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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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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로 되돌아간 이주여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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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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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로 되돌아간 이주여성 시부모·남편 구박에 마음의 상처만 가득 이방인 배려 절실해 이 성 순·목원대 이주여성연구소 특임교수
지난 주말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2년 전 내가 한국어를 가르쳤던 몽골인 이주여성 박아람씨의 남편이었다.
그들 부부는 2년 전과 다름없이 농촌지역에서 계란 도매업을 한다고 했다. 아내의 한국어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는 것, 아내가 운전면허를 취득해 계란 배달도 직접 할 수 있게 됐다는 것, 그리고 둘째 딸을 출산했다는 것 등을 그는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박아람씨의 친정 동생도 한국에 와 어느 양계농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남편이 아내를 배려하는 마음이 전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전화로 나눈 대화였지만 목소리에 결혼에 대한 만족감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전화 말미에 좋지 못한 소식을 전했다. 자신의 아내와 같은 시기에 한국 남성과 결혼한 아내의 친구 김수림씨가 몽골로 되돌아갔다는 얘기였다. 김수림씨에게도 2006년 한 해 동안 한국어를 가르쳤던 소중한 기억이 있던 터라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업시간 중에 나는 김수림씨가 한국어교실에 출석하는 것 외에는 가족들로부터 일체의 외출을 제지당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전화하는 것조차도 가족들에게 동의를 구해야 할 뿐 아니라 시외전화나 국제전화를 거는 일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후 2007년부터 나는 대전에 거주하는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문화를 가르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 때문에 그녀와 떨어져 지내게 됐다.
그러던 중 그녀가 한국의 결혼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되돌아갔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것이다. 그녀는 결혼 중개업체로부터 남편을 소개받았을 때 업체로부터 남편감이 농아라는 사실을 전해 듣지 못했다. 한국에 입국하고 보니 남편은 전혀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시부모의 권유에 따라 아기를 가지려고도 노력했지만 남편의 성기능 장애로 임신이 되지 않았다.
더욱이 그녀의 시아버지는 고엽제로 인해 고통을 겪는 중이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그녀를 따뜻하게 대해 주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한국의 대중목욕탕을 결혼 후 2년이 지나서야 가 볼 수 있었을 정도였다. 그녀는 묵묵히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하였다.
그나마 결혼생활을 계속해야 몽골의 친정집에 월 20만원을 송금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얘기도 해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구박뿐이었다. 갈등과 대립의 가정불화로 인해 종국에 그녀는 결혼생활 2년 만에 고국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 땅에서 그녀를 이제 다시 만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과 내게 남긴 그녀의 미소 띤 사진만이 내 앨범에 간직되어 있다.
이혼 후 몽골에 돌아간 그녀의 마음은 눈물이었을 것이다. 고향에서 그녀의 아픔이 치유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녀의 남편과 가족들 가운데 그녀에게 물 한 컵이라도 부드러운 마음으로 건네줄 수 있는 마음만 있었더라도 그녀는 이 땅에서 열심히 인내하며 살았을 것이다"라고 하는 그녀의 고향 친구들 말을 들을 때마다 한국인으로서 그녀에 대한 죄스러움과 안타까움에 눈물이 고인다.
최근 국제결혼이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외국인 여성들의 피해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건강한 국제결혼 관습의 정착을 위해 국제결혼 알선업체에 대한 엄격한 관리와 함께 타 문화, 이방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사회분위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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