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도시, 이참(이한우에서 개명), 하일(로버트 할리)….
‘방송계 외국인 1세대’라고 부를만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유창한 한국어와 재치 있는 입담으로 벽안의 스타로 떠올랐다. 표준어는 물론 경상도 사투리까지 구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상한가를 달렸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어를 ‘한국인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하는 외국인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상황은 다르다. 능수능란하게 한국어로 말하는 외국인을 어딜 가나 자주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우리말로 청중을 웃기는 외국인 1명만 나와도 TV 프로그램이 빛났다. 하지만 이제는 KBS 2TV의 ‘미녀들의 수다’처럼 수준급의 한국어를 자랑하는 외국인이 동시 다발적으로 등장한다. 이 모두 외국인 100만 시대를 맞은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8월 24일 국내 체류 외국인(단기·장기·불법체류 포함)이 이날 1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정확히는 100만254명으로, 지난해 7월에 비해 무려 15% 늘었다.
10년 전인 1997년만 해도 국내 체류 외국인은 38만700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2001년 56만7000여 명, 2005년 74만7000여 명에 이어 지난해 91만여 명으로 급속히 증가한 끝에 드디어 100만 명을 넘어섰다.
국적별로는 중국이 44만1334명(재중 동포 26만6764명 포함)으로 가장 많은 44%를 차지했다. 미국이 12%, 베트남 6%, 필리핀 5%, 태국이 4%로 그 뒤를 이었다. 이 가운데 단기·불법 체류자를 제외한 장기 체류 외국인은 72만4967명이다. 한국에서 91일 이상 머물기 위한 사증(비자)을 갖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등록한 인원이다. 이 가운데 산업연수생이 40만여 명으로 가장 많다. 결혼 이민자는 10만여 명, 외국인 유학생 5만여 명, 장기 여행 등 기타가 17만여 명이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최경식 정보분석과장은 “앞으로도 외국인 출입국자와 체류 외국인 수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며 “‘외국인과 더불어 사는 열린사회 구현’이란 정책 목표 아래 다양한 노력을 펼쳐 나가겠다”고 했다.
외국인이 100만 명을 넘어서며 우리나라 전체 인구(4913만 명)의 2%에 이르게 됐다. 100만 명이라는 수치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다인종의 사회로 급격하게 변모 중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와 함께 배달민족, 한민족을 내세우던 한국은 더 이상 하나의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가 아니라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유엔 산하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최근 한국 정부에 ‘한국이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국제적인 기준으로 볼 때 인종 차별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한국 정부는 다른 국가 출신,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고 권고하기까지 했다. CERD는 순혈, 혼혈 등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는 단순 용어도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인종적 우월주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흔히 미국을 전 세계인으로 구성된 ‘멜팅포트(melting pot: 인종의 용광로)’라고 부른다. 한국은 현재 미국과 같은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에 놓여 있다.
경제 문화 사회 교육 등 각 부문도 가속도를 내며 바뀌고 있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최고경영자(CEO), 임원, 직장인은 기업 문화를 뒤흔들고 있다. 삼성 그룹 계열사에서 일하는 외국인만 2000여 명에 이른다. SK그룹에는 100여 명, LG그룹 80여 명, GS그룹에서 60여 명이 근무 중이다. 외국인 직장인이 늘면서 ‘마시고 죽는’ 회식 문화가 대화형으로 바뀌고, 눈치 안 보고 떠나는 장기간 휴가 문화가 정착하고 있다. 보다 많은 자유 뒤에서 책임 또한 무겁게 지는 철저한 성과주의가 뿌리 내렸다.
국내 제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또한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됐다.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근로자 40만여 명의 94%인 37만7000여 명이 단순 기능 인력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제조업체는 공장 문을 닫을 정도에 이르렀다.
15년 사이에 10배 증가한 국제결혼도 한국 사회의 변화 속도를 앞당기고 있다. 지난해 신고된 국제결혼은 3만9700건으로, 전체 결혼 건수 33만3000건의 11.9%였다. 신혼부부 열 쌍 중 한 쌍이 국제결혼을 했다는 얘기다. 특히 농어촌 지역은 국제결혼 비율이 약 40%에 달해 다섯 쌍 중 두 쌍이 국제 가정을 이루고 있다. 1990년 국제결혼 비율이 1%에 불과했다는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이다.
사회 변화에서 소재를 찾는데 민감한 영화, 드라마 속에도 외국인 주인공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다니엘 헤니, 데니스 오 등 혼혈 배우가 스타로 떠올랐고, 이들이 출연한 ‘미스터 로빈 꼬시기’ ‘마이 파더’ 등 영화가 속속 개봉됐다. 드라마 ‘황금신부’ ‘꽃 찾으러 왔단다’ ‘자꾸만 보고 싶네’ 등에도 한국에 시집온 외국인 며느리가 나온다.
외국인 학교와 외국인 마을도 급증했다. 현재 외국인 학교는 전국에 40여 개에 이른다. 외국인 주민이 1만 명 이상 거주하는 지자체 또한 서울 용산·구로·금천구, 인천 남동구, 경기 수원·안산시 등 모두 16곳이다. 지난해 8곳에 비해 두 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살색’단일민족 신화가 깨지고 있는 2007년, 추석을 맞아 온 가족과 함께 세계 시민 ‘코스모폴리탄’으로 거듭날 방향을 얘기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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