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이 몸서리치는(?) 명절이 다가온다. 살림 9단의 베테랑 주부들도 명절 증후군을 운운할 정도로 힘든 명절 쇠기. 우리나라로 시집 온 결혼이민여성들은 어떨까. 이들은 차례상과 음식 장만이 어려운 명절이 부담스럽지만 온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어 잔치같다고 입을 모았다.
법무부가 집계한 2007년 말 현재 결혼이민자 수는 11만362명으로 이 중 여성 결혼이민자는 9만7236명(전체의 88%)이다. 부산에 거주하는 결혼이민자(5018명) 중 여성은 4531명으로 우리 이웃에서도 이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설을 앞두고 결혼이민여성 4명이 부산여성회관에서 '한국에서 보내는 명절'을 주제로 수다를 떠는 현장에 동참했다. 릿친다(26·캄보디아 출신), 율리아(36·러시아 출신), 장리리(28·중국 출신), 웬득힌(27·베트남 출신)씨 등은 부산여성회관이 운영하는 한글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기동창생들이다.
고국과 다른 설맞이 낯설지만 즐거워
"중국에선 남자 여자가 함께 일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여자들이 주로 일을 하는 게 가장 큰 차이 같아요."
한국 생활이 2년째인 장리리 씨는 한국과 중국 양국의 설 풍습 차이에 대해 묻자 이 같이 설명했다. 물론 그의 남편은 한국 음식 만들기가 서툰 장리리 씨를 돕고 있지만 이웃 주부들의 하소연을 듣다보면 명절 증후군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단다.
장리리 씨는 "중국은 음력 12월 31일 밤에 물만두를 먹고 설날엔 주로 밖에 나가 음식을 먹는데 한국은 산적 같은 튀김 음식을 많이 한다"고 중국의 설문화를 소개했다. 그에게 명절 때마다 차례를 지내는 한국의 풍습이 낯설기는 마찬가지. 그는 "중국에서는 차례를 지내기보다는 절에 가거나 폭죽을 터뜨리고 노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 율리아는 한국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부산여자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부산에 정착하게 됐다. 러시아에는 설이라는 행사가 없어 결혼 후 설 준비가 힘들었지만 친척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즐겁다. 율리아 씨는 "나물을 무치고 전을 부치며 평상시 안하던 음식을 장만하다보면 허리를 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지만 가족들과 나눠 먹는 즐거움이 크다"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 시어머니가 외국인 며느리인 자신을 너무 좋아하는데다 명절마다 시끌벅적한 수다판이 벌어져 자신의 인기가 치솟는다고 자랑했다.
베트남에서 온 웬득힌 씨는 명절이 너무 기다려진다. 설이나 추석이면 시부모님이 살고 있는 밀양으로 '가족나들이'를 떠나기 때문이다. 한국 생활이 4년째인 그는 집에서 아예 김희연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불린다. 이제는 희연이라는 이름이 더 정겹다고.
웬득힌 씨는 "홍동백서, 좌포우혜, 어동육서 등 명절 차례상 차림법을 여성회관에서 배운 적이 있는데 너무 어려운 것 같다"며 "베트남에서도 음식은 주로 여자들이 하기 때문에 명절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생활 노력한만큼 적응하기 쉽지만 육아 문제 큰 걱정
캄보디아에서 온 릿친다 씨는 아직 한국어가 서툴지만 열정만큼은 대단하다. 한국에 온 지 1년 8개월 된 그에게 명절 준비는 한국 음식에 입맛을 들이는 만큼이나 힘들다. 다행히 올 설은 고국의 가족을 그리워하는 아내 마음을 읽은 남편의 배려로 캄보디아 친정에서 쇠게 됐단다. 그는 "친정에 가기 전 설맞이 준비를 돕기 위해 시장에서 제수용품을 구입하면서 이것저것 많이 배웠다"며 "올해는 남편과 함께 캄보디아에서 설을 쇠게 돼 너무 행복하다"고 전했다.
여느 주부들처럼 이들도 명절에 온 가족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즐겁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걱정이 생긴다. 이 중 가장 큰 걱정은 역시 아이들의 교육 문제. 율리아 씨는 "한국어가 능숙하다고는 하지만 뉴스 시청은 아직 어렵다"며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만 나 스스로 아이에게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웬득힌 씨는 "아이가 아직 어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학원에 다니고 피아노 등 여러가지를 배우는 것을 보니 걱정스럽다"고 털어놨다. 그는 "결혼이민여성들이 노력에 따라 언어소통에는 별문제가 없겠지만 한글과 한국문화 등 기본적인 가정교육이 안 될 것 같다"며 고민을 토로했다.
부산여성회관 결혼이민여성 담당 김성현 씨는 "결혼이민자들의 자녀 양육을 위해 한글전문 교사가 가정을 방문해 지도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며 "결혼이민이 늘면서 2세들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 지원체계가 필요한 시점인만큼 다양한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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