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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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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국제결혼 해도 괜찮다? 다 거짓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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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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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10명 중 7명이 단일민족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고요? 자기 자녀를 외국인 자녀들과 기꺼이 결혼시킬 수 있다고요? 다 거짓말이에요.”
한국염(韓國琰·58) 목사는 정부가 지난 9월 우리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아직 믿지 않는다. 머리로는 설령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도 현실에선 멀었다는 뜻이다. 중국·베트남·필리핀 등지에서 온 이주 여성들의 쉼터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를 6년째 꾸려가고 있는 그녀로선 당연하다. “농촌으로 시집 온 외국인 여성 10명 중 1명이 여전히 남편의 폭력으로 고통받고 있어요. 작년 11월 개설된 이주여성긴급전화 내용의 절반이 가정 폭력에 관한 것입니다.”

이주 여성들에게 ‘한국인 친정엄마’로 불리는 한 목사는 이주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2000년대 초부터 이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헌신해왔다. 정부가 전국에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를 설립하게 하고, ‘이주여성긴급전화’ 개설 등의 정책을 세우도록 독촉한 것도 한 목사다.
그 공로로 11월 9일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선정하는 ‘비추미 여성대상’을 수상한다. 상금이 3000만원이라는 소식에 입이 함지박만해졌었다. “1년 지날 때마다 센터 빚이 1200만원씩 늘어나서 끌탕을 하고 앉았었거든요.”
K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던 2005년에는 주기도문에서 ‘아버지’란 표현을 빼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던 이 괴짜 여성 신학자를 서울 숭인동에 위치한 센터 근처 국밥집에서 만났다.
―주기도문 얘기부터 듣고 싶다. 어떤 문제 의식의 발로였나.
“하나님을 아버지로, 그래서 남성으로 규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 차별을 정당화시키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2003년 보수교단의 총회장이 ‘기저귀 찬 여자가 어떻게 강단에 올라오나’라는 망언을 해서 파장을 일으켰던 걸 기억하나? 그 목사 끝까지 사과 안 했다. ‘아버지’란 표현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가능한 한 ‘father’를 ‘You’로 표현해서 쓰는데, 한국 교회에 남아 있는 가부장적 의식구조는 큰 문제다.”
―그럼 당신이 담임목사로 있는 청암교회에서는 주기도문을 어떻게 암송하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대신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이라고 한다. 일반 기도도 ‘복을 달라’는 내용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해달라’는 내용이다. 자기 복을 구하는 내용을 뺀 찬송가를 부르려니 부를 게 없어 외국 찬송가를 번역해서 부른다. 그래서인가 교인이 20명밖에 안 된다.(웃음)”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신학을 하면서부터다. 전쟁 때 아버지는 객사하셨고, 월남한 홀어머니 밑에서 외동딸로 자라 차별이란 걸 겪어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3년간 일하다가 ‘한국 최초의 여성 목사가 되겠다’는 건방진 포부를 갖고 신학대에 들어갔는데 여성에겐 목사 안수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 분노했다.”
―남편이면서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이기도 한 최의팔 목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아버지’로 존경받는다. 당신의 이주 여성에 대한 관심도 그 때문에 생긴 것인가.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이후 신학을 공부한 남편은 ‘목회자는 그 시대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넝마주이 막사에서 출발한 청암교회에서 시무하던 어느 날 밤 성남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교회 담을 뛰어 넘어 들어온 것이 그들을 돌보게 된 계기가 됐고, 여성인 나에겐 임금 차별과 함께 성 차별까지 당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고통이 더 절절하게 다가왔다.”
―그래도 이주 초창기보다는 폭력 같은 문제들이 많이 사라진 것 아닌가.
“이주 여성들의 삶을 미화하는 방송에 속지 말라. 결혼 이민 여성 인구가 늘어날수록 폭력도 늘어난다. 우리나라 국제결혼중개업자들이 ‘베트남 여성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어 국제적 망신을 당했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진 게 없다. 국제 결혼을 하려는 남성들에게 그들이 주입시키는 4대 원칙을 아는가. 첫째, 여권을 빼앗을 것. 둘째, 자국민이 모이는 데 보내지 말 것. 셋째, 컴퓨터(인터넷)를 가르치지 말 것. 넷째, 아이를 낳을 때까지 자유를 주지 말 것이다.”
―정부 지원도 없어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칼을 들고 센터를 찾아오는 남편이 많아 쉼터를 파출소 뒤로 옮겼다. 안타까운 건 그들이 결국 남편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우리의 불합리한 법체계로 이혼하면 불법 체류자 신세로 전락한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아시아 여성은 모성이 강해 거의 100% 돌아간다. 아내 뒤에 누군가 있다는 생각에 남편들 태도가 달라지는 것, 거기에 만족해야 한다. 슬픈 일이다.”
―당신은 결혼 이민 여성을 ‘외국인 며느리’라 부르는 것에도 거부감을 보인다.
“명절 특집 방송을 보면 이주 여성들이 자기를 소개할 때 하나같이 ‘○○나라에서 온 외국인 며느리 아무개’라고 한다. 비록 결혼이란 방식을 통해 한국에 온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 며느리로서의 삶만 있는 걸까? 그들의 문화와 인권을 존중해야지 무조건 한국화시키려 해서는 진정한 다문화사회로 갈 수 없다.”
―어느 글에서 당신은 ‘민족중심주의는 곧 차별주의이자 폭력’이라고 쓴 적이 있다. 70년대 학생운동 이후 줄곧 운동 진영에 있었던 당신에게 민족주의는 신념과도 같은 게 아니었나.
“통일운동에서도, 주한미군범죄 근절운동에서도 민족주의는 커다란 당위를 지닌다. 하지만 이주 노동자 문제와 씨름하면서 민족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특히 가난한 제3세계 출신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얕잡아보는 우리 사회를 보면서 민족주의가 민족 우월의식으로 변질돼 타민족에 대한 배타성이 된다면 그건 폭력이란 확신이 들었다. 갈라디아서 3장에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입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진정한 신앙인은 이 말을 고백하고 실천해야 한다.”
한국염 목사는
“한국의 소금입니다.”
작지만 다부진 말투의 한국염 목사는 별명을 묻자 웃으며 답했다. 부친이 ‘구슬 염(琰)’자를 붙여 지어준 이름을 ‘소금 염(鹽)’으로 해석해 넉살을 부린다.
월남해 홀어머니 밑에서 외동딸로 자란 한 목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공무원으로 3년간 일하다 한신대와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기독교 어린이 잡지 ‘새벗’에서 기자로 잠시 일했지만, 교회 내 여성 의식화가 시급하다는 생각에 박영숙 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을 도와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 교육프로그램을 주도했다. 2001년엔 남편의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는 결혼 이주 여성들의 인권과 모성 보호를 위해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를 설립했다. 한 해에 이 센터를 거쳐가는 여성들이 100여 명. 자신이 ‘돌아온 외팔이’라고 놀렸던 최의팔 목사(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와 결혼해 31세, 26세 남매를 두었다. “뜨거운 밥 담긴 도시락 싸간 적이 없으니 불만들이 많았겠죠. 그래도 잘 자라주었어요. 부모 하는 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착각인가?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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