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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문화일보
subject    다문화 가족시대의 공동체성 회복
home    없음

며칠 전 외할머님 산소에 다녀왔다. 돌아가신 지 올해로 꼭 20년인데, 당신 묻히신 공원묘지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돼 이장(移葬) 통보가 날아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공원묘지에 홀로 묻히신 사연이 궁금하여 집안 어른께 여쭈었더니, 외할머님은 슬하에 2남3녀를 두셨는데 6·25 전쟁 통에 맏아들은 행방불명되고 작은아들은 학도병으로 전사했단다. 하여 대(代)가 끊긴 것을 애석해하신 시아버님께서 당신 부자(父子)는 화장하라고 유언하셨기에 그 말씀을 따랐고, 외할머님 당신은 행여 큰아들이 돌아올지 모르니 부디 땅 속에 묻어 달라셨기에 그리했다는 것이다.

살아생전 가슴에 묻었던 아들,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기다림의 끈을 놓지 못했던 외할머님께 가족은 어떤 의미를 가진 실체였을까? 불과 3세대가 흘러간 자리에 외할머님, 어머님 그리고 딸 세대가 생각하는 우리네 가족이 과연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최근 우리 가족의 변화 양상이 눈부실 만큼 현란함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 같다. 실제로 가족지표의 3대 반란이라 할 ‘출산 파업, 이혼율 급증 그리고 고령화’는 사회 전반을 향해 강도 높은 도전을 시작했고, 가족의 생활공간 안에 전통과 근대 그리고 포스트모던적 징후들이 충돌하면서, 우리 가족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역설적 장으로 바뀌고 있다.

“결혼하고 보니 ‘시’자 들어가는 건 다 싫어요, 시금치도 싫어요” 하는 새며느리와 “우리 사위 얼마 버는진 소상히 아는데 우리 아들 몇 푼 버는진 도통 알 수 없다”시는 시어머니 사이의 신(新)고부갈등이나, ‘사위 사랑은 장모요 사위는 백년손님’이었건만 최근 손자녀 양육을 둘러싸고 신모거제(新母居制)가 확산되면서 사위·장모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번지고 있다는 소식은 차라리 애교스럽게 들린다.

하지만 “결혼 전 누군가 이혼하자고 하면 무조건 그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는 철없는 부부 선언이나, 고향서 올라오시는 시부모님을 집에 모시기 껄끄러워 동네 호텔에 모시는 며느리들 덕분에 ‘시부모님 호텔’이 생겼다는 이야길 듣노라면 정말 귀를 씻고 싶어진다.

가족의 출발은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와 노인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생존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생존 공동체’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점차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생활을 공유하는 이들 사이의 애정과 유대를 중시하는 ‘정서 공동체’로서의 성격이 강화됐다. 이 과정에서 가족의 안정성보다 개인의 행복이 우선시되고, 부부와 부모자녀 사이의 책임과 의무보다 선택과 자유가 우선시되면서, 가족은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는 가운데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는 역설에 빠져든 셈이다.

와중에 가족의 쇠락과 위기를 경험한 선진국을 중심으로 가족의 공동체성 회복이 강력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바야흐로 가족이 공동체로서의 존재 이유를 확고히 하기 위해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 위한 희생과 헌신의 가치를 되살려야 할 것이요, 부모·자녀간 ‘이타적 사랑’ 및 부부간 ‘합류적 사랑’의 이상(理想)을 실현에 옮기도록 할 것이며, 가족의 안정이냐 개인의 행복이냐를 대립적 가치로 설정하기보다 가족의 행복이 개인의 안정과 성숙을 가져오는 지름길임을 각성하자는 것이다.

설날을 앞두고 한번쯤은 가슴 저릿해오는 ‘가족’의 의미를 허심탄회하게 되새겨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으면 한다. 더불어 가족에 정상과 비정상이 있을 순 없을 터, 특별히 국제결혼으로 인한 다문화 가족, 이혼으로 인한 한 부모 가족, 재혼으로 인한 복합가족, 탈북자 가족, 장애인 가족 등 이웃의 남다른 가족들을 향해 뿌리 깊은 편견을 거두어내고 따스한 시선을 보내줌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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