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탄가사와 애정가사

서론

내방가사는 남성중심의 봉건적 체제를 유지하기에 적합하도록 마련된 男尊女卑觀에 짓눌린 여성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현실과 이상적인 정서를 표출할 수 있는 친숙한 도구였다. 따라서 여성들의 삶의 모습을 많이 반영하여 주로 계녀가류 가사, 자탄의 가사, 풍유의 가사, 애정 가사가 많이 나타나게 되는데 여기서는 자탄의 가사와 애정가사만 다루어 살펴보도록 하자.

본론

1. 자탄가사

① 시집살이에 대한 탄식

조선시대는 결혼의 의미를 종족의 번성과 노동력의 보충에 비중을 두던 때이므로 시집살이는 여성에게 있어서 고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들은 시집살이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가지 어려움 고통을 토로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시집살이에 대한 탄식인 것이다. 그러한 작품으로는 <여자탄식가>가 있다.

인도가위 차놋코 즁침셰침 골나내야

시체보고 척슈보아 아쥬기 어렵더라

......중략..........

가는허리 부러지고 열손가락 파여서

청염고 죠심야 굴라고 건만은

치는 고사고 씬공덕 바이업

<여자탄식가>(규1,pp.109-110)

누대 종가의 종부가 되어 허다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작자의 고통이 잘 드러나 있다. 밤낮없이 이어지는 육체노동은 시집살이의 정신적 고통에 어려움을 더한다. 봉제사며 접빈객은 물론이요, 모시, 삼베, 명주를 짜야하고 게다가 염색하기도 어렵기만하다. 조석끼니며 술빚기, 그리고 사철의복을 지어내야 하니 그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여성은 하고 많은 세월에 이 많은 일들을 어이할꼬 하고 한탄하며 자신이 갇혀 있는 규방이 지옥같다고 표현한다. 자신의 가는 허리가 부러지고, 열 손가락이 다 파일 만큼 고된 일을 견뎌내고 있건만 남편은 치하의 말은커녕 조금만 잘못해도 된소리를 지른다. 그래도 여자이기 때문에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니 아니 원통하냐고 한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② 무교육에 대한 탄식

조선시대에는 남자를 교육시키는 기관으로 서당, 향교, 성균관 등이 있었다. 그러나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은 하나도 없었다. 조선조는 전통적 유학사상으로 여성들이 학문을 하는 것을 부도에 어긋나는 일이라 생각하고 여성은 가르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따라서 교육에서 소외된 규방의 부녀자들은 한글을 깨치고 기초가 닦이면 규방가사를 창작하여 여자의 울분을 발산했다. 육아, 침선, 방적, 봉제사 등의 가정생활에 필요한 부덕 교육에만 그친 여성에 대한 제한적 교육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한 작품으로 <청양산 유람가>가 있다.

헛부다 여신이여 여자됨이 극분하다

이처럼 좋은풍중 표현못할 이네심정

글한귀를 못을프니 살앗다고 할것이랴

천비같은 여자몸이 못배움이 자탄일세

<청양산 유람가>(규1,p575)

십여 명의 부인네들이 몇 달을 벼른 끝에 청양산 구경을 가게 되었다. 부인네들은 처음 보는 절 구경도 하고 약수터에서 찬 약숫물도 마시면서 좋은 풍경을 즐긴다. 좋은 풍경 때문에 어제는 길던 해가 갑자기 짧아진 듯한 느낌을 마저 갖는다. 그래서 그렇게 좋은 풍경을 글로 남기고 싶으나 여자이기 때문에 배운 것이 없어서 한 줄 글로 남기지 못하는 것을 탄식한다.

③ 남존여비에 대한 비판의 탄식

조선시대 여성들은 국가가 법률로 정해준 예속적 생활을 그들의 숙명으로 간주하고 종속생활을 해왔다. 그렇지만 차차 시간이 흐르자 여성들에게도 남존여비를 비판하는 의식이 싹트게 되었고, 자신들도 인간이라는 자각을 함과 동시에 하나의 인격을 가진 독립체라는 각성을 하게 된다. 그러한 작품으로 <소지라>가 있다.

쳔지간 만물즁의 유인니 취귀하믄

오륜을 겸힛시니 공졍쥬 원도들아

가션할 건도난 생남여 승죵기

마련와 출가외인 마련니 가련고

부모술 할제 남녀가 유별할가

....중략....

남녀를 키우실젹 츌기 일반니라

<소지라>(규1,p.133)

이 작품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귀한 존재이고 부모님이 자식을 키우실 때 남녀 구별없이 자애로써 키우시는데 남자는 부모를 봉양할 수 있지만 여자는 부모와 헤어져 출가외인이 되니 가련한 일이라고 한탄하고 있다. 그리고 옛법이 원수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남존여비는 하늘의 이치가 아니라 다만 잘못된 옛법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④ 조혼과 개가금지에 대한 탄식

조선시대에는 여성의 가장 높은 미덕으로 정절을 지키는 것으로 삼았다. 이것은 위정자들이 여성의 정절을 강조하면서부터 시작되어 시대가 흐르면서 명분론이 강해지고 이념이 경직된 결과 개가를 국법으로 엄단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때는 조혼시대여서 십대의 애잔한 청상과부와 그나마 혼례만 올려놓은 마당과부도 생겨 더욱 애처로워보였다. 일시에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된 부녀자들은 수절이란 유교적 세계관의 굴레 속에서 평생을 그늘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따라서 규방을 지키면서 고독 속에 살아야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작품으로는 <청상과부가>가 있다.

천지지간 만물중에 무상할손 이내사정

못할래라 못할래라 공방살림 못할래라

얼것으나 엇으나 부부박에 또잇는가

경우직녀 성이라도 둘이서로 마주섯고

...중략....

보고지고 보고지고 임의얼굴 보고지고

듣고지고 듣고지고 임의 소리 듯고지고

원수로다 원수로다 천하사람 많건마는

아니죽고 살라해도 임생각이 절로난다

...중략....

소식한번 못전하네 어이그리 무정하냐

죽을목숨 설다한들 나와같이 설을소냐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께 비나이다

인제죽어 고혼되어 만나보기 하옵소서

<청춘과부가>(규1,pp.118~121)

이 작품은 청상과부가 된 슬픔을 절절이 풀어놓고 있다. 천지간의 온갖 만물 가운데 무상한 것이 자신의 처지인데 독수공방은 인간으로서 차마 할 수가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견우성과 직녀성도 둘이 서로 마주 서 있고 용천검과 태아검도 서로 짝을 이루며 날짐승이나 길가의 벌레도 다 짝이 있는데 전생이나 차생에 무슨 죄가 많아 검은 머리 백발되도록 백년해로하자 했던 말 잘하고, 인물 좋고, 활 잘 쏘고, 키도 큰 자신의 낭군을 청산에 초혼이 되도록 했냐고 조물주와 귀신을 원망하며 탄식하고 있다.

2. 애정가사 - <금루사>를 중심으로

남녀의 애정은 인류의 보편적 관심사로 예부터 지금까지 다루어지고 있는 문학적 주제이다. 가사에서 애정을 주제로 한 애정가사는 조선후기 특히 19세기에 본격적으로 향유된다. 애정가사에서는 남녀간의 상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사랑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사랑의 고통까지 다루고 있어 이성간의 사랑이 갖고 있는 다양한 국면을 보여준다. 그러한 애정가사로 <금루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18세기 향촌사족 민우룡이 창작한 <금루사>는 유가에서 금기시되던 남녀간의 사랑의 감정을 진솔하고도 과감하게 토로하고 있는 작품이다. 특히 <금루사>에서는 감정의 직설적인 토로와 애정의 일방적 요구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님에 대한 절실한 감정이 아무런 순화를 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것이다. 즉, 사랑에 대한 대담한 묘사, 상대에 대한 애정과 원망이 걸러지지 않고 고스란히 토로된다. 이는 기존의 사대부가사에서 전혀 볼 수 없는 면모로 전대의 사대부가사가 지닌 절제된 미감에서 완전히 일탈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적 화자의 사랑의 감정은 상대의 반응에 상관없이 시종일관 일방적으로 펼쳐진다.

들리후고 合歡夢을 일울적의

羅衫을 후려잡고 細語로 온 말

靑山이 不老고 綠水 l 長存 이라

前生 此生 굿은 연분 百年으로 긔약고

後生에 갈지라도 나지 마오리라

너느 주거 弄玉이오 나는 주거 字譜이라

남기되면 連理枝오 고기 되면 比自魚ㅣ라

위의 인용은 시적 화자가 자신의 님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부용장을 드리우고 사랑하는 님과 밀어를 나누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님의 얇은 비단 옷을 잡고 굳은 사랑의 맹세를 속삭이는 다정한 말소리가 귀에 들릴 듯 자세하게 표현되고 있다. 시적화자는 불변을 상징하는 청산과 녹수를 이끌어와 자신들의 사랑이 100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은밀한 곳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사랑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선명히 형상화하는, 애정에 대한 이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은 전대의 사대부가사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적 화자의 사랑은 남의 의사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일방적인 사랑이라는 데서 갈등의 소지를 가지고 있다. 결국 님이 자신의 사랑을 저버리자 시적화자는 님에게 노골적인 원망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정작 님이 왜 자신을 배신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이 오로지 한탄과 원망의 감정만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시적화자는 님을 원망하면서도 님에 대한 절절한 사랑은 거두어질 줄을 모른다. 따라서 님을 잊지 못해 사랑으로 애간장을 태우는 마음을 ‘가슴에 불이 난다’고 표현함으로써 님으로 인한 마음의 괴로움을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어떠한 순화없이 직설적으로 토로한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애정의 갈등은 시적 화자에 의해 해결이 시도되게 되는데 그 시도가 시적화가가 님에게 돌아올 것을 종용하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어 전시대의 님을 그리는 작품과 전혀 다른 해결 방식을 보인다. <금루사>의 해결방식은 이별한 님에게 자신의 변함없는 애정을 간절히 호소해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위협과 같은 말로 님에게 돌아올 것을 요구한다. 시적 화자가 님에게 애타는 사랑을 호소하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비웃으며, 절절한 사랑을 전하는 대신 상제에게 님의 훼절을 고했을 때 그 죄가 무거울 것이라는 말로 당당하게 재결합을 요구하기에 사랑의 감정이 일방적으로 나타났듯 해결 방식 또한 일방적으로 나타난다.

결론

지금까지 여성의 삶을 많이 반영하고 있는 내방가사 중 자탄의 가사와 애정가사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자탄류의 규방가사들은 조선조 가부장제 사회의 남존여비적 질서 체제하에서 억압받고 속박받던 여성들의 불만이 토로된 작품들이며, 조선시대 여성들의 불만과 여성의 자아인식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자탄류는 주로 시집살이에서의 탄식, 무교육에 대한 탄식, 남존여비 비판의 탄식, 조혼과 개가금지에 대한 탄식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탄류의 가사에서 우리는 조선시대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알 수 있다. 또 애정가사는 남녀간의 사랑의 감정을 진솔하고도 과감하게 토로하는 작품이 많은데, 그 중 <금루사>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금루사>는 특히 전대의 사대부 가사가 보여주었던 점에서 탈피하여 님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여 사대부 가사의 주제를 넓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