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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위클리조선
subject    전남 곡성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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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

“친구들 놀려도 괜찮아요 영어는 우리가 짱이에요”
“엄마는 어느 나라 사람?” “필리핀요”
“그럼 너는?” “ … ”
곡성 한 어린이집에만 20여명… 조용한 산골에 아이들 웃음꽃


▲ 전남 곡성의 예산 어린이집에서 엄마들과 아이들이 함께 놀고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광렬이, 대철이, 제니네 식구들). (photo 이경호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엄마는 어느 나라 사람이니?”
전라남도 곡성군 읍내리에 사는 일곱 살짜리 소영이에게 물었다. 아빠 품에 안겨선 “필리핀 사람”이라고 수줍게 답한다. “그러면, 아빠는 어느 나라 사람이지?” 아빠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한국 사람”이라고 말했다.
“아, 그렇구나, 그럼 우리 소영이는?”
“……”

갑작스런 질문에 답을 못한다. 옆에 있던 엄마 아니타 가골라다씨가 “소영이는 한국 사람이야, 한국 사람, 그치?” 라고 했다. 아빠 박동규씨도 “그럼, 한국 사람 맞지”라고 맞장구를 쳤다.

아니타 가골라다(41)씨가 박동규(48)씨를 만나 면사포를 쓴 지 햇수로 10년이다. 필리핀에서 한 번, 이곳 곡성에서 한 번, 두 번의 결혼식으로 두 사람은 가정을 이뤘다. 소영이 아래 아들 종민(5)이도 낳았다. 지난 8월 27일 밤에 찾아간 소영이네의 조그만 마루와 안방엔 한글 단어를 배우는 종이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곳곳에 책과 장난감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세월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 “이게 대체 무슨 맛이냐”며 뱉었던 자장면을, 아니타 가골라다씨는 이제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러닝셔츠 차림이다가 막 셔츠를 입던 박동규씨가 아내 자랑을 한다. “우리 색시가 김치 담그는 대회 나가서 2등도 했어요.” 지난해 12월 광주에서 열린 외국인 대상 김치담그기 대회였다. “30만원도 벌었어요.”(웃음)

명절 때 전 부치는 솜씨도 제법이다. 전남과학대에서 요리를 전공하는 그는 조리사 자격증을 따는 게 꿈이다.

소영이에게 “엄마 얼굴이 친구 엄마들 얼굴과 좀 다르지?” 라고 물었다. 배시시 웃더니 고개만 끄덕거린다. 소영이나 종민이는 생김새가 여느 한국인 아이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엔 별 어려움이 없다. 어릴 적부터 동네에 있는 어린이집을 다닌 덕분이다. 소영이는 말하기나 글쓰기가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늦을 뿐이다.

사실 단란한 이 집에 최근 걱정거리가 생겼다. 소영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엄마 손을 필요로 하는 일이 늘어서다. 소영이는 요즘 들어 부쩍 궁금한 게 많아졌다. “엄마, 이것 뭐예요?” “저건 어떻게 써요?” 하지만 한글이 어렵기는 40살 넘은 엄마나 일곱 살짜리 딸내미나 마찬가지다.

전라도 사투리가 섞인 한국어로 더듬거리며 말하던 가골라다씨가 숙제 얘기가 나오니 답답했던가 보다. 영어로 속상한 마음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애들에게 ‘있다가 아빠에게 물어봐’라고 할 수밖에요. 처음엔 짜증을 부리던 아이들이,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요. 미안하죠.” 그는 “외국살이 하면서 말 때문에 고생하는 것은 각오했다”며 “하지만 아이들 공부를 못 돌봐주는 건 정말 가슴 아프다”고 했다.


▲ 전남 곡성의 곡성 중앙초등학교에 다니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 엄마들. (photo 이경호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전라남도 곡성군은 골짜기가 많아 예로부터 ‘골짝 나라’라고 통한다. 심청전의 배경인 ‘심청 마을’이기도 하다. 이 외진 시골에 생김새가 다른 외국인 여성과 그들이 한국인을 만나 낳은 아이들이 수십 명 모여살고 있다. 초등학교 한 곳에만 17명이 다니고, 한 어린이집에만 20명 가까이 다닌다.

국제결혼한 커플은 전국적으로 8쌍 중 한 쌍인 반면 전라도로 오면 4쌍 중 한 쌍꼴로 늘어난다. 전라남도엔 국제결혼한 커플이 4700쌍이나 된다. 교육인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국제결혼가정의 취학생 총 1만3445명 중 경기도가 2870명으로 가장 많고, 전남 지역이 1479명으로 그 뒤를 잇는다.

전국적으로 소득이 가장 낮다고 알려진 전남 곡성. 1990년대 중반 들어 일본인 여성이 하나둘씩 오더니 7~8년 전 필리핀 여성이 농촌 총각의 배필로 이곳에 정착했다. 그들이 낳은 첫 아이들이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한국인으로 귀화했고, 아버지까지 한국인인 그 아이들의 국적은 한국. 하지만 생김새는 한눈에 봐도 한국인과 다른 그들이, 대한민국의 시골 골짜기 마을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난 8월 27일 저녁 곡성 중앙초등학교에서 만난 회식이 엄마 비비안 베르날(34)씨를 앞세워 필리핀 가정을 찾아다녔다. 학원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주연이 엄마인 마리빅 비 마카림방(32)씨를 길에서 만났다. “바쁘다”며 고사하는 그를 설득해 그의 집으로 갔다.

회식이 엄마와 그 아들, 주연이, 수연이와 그의 엄마, 그렇게 다섯 명과 동네 골목을 지날 때였다. 동네 할머니들이 “아이구, 저런” “신통하구먼~”이라고 말했다. “야, 조심해, 너희들!” “엄마는 만날 소리만~.”

엄마에게 꾸지람을 듣고도 주연이는 연방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방 한 칸에 좁은 마루로 된 주연이네 집도 아이들을 위한 한자와 영어 공부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이름이 하도 길어서 몇 번을 물어보니,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보여줬다. 주연이 엄마도 언어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남들은 엄마가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저는 아이들에게 배워야 해요. 남편이랑 싸움도 제대로 못해요. 저는 영어, 저 사람은 한국어로 소리 지르니까요.” 그는 “사랑 같은 건 안 믿는다”며 “삶은 현실 아니냐”고 했다. 그는 한때 필리핀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그런 생각을 못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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