은 비탈이 량쪽으로 펴지며 개활지가 나타났다. 이곳은 온통 옥수수밭이여서 그런지 탁 트인감을 주었고 사방으로 성벽이 지나갔을 등성이를 가늠할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바라보였다.

산성중간쯤 동쪽 비탈 중턱에서 한 청년이 검불을 불사르고있는것이 보였다. 이곳을 둘러보니 비탈진 옥수수밭 군데군데 지름이 60-70센치이상쯤 되여보이는 나무그루터기들이 눈속에서 유난히 검게 부각되여보였는데 그것은 모두 수백년이상 묵은 배나무들이였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자기네 밭이며 봄파종을 위해 준비하는것이라고 손요해라는 그 청년이 설명했다. 그는 자기네가 살던 집도 원래는 이 산속에 있었는데 후에 이사를 갔다고 알려주었다. 그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바로 우리가 올라왔던 서문쪽 북측 비탈이였다. 그는 어릴적부터 아버지로부터 고구려산성에 대한 여러가지 전설들을 들어왔다며 여기서 어릴적에 수십개의 동전도 파낸적 있다고 했다. 어느 시기의것인지는 자기도 모른다고 했지만 아마 후금시기의것으로 추정된다.
　

오룡산성서쪽 길가에 세워진 산성비석. 무순시정부에서 1987년에 세웠다.
　

그 청년이 일하던 곳에서 되돌아 조금 아래쪽에는 옛 연자돌 하나가 눈의 띄였다. 둘레 언저리가 떨어져나가고 오래 사용했던지 얇아진 겉모습은 언뜻 보기에도 오랜 력사의 흔적이 묻어났다. 이 연자돌도 원래는 자기네 집근처에 있는것을 후에 무슨 원인인지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했다. 원래 이곳에는 돌절구도 두개 있었다는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청년이 일하던 곳에서 동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비탈에 널직한 키처럼 움푹 파인 자리가 있는데 면적이 근 100평방메터는 되여보였다. 자료의 기록으로 보아 이곳이 못자리가 아닌가 추정되였다. 이 부근에 “고려정”이라고 하는 옛우물이 하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수 없다. 20여년전까지만 해도 이 우물은 거의 원모습그대로 살아있었고 사시장철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약간 후미진 동남쪽을 바라고 산성을 살펴보기로 했다. 눈이 쌓여서 길이 미끄러운지라 다리가 불편한 조영강씨와 최철씨는 그곳에 남겨두고 필자와 경상씨만 올라가기로 했다. 길을 잘못 선택했는지 빤히 보이는 산등성이를 올라가는데 꽤 품이 들었다. 군데군데 옛 살림집터였음직한 자그마한 평지가 나타나고 돌쪼각들이 나뒹굴고있었다. 길(사실 길은 없고 비교적 가파른 비탈이지만)은 쌓인 눈때문에 미끄러웠지만 다행히 나무들이 많아 의지하면서 올라갈수 있었다. 등성이에 올라서니 눈에 쌓였지만 발아래 성벽자리가 제법 선명하게 드러나있었고 그 성벽터는 량쪽으로 죽 이어지고있었다. 우리가 올라온 곳에서 동쪽으로 약간 솟아오른 무덤처럼 보이는 곳이 한곳 있는데 이곳에서 동남켠이 훤히 내려다보이니 아마도 초소나 전망대가 설치되여있었지 않았나싶다. 이런 전망대터는 산성북쪽과 동쪽에서도 보였다.

우리는 성벽터를 따라 서쪽으로 한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군데군데 성벽돌이 나뒹구는것이 보였고 어떤 곳에는 쌓여진 성벽밑둥이 제법 길게 죽 이어지고있었다. 쌓인 눈때문에 돌의 모양은 한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한쪽 면이 네모난 쐐기돌들이 심심찮게 눈밖에 드러나있어서 고구려식 성벽을 실감케 했다. 성벽이 당시에는 꼭대기의 너비만도 5메터가 넘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도 거의 없어지고 남은 터의 너비가 승용차 두어대는 지나다닐만큼 널직한 등성이가 이어지고있었다.

눈이 제법 많이 와 사방은 온통 은색으로 뒤덮여있었다. 눈은 계속 내리고있었으나 기분만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제법 푸근한 날씨에 바지가랭이는 푹 젖었지만 먼지가 없고 공기가 신선해서 좋았다. 산속이 아니면, 눈이 내리지 않으면 전혀 느껴볼수 없는, 도시에서는 상상으로나마 절대 느껴볼수 없는 그런 기분이였다. 옆에서 함께 걷는 경상씨는 이곳저곳 둘러보며 감탄사를 련발했다. 카메라셔터도 연방 눌러댔다. 미술가의 감성으로 느끼여서 그럴가. 아니, 하얀 눈세계속의 산, 눈꽃으로 단장을 한 나무들, 눈속으로 멀리 내려다보이는 눈덮인 마을과 논밭과 신작로의 풍경은 미술에는 문외한인 필자가 보아도 그자체가 빠질데 없는 한폭의 풍경화였다. 아니, 미술가의 화필로는 그려내기 어려운 진풍경이였다.

남쪽 성벽근처에 아름드리 고목 한그루가 눈에 뜨인다. 대충 눈짐작으로도 밑둥의 지름이 약 1메터는 좋이 되여보였다. 저 고목이 고구려시기는 겪어보지 못했을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후 수백년의 력사는 지켜보았으리라. 그 나무 량켠으로도 깊은 년륜이 느껴지는 그런 고목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였다. 조금 더 나가니 남문터였음직한 낮게 패인 곳이 보였다. 이곳으로는 바깥쪽으로도 비탈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아보였다. 고구려군사들이 말을 몰아 전장으로 달려나가고 개선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듯 희미하게 그려진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더 가서 원을 그리며 북쪽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에도 초소 혹은 전망대였음직한 둔덕이 성밖으로 약간 돋아나간 흔적이 보였다. 이곳 역시 성밖쪽으로 환히 내려다보이는 전망좋은 곳이였다. 이곳에서 북쪽을 향해 안으로 약간 들어오면 꽤 널직한 평지가 나타나는데 이곳 성벽쪽에 건물터가 한곳 있었다고 한다. 국내 학자들에 의하면 이곳이 원래 제를 지내던 제당터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이 유력하게 제기되고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서문쪽으로 내려와 다시 북쪽 성벽터를 둘러보았는데 이곳 역시 우리가 이때껏 돌아본 성벽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룡산성은 성벽 총길이가 2,100여메터이며 서쪽 입구에서 동쪽 산성까지 약 800메터길이에 남북 약 400메터너비로 동쪽이 약간 높고 서쪽이 낮은 형국이다.

오룡산성은 주변의 험산과 자연지세로 하여 쉽게 공격하기 어려웠던 고구려산성이다. 오룡산 남문에서 조금 더 나가면 관문산이라는 험악한 산에 이르는데 이곳에서 침범하는 적을 직접 공격할수 있어 전연부대진지로 삼지 않았을가싶다. 이곳에서 다시 남쪽으로 더 나가면 요령자라고 하는 강을 지나는데 이곳이 옛날에는 대규모 군부대가 이동하는데 필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였고 요령자산우에는 역시 고구려시기에 축조한 자카산성이 있어 오룡산을 철통같이 지켜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길에 관문산과 자카산성을 가보지 못한것이 못내 유감이였다.

자료에 따르면 오룡산성은 고구려중후기때 축조된 산성이며 고구려가 멸망한후에도 여러 조대를 거쳐 녀진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사용해왔다고 전한다.

산성을 거의 다 둘러보고나니 점심때가 훨씬 지나있었다. 눈은 그때까지도 멈출념을 하지 않고 계속 내렸다. 청명이 눈앞인데 무슨 눈이 그렇게 많이 내릴가. 그러나 기분은 더없이 상쾌했다. 비석 있는 곳까지 내려와 뒤를 되돌아보니 산성은 여느 야산과 별반 다를바 없이 눈속에서 조용히 누워있었고 세월의 풍상에 씻겨 희미해져가는 성터의 흔적도 말없이 조용히 눈속에 자취를 감추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