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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대받는 이주여성, “우리도 가족입니다”
이주여성 인권개선, 다문화사회 정착 시급

한국으로 시집온 지 8개월 만에 자살을 기도해 정상지능과 운동능력을 상실한 베트남 새댁 뚜엣(가명, 20) 씨의 안타까운 사연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이주여성 인권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뚜엣 씨는 지난해 8월 결혼정보업체의 소개로 A(39) 씨에게 시집왔으나, 정신질환을 앓던 남편이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절망과 외로움에 시달렸다. 남편과 면회도 못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그녀는 결국 지난 4월 집에서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혼수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와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건졌지만, 뇌 손상으로 지능과 운동능력이 떨어져 혼자 걷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부푼 기대를 안고 온 한국에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고향에 돌아가게 된 그녀의 사연은 처지는 달라도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아픔이다.
 
결혼 실패 후 음독자살을 기도했던 베트남 새댁 뚜엣(20) 씨가 오는 22일 그리운 고향으로 되돌아간다는 소식에 병원 휠체어에 앉은 채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주여성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이주여성 40만 명 중 한국남성과 결혼한 이들은 32%에 달하는 12만 7천여 명이다. 중국(조선족), 베트남, 필리핀, 일본, 대만, 몽골 등 출신 새댁들은 이제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국제결혼으로 인한 다문화 가정은 한국남성 100명 중 8명이 외국여성과 결혼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일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주여성들은 시댁과 남편에게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문화적 갈등, 언어문제 등의 난제와 가정폭력, 성폭력, 노동 등의 인권침해를 당하는 것이 적잖은 현실이다. 

최근 1년 동안 조사된 통계자료를 보면 국제결혼 이주여성 가운데 가정폭력 경험이 47.7%로 나타났다. 구체적 사례는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흉기를 찾고, 한국어를 잘 못한다고 때리거나 집에서 내쫓는 경우가 다반사다. 

작년 4월에는 대구시 달성군에 한 아파트에서 베트남 신부가 가정폭력을 피해 커튼으로 만든 밧줄을 타고 내려오다 목숨을 잃었다. 충남 천안, 경북 경산에서도 가정폭력을 못견딘 외국인 신부들이 사망했다. 여성부가 운영하는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1577-1366) 상담건수 만도 2006년 382건에서 2007년 1106건, 올해는 1235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키르키르스탄 출신 이주여성 카리스는 “2003년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아이를 둘 낳고 한국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나를 심하게 홀대했고 남편도 도와주지 않아 갈등이 심해졌다.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지만 갈 데가 없어 방황하다 이주여성인권센터 쉼터에 입소했다. 지금은 러시아어 통역관으로 일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쉼터 수가 부족해 갓난아이가 있거나 10세 이상의 남자아이를 가진 이주여성은 들어가지도 못한다.”며 힘겨운 한국살이를 얘기했다. 

몽골에서 온 한 이주여성은 현재 임신 6개월인 상태로 가출했다. 그녀는 “남편이 아이를 지우라고 강요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지만 남편이 주민등록증을 취소하면 불법체류자가 된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베트남 새댁 뚜엣 씨의 사연이 실린 신문을 들고 이주여성 인권문제 심각성을 강조하는 한선교 의원. ⓒ뉴스한국 법제도 마련과 시행이 일치해야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은 19일 “뚜엣 씨에 대한 보도를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한국에 시집 온 이주여성들은 많아지는데 가정폭력 등 문제가 심각하다”며 "향후 법제도 마련에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 의원은 “이들이 상처를 입기 전에 사전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다문화가족들을 직접 찾아가 가정의 소중함,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 등을 알리는 일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주여성 인권과 다문화 사회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한 한선교 의원은 지난해에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베트남 처녀 결혼 완전 후불제’ 등 국제결혼 알선업체들의 선정적인 광고문구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형오 국회의장은 “단일민족이라고 자랑하는 시대는 지났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다문화 현상을 수용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국가의 과제”라며 “이주여성들은 대한민국의 며느리이자 어머니다. 앞으로는 대한민국의 시어머니, 장모가 될 사람들이다. 좀더 따뜻한 가슴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 소속 이주여성들이 자신과 한국 내 이주여성들의 현실을 연극으로 풀어내 참석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시댁, 남편과의 언어갈등, 강압적인 태도와 무시, 혼혈 자녀들이 겪는 차별에 대한 아픔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현재 여성부는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를 운영하며 법률, 의료, 수사기관 연계, 현장출동 협조요청, 긴급피난 보호시설 연계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점점이 박힌 이주여성들을 구해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현재 한국어 교사의 방문교육, 건강검진, 기초생활보장 수혜자 확대 등 개선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문화가정 2세를 위한 아동양육 지도사 파견, 결혼이주여성 자립역량을 기르기 위한 영농기술 강의, 지역사회와 연계한 다양한 직종개발, 이민자들간의 자조모임, 멘토링 구성 등도 실시할 예정이다. 

박난숙 복지부 다문화가족과장은 “다문화가정 시행법이 20일부터 시행되는 만큼 한글교육, 취업교육, 생활보장, 폭력방지 등 다양한 사업이 실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여성 인권 개선 토론회에 참석한 이주여성들이 토론자들의 얘기를 경청하고 있다. ⓒ뉴스한국 그러나 한국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정부기관의 대책에 아직 개선할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한 대표는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언어폭력도 심각하다. 강제로 쫓아내거나 우리말을 모르는 점을 이용해 강제로 이혼서류에 사인하게 만든다. 알코올중독, 정신지체 등 지병을 숨기고 결혼한 남성도 많다. 그러다 여성이 못 살겠다고 하면 체류권을 박탈한다.”며 “이주여성의 기준에 맞게 가정폭력의 범주를 넓혀 한국에서의 체류권을 확보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주여성들은 “우리가 많은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똑같이 인정해주고 생각해주는 데서부터 진정한 다문화사회가 이뤄지는 것이 아닐까”라고 전했다. 

연극을 통해 이주여성들의 고통을 표현한 몽골 출신 이주여성 에르헴 체첵(32) 씨 또한 “나도 처음에는 시댁, 남편과 갈등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도 언어, 문화 등이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가 한국말을 배우듯이 한국 가족들도 우리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면 안 되나. 서로 상대방의 문화를 알아보고 결혼하면 좋을 것 같다”며 소박한 바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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