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이탈리아 정부는 느닷없이 미혼 동성 커플의 권리를 승인하는 법안을 발표했고, 이는 가족의 가치와 종교적 신념의 붕괴를 염려한 이탈리아 사회에 동성애 혐오증을 자극한다. 8년 넘게 함께 지낸 동성 연인인 루카와 구스타프는 이 법에 대한 찬반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참여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조국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동성애 찬반논쟁에 대한 중간점검, 넘어서기 힘든 차이와 다양성을 말하다. '풍기문란, 질병, 반자연적 행동, 순결하게 태어나 더럽게 죽는 것,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도와줘야 할 대상,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소아성장애자와 같은 정신질환자,...' 로마의 거리에서 인터뷰에 응한 10대명의 이탈리아 시민들이 동성애에 대한 의견을 툭툭 내뱉고 지나간다. 마치 언제나 준비해두었던 말처럼 간결하고 막힘없이.
돌려 말하는 법 없이 대놓고 공격적인 이들 동성애 반대자들의 의견은 다큐가 상영되는 내내 정계와 교계를 걸쳐 쏟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정신을 발휘해 이 불편한 진실을 끈질기게 수집하는 기자출신의 두 남자, 쿠스타브와 루카는 마지막까지 “(극우 종교단체가 지어준 명칭)세속주의자, 동성부부 파이팅!”을 외친다.
8년째 사귀고 있는 동성애 커플이 카메라를 들었다는 것 외에는 다소 균형 잡힌, 그리고 선정적이지 않지만 흥미로운 <지난겨울, 갑자기>는 동성애에 대한 웬만한 찬반의견을 한 대 모아 정리해주는 시사다큐에 가깝다. 인간성의 독립을 존중한다는 르네상스 운동의 중심지 이탈리아. 과연 이곳에서 동성애에 대한 담론은 어디까지 진행됐을까?
'가족'과 '사랑'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 물음 이 질문은 지난겨울 갑자기, ‘DICO’라는 법안 통과 여부가 이탈리아 사회 전반의 이슈로 떠오르면서 시작된다. 이 법안의 골자는 합법적 부부, 정상적 가정의 의미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즉, 그동안 배우자의 재산상속 대상과 실질적 보호자에서 제외되던 비합법적 동거인을 합법적 부부로 인정받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혼란을 줄 것이라며 반대, 사제들은 가족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라며 반대한다.
여기서 주인공인 두 남자가 가장 인터뷰하길 꺼렸던 존재는 정치인이 아니라 종교인이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던 교계의 근본정신이 왜 동성애 커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가’ 계속 반문하다가 사람 취급을 못 받고 한 대 맞을 것만 같은 위협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비겁한 정치를 넘어선 종교의 전 인류적 가치와 그들 휴머니즘의 교차점을 찾고자 했으나 도리어 강적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두 남자는 더 이상 이 근본적 질문을 하지 않는다.
B급 부부의 해피엔딩 끝내 'DICO' 동거인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고, 두 남자는 8년간의 연애 끝에 그들만의 명랑한 결혼식을 치르는 장면으로 85분간 진행됐던 논쟁의 막을 내린다. 감독은 법안이 통과되는 것으로 다큐를 아름답게 마무리 짓고 싶어 했으나, 그들의 모국에서는 이 다큐조차 TV로 방영되지 못했다. 그들이 로마의 거리를 헤매며 말하고자 했던 차이와 다양성은 여전히 넘어서기 힘든 산맥이었다.
결국 구스타브와 루카는 비합법적인 B급 부부로 남았지만 이 결말에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특유의 짓궂음으로 카메라 앞에서 장난스런 키스를 서로에게 퍼붓는다. 대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그들이 따라 부른 노랫말이 두 남자의 생각을 대변해 준다.
'필요할 때에는 착한 거짓말을 해요. 내 입술은 입을 다물고, 내 눈은 못 본 척 하겠죠. 잘못을 용서하고 덮어주는 건 쉬워요. 내가 당신을 따라 갈게요'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다만 비합법적 동거인으로 행복하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마이클 무어를 연상케 하는 재기발랄한 진행 지금까지 매우 심각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무거운 주제치고 이들의 다큐는 절대 지루하지 않다.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선정적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거나, 동성커플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하는 등의 비겁함을 보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들의 저널리스트다운 면모는 논점을 전개하는데 매우 탁월했다. 관객을 웃길 줄도 아는 그들의 재기발랄한 진행은 <화씨 911>의 감독 마이클 무어의 작품을 연상케 하며, 영화적 연출이 다큐에 얼마나 적절하게 녹아들 수 있는지 보여준다.
특히 클레이 애니메이션(찰흙으로 빚은 인형의 형태를 조금씩 변형해 한 컷씩 촬영한 애니메이션)의 활용이 돋보인다. 그들이 동성애자로서 겪는 현실의 심각성은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유머적 요소로 승화된다. 그리고 합법적 가족의 기준이 두 남자에게는 얼마나 얼토당토하지 않은지 가볍게 비웃어 준다. 관객은 다큐를 감상하면서 논픽션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다큐는 픽션보다 더 한 현실을 말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