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무척 지루했고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 영화였다.
시대적 배경을 달리한 곳에 자리한 세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불안하고 위험해 보였다.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통해 커닝햄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가...
세 주인공 중 한사람인 로라 브라운(줄리언 무어분)의 우울함과 슬픔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들 눈에는 평안하고 행복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나역시 알기에..)
울프의 소설속 내용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점은 도무지 모를일이었다.
그녀의 착하고 어른스러운 아들인 리차드만 상처입고 불행한 삶을 살다가 자살로써
생을 마치게 만들었다. 결국, 그녀는 가족들에게 파멸을 안겨다준 장본인에 다름아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인생이 견딜수 없었다면... 그녀의 표현대로 그러한 행동이 숙명
이라고 이름 한다면 잘잘못을 따지는 일 또한, 우스운 일인지도 모른다.
못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영화였지만, 그녀들의 삶과 인생을 조금은 이해할수도
있을것같다. 세여인 모두 동성애를 지니고 있지만 돌이켜보면 그 자체가 나쁜것은
아닌것같다. 커닝햄의 소설을 봐야 좀 더 논리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a
그러나, 인생은 논리적이지 않고 절대 쉽지않다. 중요한것은 내가 지금이나마 그녀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아주 조금이라도 말이다..
듀나씨는 다음과 같은 평을....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디 아워스]는 영문학 전공 대학생이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논문 대신 썼을 법한
작품이다. 그만큼이나 소설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소설의 아이디어나 구성
역시 일종의 문학 평론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대충 어떤 작품이길래? [디 아워스]는 각기 다른 시간대와 공간을 사는 세 여인의 하루를 동시에 이야기
하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버지니아 울프 자신이다.
무대는 1923년의 영국 리치몬드로, 울프는 막 소설 [댈러웨이 부인]의 집필을 시작했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로라 브라운이라는 평범한 가정주부이고 무대는 1949년(영화에서는 51년으로 옮겨졌다)의 로스
앤젤레스이다.
로라는 남편의 생일 케익을 준비하는 동안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조금씩 읽어나간다.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클라리사 본이라는 문학 편집자이고 무대는 20세기 후반(영화에서는 2001년으로 옮겨졌다)의 뉴욕이다. 클라리사는 에이즈로 죽어가는 옛 애인인 리차드를 위해 파티를 준비하는 중이다.
이 세 사람들의 이야기는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커닝햄의 소설을 읽기 전에 [댈러웨이 부인]을 한 번
읽고 버지니아 울프의 인생을 대충 점검해 보면 미스터리는 쉽게 풀린다.
우선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버지니아 울프를 보자. 이 사람은 실제 버지니아 울프라기보다는 [댈러웨이 부인]에 투영된 버지니아 울프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야기의 버지니아 울프가 하는 행동이나 생각 반응은 기본적으로 지금 이 사람이 쓰고 있는 [댈러웨이
부인]의 주제에 봉사한다. 자살, 양성애, 삶의 소중함과 같은 것들 말이다.
커닝햄은 자기가 만든 버지니아 울프를 통해 실제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작가의 작품인 [댈러웨이 부인]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고 하고 있다. 커닝햄의 방식은 아주 세련된 편이지만 기본적으로 옛날 할리우드 예술가 전기 영화와 크게 다를 건 없다.
(“내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 교향곡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외쳤던 할리우드 버전 슈베르트를 기억하시는지?) 한 마디로 작가의 인생을 통해 작품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여러분이 버니지아 울프 전문가라면 이런 식의 이야기는 심하게 거슬릴 수도 있겠다. 보통, 작가란 사람은
자신의 작품에 투영된 것보다 더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 작가 자신이라면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로라 브라운은 독자이다. 로라는
겉보기엔 평온하고 안정된 중산층 주부의 삶을 누리고 있지만 그 갑갑한 세계에 질식해 죽기 직전이다.
로라는 버지니아 울프가 [나 만의 방]과 같은 책에서 한 번쯤 인용했을 법한 인물이다. 문학적 재능이 없는
주디스 셰익스피어랄까. 커닝햄은 [댈러웨이 부인]을 울프와 로라 사이의 채널링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로라는 독서를 통해 울프의 절망감과 자살 충동, 심지어 성적 정체성의 혼란까지 물려받는다. 심지어 로라는 소설의 한 부분을 자신의 세계 안에서 적극적으로 모방하기도 한다.
이웃 친구인 키티와 충동적인 키스를 할때, 로라는 분명 클라리사와 샐리의 키스 장면을 읽은 뒤였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 작가이고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 독자라면 세 번째 이야기의 뭔가?
세 번째 이야기에서 커닝햄은 자기 나름대로의 [댈러웨이 부인]을 만들어낸다. 일종의 문학적 변주인 셈이다. 만약 여러분이 이 책이 조금이라고 관심 있다면 커닝햄이 어떻게 [댈러웨이 부인]의 요소들을 자기 식으로
개조해 재조립했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클라리사 본은 클라리사 댈러웨이다. 클라리사 본의 애인인 샐리는 [댈러웨이 부인]의 샐리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오히려 댈러웨이 경에 가까운 안정된 배우자다.
클라리사 본의 옛 애인인 리차드는 [댈러웨이 부인]의 피터와 샐리의 모습을 반반씩 가지고 있고 기능적으로는 셉티머스 워렌 스미스의 역할을 하고 있다. 커닝햄은 캐릭터뿐만 아니라 구성과 문체까지 빌려오고 있다.
클라리사 본이 꽃을 사러 나가는 장면과 댈러웨이 부인의 도입부를 비교해보라. 꽤 흥미로운 게임이다.
노골적으로 모델인 한 작품을 지정해놓고 그 작품의 작가, 독자, 극중 인물을 재창조해 조립한다는 것 말이다.
입체파 화법으로 묘사한 문학 비평쯤 된다고 할까. 문제는 이게 영화화되는 과정에 있다. 이런 게임은 문학이라는 도구를 공유하고 있을 때 의미가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을 모방하며 페이지 대부분을 채우는 작품을 어떻게 영상 매체로 옮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댈러웨이 부인]을 어떻게 영화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댈러웨이 부인]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스타일은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한 도구지만, [디 아워스]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스타일은 어떻게 보면 제2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닝햄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모방과 재해석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영화 <디 아워스>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소설보다 더 직설적인 심각함을 물려받는다.
심각함이 늘 우월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영화 <디 아워스>가 소설 [디 아워스]보다 더 심각하고 정직한 건 사실인 듯 하다. 모든 문학적 게임들이 떨어져 나가자, 영화는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 그랬던 것처럼
거의 독자적인 텍스트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여전히 [댈러웨이 부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원전의 의미는 많이 줄었다. 여기서 진짜로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죽음과 자살, 삶의 가치에 대한 보편적인 주제들이다.
그렇다면 영화 <디 아워스>는 어떤 식으로 주제와 소재에 접근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지금까지 찾아낸 가장 그럴싸한 설명은 이 영화를 교향시나 오페라에 비교하는 것이다.
[디 아워스]의 각색은 문학적이라기보다는 음악적이다. 데이빗 헤어의 각색은 비교적 충실하게 원작의 이야기를 따르고 있지만 책과 영화의 감흥은 굉장히 다르다.
어떻게 굉장히 ‘문학적인’ 책의 충실한 각색이 이처럼 극적으로 ‘문학적인’ 느낌을 잃어버릴 수 있을까? 이상한 현상 같지만 설명하기는 쉽다. 버지니아 울프가 정교하게 그려낸 클라리사 댈러웨이의 세계는 순전히
언어로 구성된 건축물이었다.
커닝햄이 1940년대 말이나 1990년대 말의 미국을 그리면서 참조했던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뉴욕이나 로스
앤젤레스가 아니라 울프가 활자들로 그려낸 문학적 조합물들이었다.
이들은 영화가 직접 보여주는 건물들이나 사람들과는 당연히 전혀 닮지 않았다! 원래의 ‘문학적’ 의미를 잃어버린 영화적 요소들은 곧 반쯤 추상적인 세계로 떨어진다.
로라 브라운과 버지니아 울프, 클라리사 본을 둘러싼 고민들은 곧 커다랗게 덩어리가 진 라이트모티브가 된다. 이제 이것은 지적인 영역에서 정서적 영역으로 넘어간다. 분명한 비평적 의미가 담겨 있던 텍스트들이
음악처럼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교활한 편집의 마법 덕택에 세 주인공의 이야기는 하나의 화음을 이루게 된다. 원작에서 세 사람의 이야기는 각 챕터에 의해 분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들은 다른 악기로 연주되는 멜로디처럼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야기와 얽힌다.
‘댈러웨이 부인이 꽃을 사러가는’ 도입부를 영화가 어떻게 처리했는지 한 번 보라. 여기서 필립 글래스의 음악은 상당히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글래스의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결국 취향 문제지만, 영화 <디
아워스>에서 그의 단조롭게 반복되는 음악이 하는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다.
끊임없이 흘러가고 회오리치는 글래스의 음악 속에서 세 사람의 이야기는 거대한 하나의 시간의 흐름 속에 뭉쳐 흐르게 된다. 이야기의 선명성은 사라지지만 세 사람의 친밀감은 그로 인해 더욱 높아지게 된다.
글래스의 조용한 음악 위에 거창한 아리아를 더해주는 건 배우들의 몫이다. 요새 한창 각광받는 세 명의 스타들의 연기가 구체적으로 어떤지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들의 연기가 영화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야 할 듯 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들의 연기 덕택에 전체적인 감정은 더 추상적이 된다. 웃기는 건 그 덕택에 영화가 소설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운 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모순이 아니다. 추상적이라고 언제나 어렵지는 않다. 모든 기초적인 것들은 다 추상적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기본적인 감정들은 대부분 거의 추상적이고 우리가 내용이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이야기들은 사실 교활하게 짜맞추어진 순수 음악의 문학적 변용이다.
한 번 줄리안 무어가 연기하는 로라 브라운이 나오는 장면들을 보라. 로라 브라운은 이 작품에서 가장 설명이 부족한 인물이다. 아마 책을 읽으면서 ‘이 여자가 지금 뭐하는 거야?’라고 궁금해했던 독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건 구체적으로 제시된 개별 주제들이 정연한 논리에 의해 나열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어가 이 캐릭터를 그 사람 특유의 오페라적 장엄함으로 연기하자, 갑자기 이야기는 의미없는 의미를 찾게 된다. 관객들은 여전히 그 감정을 설명할 수 없지만 무어의 연기를 보다보면 그 모양없는 감정에 휩쓸리게 된다.
그렇다고 무어가 그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설명이라고 해준 것일까? 천만에! 구체적인 정보만 따진다면 오히려 영화가 주는 정보는 소설보다 짧다. 무어는 로라 브라운의 감정을 덜 추상적이고 더 설명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더 추상적이고 직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디 아워스>라는 영화 역시 무어의 연기와 맥락을 같이 한다. 아마 우린 이런 것들을 추상적인 친밀성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제공하는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여전히 [댈러웨이 부인]의 독서가 필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댈러웨이 부인]을 읽지 않는다고 해도 영화 자체의 감흥은 그렇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건 니체의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교향시가 특별히 감흥이 떨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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