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더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에요"
"이제 시작이죠. 4년뒤엔 꼭 당선되고싶어"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 "한국인으로 더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에요. 선거운동 기간에 정말 많이 배웠고, 기쁨도 컸습니다."
이번 18대 총선에서 창조한국당 비례대표로 출마했던 필리핀 출신의 이주 여성 헤르난데즈 주디스 알레그레(36) 씨는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선거에 대한 감회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정치사에서 외국계가 선거에 출마한 것은 주디스 씨가 처음. 창조한국당 비례대표 7번을 배정받고 전국을 돌며 지원유세를 벌였다. 그녀는 비록 금배지를 달진 못했지만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비례대표 제안을 받고 과연 잘해낼까 많이 긴장했어요. 사람들을 만나 잘 설득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구요. 온종일 거리를 다니며 연설하다보니 힘들기도 했지만 이해해주시고 칭찬해주시는 분들을 만날 때면 피곤함도 금방 잊을 수 있었어요."
주디스 씨는 선거운동기간 내내 새벽 6시부터 이튿날 새벽 2시까지 강행군을 거듭했다. 서울은 물론 강릉, 부산, 김해, 광주, 무안 등 전국을 돌며 수많은 시민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했다. 부산 유세 때는 신발이 '고장'나 새 신을 사 신고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가장 힘든 때는 총선 하루 전인 8일이었다. 유세 마지막날이어서 밤 10시 30분에 일찍 집에 돌아왔는데, 다리가 퉁퉁 부어올라 신발을 벗은 채 절뚝거리며 겨우 귀가했다는 것. 주디스 씨는 "그날 그 순간엔 정말 실컷 울고 싶었다"고 털어놓는다.
그가 13일 동안의 유세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격려와 박수를 아끼지 않고 보내준 시민들 덕분이었다. 주디스 씨는 "아빠같은 가게 주인들, 엄마같은 거리 행인들에게서 '애쓴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힘이 불끈불끈 치솟곤 했다"며 "그 분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마음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물론 못마땅한 듯 삐딱한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한국인도 많은데 웬 외국인이 설치고 돌아다니냐는 표정이었다. 젊은이보다 어르신들 중에 그런 사람이 더 많았다고 들려준다.

"한국인은 단일민족이라는 의식이 유독 강해서 그런 듯해요. 제가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국적을 갖고 있어도 필리핀에서 왔고 생김새가 다르다는 것 때문에 거리를 두시는 거지요. 하지만 젊은 세대일수록 이해해주는 편이어서 밝은 희망을 느낄 수 있었어요."
주디스 씨가 한국 땅을 밟은 건 1992년 8월이었다. 엔지니어로 일하는 남편을 필리핀에서 만나 서울에 온 그녀는 석 달 만에 국적을 취득해 한국인이 됐다. 하지만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 한동안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TV와 신문을 보며 맹렬하게 독학을 한 끝에 1년 가량이 지나서야 시댁식구는 물론 이웃들과도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었다. 말이 안 통해 속상할 때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자신을 달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이번 선거 때 시부모님께서 열심히 도와주셨어요. 필리핀의 친정 부모님께서도 새벽기도회를 나가시면서 저를 위해 비셨구요. 당선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정말 소중한 경험을 한 것만으로도 크게 만족해요."
주디스 씨는 선거 때마다 참정권을 꼭꼭 행사해왔다.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때 각각 세 번씩 투표했고, 지방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다. 투표에 적극 참여하고 이번에 출마까지 하면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더욱 키울 수 있었다고 흐뭇해한다.
그녀는 이번 출마가 개인적 보람에 그치지 않음을 잘 안다. 자신과 비슷한 길을 밟아온 외국계 한국인들이 다문화사회로 가는 그 상징적 의미에 크게 주목하고 있어서다. 그래서 "이제 시작이다. 4년 뒤에는 꼭 당선의 영예를 안아보고 싶다"며 각오를 야무지게 다진다.
성남시 금곡동의 임대주택에서 살고 있는 주디스 씨는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며 생활한다. 남편이 4년 전에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자녀 양육은 홀로 맡고 있다. 학비와 과외비 부담이 너무 커서 황지훈(15) 군과 황지영(14) 양은 필리핀 시댁으로 보내놓은 상태. 아들딸이 대학을 마치면 한국으로 데려올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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