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 릴리스 (Water Lillies, La Naissance Des Pieuvres, 2007) 드라마, 로맨스, 멜로 | 프랑스 | 85 분
감독 : 셀린 샴마 출연 : 폴린 아쿠아르, 루이즈 블라쉬르 등급 : 해외 NR
파리 외곽의 한적한 시골 동네. 수중 발레부 부장 플로리안느를 향한 15살 마리의 물비린내 나는 첫사랑이 시작된다. 반면 플로리안느는 상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관계를 맺고 있고, 수영부 남학생 프랑스와와 섹스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줄다리기 중이다. 마리의 친구 안느는 프랑스와와 섹스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그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한다. 자자한 소문과 달리 플로리안느가 한번도 섹스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점차 예상치 못했던 상황으로 발전되어 간다.
모든첫경험이 짜릿하거나 혹은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10대의 경험을 분홍빛으로만 혹은 고통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10대를 지난 성인들의 환상일 것이다. 감독은 철저하게 카메라의 높이를 10대 여성들에게 맞추면서 성인들의 관음의 대상에서 그들을 건져내고 그들의 ‘첫경험’에 생생한 사실감을 더한다. 열병과도 같은 사랑을 다루었으면서도 그 공간을 철저하게 수영장의 여자 탈의실에 한정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결코 출입할 수 없는 곳. 지하철 여성 전용칸 같은 곳.
영화는 10대들을 사회의 틀에 가두어 놓으려는 부모세대의 개입을 배제함으로써, 사회가 요구하는 기존 질서와 갈등하며 그 법을 체득해 가는 과정으로서의‘성장’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충동으로 추동되는 현재를 살아가는 10대 여성에 주목한다. 그 과정에서 감독은 동성 애, 미녀와 추녀, 그리고 첫경험에 대한 모든 정형화된 이미지들에 도전한다. 2007 칸느가 인정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대되었으며 이번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에도 포함되었고 셀린 샴마의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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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안 역의 아델 아넬과 흑발의 통통한 여자 역을 맡은 루이즈 블라셰르 모두 왼손잡이다. 두 사람 다 이 영화에서 왼손으로 글을 쓴다. 플로리안의 걸음걸이를 보다가 어느 순간 이 배우가 양손잡이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걸을 때조차도 왼팔을 흔들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천연 꼬꼬댁>의 여배우 카호는 왼손잡이임에도 구분을 할 수가 없다. 걸을 때, 앉을 때, 손을 맞잡을 때, 신발끈을 고쳐 맬 때 모두 왼손을 쓰지 않았다. 아마 양손잡이일 것이다. 이건 영화와는 상관 없는 점이다. 나는 다만 문화의 차이를 얘기하고 싶은 거다. 동양권에서 자라난 왼손잡이 여배우들(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마 왼손을 금기시하는 교육 문화 때문에 대부분 양손을 쓰는 듯싶다(유독 서구 영화에서 왼손잡이 배우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건 상대적으로 동양 영화에서 왼손잡이 배우들이 대부분 오른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 중에선 <버킷 리스트>에서 모건 프리먼이 왼손으로 글 쓰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나는 이 영화가 샬롯 갱스부르의 <귀여운 반항아>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수영장을 볼 때 특히 그러하다. 마리 역할을 맡은 여배우는 십대 중반의 샬롯 갱스부르와 닮았다. 하지만 <워터 릴리스>는 좀 과격하다. 열병과도 같은 사랑을 다루었으면서도 그 공간을 철저하게 여자 탈의실에 한정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결코 출입할 수 없는 곳. 지하철 여성 전용칸 같은 곳. 폐쇄적이면서(심지어 이 학생들의 부모가 영화 내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게이 바 같은 곳.
마리가 너무 어려서 나는 이 여자의 정체성을 모르겠다. 레즈비언일까? 플로리안을 단순히 흠모하는 게 아닐까. 반대로 플로리안은 확실하다. 마리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지만 남자 친구와 데이트도 하고 심지어는 마리 앞에서(혹은 의해) 동정(童貞)을 버리기까지 한다. 플로리안의 방, 마리의 방은 여자 탈의실의 연장이며 남자들을 배제한 여자들만의 공간이다. 플로리안의 행동은 교정되지 않은(위의 왼손잡이 이야기처럼) 자유로운 몸짓으로 읽힌다. 타고난 왼손잡이가 굳이 오른손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금발 미녀 플로리안은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며 자신이 무엇을 원한는지 알고 있고 그것을 관철시킬 능력도 있다(이쁘니까. 그럼, 남자들이 모여들고. 계급으로 따지면 상위 클라스랄까.)
나는 이 영화가 좋다. 소녀 취향이라면 어떤 느낌으로 읽힐지 모르겠는데, <빨강 머리 앤>의 대담한 여고생 버전이라면 그 느낌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영화의 공간과 연기들은 대담하지 않다. 하지만 대담하다. 수용복 차림의 남녀 학생들을 끊임없이 클로즈업하니까(어떤 긴장감을 설정하려는 의도로 읽고 싶다) 그런데 대담하지 않다, 라고 쓴 건 감독의 의도가 교정되지 않는 시선으로 그들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었을 까라는 느낌 때문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작은' 영화를 지향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의 하시구치 료스케 감독의 느낌 같다. 두 소녀가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는 장면, 다리를 꼬고 선풍기 앞에서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는 장면은 아시아 영화의 느낌이 묻어난다. 뭐, 동성애와 이성애로 감정을 양분하지 않고 애정의 온도만을 중시하는 열병도, 말하자면 '놀던 가락'도 좋다.
*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대되었으며, 이번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에도 포함.
* 이 영화의 감독은 나보다 한 살이 어린(80년생) 여자다. 이 감독의 사진을 보고 나서 이 영화를 다시 한 번 보았는데 맥도날드 점원으로 출연한 단역이 왠지 이 감독과 닮았다(안경테와 이마, 눈매가 특히 그렇다) 카메오 출연인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