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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정 제대로 정착하려면… 일회성보다 자립 지원 필요



[쿠키 사회] 7년 전 필리핀에서 문경으로 시집와 3남매를 키우고 있는 로웨나씨(37)는 문경시여성회관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처음엔 낯선 땅에서 모든 것이 힘들었지만 영어를 가르치고 돈도 벌 수 있어 한국 생활이 만족스럽다. 구미 형곡동에서 억척주부로 소문난 판티엥씨(39)는 베트남에서 시집온지 벌써 10년이다. 낮엔 시할머니·시어머니를 수발하고 밤엔 TV전자부품 조립을 한다. 한 달에 40만원 벌어 생활비와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학원비로 보탠다.

김혜순 계명대 교수는 "한국의 다문화는 유럽·미국과 달리 결혼이주여성들로부터 시작되고 있다"면서 "시혜적·복지적 차원에서 도울 게 아니라 다문화 사회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원 프로그램 세분화 필요

여성이민자가정지원센터는 경북에 5곳, 대구에 1곳이 있다. 주로 한글·한국요리·컴퓨터 등 교양 교육과 남편모임 지원을 한다. 여성복지회관, 건강가정지원센터, 종교단체 등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다문화 사회'에 걸맞은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 조현미 경북대 교수는 "천편일률적으로 실시하는 교육을 탈피할 때"라며 "체류기한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어촌에 사는 여성이민자들은 차가 없어 이동이 힘들다. 이 때문에 최근 온라인을 통한 한국어·문화 교육이 각광을 받고 있다. 포스코와 한국디지털대학, 경북도 공동으로 시행하는 '다문화 가정 E-배움 캠페인'이 대표적 사례. 구미에서 시범 시행 중인 이런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센터교육을 이수하면 일자리로 연계되는 시스템도 요구된다. 조자근 경북도 여성가족과 사무관은 "올 상반기 대통령 업무 보고 때 여성결혼이민자를 위한 기술교육과 일자리창출을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확답을 받은 만큼 일자리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족부터 '다문화' 이해해야

여성결혼이민자에게 한국문화에 동화되도록 일방적으로 강요해선 안 된다. 김영화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남편·가족들도 여성결혼이민자 나라의 문화를 이해함으로써,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한국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미여성결혼이민자센터를 3년간 운영한 박신규씨도 "정착 단계에서 남편의 지원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편들도 교육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다. 대구에서 베트남 아내와 사는 김동훈씨(가명·40)는 "아내가 잠옷차림으로 밖을 다니는 것을 보고 화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베트남에선 흔히 있는 일이더라"면서 "요즘 인터넷 검색을 통해 베트남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일방적인 한국 문화 전파는 여성결혼이민자들에게 '복지병'만 안겨줄 수 있다. 한 센터 관계자는 "한국인이 복지병 드는 건 3년 걸리지만, 여성결혼이민자는 3개월이란 말이 있다"면서 "자원봉사자에게 '왜 선물 안 갖고 왔어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자립 지원보다는 일회성 행사로 쌀, 반찬, 옷가지 등을 지원하다보니 일어나는 일이다.

자조(自助) 확산 필요

"최대한 아는 만큼 엠마에게 설명해줘요. 특히 제사 문화 같은 것이 많이 도움된대요."

12년 전 구미로 시집온 조선족 김연옥씨(35)는 일주일에 세 번 필리핀 주부 엠마(24) 집에 간다. 여성가족부의 '양육도우미' 사업으로 보수도 받는다. 보수보다는 자기가 겪었던 어려움을 또 겪는 이주여성을 돕는다는 게 보람된다. "엠마는 17개월된 아기가 있는데, 제가 동화책 읽어주고 그래요. 아플 땐 어떤 약 사야 하는지도 가르쳐 줍니다. 엠마가 수시로 전화해요. 새벽에 전화올 때도 있어요."

김씨처럼 '선배 여성결혼이민자'가 '후배 여성결혼이민자'를 도와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영천의 '경북여성1366'에서 중국어 통역을 하는 조선족 김순옥씨(36)는 한국 생활이 10년째다. "부부싸움으로 오는 중국여성들 통역하는데, 여기에서 상담하고 부부가 화해하면 뿌듯해요." 다행스러운 것은 제도적으로도 여성결혼이민자 네트워크가 조금씩 구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법무부에서는 올해 주요사업으로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여성결혼이민자 지역별 대표를 선정해 지역 거점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하인스 워드'를 길러내야

고령 우곡초등과 봉화 춘양초등은 2년째 교육부 지정 다문화 시범학교다. 그러나 다문화 시범학교에서조차 적절한 교재가 없고 경험도 부족해 우왕좌왕할 때가 많다. 지난해에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만 모아놓고 따로 교육을 하다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는 비판에 중단했다. 교사 연수 프로그램에서조차 '다문화' 주제는 없다.

학교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프랑스의 이민자 소요 사태와 미국에서의 조승희 사건처럼 부적응이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반면 제대로 된 교육은 미국 슈퍼볼 선수 하인스 워드처럼 다문화 가정 자녀를 영웅으로 만들기도 한다.

김혜순 교수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대구·경북에서 특히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역할이 클 수 있다"면서 "다문화 가정 자녀가 잘 적응하고, 일반 학생들도 다문화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교사들부터 교육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영남일보 이재윤·정혜진·이효설기자/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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