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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재중동포 박찬실씨 '9년차 베테랑 주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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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文化 한가족 시대]재중동포 박찬실씨 '9년차 베테랑 주부' 되기까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코리안드림 이뤘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혼신의 열정을 쏟으면 문화와 풍습이 전혀 다른 나라에서도 행복한 삶을 꾸릴 수 있습니다.”

추석을 불과 10여일 앞둔 2일 관광도시로 각광받고 있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에 있는 종합온천 매점.

관광버스를 타고 몰려든 산악인들로 시장통처럼 북적거리는 이곳에서 재중동포 출신 9년차 주부인 박찬실(35)씨는 음료수와 목욕용품 등을 파느라 분주한 손길을 놀리고 있었다.

지난 7월부터 문경종합온천 매점에서 근무 중인 박씨는 “다른 나라에 정착해 잘살려면 어떤 어려움에도 맞서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문경읍 평천리로 시집온 박씨는 이곳에서 근무하기 전까지 고등학교 중국어 강사, 초·중학생 수학학원 강사로 일했다.

박씨는 표준말은 물론이고 ‘그래여, 안 그래여?’하는 문경지역 특유의 사투리까지 자유자재로 구사, 매점 손님들은 그녀가 재중동포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그녀는 재중동포지만 중국에서도 한국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헤이룽(黑龍江)성 출신으로 재중동포 학교에서 4학년까지 마친 뒤 한족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로 전학,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친 뒤 옌벤(延邊)에 있는 2년제 대학에서 중국어를 배우는 등 줄곧 중국인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녔다.

대학 졸업 후에는 옌벤에 있는 중학교에서 중국어 교사로도 일했다. 그래서 그녀의 한국인과 똑같은 언어 구사는 실로 놀랍게 평가되고 있다.

“대학을 나와 교단에서 일했던 사람이 왜 한국 농촌에, 게다가 8살이나 많은 노총각과 결혼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갖지만 그것은 운명이었다”고 답했다.

박씨는 중학교 교사 시절 다른 동료와 갈등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녀의 부모는 중국에 3남매를 남겨두고 97년부터 한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 밤 전화로 신세 한탄을 하며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부모에게 졸라댔다.

박씨의 어머니는 딸의 청을 외면하지 못했다. 자신이 일하던 식당 주인 조카인 정모(43)씨를 딸과 맺어준 것.

그녀는 2000년 2월 결혼해 2400㎡의 과수원에서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남편을 따라 문경읍 평천리 산골에 둥지를 틀었다. 박씨는 시댁을 처음 방문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문경읍에서도 가장 오지인 주흘산 자락의 평천리로 끝없이 이어지는 산길은 마치 죽으러 가는 길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는 데다 외국에서 온 신부라고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람들 때문에 결혼 첫해는 해만 지면 마을 냇가에 나가 울곤했다.

또한 시부모가 워낙 검소한 생활을 해온 터라 임신 초기에 그렇게 먹고 싶은 돼지고기조차 구경하지 못해 거름더미에 있는 음식 찌꺼기가 삼겹살로 보일 정도였다.

박씨는 시어머니에게 ‘모든 것이 삼겹살로 보여요’라고 하소연하고서야 삼겹살을 먹을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결혼 초기에 농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슴이 답답해 견딜 수 없을 때는 승용차로 20여분 거리인 문경읍내로 나왔는데 벌써 공기가 달랐다”고 귀띔했다.


◇경북 문경종합온천 매점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박찬실씨(오른쪽)가 온천 이용객에게 물건을 팔고 있다.


둘째를 낳고 10개월이 지난 뒤 그녀는 반란을 꾀한다.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수소문 끝에 문경읍내에 있는 관광고등학교에서 중국어 강사를 시작한 것. 비록 2학기 두 달뿐이었지만 그녀는 큰 자신감을 얻었다.

이어 자동차 면허 시험에도 도전했다. 3일 후 시험을 치르기로 접수를 마친 그녀는 문제집을 사 집안일을 마치고 아이들이 잠들면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 새벽 5시에 일어났다.

한글 단어의 뜻을 잘 모르는 데다 영어도 많아 공부가 쉽지 않았지만 그녀는 단번에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실기시험까지 통과, 시동생으로부터 승용차를 물려받았다.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녀는 고교 시절 항상 90점 이상을 맞아 자신이 있던 수학 공부에 돌입했다. 두 달 동안 서점에서 구입한 국내 중학교 수학 교재 6권을 거의 외우다시피 한 끝에 면접을 거쳐 문경읍내에 있는 속셈학원 강사를 맡게 됐다.

시부모도 그녀의 노력을 인정해 학원과 가까운 문경읍으로 분가를 허락했다. 그러나 속셈학원이 영세해 문을 닫자 승용차로 40여분 거리의 문경시 점촌면에 있는 학원 강사로 자리를 옮겼다. 근무시간이 초·중생 방과 후에 집중돼 다소 한가로운 오전에 도시락으로 저녁을 미리 준비해놨다가 잠깐 집에 들러 가족들을 먹인 뒤 다시 학원에 나갔다.

그녀는 “거의 2년 동안 자정이 넘어 퇴근했고, 그때마다 아이들과 남편은 자고 있었다”며 어려운 강사 시절을 회상했다.

박씨는 “문경읍내에 있는 온천 매점에 취직해 생활이 안정된데다 남편은 매일 아침 평천리 시댁으로 가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면서 걱정이 태산같던 시부모님은 이젠 우리 부부를 대견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부모님이 남편에게 재산을 모두 이전해 줄 정도로 신뢰감을 보여줘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며 활짝 웃었다.

요즘 박씨는 남편과 상의해 가족들이 즐겨보던 TV도 보지 않는다. 아이들의 책 읽기 습관을 키워주기 위해서다.


그녀는 자신처럼 한국으로 시집와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며느리들에게 “말과 문화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표를 세워 자기개발을 하는 등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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