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엄마'의 아이들] 가난·언어·소외의 벽에 운다 이주여성 자녀들, 100명 중 28명 '왕따' 경험 "수업 시간엔 잘해도 집에 갔다 오면 까먹어"
초등학교 1학년 민형(가명·8)이네 세 식구 중에 우리말을 제대로 쓰는 이는 없다. 농사를 짓는 아빠(45)는 맞춤법에 맞게 한글을 쓸 줄 모른다. 8년 전 필리핀에서 시집 온 엄마(36)는 아직 남편과 아들 이름을 말하는 것도 힘겹다. 이들 부모 밑에서 자란 민형이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멍할 때가 많다. 한 가정 안에서 세 식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경남의 한 외진 마을에 사는 민형이. 일곱 가구가 모인 이 동네에서 민형이는 유일한 아이다. 아이의 식구는 시멘트 블록집 단칸방에 산다. TV와 장롱, 책상, 나란히 놓인 부부의 침대와 민형이 침대, 30L 소형냉장고, 전기밥솥이 살림살이 전부다. 2001년생(生)인 민형이가 아는 세상은 이 단칸방과 학교뿐이다.
현재 민형이의 한글 실력은 4~5세 수준이다. 담임 선생님은 "수업시간엔 곧잘 따라오다가도 집에만 갔다 오면 모든 걸 까먹어 버린다"고 말했다.
아빠·엄마는 민형이 공부를 돌봐줄 처지가 못 된다. 학교에서 보낸 알림장에 아빠가 남긴 답장은 '민형이가 책을 읽어(잃어)버렸습니다. 찻아(찾아)주세요'라는 식이다. 도망을 걱정한 시댁과 남편의 구속 때문에 외출을 거의 하지 못한 엄마는 한국에서 8년을 살아도 모든 게 서툴다. 말도, 음식도 배우지 못했다. 민형이 아침은 거의 매일 라면이다.
 ▲ 이주여성 가정의 모녀. 언어차이는 때로 서로를 이해하는데 장벽이 된다. 김진명 기자 geumbori@chosun.com 수업이 끝날 때쯤이면 엄마는 학교운동장 그네에 앉아 아들을 기다린다. 친구들은 민형이에게 "네 엄마는 왜 저렇게 검어?" "왜 동물을 닮았어?"라고 말한다. 담임 선생님은 "어린 마음에 어떤 상처를 받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요즘 민형이는 엄마에게 "뚱뚱해서 싫어!" "바보"라는 말을 자주 한다.
한국에 결혼해서 온 지 11년째인 또 다른 필리핀 여성 지나(40)씨.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아들의 '변화'에 어쩔 줄을 모른다. 요즘 부쩍 대들고 "바보"라고 고함을 질러대는 것이다. 어릴 때는 순하기만 했던 아이였다. 왜 그러는지 알고 싶지만 아들은 엄마와 말을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오성배 박사는 "외모 차이가 두드러진 필리핀 등 동남아 여성의 자녀들은 100명 중 28명이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아직 이 아이들의 수가 적고 나이가 어린 지금 이때부터 우리 사회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2007년 현재 전국적으로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주여성 가정의 자녀들은 1만1400여명. 전국 5750여개 초등학교마다 1~2명밖에 안 되는 숫자다. 그러나 2006~2007년 한해 사이 학교에 다니는 이주여성 가정 자녀는 70% 가까이 급증했다. 도시·농촌 총각과 동남아 여성들의 국제결혼이 급증한 2000년 이후 태어난 아이들이 줄줄이 입학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중 적지 않은 아이들이 가난과 언어장벽, 소외의 3중고(三重苦)를 겪고 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