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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 : | jk |
| subject : | [책]4001, 신정아 |
| home : | 없음 |
나는 작가들이 현장에서 생존하는 방법과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 그리고 그것을 잘 포장하는 방법을 주로 가르쳤다. 작가들의 경우 포트폴리오가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해온 작업들을 사진이나 CD로 정리해서 작가의 작업 방향과 작업관을 구체적인 언어로 재정리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현장에 있는 큐레이터로서는 일일이 발로 뛰며 작가를 찾을 수 없기에 포트폴리오를 여러개 만들어 자신의 작업과 맞는 미술관이나 갤러리 여러군데로 자료를 보내라고 권유했다. 그리고 새로운 작업을 진행할 때마다 자료를 업그레이드해서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꾸준히 보내라고 했다. 그러다보면 미술관에서는 한 작가의 작품이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볼수 있고, 자연스럽게 작가와 큐레이터의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297p 그래도 시간은 잘도 흘렀다. 버티다보면 출소하는 날도 올 것이다. 교수가 되고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이 된 것이 바로 1년 전이었지만, 까마득한 옛일로 느껴졌다. 지금은 그저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본능만 남았다. 따뜻한 욕조, 신선한 과일과 야채와 생선. 따끈한 초콜릿 케이크에 올려진 진하고 부드러운 더블 에스프레소 한잔....그것들이 그리운 것은 삶이 원하는 본능이기 때문이었다. 그 모든 것을 즐기며 살았던 과거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지금의 두려움과 고통에 교차되었다. 하지만 적어도 일년 후면 그 기쁨을 다시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렇게 보면 지금의 고통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작은 풍요를 느낄 때도 있었다. 새로 추가된 식단에는 야채샐러드와 돈육 함박 케첩이 있었다. 동그랗게 구운 햄에 케첩을 뿌린 것으로, 주말 내내 나를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했다. 아쉽게도 식사시간에 변호사 접견이 있어서 두어 번 놓치고 난 다음에 돈육 함박 케첩이 금새 메뉴에서 사라져서 나는 저녁 내내 서운해서 울고 싶을 정도가 되기도 했다. 더이상 나는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오로지 먹는 것만 밝히는 동물이 되어 있었다. 취침시간이 되어 누우면 계란 프라이가 떠올랐다. 탕수육까지는 가지도 않았다. 두툼한 만두피에 소를 코딱지만큼 넣어 튀겨낸 동네 중국집의 저질 군만두면 충분했다. 평소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비가 와서 축축한 날이면 그렇게도 소주와 라면 국물 생각이 났다. 일년을 죽어라 먹던 꿀꽈배기와 야채 크래커, 빠다 코코넛이 사라지고 맛동산과 홈런볼이 들어오자 나는 기쁨에 겨워 정신없이 먹어댔다. 심지어 나갈 때가 되어가는데 그제서야 홈런볼이 들어오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홈런볼때문에 안나갈수도 없는데 그토록 아쉬움이 들었으니, 나는 스스로도 엽기적으로 느껴졌다....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한 이곳 생활이 분명 고통만은 아니라는 위로로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390p 그사이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결국 사람이 죽어야만 끝이 나는 곳이 우리나라였다. 얼마나 억울하셨을까. 또 주변에 대해서는 얼마나 미안하셨을까. 나는 그 심정을 너무나 잘 이해할수 있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사람을 한없이 수치스럽게 만들고 명예를 땅바닥까지 떨어뜨리고 보는 것이 언론이요 검찰이었다.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 등을 돌리고 손가락질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전매특허였다. 노 대통령은 그토록 자존심 강하고 화통한 성격에 아마 못견디셨을 것이다. 그렇게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는 온 나라가 대통령을 추모한다고 난리였다. 어쩌면 이렇게도 우리나라는 극과 극인가. 418p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이제 나도 사람들의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들일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나였다. 오랜 시간 겪은 시련 덕분에 나의 이기적인 마음도 많이 바뀌었다. 내가 겪었던 작은 불행이 나중에 더 큰일에 도움이 될 자양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아파하기보다는 감사를 드릴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을 선물로 받았다. 다만 수감 생활 내내 슬픔에 젖은 채로 그 소중한 시간을 보낸 것이 후회스러웠다. 나는 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은 행복한 생각만 하고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세상이 만들어 놓은 신정아의 모습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또 내가 예전의 나로 고스란히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나는 어쨌건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나의 삶을 기대감으로 맞으려 한다. 나는 이 말이 하고 싶었다. 419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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