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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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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 애들 잘 살잖아, 이 CD 좀 팔아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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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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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운영 기자]내가 근무하던 곳은 고급장교들을 교육하는 서울 수색(지명)에 있는 부대였다. 내가 첫 출근(방위병 근무)을 한 것이 91년 12월 말쯤이었으니 벌써 13년이 넘었다. 아무튼 엄청 추웠다.
부대 특성상 장교들이 기간병(현역병)과 방위병 숫자보다 많았다고 한다면 국방부에서 근무했던 분들이 서운해 할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장교들이 많았다. 위관급 장교보다는 영관급 장교가 수십 배는 많았으니. 쉽게 말해 대령까지는 병들과 같은 화장실을 썼다. 나는 방위병이니 출퇴근했으며 근무여건은 여타부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부대 내에 방마다 컴퓨터 한대씩 있었다고 생각하신다면 놀라실 분 많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 출근이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는데, 이유는 동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혈혈단신 출근을 하다 보니 물어보거나 대꾸해 줄 사람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첫 출근 날, 나를 이끌던 고참이 "너 누구 빽이야?"라고 물었다. 나는 솔직히 누군지 몰랐다. 내 바로 위 고참은 3개월 먼저 온 것으로 기억되고, 나이도 6살쯤 많았다. 나는 혼자 생각으로 "저렇게 나이 먹고 군대를 왔네. 쩝"했다.
아침 점호시간에 졸병 하나 왔는데 말을 거는 고참은 60여명. 눈앞이 깜깜해짐을 느꼈다. 아울러 기간병(현역병)들은 육·해·공·해병대가 모두 있었으며, 기간병과 방위병 사이에 왠지 모를 전운이 감돌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내 나이가 22살, 빠르게 방위소집을 당한 나이는 아니었지만, 내 나이가 어느 정도 먹히겠거니 했다. 그러나 아뿔싸. 고참들 나이는 동갑 몇 명뿐 거의 대부분 4~8살 정도 많았다. "웬 부대 전체가 20대 후반이야" 퇴근하고 나와서 친구들에게 한 첫마디였다.
지금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그 당시 방위병은 6방 아니면 18방이었다. 물론 나는 18방. 18개월 출·퇴근해야 했다. 신병 때는 고참만 많다보니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퇴근시간'만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내가 근무하던 부서는 통신을 담당하는 부서였고, 지금도 존경에 마지않는 전모 일등 상사님(해군)이 있었다. 이분이 계셨기에 내가 한 달간의 마음고생을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었다. 이 글을 빌어 감사드리며, 꼭 다시 뵙고 싶은 분이다.
14개월을 보내고 드디어 내가 선임이 되는 시기가 왔다. 4개월 남겨두고 왕고였으니 밑으로만 60여명이나 되었다. 예전에 고참들이 그랬듯이 ‘쫄따구’(?)들도 보통 3~4살씩 많았기에 나이를 중시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이만저만 고충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학력에 있어서는 전군 통틀어 최고였으리라. 박사·석사·학사도 많았고 등 대학재학은 아무튼 기본이었으니. 낮 2시쯤으로 기억된다. 주임원사의 근무대(기간병, 방위병을 관리하는 부서)로 오라는 전갈을 받고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갔다.
"사촌여동생 클래식 시디 영업하는데 방위애들한테 좀 팔아“
주임원사는 나를 근무대 뒤로 데리고 나가시더니 대뜸 '클래식 시디 책자'를 보이시며, "사촌여동생이 클래식 시디 영업을 하는데, 방위 애들 잘 살잖어, 좀 팔아봐"하셨다. 이런, 아뿔싸,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한 3개월만 열심히 출퇴근 하면 되는데, "나더러 시디를 팔라구?" 이후 1주일간은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당시 주임원사의 방위병에 대한 권한은 실로 막강했다. 일단 방위병들이 전입오면 부서배치나 각종 사역은 주임원사의 권한이었으므로 일단 잘 보여야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했다.
방위병도 휴가는 있었다. 내가 졸병일 때 고참들이 휴가 다녀오면서 양주며 담배를 들고 개인적으로 주임원사를 찾는 것을 보아왔고, 나도 관례대로 그러는 줄만 알았으며, 고참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돈을 걷어 회식도 시켜주었던 사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이후 며칠간 주임원사의 눈길을 피하기 시작했고, 혹시나 시디 이야기가 나올까 조마조마,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주머니에 담긴 시디책자를 힐끔힐끔 보며, "이를 어쩌지?", "선임이 되어가지고 애들한테 시디를 팔 수도 없고, 미치겠네" 하루 종일 이런 생각만 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람이 자신의 무능을 탓하다 보면 결국 남 탓을 하게 된다는 것을 여기서 깨달았다. 먼저 소집해제해서 나간 고참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주임원사에게 잘 보인다고 양주며, 외제담배며 가져다 줬더니 버릇 잘못들이여 결국 내가 이 꼴을 보게 된 것 같아 원망스러웠다.
'시디사건' 8일째 되던 날 퇴근 준비하고 점호를 받기 위해 근무 대 앞에 대기하고 있던 졸병들(물론 나보다 아래)에게 한마디 했다. 퇴근하고 헬스장으로 모이라고 했다(우리 부대는 당시 헬스장도 있었다). 그때 나는 집합을 시킨 것은 나만 고생할 것이 아니라 고생도 나눠하면 가벼워 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60명이 조금씩 걷어 60만원짜리 두 세트를 사려 했으나...
졸병들을 모아놓고 "주임원사가 시디 이야기를 하는데 너희 생각을 말해봐라"했더니, 가관이었다. 짬밥을 조금 덜 먹은 쫄따구와 더 먹은 쫄따구의 생각이 딱 분리가 되었다. 짬밥 좀 먹은 친구들은 "60명이 조금씩 걷어서 두 세트 정도 해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이었고, 덜 먹은 친구들은 "그런 부당한 처사에는 소원수리 긁어야 한다"고 태클을 걸었다.
"어마나 얘들 봐라. 짬밥도 없는 것들이 긁어?" 약간 화가 났지만, 두 세트 정도로 하자는 쪽으로 유도했다. 4일간 퇴근시간 후 모두 모여 상의와 상의를 거듭한 끝에 "2만원씩" 걷기로 했다. 당시 책자에 나와 있던 시디 한 세트가 60여 만원 정도로 기억되는데 "큰 맘 먹고 두 세트 정도면 주임원사도 흡족해 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13일째 되던 날 나는 당당하게 주임원사를 찾아갔다. "두 세트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했더니 주임원사 말이 더 가관이다. "애들이 그렇게 잘 사는데 겨우 두 개야?" 오히려 반문을 하는 것이었다. 인상 쓰는 주임원사를 뒤로 하고 나는 무척 화가 나기 시작했다.
14일째 되던 날도 여지없이 퇴근을 미루고 '집합'이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모두들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날은 "방위도 흥분할 수 있다"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전부들 게거품을 물며 주임원사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돈 내라고 하느니 집에다 말씀드리고 한 세트 정도 내가 뒤집어쓰자"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고생을 하며 그렇게 일주일이 더 흘렀다. 주임원사는 은근히 내게 눈치를 줬지만 나는 무시했다. 속만 탔던 것으로 기억된다.
'비리'가 이런 것이 구나, 또 며칠이 그렇게 흘렀다. '시디 사건' 22일을 넘기고부터 내 얼굴색이 변하기 시작했던지, 멋쟁이 우리의 통신반 선임하사(계급은 해군 일등상사셨다)가 나를 조용한 곳으로 부르셨다.
선임하사의 첫마디가 "마음고생 힘들지"였다.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울었다. 십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듯했다. 나는 "네"라고만 답했다. 선임하사는 "시디 그거 졸병들에게 팔면 니 마음이 편하겠냐?"라고 말했다. 순간적으로 당황되었지만 "아니요"했다. 나는 어떻게 이 사실을 선임하사가 알았는지 궁금하기보다 내 처지가 더 답답했기 때문에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선임이면 선임답게 네가 못한다고 해라“
"니가 당당하게 못한다구 해라. 선임이면 선임답게. 너 영창가고 싶은 건 아니겠지?" 약간의 협박성 멘트를 하셨지만. 그래도 한순간에 결론이 나왔다. 그래 "못한다구 해야지, 당당하게."
다음날 아침점호를 마치고 주임원사를 곧바로 찾아갔다. "저, 시디세트는 못하겠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자, 주임원사는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그날도 퇴근 후 방위병들은 헬스장에 모여 나의 상황설명을 들어야했다.
그들은 저마다 "잘 하셨습니다", "그런 주임원사는 전방으로 보내버려야 하는데" 등등의 말을 했다. 졸병들을 뒤로 하고 헬스장을 나오면서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시디사건 30일째 되던 날 선임하사가 나를 불렀다. "잘 처리했니?" 하셨다. 나는 자신 있게 "네" 딱 한마디만 했다. 선임하사는 빙그레 웃으며 "그래. 일봐라" 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몇 마디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끈끈한 여하튼 뭔가가 가슴을 찡하게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선임하사의 지원과 주임원사가 보기엔 괘씸할 졸병 방위의 '한마디'가 모든 일을 덮어 버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 달 후 '시디사건'의 주임원사는 조금 피곤한 보직으로 이동했고, 근무대장(육군 중령, 현역·방위 관리 총대장)이 바뀌면서 공개적으로 '작은 비리'들을 처리했다.
이 글을 보는 분들은 작은 비리? 뭐지 뭐지 하시겠지만, 군에 있으면 알면서도 넘어가는 부당한 일들이 조금씩 있다. 이것들을 과감하고도 공개적으로 처리하는데 세상이 확 바뀌는 듯했다.
그렇게 나의 방위생활(18개월)은 무사히 지나갔다. 지금도 '시디사건'을 되돌아보면 마음고생한 생각과 헬스장에 모여 숙의하던 졸병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뭐 편한 군대 나와 놓고선 일장 연설이야" 하겠지만, 속이 타들어가는 마음고생 해보신 분들은 조금 이해가 되실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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