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주여성 '취업'이 돌파구
일자리 있어야 안정적 정착 가능 한글ㆍ문화교육 인프라 구축 직장 알선프로그램 등 절실 나주 '미래병원' 간병이 모델
광주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인 나주 남평. 지난 17일 나주들녘에 내리쬐는 햇살은 여름철 집중호우가 물러가고 더위가 한풀 꺾인 때문인 지 초가을의 따스함이 묻어났다.
전원주택이 듬성듬성 들어선 남평 초입에서 승용차로 5분 정도 달리면 이름모를 산자락에는 '미래병원'이라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얼핏보면 치매노인과 알코올 중독, 정신질환자 등이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여느 요양병원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이 곳에는 국제결혼한 외국인 새댁 15명의 보금자리다.
"이제 조금 한국 생활이 적응되고 살맛도 나요.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 우리 가족과 필리핀 친정을 돌봐 줄 수 있어 너무 좋아요."
2002년 나주 농촌 총각에게 시집 온 필리핀 출신의 리유릴린(26)씨. 그의 고향은 필리핀 세부에서 비행기로 2시간을 타고 가야 할 정도로 시골에 자리한 '마칭'이다. 마을에 찾아온 결혼정보업체의 직원이 한국에 시집가면 매월 20만원씩 송금할 수 있다는 말에 선뜻 한국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그가 아들(4)과 딸(2) 2명의 자녀를 낳아 기르는 등 비교적 원만한 결혼생활을 했지만 친정집을 떠나면서 약속한 생활비를 송금하지 못해 늘 마음 한구석이 편치 못했다.
그러던 중 2년 전 나주결혼이민가족지원연대의 소개로 이 병원에 취업하면서 진정한 '나주댁'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는 이 병원에서 간병보조일을 하며 매월 90만원 이상의 봉급을 받고 있다. 이 월급 가운데 10만~30만원 가량을 한 두 달에 한번씩 친정에 보내고 있다. 이 병원에는 리유릴린씨와 같은 시집 경력 6~10년의 외국인 새댁 15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날 이 병원의 휴게실에서 점심시간에 만난 외국인 새댁 15명은 이전에 만났던 외국인들과 달리 밝은 얼굴에 만족한 시집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결혼 8년째 밀바(34)와 건설일용직 남편을 둔 로레나(30), 아들을 둘 둔 조세핀(36)씨 등 필리핀 13명과 중국인 2명 등 15명은 인터뷰 내내 저마다의 스토리를 이야기하면서 함박웃음 속에 때론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취재진도 외국인 신부와 인터뷰 중 이렇게 자신감 있고 환한 얼굴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어떻게 이처럼 만족한 시집생활이 가능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취업해 손수 일해서 번 돈으로 가정을 꾸려가고 친정집에 송금할 수 있다는 점이 그들의 얼굴을 환하게 바꾼 것이다.
"할아버지 왼손으로 저의 어깨를 잡고 다리에 힘을 주세요. 아주 잘하고 있어요."
이 병원 물리치료실에서 필리핀 출신 미즈니아(41)씨가 치료가 끝난 한 치매환자를 병실로 옮기기 위해 휠체어에 태우는 모습이다. 그의 8년차 한국어 실력 덕분인 지 환자와 대화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어 보인다. 더구나 손자가 할아버지를 부축하듯 정성까지 스며 있다.
이 병원 문병억 관리이사는 "외국인 신부들이 성실하고 만족도가 높은 데다 환자들과 사이에 잡음이 없는 것이 큰 장점이다"면서 "조금은 서툰 부분이 오히려 환자들에게 웃음을 줘 병원 분위기도 바꿔지고 있어 이들을 더 채용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인 새댁들이 이 병원의 간병보조인처럼 취직해 만족하는 생활을 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가나 지자체 차원의 외국인 신부에 대한 안정적인 체류와 정착 지원을 위한 지원대책이 전무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전남지역 외국인 신부들이 결혼생활을 하면서 가장 바라는 것은 일자리를 얻는 일이다. 나주미래 병원에서 간병보조인으로 취업해 치매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외국인 신부들.
한국에 시집온 외국인 며느리들이 겪는 가장 어려운 점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다. 특히 향후 원만한 한국생활의 관건은 언어습득의 시간에 달려 있다. 의사소통이 빠르면 빠를수록 한국 적응이 앞당겨진다는 말이다.
또 국제결혼 여성의 초기 1년은 성공적인 한국생활 적응 여부를 결정짓는 시기로 남편과 가족의 정서적 유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 4월 광주북구청이 관내 국제결혼 이민자 713명을 대상으로 '생활하면서 가장 큰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197명(55%)이 의사소통 문제와 문화의 차이를 꼽았다. 또 195명(56%)이 현재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나 단체가 없다고 답해 절반 이상이 가정에서만 외부와 단절된 채 지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외국인 신부들을 위한 체계적인 한국어와 문화 교육기관, 관련 프로그램이 없다. 민간기구에서 한글교육과 문화교육, 정보화교육, 조리교육 등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순천과 나주, 고흥 등 전남지역 결혼여성이민가족지원연대를 비롯한 이주관련단체들이 매주 한 두 차례 최소한의 한글과 문화교육, 상담을 하고 있는 게 전부일 정도다.
전남도가 올해부터 코시안 사회적응을 위한 실태조사에 나서는가 하면 한글교육과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대책을 세워가고 있는 실정이다.
설사 이런 교육인프라가 구축된다 하더라도 이들의 사회진출에 대한 걸림돌은 아주 가까운 데 있다. 한국 남편들이 외부사회와 접촉하게 되면 가출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아내를 외부로 노출시키기를 꺼려한 때문이다.
결혼이주 여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력이다. 자신이 수입을 창출해 일정 부분을 친정집으로 보내는 것이 국제결혼한 목적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목포여성상담센터가 목포ㆍ무안ㆍ영암 거주 외국인 여성가정 100세대를 조사한 결과 남편의 월 평균 수입이 120만원을 넘지 않는 가정이 절반(47%)에 가까웠다. 이는 10명의 남편중 6명이 농어업이나 기능직 등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외국인 신부 자신들이 취업하는 경우도 10명중 2~3명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해 친정집 생활비 송금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신부들이 한국인의 아내로 정착하려면 빠른 시일안에 언어를 습득하고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절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수입은 적더라도 자신들이 취업해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알선해 주는 것이 한국인 '새댁'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인 듯 싶다.
한현묵 기자 hanshim@jnilbo.com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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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불화 원인 대부분 경제력" 홍기술 결혼이민가족지원연대 전남대표
"외국인 신부들이 결혼생활중 가장 바라는 것은 일자리를 찾는 거죠."
결혼이민가족지원연대 홍기술 전남대표는 국제결혼으로 전남지역에 이주한 여성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취업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는 "한국에 시집오는 신부들 대부분의 나라가 모계사회로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의식이 아주 강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며 "막상 한국에 오면 결혼할 당시 친정에 대한 송금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또 지원연대에 찾아오는 상담자 대부분을 분석해 보면 가정불화의 원인으로 경제력을 들 수 있다며 외국인 신부들의 '속마음'을 읽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인 신부들은 다행히도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업종에서도 잘 적응하며 우리의 부족한 노동력을 채워주고 있다며 정부차원의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구직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2~3년 전부터 취업을 알선해 준 대부분의 국제결혼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가정불화를 겪은 여성들도 일자리가 마련되면서 자연히 남편과 시부모와의 갈등도 해소되는 모습을 여러번 경험했다"고 말했다.
외국인 신부들이 직장생활을 하려면 적어도 '언어소통은 가능해야 한다'고 보는 그는 "아직 이들이 한글교육과 문화교육을 받을 만한 인프라 구축이 부족한 형편이다"고 진단했다.
외국인 신부들의 일자리에 대해 그는 영어권 나라 출신이 많은 점을 감안해 이들을 농어촌 학교의 특별활동 강사나 관광가이드로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며 대안을 제시했다.
한현묵 기자 hanshim@jnilb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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