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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한반도 이주역사…   
 
 
漢나라 유민때부터 시작 
86년 亞게임이후 본격화 

외국인의 국내 이주는 1986년 아시안게임 이후 본격화됐다. 우리나라가 해외에 알려지면서 ‘잘 사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부각되면서부터다. 결국 스포츠 무대가 한국 속 세계를 만든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이전에는 외교 사절단이나 주한미군이 외국인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서울 이태원이나 전국 각지의 주한미군 주둔지역에서 외국인을 볼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검은 피부나 파란 눈의 이방인이 속속 한국을 찾았다. 

실제 외국인의 이주 역사는 저 멀리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한(漢)나라에 대항하는 유민인 위만이 고조선에 들어온 게 이주역사의 시작이라고 학계는 분석한다. 당시 위만을 중심으로 한 유민세력은 토착세력인 고조선인과 함께 지배체제를 형성했다. 

이후에도 외국인의 이주 사례가 눈에 띈다. 백제 부흥운동을 도왔던 일본 수군들이 한반도에 정착하기도 했으며, 고려 무역항 벽란도에서는 적잖은 아랍상인들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인조 때 제주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벨테브레는 ‘박연’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대포와 화약기술을 전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건너와 정착한 역사도 빼놓을 수 없다. 

2001년 인구조사를 보면 우리 주위에 외국인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국민 26%가 귀화혈통이라고 밝혔고, 토착 한국인 성(姓ㆍ285개)보다 새로 만들어진 귀화인의 성씨(442개)가 훨씬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는 과거부터 외국인과 더불어 산 셈이다. 

외국인이 대규모로 유입되기 시작한 때는 최근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화에 따라 인력의 국제적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한국을 찾는 외국인 숫자도 대폭 늘어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이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듬해 필리핀 출신 가정부들이 서울 강남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을 신호탄으로 외국인력 수입국으로 변모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는 중동 건설노동자 등 인력 수출국이었다. 

외국인들은 우리 산업발전에 한 축을 담당했다. 내국인들이 3D(더럽고 어렵고 위험하고) 업종에 종사하기를 꺼려하면서부터 중소업체나 건설현장에 구인난이 만성화됐다. 이에 정부는 외국인의 입국을 장려했고, 그 자리를 동남아시아 등지의 외국인들이 채운 것이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중국동포의 귀향을 촉발시켰다. 당시 정부가 중국과 교류를 트면서 중국동포들이 대거 한국으로 몰려와 지금은 국내 거주 외국인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2000년대 들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외국인 이주가 이뤄졌다. 짝없는 시골청년들과 맺어진 외국 여성들이 결혼 이민을 통해 한국에 정착하는 사례가 급증한 것이다. 통계청은 지난해 우리나라 국제결혼 비율이 10%를 넘어선 가운데 거주 외국인이 1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을 알린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인의 의식도 많이 변하면서 기존 ‘단일혈통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인과 같이 호흡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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