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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文化 한가족 시대] ③'강원도 정보화 경진대회 1위' 원주 베트남 새댁 이후애씨
"한글 일기 하루도 안걸러, 이젠 신세대 주부로 통해"

‘우리 가족은 제 인격을 존중해 주고 평등하게 대해 주고 있어요. 그래서 재미있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어요. 하루빨리 한국생활에 정착하기 위해 더 열심히 배우고 싶어요.’

지난 2006년 강원 원주시 소초면 흥양리로 시집온 베트남 신부 이후애(26)씨가 쓴 일기의 한 구절이다.

이씨는 매일 저녁 한글로 일기를 쓴다. 맞춤법이 틀리고 앞뒤 문장이 잘 연결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말이 통해야 진정한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이씨가 2년 반 전 물설고 낯선 이국땅에 처음 왔을 때는 여느 외국인 며느리처럼 고국의 가족 생각에 눈물로 날을 지새웠다. 한때 동경의 대상이었던 한국 문화와 음식, 생활방식 등은 고통으로 다가왔다. 딴 세상 같은 생활습관에 적응하지 못해 하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지낸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베트남 북부 항구도시 하이퐁 출신인 이씨에게 산골 생활에 적응하기는 더욱 힘들었다.

전문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어엿한 직장 생활을 하던 이씨는 결혼소개소를 통해 스스로 한국행을 택했다. 그런 그녀가 핑크빛 신혼생활을 청산할 생각까지 이르게 한 것은 언어소통 문제였다. 현지 적응의 어려움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를 해소할 소통수단이 차단됐기 때문이다.

외딴 섬에 갇힌 듯한 답답함에 불면의 밤을 보내던 그녀에게 빗장을 열어준 것은 14살 연상의 남편 원흥재(40)씨였다. 어린 아내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다 원주시내의 한 복지관 한글반에 등록시킨 것.

“한국생활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남편과 시부모님의 배려가 큰 도움이 되었어요. 남편은 무조건 배워야 한다며 한글반과 컴퓨터반에 손수 등록을 했죠.”

남편의 성원에 힘입은 이씨는 1년여 만인 요즘 한글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베트남 신부 이후애씨가 아들을 안고 있는 남편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한국어 능력 시험반이 개설된 원주 명륜종합사회복지관을 찾는다. 이씨는 이곳 고급반에서 외국인 주부 7∼8명과 함께 한국어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오전10시부터 낮12시까지 2시간 동안 한글을 배우기 위해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복지관에 남편이 차로 태워다 주고 있다.

40여마리의 젖소를 키우고 있는 남편이 목장 일로 바쁠 때는 시아버지가 대신 차를 운전하고 데려다 줄 정도로 온 집안의 지원을 받고 있다.

내년 5월쯤 한국어 능력시험을 치를 계획인 이씨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속담에는 큰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말을 할 때 조심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이씨는 한글반에 다니면서 ‘응웬 티 타잉 후에’라는 본래 이름 대신 ‘이후애’란 예쁜 이름을 얻었다. 친엄마 처럼 아껴주는 시어머니의 성인 ‘이’씨를 물려받았다.

이씨는 한글 말고도 매주 수요일 한지공예를 배우며 한국문화를 익히고 있다. 말뿐아니라 진짜 한국인이 되기 위해 또 한 발을 내디딘 것이다.

“고운 한지를 이용한 공예품이 너무 예쁘다”는 그녀는 “요리나 가요교실에도 등록해 한국문화를 체험하며 배울 계획”이라고 우쭐해 했다.

20대인 이씨가 시골마을로 시집오자 산골마을의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오랫동안 아이의 웃음소리를 듣지못했던 마을 주민들은 항상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이씨를 ‘베트남 새댁’으로 부르며 살갑게 대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아들 찬우(2)가 태어나자 마을에 ‘경사 났다’며 축하해 줬다.

이씨는 적극적인 성격 탓에 한글은 물론 컴퓨터를 이용한 문서작성 등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다문화가족 정보화백일장대회’에서는 ‘행복은 무엇입니까?’라는 글로 3위에 입상했다.

이씨는 “여보, 행복은 무엇입니까? 저는 가족들이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면 그게 행복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의 생활이 너무 예뻐요” 라며 끈끈한 가족사랑을 표현, 많은 박수 갈채를 받았다. 열흘 뒤에 열린 ‘강원도 정보화경진대회’에서도 1위를 차지할 만큼 신세대 주부로 인정받고 있다.

머나먼 이국으로 시집와 성공한 한국주부로 변신한 데 대해 이씨는 “차별 없이 대해 준 남편과 가족들의 사랑 덕분”이라며 “남편은 매일 오전 5시쯤 목장으로 나가 젖을 짠 뒤 신선한 우유를 한 그릇 가득 담아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나에게 슬며시 건넨다”고 귀띔했다.

원씨는 당초 여느 농촌 총각처럼 시골로 시집오겠다는 처녀가 없어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독신으로 살 작정까지 했지만 외아들이 장가갈 날만을 기다리던 부모 때문에 베트남으로 건너갔다가 이씨를 보는 순간 결혼을 결정했다.

원씨는 “저를 믿고 시집온 집사람이 너무 고마워 이것저것 잘 해주고 싶어요. 어렵게 결혼에 성공했지만 그 흔한 고부 갈등 없이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 집사람이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이씨는 “문화와 성장 환경이 전혀 다른 국제결혼 가정이 성공하려면 남편은 이질적인 요소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아내 쪽은 언어를 비롯한 한국생활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외국에서 시집온 친구들을 만나면 여자가 도망갈까봐 사람 만나는 것을 꺼려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하나라도 더 배워 하루빨리 한국생활에 적응하라는 남편과 친딸같이 사랑해 주는 시부모,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으니 나는 보기 드문 행운아”라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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