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I 생명과학의 諸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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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8-12 00:38:42
NAME :    주인
SUBJECT :    몇가지만
HOME :    없음

어머니께서 위에 쓰신 글에는 당시 상황이 조금 과장되거나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글 전체를 볼 때 사소한 문제인 것 같아서 달리 정정하지는 않겠읍니다.  
다만 몇가지에 대해서만 언급하겠읍니다.  

문제는 미국에서 학위 논문심사 (thesis defense) 를 마치기 위해서 추가로 필요했던 
6 개월에 대한 체류 연장 허가를 병무청이 거부하면서, 내가 그 기간 동안 해외 체류 
허가 없이 더 있다가 귀국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과태료 처분을 받은 일이었읍니다.  
그 결과 때문이지만 병역특례에 의한 연구소 근무가 (악의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규정을 고수한) 병무청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나는 현역 입영을 했읍니다.  
이는 어머니의 표현처럼 새옹지마라고 해야할 만큼 좋은 일이기도 했읍니다.  

내가 많은 시간과 노력과, 유학생활 중 장학금을 저축했던 돈을 쓰면서 유학생의 병무와 
병역특례 제도에 대한 개선을 공식적으로 모든 가능한 기관을 통해 탄원을 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때 從弟인 박정규 박사가 많은 도움을 주었읍니다.  나의 공식적인 탄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면 국회의원이나 고위 관료들의 자제들 중에 유학생이 
많았고 또 특례제도를 통해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몇년 후 내가 제대할 무렵부터 내가 탄원서에서 청원했던 점들이 대부분 
시정되었읍니다. 

새옹지마라는 말에 대해 한가지만 부연을 하면, 물론 내가 연구소에서 병역특례로 
5 년을 (요즘은 3 년인가요) 근무하는 대신에 2 년 동안 현역 복무를 하면서 
보람도 있었고 유익하기도 했었다는 점은 차치하고, 내가 제대할 무렵 커다란 
사건이 하나 터졌는데 바로 박원사/원준위 사건이라고도 불리우는 대규모 병역비리 
사건이었읍니다.  소위 상류층이나 운동선수, 연예인 등 수백 여명이 병역 면제 비리에 
연루되었고, 헌병대와 의무사의 직업 군인 수십 명이 관련된 대규모 사건이었읍니다.  
내가 제대하기 얼마전에 부대 태권도 승단심사가 있어서 심사위원장으로 의무사령부 
주임원사란 분이 왔었는데, 얼마 후 제대할 무렵엔가 바로 그 분이 병역비리로 구속이 
되더군요.  

각설하고, 다시 내가 입대하기 전으로 돌아가서, 나보다는 아버지께서 모든 일을 
원칙 대로 처리하신 덕분이기는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내 문제를 탄원하기 위해 
소위 고위 관료들이나 그런 분을 잘 아는 분들을 만나서 사정 이야기를 하러 다닐때 
였읍니다.  여러 곳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읍니다.  “왜 이렇게 공개적으로 
공식적으로 일을 처리하셨읍니까?  조용히 부탁하셨으면 해결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 때는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읍니다.  그런데, 박원사/원준위 사건이 
터지고 나니까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군요.  부당한 것을 바로 잡아 달라고 하는데, 
무얼 조용히 부탁하란 말인가?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였는데, 그 사람들의 
생각은 부당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또다른 부정한 방법을 쓰겠다는 것이었으니, 
몇 년 뒤에 그 말의 뜻을 깨닫고 나니 정말 웃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 때 그 사실을 알았다면, 공개적으로 탄원서 돌리면서 병역 비리도 고발했을 텐데… 

여담으로, 그 때 보낸 탄원서는 수신처가 청와대든 총리든 장관이든 고충처리위원회든 
다 하부 기관인 병무청으로 다시 내려가서 돌아온 답변은 똑같이 “No” 였읍니다.  
당연히, 누구 말처럼, 몰래 해결은 해줘도 공개적으로 책임질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당시 공무원들의 생리였겠지요.  

그리고, 당시 수백 명의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똑같이 보냈던 탄원서에 대해서 가장 
성실히 응답/조사를 해 준 분은 강현욱 국회의원과 김종필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분들이었읍니다.  나중에 국회로 보낸 탄원서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으로, 앞으로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 는 공문을 받았읍니다. 

그 때 탄원서를 함께 써주신 강현삼, 서정선, 최장원 교수님들은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그 과정 동안 가장 고마운 분은 생명공학연구소의 
최인표 박사님입니다.  최인표 박사님은 내가 병역특례로 근무하기를 약속했던 
연구실의 책임자이셨지만, 그렇게까지 고생하실 이유는 없었읍니다.  당시 국무 
총리실로 부터 이런 일에 간여하지 말라는 전화까지 받으셨던 걸로 알고 있읍니다. 
하지만, 저를 위해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여 창원 지방병무청까지 함께 찾아가 주실 
정도로 아낌없이 모든 것을 도와주신 점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 때 부모님과 가족, 친지들의 고마운 희생이 많았읍니다.  


date : 2008-08-12 0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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