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맨 (He Was A Quiet Man, 2006) 드라마, 멜로/애정/로맨스 | 미국 | 95 분 | 개봉 2008.11.27
감독 : 프랭크 A. 카펠로 출연 : 크리스찬 슬레이터, 엘리샤 커스버트 등급 : 국내 15세 관람가
장르 구분이 상당히 애매한데 일단 드라마로 정의는 내렸지만, 전형적인 드라마하고는 거리가 멀다. 우울증과 자신감 결여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쉽게 말해서 미국 총기 난사 사건의 조승희를 떠올리면 빠를듯싶다. 실제로 영화속에서 주인공인 크리스찬 슬레이터는 매일같이 직장에서 총을 만지작 거리며, 자신을 괴롭히거나 무시하던 동료와 상사를 죽이는 계획을 짜고 상상을 한다.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주제이지만 너무 어둡거나 무겁지 않도록 멜로를 섞어넣고 있다.
아직 국내엔 소개가 안된 작품이기에 어디서도 이 영화의 줄거리나 자세한 정보를 구할수가 없다. 하지만 주연 배우인 크리스찬 슬레이터와 엘리샤 커스버트라는 유명 배우가 출연하기에 어느정도 영화팬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건 철저하게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크리스챤 슬레이터의 연기가 아닐까 싶다. <브로큰 애로우> <베리 배드씽> <마인드 헌터>등에서 남성적이고 카리스마있는 모습을 주로 보여주었던 그가, 이번 작품에서는 그야말로 대머리에 어늘한 말투, 소심하고 나약한 인간형의 모습을 완벽하리만큼 소화해내고 있다. 또한 <444>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 <하우스 오브 왁스>등의 오락영화에서 가벼운 연기가 보여줬던 엘리샤 커스버트도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여성의 역활을 흠잡을데없이 무난한 연기를 보여주고있다.
마지막에는 반전까지 있는 작품이기에 감상하는동안 지루하거나 하진 않는다. 오히려 배우들의 좋은 연기와 대중속에서 소외되고 무시되던 한 인간이 극복하고 일어서게 되지만, 그 성공에는 비밀이 있다는 나름 반전있는 이야기들이 제법 솔깃하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영화속에서 총기 난사 사건을 저질른 범인들의 이웃들 인터뷰 장면을 보면 하나같이 이렇게 대답을 한다.
"그는 착한 사람 같았어요."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어요..." ...
[스포일러] 밥 맥커넬은 절망감으로 정신분열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현실과 몽상을 동시에 살고 있죠.
그의 절망감은 회사의 무기력한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5년전 사고로 인한 절망감입니다. 항공기 바퀴 추락으로 인해 아내와 딸을 모두 잃은 사고 말이죠.(이 영화의 트릭은 콜만과 항공기사고를 한개의 사건으로도,별개의 사건으로도 볼수도 있게 하는 뉴스보도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간은 언제나 그 5년전에 멈춰 있고, 자아는 절망감에 빠진 랄프콜만과 가족의 죽음을 잊은 밥맥커넬로 나뉘어 집니다. 도피자아인 밥 매커넬은 마음에 남은 절망의 이유를 피곤한 직장생활로 생각합니다. 특히 평상시 폴라의 비도덕적인 사회생활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오프닝 독백에서 여자의 권리취득에 증오를 드러내죠.) 그러나 그가 실제로 화가 나는 대상은 자신의 절망에는 무관심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는 세상 입니다. 수술하면서 생명보다는 휴가에만 관심있는 의료진들처럼요.
가족을 잃은 후 현실과 환상을 동시에 살고 있는 밥은 현실을 인지하는 자아인 콜만을 죽임으로 해서 몽상속에서만 살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생활은 그의 바램대로 돌아갈 뿐만 아니라 그가 불안을 느끼게 되면 곧바로 현실로 적용이 됩니다.
주위의 다른 인물들이 그냥 얘기하면 될 것을 ‘밥’이라며 말끝마다 계속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자신이 콜만이 아님을 계속 주지시키는 호칭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지키려던 자아가 후반에 정신과상담의에 의해 깨지고 말죠.
몽상의 증거는 사무실의 크리스마스 장식, 말하는 금붕어,자신보다 빠른 시간속에 지나가는 차들, 줄지어 집 위를 나는 항공기들,정신과 상담실을 뛰쳐나가려 할 때 갑자기 입구를 막은 서류상자들 등이 바로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죠. 그간의 몽상속에선 비서실의 여자가 밥을 알아보고 이름을 부르지만, 마지막 현실에서는 그를 ‘선생님’이라고 저지하며 알아보지 못하는 장면에서 바네사와 사장과의 일들도 모두 그의 몽상 속의 일들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바네사도 콜만처럼 실제 인물이 아닙니다.
밥은 사무실 마스코트인 폴라에게서 자신의 마스코트인 훌라걸의 이미지를 분리시켜 자신의 연인으로 삼습니다. 폴라와 바네사는 옷만 같은게 아니라 동일인인 것이죠.(그녀의 전신마비의 예고는 훌라걸이 머리만 남기고 박살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폴라는 사무실에서 밥을 다정하게 대해주는 단 한사람 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씀씀이는 그런식으로 그녀가 누구에게나 하는 처세술일 뿐 개인적인 감정에서 우러난 것은 아니었죠. 그래서 밥은 그런 세속적인 폴라에게서 바네사를 분리해 냅니다.
바네사는 벌새로 상징 되기도 하는데, 이는 바네사(폴라)가 저지르는 비도덕적 행위가 단지 꿀을 먹기위해 하는 수고로운 날개짓으로 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주서식지가 열대지방이라는 점에서 훌라걸과도 통하네요.)
밥이 장전하면서 말하는‘첫발은 사무실의 마스코트에게’는 폴라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여섯번째 총알은 자신의 것입니다. (콜만에게도 너를 위한 마지막 총알은 남겨두었냐고 묻는 장면이 나오죠.)
그 총알을 놓친 것은 실수가 아닙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총알을 놓치게 했고, 자아를 분리시켜 콜만을 등장시킨 것이죠. 그는 다른이에게 쏘는 대신 다섯발 모두를 자신인 콜만에게 퍼붓고, 증오 속의 절망적 자살이 아닌 몽상속의 삶을 살게 되죠.
그런데 그의 불안이 만들어낸 정신과상담의가 절망에 빠진자는 다른이가 아닌 밥 자신임을 다시 깨닫게 하면서 그의 몽상의 삶은 흔들리게 됩니다.
밥의 또다른 자아인 바네사는 그의 괴로움을 끝낼 용기가 없어지면 자신의 눈을 보며 찾으라고 합니다. 절망을 증오로 다른이에게 돌리지 않는 것이 옳은 일임을 알려주려 하고, 타인이 증오의 대상 이외에도 자신처럼 다른면도 가졌음을 발견하길 바라죠.
그가 절망이 증오로 바뀌어 현실로 돌아오자 회장실 비서는 그를 알지도 못하고, 사무실은 크리스마스 장식도 없어진지 오래 입니다.
절망감과 함께 몽상보다 현실의 비중이 많아지는 순간, 발밑에 콜만이 밟고 있었던 여섯번째 총알이 나타 납니다. 콜만이 자신임을 알게 되는 순간 입니다. 폴라의 얼굴이 바네사의 얼굴과 겹쳐지고 현실을 인식한 순간, 바네사가 말한 용기를 실행합니다.
‘당신의 관심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단지 당신의 세계속에 존재하고 싶을 뿐이었어' ‘날 진심으로 보아주고, 출구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던 단 한사람. ’
그것은 절망의 종결을 위해서가 아닌, 절망의 탈출구로서 그녀의 관심을 독점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정확히는, 여기서 그가 존재하고 싶어한 '당신의 세계'란 두개가 혼재되어있는 상태입니다.
처음 의미는 콜만이 보는 자신의 절망에 무관심한 세상이었지만, 밥에게는 바네사(폴라)의 마음속이라는 의미 두개가 정신분열로 인해 혼재되어 있어서 딱 어느 의미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상태 입니다.
그것이 어느 것이었든 그가 방아쇠를 당길 때는 무관심속에 살기보다는 동정을 선택한 절망 속에 있었다는 것은 변함 없습니다.
영화 내에서 밥의 독백과 메모의 많은 부분이 조승희의 비디오 선언에서 인용된 듯 싶습니다.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일련의 사건을 총기법이나 다민족국 등의 시스템적 문제보다 단순한 정신분열자의 문제로 치부해 면죄부를 받으려는 것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미국사회도 마을사람들의 일을 함께 기뻐해주고 슬퍼해주는 사회였습니다. 회사 라운지에는 모두 힘을 합쳐 일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그림이 걸려있습니다. 그림의 그 모습들이 현대사회가 잃어버린 것이며, 차별과 단절만이 있는 관계가 바로 밥을 절망에 빠뜨린 원인이죠. 밥의 절망을 통해 현재의 직장이, 이웃이,가정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말해주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새끼손가락 하나를 움직일정도의 작은 변화. 그것만으로도 상황의 전환점이 될수 있다는 것도요.
니콜라스케이지와 함께 유명한 탈모배우인 크리스찬슬레이터는 아이돌배우가 세월을 먹어감에 따라 성숙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란 걸 느끼게 해주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