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읽어도 모를 박 박사의 졸업 논문을 한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읽은 기억이 나오. 오늘도 위 제목의 글을 역시 한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읽었다오.
논문을 쓰기 위해서 연구에 주력을 해도 모자랄 시간 속에서 군입대 연기를 위해서 수많은 국회의원과 병무청의 담당자들에게 끊임없이 호소를 했고, 아버님은 한국에서는 1년간 일손 놓고 법원으로 병부청으로 다니면서 "군입대 연기" 를 위해서 노력 하셨지 그러나 법에 따라 순리로 풀려 하는 우리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고 단 논문 심사만이라도 끝내고 올 수 있게만이라도 연기시켜 달라고 애태우며 호소 했으나 아랑곳 없고, 반대하는 이유는 "국비 낭비를 막기 위한 처사라고."
어처구니 없는 이유였지. 유학 공부하는 동안 장학금으로 국비는 하나도 유출 시킨 일도 없을뿐 아니라 장학금을 아껴서 불란서 유학중인 누이의 학비를 오히려 보태준 상황도 모르고 부당한 판결문을 난발하는 병무청의 통고문들..... 법정 투쟁도 소용 없는. 1년이란 세월을 보내고도 아무 승산 없고, 입대 날자를 앞두고, "입대 날자를 맞춰 나오라" 는 아버님의 자포자기한 전화를 듣고, 나는 울화통이 터져서 "국적을 포기하고 논문을 끝마무리 짓던가, 연구하던 것을 포기하고 귀국하려거던 연구생활은 그만두고 공무원 노릇이나 하고 살게하라" 고 호통을 쳤었지...... 아버님은 그 말이 맞는 말이라고 하시고는, 다음날 부터 또 용기를 내셔서 법원의 문을 두드리고 다니셨고.
네가 국회의원, 병무청 등 호소할 수 있는 대로 호소하면서, "나는 혜택을 받지 못할지라도" 내 다음의 유학생들에게는 그런 피해가 없기를 그리고 국내 병역산업체에서 일하는 그 열악한 환경과 처우개선 등이 시급함을 부짖었던 그 호소문들이 다시 머리에 떠오르는구려. 비참한 문제등을 세세히 노출시켜서 병무법을 고쳐야 한다고 투쟁 한 것이 아마도 다음해 부터 시정이 되어 유학생들이 연구하던 것은 끝마치고 돌아와서 입대하게 되었고.
그 외에도 법적 투쟁으로 입대 날자가 연기된데 대한 병무청의 보복 행위로 (? : 내가 잘못 아는지 모르지만) 힘든 일들이 많았고 힘든 일 뒤에는 하늘이 특별히 내리신 보상도 또한 많은 것 같소.
인생은 새옹지마 전화위복(?) 세상일은 다 하나님의 각본 대로 실행되는 것이겠기에 .... "그저 감사하고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이 세상을 더 사랑하시니 우리의 걱정은 울분은 기우일 뿐이 아니겠소.
요사이 옛 교장들이 모여서 붓글씨 쓰는 모임에 나가는지 1달 정도 되오. 70 이 넘는 노인들이... 요지음 국정에 대해서 갑론을박 하는데, 70 이 넘는 할아버지도 어린 아이 같이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고 하며 항간에서 오고 가는 잘못된 말을 그대로 하고 있으니, 다른 할아버지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멀거니 쳐다만 보는 분도 있더이다. 이제 와서 잘 잘못을 가릴 때가 아니라 일 하도록 협조하고 잘못은 시정할 길을 같이 모색하며 민주적인 방법과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가는 것이 제일이 아니겠소.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에 폭력 없이 협조해 온 기성인들 같이, 제발 젊은 세대들도 폭력 없이 입과 글과 말로 실력으로 대화하자고 해야 한다. 그래야 속은 시끄러운 것 같아도 김대중 대통령 같이 노벨상도 타고 노무현 대통령 같이 그 서투른 정치로도 무난히 5년을 끝 마칠수 있지 않았는가를 젊은 세대들은 좀 알았으면 좋겠소. 한 명의 불량 청소년이 한 가정과 한 사회를 쑥대밭으로 만드는데, 그 많은 학생과 젊은이와 복무를 수행해야 할 직장의 직원이 업무를 유기하고 동료들을 선동하고, 또 어린아이 학생들을 거리로 촛불을 들려서 나오는 마치 그 "부모가 된 아이들 같은 에미 애비들" 을 볼 때 너무 가슴이 아프오.
기성 세대와 젊은이가 특별한 이념만을 가지고서 민주사회인 것을 잊고, 법치국가인 것을 잊고, 서로가 게릴라 같은 육박전을 한다면, 서로가 희생되고, 국가적으로는 폐허만이 남는 다는 것을 다시 말하고 싶소.
박 박사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부터 성경 이야기를 해주면, 즐겁게 듣고 1주일 후 까지도 머리 속에 가슴 속에 성서 이야기를 간직하며 살던 그 어린 시절. 그리고 형제 자매들이 그 힘든 데모 속에서도 대학 시절을 건전하게 잘 지내 준 것 참 감사하오.
더욱이 놀라운 것은 박 박사가 초등학교 4학년 그 당시가 유신 시절이였고, 그때 깨끗한 민주적인 국가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학교에서 비민주적이고 편중된 정책적인 이념 교육을 시키려는 이런 일들에 그 어린 나이에 비리라고 생각되는 것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하며 담임이 곤란하다고 미워하였지만, 2 년 후인 6 학년 때의 담임은 정의와 비리에 대해 굳굳한 신념이 있는 기특한 학생이라고 칭찬하여 대상을 주시고 아버님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오.
우리의 삶은 역시 언제나 "꼭 할 말만 하고 꼭 할 행동만 하고, 힘차게 삽시다." 이 나라는 하나님이 참으로 사랑하시는 나라 같소. 모두 참 잘 될 것이오. 우리 국민은 귀가 여린 백성이고,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 같은 백성이니 하나님이 어찌 사랑하지 않으시겠소.
캄보디아와 같이 되지는 않겠지요. 몇 년 전에 캄보디아에 가보니 참으로 비참합디다. 사상 이념의 싸움 때문일까? 빈부의 싸움이었을까? 귀천의 싸움이었을까? 너무나 비참한 자기 민족간의 살육이었섰다오.
6.25 사변 때 우리가 당했던 그때의 일들이 생각납디다.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외할아버지는 의료사업을 하고 계셔서, 손에 공무원의 표시인 펜대 잡은 표시도 없고 노동자 같이 손바닥에 못자국도 없었는데, 무슨 장관 벼슬을 했느냐고 무지막지하게 인민군 내무부에서 맞아서 그 길로 병이 들어서 돌아가셨지요...
이 정권이나 저 정권이나 어느 정권이고 간에 정의와 공정과 공평과 사리에 맞도록 판단하지 않고 무뎁보로 무지한 일을 하는 것은 미개한 짓인 것을 알아야 하고 절대로 이에 담합하는 일은 잘못된 일이라오.
어릴수록 성서에서 배운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 들여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가지고, 스스로 홀로 신 앞에 서서 한 점의 부끄러움 없이 살도록 노력하도록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할 것 입니다. 바른 말을 듣고 자라면 자기가 사는 곳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노력하게 되기 마련이라오. 이웃과 함께 주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기 빕니다.
date : 2008-07-11 01:5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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