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벽 허무는 ‘외국인 엄마 선생님’ [
중앙일보] ‘다문화 이해 모범’ 서울 보광초등학교의 실험
필리핀 출신 프란시스코<右>가 19일 서울 이태원동 보광초등학교 1학년 1반 교실에서 필리핀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그는 필리핀의 문화, 화폐, 전통 의상, 나라를 상징하는 독수리 등을 소개하며 아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프란시스코의 자녀 둘은 이 학교 1, 6학년에 재학 중이다. [사진=강정현 기자]
19일 오전 9시 서울 이태원동 보광초등학교 1학년 1반 교실. 메리안 프란시스코(43·필리핀)가 교단에 섰다. 이 학급 24명 학생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디선가 “어, 아나스랑 얼굴색이 똑같네”라는 탄성이 터졌다. 아나스는 방글라데시인 아버지를 둔 이 학급 학생이다. 아이들 눈에는 두 사람이 비슷하게 보였던 것이다.
“Hello! Welcome to Philippines!(안녕! 필리핀에 온 것을 환영해요!)”
프란시스코는 이날 다문화 가정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일 교사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는 “필리핀에 대해 아는 학생이 있으면 말해 보세요”라고 하자 누가 “바나나”라고 소리쳤다. 프란시스코는 웃으며 “맞아요. 필리핀 바나나는 맛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필리핀의 화폐, 전통 의상, 나라를 상징하는 독수리 등을 소개했다.
프란시스코의 아들 조한필군도 이 학교 1학년 4반이다. 1반 학생 중엔 아나스뿐 아니라 이수한군도 다문화 가정 아이다. 어머니가 필리핀인인 이군은 수업이 끝난 뒤 “재미있다”며 좋아했다.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의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장예린양은 “필리핀에 여왕이 있는지”를, 고민욱군은 “필리핀 자동차는 왜 그리 작은지”를 궁금해했다. 양철민군은 “필리핀에 어떤 놀이가 있나요”라고 물었고, 프란시스코는 “요요가 국가적으로 인기 있다. 다양한 스타일로 많이 한다”고 했다. 김하늘양은 “재미있겠다. 나도 필리핀에 가고 싶어”라고 혼잣말을 했다.
부모 중 한쪽(혹은 양쪽)이 외국인인 가정에서 태어난 다문화 가정 학생들은 점차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에 1만3445명이나 된다. 이들은 학교생활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느낀다. 피부색과 문화 차이 때문에 친구들의 놀림을 받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보광초등학교는 피부색은 다르지만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
◇보광초의 실험=국제결혼 가정의 초등학생 자녀는 서울에만 1040명(전국의 18.6%)에 이른다. 서울시교육청이 다문화 이해 연구학교(서울 2곳, 전국 12곳)로 지정한 보광초는 이들 학생의 학교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이 학교에 다니는 다문화 가정 학생은 31명이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체 35학급 중 15학급에 골고루 퍼져 있다. 이라크·러시아부터 인도네시아·터키·파키스탄까지 각양각색이다. 이미혜(27) 교사는 “지역적인 특성(이태원 인근)도 있고, 소문을 듣고 다른 지역에서 이사온 학생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 학교는 알제리 대사관을 찾아 대사에게 직접 알제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한국 가정과 다문화 가정이 결연하기도 한다. 태권도·한지공예 등 다문화 가정 아동이 한국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4월 29일에는 이슬람 사원 방문, 5월 9일에는 전 세계 민속놀이 체험, 5월 14일에는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 참가 행사가 있다. 프란시스코는 “아들이 특히 태권도를 좋아한다. 한국말은 서툴러도 한필이는 분명 한국인인 만큼 한국에 대해 알 기회를 주는 학교가 너무 고맙다”고 했다.
◇편견…시작되는 변화=이 학교에서도 ‘사고’는 일어난다. 올 학기 초 H군(부모 모두 이라크인)은 짝이 금방 바뀌었다. 처음 짝이 된 여학생이 몰래 담임 교사를 찾아가 “얼굴색이 다르니 싫다. 다른 짝으로 바꿔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해당 교사는 결국 짝을 바꿔줄 수밖에 없었다. 이 교사는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그 여학생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바뀌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연 행사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다문화 이해 프로그램을 전담하는 최인숙(48) 교사는 “결연하고 싶어하는 학생이 보통 한 반에 10명은 되는데 정작 학부모에게서 동의서를 받아오는 아이는 4명 정도”라고 전했다. 최 교사는 “학부모들이 먼저 마음을 연다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다가설 수 있다”며 “그래야만 마음고생 하는 아이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4월 초 결연에 참여한 한국인 가정이 19가정으로 지난해(7가정)보다 늘어난 점이다.
대다수 아이는 자연스럽게 ‘독특한’ 친구들을 받아들인다. 방글라데시 출신 아버지를 둔 이스마엘 우딘(1학년)군의 짝궁인 김세영 학생은 “이름이 독특해 가끔 놀리긴 하지만 이스마엘은 받아쓰기를 90점이나 받아요. 얼굴색은 항상 햇볕에 많이 탄 것 같은 색깔이어도 공부를 엄청 잘해요”라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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