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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습작 by 죵만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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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허락을 받지 못하고 퍼온 소설입니다
퍼가지는 말아주세요^^; 개인소장용
작가님께서 올리시는 걸 원치 않으실 경우 삭제요청은 방명록에
글 남겨주시거나 멜 주세요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완결] 기억의 습작
#기억의 습작...
"나 좀...안아 줄래...?"
.......그것이 그와 나의 처음 나눈....대화 였다.....
아무 생각도 없었고...그저 사회를 욕하고 있을 뿐이었던 거 같다.
단지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뿐인데...
단지 그 하나인데...
그것만으로도 이렇게도 사람을 소외시킬 수 있는 이 사회를 그저 욕하고...
또 욕하고 있을 뿐...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머저리임에 틀림없었다...
나...은지원 이란 인간은 말이다...
"이봐...내말 안 들려...?"
나에게 했을 말이었을 리가 없다.
그것을 당연히 여겼기에 난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은 더 예민한 귀로 파고들던
그 목소리를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다시금 날 재촉 해 왔다.
비록 주어로 사용되었어야 할 내 이름 따윈 불리워 지지 않았다 해도 난 두 번씩이나
연거푸 들려온 그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손가락으로 나 자신을 가리키며 '나?' 라는 제스추어를 해 보였다.
"...그래 너....귀 먹었어?"
남자다.
비록 화장 속에 자신을 숨기고 있다고 해도 그는 남자다.
그리고 이 곳은 사창가도 아닌...그저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유흥가의 변두리 일 뿐이다.
그런 곳에서 자신의 몸을 판다라...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또한....
남자에게..?
지원은 평소 곤란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해왔던 습관대로 곤란하다는 듯
콧잔등을 두 서 너번 긁었다.
평범한 청바지에..그저 약간 달라붙어 보이는 티셔츠를 입고 있을 뿐인데...
그것으로도...도에 지나치게 아름답다...
분명히 남자다.
분명 머리도 짧게 쳐져 있어 누가 봐도 남자의 머리 스타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머리스타일을 하고도...
약간의 눈 화장과 입술 위에 번져 있는 희미한 립스틱 자국만으로...
지금까지 만나본 어떤 여자들보다도...
자극적이다....
그것이 그를 처음 본 나의 느낌이었다.
자극...그리고 아름다움...
그의 넘칠 듯한 자극이...나를 향해 다가온다.
나보다...조금 더 큰 키다...
그의 손이 내 목 언저리에 살며시 얹어 졌다.
"뭐야...말 할 줄 몰라? 나 오늘 안아 줄 수 있어... 없어..."
제기랄....
당연한 듯 내뱉어 보는 말일 테지...
하지만 난 그게 현실인걸....
[그래...말하지 못해...]
그는 당연히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빠르게 수화를 해댔다.
물론...내 목에 얹어져 있는 그의 손을 먼저 쳐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라...진짜 말못해?"
내 수화를 알아들은 것이 아니라...그저 수화를 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그 수화 속에 들어 있는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것이겠지...
스윽....
내가 쳐낸 손이 다시금 내 목 위로 감겨온다.
이번엔...아까 쳐낸 손과 그저 땅을 향해 있던 다른 손도 함께....
"....부럽다....정말...나도 말 따위..못하게 됬었음...좋았을 텐데..."
뭐....?
"훗....그럼 고개로 끄덕이기만 해...나 안아줄 수 있어?"
순간적으로 그의 눈을 스쳐지나간 표정이 거짓이나 가식이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의 날 소외시키고...또 날 동정할 수록 난 나의 느낌에 의존했다.
조금 더 사람들을 느끼고 싶다는 열망이었겠지....
그래서 인지 나의 육감은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더 뛰어나다.
아니... 말하는 부분을 빼고 나머지 거의 모든 기관들이 남보다 더욱 뛰어나다 자신한다.
하지만....사람들은 99%의 장점보다 1%의 단점으로...날 동정하고...소외시키고....
여하튼 나는 나의 그런 감각으로 그의 눈에서 진심을 본다.
하지만 왜....?
이렇게 소외당하고...동정 받는 세상 따위 뭐가 좋아서....?
"그럼...따라와...."
난 내 생각 속에 잠겨 나도 모르게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도 승낙의 대답을....
그의 손에 잡힌 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끌려간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호텔의 문 앞이었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난 사람을 사서 안을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없다.
물론 내 집이 가난하단 소린 아니다.
소위 내가 태어났다고 하는 집은 우리나라에서도 알아준다는 재벌 중 하나니까...
하지만 나의 경제적 사정은 좋지 않다.
그런 집안 따위...
단지 말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내 모든 능력을 무시해 버린
그따위 집안 따위 내 발로 걸어 나와 줬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나의 객기라는 사실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난 언제나
경제적 어려움에 허덕인다.
하지만 그의 환한 미소는....
아니 슬픈 미소는....
아니.....조금..즐거운 듯....그렇게 꾸며진 슬픈 미소는...
그런 나의 경제적 사정을 뻔히 알고서도 그의 손을
잡아 버리게끔 함에 있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훗..돈 같은 거 걱정하지 마~ 나 돈 많으니까...."
또 그 미소....
그의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크레디트 카드가
네온사인에 반사되어 예쁘게 빛나고 있다.
예쁘게....
그리고 너무도 슬프게..
그 날밤을 어떻게 보냈는지는....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단지...
난 약한 신열에 들떠 있었고...
그의 몸은 너무도 가늘고....또 가늘어서...마치 부서져 버릴 듯이 위태했다는 사실과...
또...무척이나....
아니...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아름다웠다는 것....
그래서 미친 듯이 그를 안았다 사실 외에는....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난 울었었다....
왜 그런 건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난 분명 내 볼 위로 흐르던 눈물과...그 눈물을 소중히 받아 마시던 그를 기억한다....
그것뿐이다...
[소설] 기억의 습작<2>
.
.
.
"그 날...잘 들어갔어..?"
........그는 어디에서나 존재했다.
...마치 처음부터...내게 존재했었어야할 사람처럼....
그는 항상 그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건 분명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었던 거야....
그래서 너하고 난....만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지....쿡쿡...'
그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듣기 좋아서...
그 텅 빈 듯한 미소가 마음이 아파서....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난 계속해서 그때의 일을 물었다....
그래....
그랬었다...
하지만 그렇게 그가 되 내이던 그 말은 그를 다시 만나던 날...
어렵게 구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장소에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던 사실이라는 건...끝까지 깨닫지 못했다...
그저 단순히 청소만 하고 카운터를 보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기에
난 어렵사리 그 자리를 얻어낼 수 있었다.
너무나 많은 퇴짜를 맞고 어렵사리 구한 자리여서 그런지 난 유독 일을 열심히 했다.
그리고 처음엔 날 고용하는 것을 안 내켜하던 점장도
그런 나의 태도에 조금씩 만족해 나가는 눈치였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를 다시 만나기 전까진....
그를 몇 번이고 안아버린 후 잠이 들어버렸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그는 이미 없었다.
'즐거웠어. 그리고 이 카드는 네가 쓰고 싶은 데로 써....'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거울위로 분명 그의 입술 위에도
칠해져 있었던 색깔과 같은 색의 립스틱이 마구 발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립스틱이 움직인 데로 따라 가면 그가 지원에게 남기고 간
말이 완성이 되는 것이다.....
분명 글씨였는데.....
아무리 봐도 마치 그림을 그렸다 라고 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웃었다.
그 웃음이 소리가 되어 밖으로 나오진 못했지만....
그랬지만 웃었다.
그리고 그곳을 나왔다.
그가 쓰라고 남겨놓은 그 카드를 들고서....
그때부터 난 예상했었는지도 모른다.
그와의 만남을....
아니.....그렇게 그와의 만남을 만들 구실이 ...필요했었나 보다....
그리고 오늘...바로 그 일이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카운터를 보고 있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언제나 그래 왔듯이 나 또한 반사적으로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냥 반사신경 같은 것이었다.
그가 언제나 강조하던 운명이라 칭하기엔 조금 너무한 감이 있고...
여하튼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어 누군가 들어온 그 문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그를 본다.
그 또한....나를 본다.
멈춰지는 시간 속에서....그가 웃었다...
예쁘게...
또한 슬프게....
그리고 너무도 가슴 아프게.....
"쿡...여기서 만나네? 어젠 잘 들어갔어?"
살아오면서...말을 하고 싶다고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음은 논할 가치조차 없었다.
하지만...지금 이 순간만큼 강하게 말을 하고 싶단 욕구를 느껴본 적도....없는 것...같다..
그에게....'어...' 라고 한마디 건넬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가 혼자 일 것이라고 막연히 믿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도 우스웠다.
당당히 문을 열고 들어온 그는 그의 손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의 옆에 서 있는 사람...
그의 손이 다른 사람의 허리에 둘려져 있고 그 다른 사람의 손은 그의 어깨에 올려져 있고....
그의 옆에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린 사람이 문을 열고...
그는 단지 걸어 들어왔던 것이다....
"뭐야...아는 사람?"
"쿡...."
"....고지용...대답 안 해?"
고지용....
이름이...고지용 이었나보다.....
내 이름이 은지원 이 듯...그를 부르는 이름이 고지용....
난 대답할 수 없고...그는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지용은 사내의 허리에 감겨 있던 그의 손을 끌어내리며 그의 양어깨를
강하게 잡는 그 사내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웃을 뿐....
예쁘게...
그리고 너무도 가슴 아프게.....
왠지 심상치 않아지는 분위기에 난 바닥을 닦고 있던 대걸레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한참을 문질러서 인지 까맣게 변해있는 대걸레의 솔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눈으론 그곳을 바라보아도 내 뇌리 속에선....
단 하나의 영상만이 계속해서 리플레이 되고 있을 뿐이었다.
예쁜 미소....그리고 슬픈.....
짝!!
"꺅~!!"
말을 할 수 없는 만큼 소리에 민감해 지는 것은 당연한 일 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 귀는 다름 사람보다 조금쯤은 더 성능이 좋았다.
그런 내 귓속으로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내 시선 또한 그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이 개자식...무슨 짓이야..."
"말해 고지용....저 자식을 어떻게 알아...."
"훗...미친 새끼...내가 너한테 그걸 왜 말해줘야 하지?"
"뭐.....?"
"장수원...뭐 착각한 거 아냐? 난 네 것이 아니야....단지 내가 널 필요로 해서
네 곁에 있는 것뿐이라고...알겠어? 주재 넘게 나한테 명령할 생각하지마."
"이 씹새끼...."
또 한번 장수원이라 불린 사내의 손이 허공을 향해 올라간다.
카운터를 보고 있던 여자도...그리고 나도...
그저 그 장면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만 했다.
무능력한...겁쟁이 은지원답게....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확실히 기억한다.
사내의 팔이 빠르게 허공을 향해 올라가는 순간에도 그는 웃고있었다.
어떤 의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쁘게...또한 슬프게....
그리고 너무도 가슴 아프게.....그렇게 그는 웃고 있었다.
그런 그의 표정을 수원이라 불린 그도 느낀 것인지....
분노로 인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기까지 한 수원의 팔은 허공을 향해
올라간 속도가 무색하리 만치 오래 그곳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그는 웃고 있었다....
"....이럴려고 여기 들어오자고 한 거야?"
"...쿡...이제 알았어? 장수원도 이제 한물 갔나봐?"
수원의 손은 이미 땅으로 떨어져 내린 지 오래였다.
그리고 지용의 자조적인 웃음소리를 신호로 하기라도 한 듯
그 둘의 시선이 동시에 날 향해 돌아왔다.
마주치는 시선....그리고 미소....
그의 눈 속에 담긴 미소로 내 시간은 멈춰 섰다.
"훗..놀랐나봐? 하지만 이게 다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장난기 가득한 눈빛....
그리고 슬픈....미소...
"따라나와...."
듣는 이로 하여금 공포심으로 가득 채우고도 남을법한 수원의 목소리로도
지용의 눈 속에 빠진 나는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저 바라만 볼뿐.....
"또 만날 꺼야...."
한마디였다.
단 한마디...그렇게 남기고 그는 다시 내 곁에서 사라져 갔다.
그것은 그의 바램으로 인한 말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그럴 것이라는 예상이었을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말만 남긴 체 사라져 갔었던 사람...
하지만 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신뢰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지....
또 만날 꺼야...
...또 만날 꺼 라고 말이다...
.
.
.
"나....갈 데가 없어..."
....그는 상처 입은 어린양처럼 내게 왔다. 하지만 그는 양이 아니다....
그 소란이 점장의 귀에 들어간 것이 그 여자의 짓임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그래서 일까...?
왠지 화조차 나질 않았다.
일주일 치의 삯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왠지 웃음까지 난다.
왜 그런 건지....
단지 날 일자리에서 잘리게 한 사람이 분명하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나..?
그런 건 확실히 아니다.
짜증을 내었으면 내었었겠지...
하지만 난 웃었다.
그리고 그 미소가 내린 결론은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지용....
예쁘게..그리고 너무나 슬프게 웃는 그 사람의 생각만으로...
그와 관련된 일로 내가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생각만으로....
난 웃을 수 있었다.
아니...웃었다.
아무 생각 없이 찔러 넣은 주머니 안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존재가 손에 걸렸다.
무의식 적으로 그 물체를 잡은 손을 주머니에서 뽑아 본다.
네모난 직사각형의 물체가 네온사인에 반사되어 잠시 눈이 부셨다.
카드....
그래...그가 내게 남긴 인연....
내 얼굴에 또다시 미소가 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내 자신이 조금 우스워 한번 피식 웃어줬다.
그리고 다시금 아무렇지 않게 주머니에 카드와 함께 손을 찔러 넣으며
다시금 길을 재촉한다.
떠오르는 건....그의 미소.....
슬픈....하지만 아름다운....
"....거봐...또 만날 거라 그랬지...?"
내 반사신경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렇게 십 수년을 살아왔고 또 그럴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그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한다.
내 귀가 다른 사람보다 더 좋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지금 아니다.
어떤 일이든 이제 담담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리고 지금...그런 자신감 따위....개에게나 줘 버리라지...
몇 수 십 년을 돌아 온 것처럼 그에게 내 시선이 돌려졌다.
그에게 달려갈 수 없는 내 몸...
그의 목소리에서 그를 알아차려 내지 못한 내 귀....
그리고 경직되어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나의 미련함....
"훗....그렇게 신기해? 사람 얻어맞은 거 처음 보나봐...쿠쿡..."
힘겹게 웃었다.
몇 갈래로 터져 있는 입술을 힘겹게 움직이며...
예쁘게...정말 예쁘게....웃었다.
"아....."
몇 년만에 벌려 보는 입술인지 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입은 무언가 소리를 내기 위해...
비록 그것이 성공할 가능성 제로의 아주 우스운 짓이라 해도....
아무리 그래도 한번쯤은 시도라도 해 보았어야 하기 위해 벌어졌다.
하지만 0.1%도 되지 않는 가능성은 마치 날 비웃기라도 하는 듯
내 입술이 벌어지며 만들어진 소리란 두 어살 바기에 웅얼거림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들고 있던 가방이 어디에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그에게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그저...
그의 슬픈 미소를...감싸안기만 하면 된다....
"뭐야....이런 짓도 할 줄 알았어?"
그의 목 언저리에 둘리어진 내 팔이...신경이 쓰이는 걸까...
아니면...
그의 뺨에 나 있는 상처를 핥고 있는 내 입술이 싫은 걸까...
하지만 그의 어조완 다르게 그다지 기분 나빠 보이지 않는 표정에 난 나조차 믿을 수 없는
이 행동들을 멈추지 않았다.
"나 좀...데리고 살아라..."
"....."
"....나...갈곳이 없어졌거든...."
대답할 수만 있다면...
'응' 이라고....
그 어느 누구보다 더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목소리로...
그렇게 이야기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조금이라도 그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줄 수만 있었더라면...
그렇게 난 20년 간 날 떠나지 않은 이 장애를 저주했다.
그 어떤 순간에도...그러려니 했었던 나의 장애를...
처절히 저주했다..
"...고마워...."
말하지 않았는데...
어떤 허락의 행동도...취하지 않았는데...
그는 당연한 듯 나의 마음을 읽어 버렸다.
난...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말도...그 어떤 행위도....
'후훗...그게 다 운명이라니까....'
그의 장난기 석인..목소리가 귓가를 울리 우는 듯 하다...
그가 그렇게 이야기하던 운명이든....
아님 내 눈을 빤히 바라보던 그의 눈이 정말로 독심술이라도 할 줄 아는 건지...
그는 나와 20평 남짓한 자취방에서...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슬픈 사람....
그래서...아름다운 사람.....
눈부시던 미소....
그 미소의 무게만큼 가슴 저리던 사람....
지용아...
.
.
.
"...널 죽여버릴 꺼야...."
......그를 끄집어내야 했다....무슨 수를 쓰든지.....
다시금 일자릴 찾아야 했다.
나 혼자 살아가는 것쯤은 집을 나올 때 큰형님이 해주신 얼마간의 통장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꽤나 상당한 액수이었기에 거기서 나오는 이자만 가지고도 생활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먹여 살려야 되는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남에 따라 그것으로는
조금 부족한 감을 보였다.
돈을..벌어야 한다.
그는 마치 그때 그가 보여준 그 부가 어디서 나온 건지 알려주기라도 할
사람처럼 정말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수원...이라 불린 사람...
그 사람의 것이었겠지...그런 경제적 여유...
그래서 정말 힘들게 알자릴 하나 구했고 나는 그를 내 자취방에 내버려두고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 졌다.
하지만 집에 들어가면...
그가 있고....
그는 웃으며 날 맞이하고...
그리고 때때로 우리는 같은 침실을 쓰며 서로를 나누기도 했다.
은밀한 장난으로 서로를 즐겁게 하기도 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갔다.
그리고.... 마지막 봄비가 여름을 재촉하던 어느 날...
난 그의 다른 얼굴을 보아야만 하는 상황을 받아 들였다.
야누스의 미소.....
그의 반쪽 어둠...
"쿡쿡...왔어....? 하아..오늘은 이렇게 빨리 웬일이야....?"
순간 나는 내 눈을 병신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내 입처럼 의심을 해봐야 했다.
정말...내가 보고 있는 지금 이 현실이...사실인가..?
또다시....만들어지는 현실은 아닐까...
언제나 나의 도피처가 되어주던...내 상상의 세계는...아닐까....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그와...
그의 행동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그의 주위에 심심지 않게 뿌려져 있는...주사기들...
이 모든 것이...현실인가....?
"쿡...크큭....왜 그러고 서 있어....?"
그것들이..뭐야....
"이게 뭔지 궁금해...?"
그는 이상한 힘이라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내가 아무리 말하지 않아도...그는 알고있었고...
내가 생각하는 것들은.....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을 때가 태반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을 또다시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그의 주위에
심심지 않게 뿌려져 있는 주사위 중하나를 집어 들었다.
꽤나 방금 전에 주사한 것인지 주사기의 바늘 끝에선 그의 몸 속으로
미쳐 들어가지 못한 액체가 한 방울 떨어져 내렸다.
"...이건 마랴...신의 걸작품이야.....걸작품....이 쓰레기 같은 세상 속에...
이것만큼 완벽한 것도 없지...쿡쿡....아주 좋아...."
그의 눈이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그의 시선은 날 향해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슬픈 미소와 함께...
날 지나쳐 어딘가를...바라보고 있을 뿐....
그가...가슴이 아프다....
그가...불행해 보인다.
그가 ...눈물이 날 만큼...애처롭다....
"뭐야...누가 그따위 눈으로 쳐다 보랬어....쿡..이젠 너도 내가 불쌍한 거야?"
응....그것도 아주...
"...제기랄...그 눈 좀 치워....나 원래 이런 새끼야..."
불쌍해.....
"씨발...안 치워?"
그가 던진 주사위 하나가 내 다리에 날아와 정확히 박혔다.
하지만...난 전혀 아프지 않았다.
단지...그가 불쌍했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그의 그 공허함 한 점 없앨 수 없는 내 자신이....제일 불쌍했다...
"뭐야...뭐하는 거야...."
그를 끄집어내야 했다...
그를 붙잡고 있는 것이 저 하찮은 약 따위라면....
그를 그곳에서 끄집어내야 했다.
"이 개새끼....뭐하는 짓이야!!!"
그의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열어 제쳤다.
아직도 자신의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그를 제압하는 일 따윈 식은 죽 먹기 보다 쉬웠다.
그를 작은 골방에 넣어 버린 체 문을 잠갔다.
그리곤 그의 가방 안에 가득 차 있던 약주머니들을 모두 물에 희석시켜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그가 광폭 하게 문을 두드리는 것이 들려왔다.
하지만 무시한다.
겨우 저따위 약이 그의 눈 속에 있는 슬픔을 모질게 잡고 있는 것이라면..
난 그를 그곳에서 끄집어내야 하겠다....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린다 해도...
난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가 내게 말을 걸었던 그 순간....
그리고 내가 그를 향해 시선을 돌린 그 순간...
모든 것은 정해져 있었다.
나 은지원은 고지용을 사랑하게 되어 있었고...
또한...그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한다는 것...
모두..정해져 있었다.
-..내놔~~날 꺼내 줘! 이 개새끼...죽여버릴 꺼야!! 아악!!
모두..정해져 있다.
비록 얼마만큼...아님.....영원히....그의 눈 속에 내가 없다고 할 지라도....
.
.
.
"....지평선이...보이는 곳으로 가고 싶어..."
....그를...행복하게 해 줄 순 없었던 걸까...? 아님..그는......행복했을까....
"제발..제발 한번만..할게...한번만..지원아....."
하루 두 번 그에게 식사를 주러 들어갈 때마다 그는 마치 굶주린 짐승 마냥 내게 대들었다.
처음엔 그것을 무력으로 막아내었었다.
차라리 그것이 낳았다.
이젠 나에게 대들 기운도 떨어진 것인지 그는 나에게 애걸하기 시작했다.
눈물어린 눈으로...
그 공허한 눈으로...
극단적인 본능밖에 남지 않는 정신으로...
그는 나에게 매달렸고....또 난 모질게 그를 무시해야 했다.
그의 눈이 아팠다....
난 왜...저 공허함의 한 조각도...덜어낼 수 없는 걸까....
왜.....
그와의 신경전에 조금씩 지쳐 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육신의 피곤함...그런 것 따위가 아니었다.
그를 보듬어 안을 수 없는 순간들이 계속 될수록...
그의 아픈 애원소리가 밤새 내 귀에 다가와 꽂히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난 ....조금씩 지쳐갔다....
아픈 그의 모습에...난 지쳐간다...
-똑똑....
지원이 다가오는 기척만 느껴도 방문을 두드리며 지원에게 애걸하던 지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
삐이익...
분명 그렇게 깊이 잠들어 있을 수가 없었기에 이상함을 느낀 지원은
살며시 문을 열어 보았다.
작은 골방 한 구석에 그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제기랄...왜 그러고 있어...
가슴이 아파 온다....
차라리...그의 냉소적이기까지 하던 예전 모습이 그리울 정도였다.
그의 어깨에 손을 얹어 본다.
"지원아........"
흠칫....
잠들어 있기라도 한 줄 알았던 지용에게서 갑자기 소리가 들려오자 순간적으로
그의 어깨에 올려놓았던 손을 떼어냈다.
그는...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은지원....."
하지만..잠꼬대 따위가 아니다..
그는 분명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배고파...."
그가 눈을 든다...
예전처럼...혼탁한 눈이....아니다....
맙소사.......하느님 감사합니다....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않은 체 지속된 절제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인지 지원을 보며 씨익 웃어 보이는 그의 눈가엔
검은 자국이 눈에 띄게 번져 있었다.
그를 힘주어 껴안았다.
미안해.....
미안해....
힘들었지....미안하다...
귓가로 그의 나지막한 키득거림이 느껴졌다.
"쿡쿡...은지원...나 그렇게 구박하더니...이젠 나 안 미워하는 거야?"
힘껏 고개를 저었다...
아니....미워한 적 없어...
이렇게...나한테 돌아와 줘서 고마워...
더 이상 힘들지 않게 해줘서...너무 고마워....
"쿡.... 구박받은 건 난데 니가 왜 울어..."
미안해...힘들었지....
"고마워....나...구해내 줘서...힘들었지....?"
"윽..흐윽......."
"울지마....지원아....."
가지고 들어온 식사가 어찌되든...상관없었다.
난 그저 그의 작은 어깨를 끌어안고 울먹일 뿐이었다.
약의 기운을 참아내느라 비썩 말라버린 그의 몸이 더욱 서러워..울었다....
"지원아....."
한참이나 그를 껴안고 울던 나의 눈물이 조금씩 말라가기 시작할 무렵...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지평선이 보고 싶어...."
그를 조금 떼어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넓고...넓은 곳으로..가고 싶어....지원아..."
그는..나를 본다.
그의 시선은 날 향해 있다.
하지만....날 보고 있지 않다....
나를 지나....그 어딘가....
내 모습을 지나..그 어딘가를..보고 있을 뿐....
그가 미소지었다...
너무도...아름답게..또한 슬프게...
"......가자..지원아....지평선이 보이는 곳으로.."
사랑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도 날 향해 있다...
사랑해..지용아....
그가 미소짓는다....
[사랑해...]
그가 알아듣건..그렇지 못하건 난 나의 언어로 내 생각을 그에게 전했다.
내 마지막 진심을 그에게 전했다....
-아니...그냥 그럴 꺼 라고 느낌이 오던데....?
그는 훗날 그렇게 말했다......
내 언어를.....그는 느끼고 있었던 거다....
그가 미소짓는다....
아름답고도..슬픈 미소....
"...떠나자 지원아....이 땅을...."
.
.
.
"옛날...이야기 하나 해 줄까....?"
......그의 눈 속에 내가 있었다....온전한...내 모습만이.....
-내가...해 줄 수 있는 마지막이다....
-[이것만으로...감사합니다...]
-지원아...어딜 가도...행복해라...
-[네....]
죽어도 하기 싫었던 일을 했다.
네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 지옥 같았던 집을 뛰쳐나오지 못하게
붙잡았었던 단 하나의 인연...
나의 그나마 생활을 지탱해 주던 큰 형에게 난 손을 벌렸다.
나 혼자서..
말도 하지 못하는 장애인 혼자서 처리하기엔 너무나 벅찬 일들을 지용은 요구했다.
그리고 난 죽어도 하기 싫었던...
그 집을 떠나는 그 순간..더 이상 하지 않으리라 맹세했던 그 일을...
그 일을 하고 나서야 그의 소망을 이루어 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라면....다 참아낼 수 있다....
그의 소망을 이루는 것이라면....
몇 시간의 비행기 여행을 참아내고 나서야 우리는 그가 원하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캐나다....넓고 넓은 대지의 나라....
우리가 살아갈 곳은 내가 부탁했던 대로 꽤나 넓고 주위에
인적이 드문 평야에 세워져 있는 집이었다.
뒤로는 커다란 산이 우뚝 서 있고...앞으로는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져 있는 곳....
"봐.....지원아......하늘이...내게 다가오고 있어....."
우리와 우리의 짐을 실어다 날라준 커다란 트럭이 사라지기 무섭게
그는 하늘을 향해 손을 벌렸다.
마치..춤을 추듯 빙글빙글 돌아가는 두 팔....
하늘...그리고 그를 품은 대지....
흘러가는 기억 속의 슬픈 미소....
작열하는 태양에 두 손으로 눈을 가려 차양노릇을 하게 했다.
눈을 완전히 가려버릴 생각 따윈...조금도 할 수 없다....
사라져 버릴 듯...
언젠가 그렇게 하늘에 녹아 들어가 버릴 듯 그의 위태한 모습을....
그 어떤 순간이라도..놓치지 않고 보아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떤 순간에도...그를 보아두어야 했다...
그 어떤 순간에서도 말이다....
타닥...타닥....
벽난로 안에 불들이 사그러들 기미가 보이기라도 하면 난 준비해둔
나무를 계속 찔러 넣었다.
"내가...재미있는 옛날 이야기 하나 해 줄까...?"
"....?"
불쏘시개로 나무들이 타고남은 빨간 재를 들추거리던 나에게 그가 말을 건네왔다.
벽난로 앞에 마련되어 있던 쇼파 위에 그가 반쯤은 누워있었고
나는 그 쇼파 바로 밑에 앉아 장작을 들쑤시고 있었다.
그런 그가 내 머리칼을 한올한올 가지고 놀며 말을 시작해 왔다.
"옛날 옛날에...아주아주 예쁜 아이가 살았더랬어요...."
공허함으로 가득한 목소리....
그의 얼굴에 걸쳐져 있을 것이 분명한...서글픈 미소....
"그 아이는 말야....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리란 것을 믿었어...
그 어떤 누구도....자신의 매력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자신했지..
그리고 실제로도 그 아이는 완벽해서 모두에게 사랑을 받으며 자랐더랬어...."
그를 안고 키스해 버릴까....?
그럼..저 목소리를 멈추지 않을까...?
왜....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걸까...
"....그러던 어느 날..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한 장면 마냥...
그 아이를 사랑해 주던 엄마와 아빠가 하늘나라로 가 버렸지......
아이는 슬펐어....하지만 현실은 그 어린 아이에게 슬퍼할 겨를도 주지 않았지.....
쿡...웃기지 않아? 그 아이의 부모를 데려간 건....분명 동화 속 이야기 였는데....
그 아이에게 주어진 건....그 빌어먹을 현실이었어....
아이는 어릴 적의 순수가 눈물이 나게 그리웠지.........."
빙글빙글 돌아가던 그의 두 팔....
흘러드는 아름다운 추억의 미소.....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어....
모든 것이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그 아이에게 고아원 시설 따윈 어울리지 않았어.....
그 아이는 혼자서 살아가야 했지.......오로지 힘에 기생해야 했어.....
그 아이를 또다시 완벽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힘에....
그리고 꽤나 반반하게 생겼던 그 아이는 그리 어렵지 않게 그가 원하는 것들을 손에 쥐어 나갔지......"
너의 눈 속의 공허함....
너의 미소 속에 숨겨진 가슴저린 슬픔.....
눈물이 날만큼...슬픈 기억....
"그 아이에게 주어진 것이라곤 이젠 더 이상 망가질 수도 없어 보이는
몸뚱이 하나 뿐이었어......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지.......
아이는 더 이상 어릴 적의 순수를 그리워하지 않았어....
단지....세월이 흐르길 기다릴 뿐.....그대로..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세상이 그를 지나쳐 흘러가길 기다릴 뿐....."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노는 손이 언제 멈춰져 있었는지....
그의 목소리가 언제부터 약한 떨림을 가지기 시작했는지....
".......그런데...어느 날...한 사람이 그 아이의 앞에 나타났어.....
그는......아이처럼..상처받고....아이처럼 가슴아픈 미소를 가지고 있었지....
그리고 아이는 느꼈어...........운명을......."
......지용아....
"그 빌어먹을 순간.....날 찾아온 운명.......이 썩어 문드러진 육체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다 빼앗긴 더러운 인생에게...찾아온......운명......"
....지용아......
지원의 머리를 가지고 놀던 지용의 손은 이제 지원의 고개가 그를 향해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 이렇게 아무것도 없거든.....? 그래도.....나 좀...사랑해 줄래 지원아.....?"
그의 손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이 날 바라본다....
그의 눈 속에 가득한 내 모습이...다시금 날 쳐다본다.
그 날 처음 그의 눈 속에 자리한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와의 밤은 언제나 그렇듯.....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일까....
뜨거운 숨소리와 격렬한 움직임 속에 끝없는 환희....
그 어떤 것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옛날 옛적의 영화 필름처럼....
그렇기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여하튼 그 날밤 난 그를 안았고 그는 완전히 내 품에 안겨주었다....
.
.
.
"나 살고 싶어...지원아....."
.....시간을....그와 함께 할 수 있는...시간을....제발.......
78일 이라는 시간 동안 우린 어쩌면 생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순간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아니...그것이 사실일 것이다.
앞마당에 뿌려지는 물길이 그의 장난 어린 손에 막혀 몸이 온통 물투성이가 되어도...
눈을 뜰 수조차 없는 태양의 밝음에 그의 실루엣이 아릿하게 빛나 눈물이 나올 것 같아도...
그저 미소만 지어지는 얼굴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의 눈 속에 들어있는 내 모습에 취하는 나 자신을...조금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사랑하고....
또 그렇게 그를 느끼고...
아름다운 그를...
5월의 햇살에 가득 물들어 슬프게 미소짓는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가슴이 조이도록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
아무리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운명이란 것으로 우리가 만났다 해도...
이미 내 인생의 전부는 그를 위해 준비된 것임을 조금도 의심 할 수가 없었다.
아침햇살에 힘겹게 눈을 비비는 모습....
귓가에 나지막이 울리는 그의 목소리....
언제나 키득이는 웃음소리로 한마디씩 툭 던져 놓는 말들...
어느 것 하나 내 목숨과 바꿀 수 있었을까....
너와 나의 공간 속에 따스한 햇빛이 가득 들어차기라도 하면...
언제나 저 넓은 곳을 향하는...네 아련한 시선...
그리고 미소...
아름다운 슬픔..........
"지원아...나 머리 잘라 줘....너무 지저분해...."
나른한 3시의 태양이 우리의 거실을 가득 메우고 들어왔다.
커다란 파라솔을 드리우고 누운 듯 걸쳐 앉아 있는 그는....심장이 아플 만큼 아름다웠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보다 한참이나 더 머리가 길어져 있었다.
그의 의자 옆으로 의자를 가지고 가 앉았다.
그의 머리에서 드려오는 사각 이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그래서 일부러 더 천천히..더 조금씩 잘라나갔다....
사각.....
사각.....
"은지원....."
사각.....
"은지원...너 말야...."
사각.....
"너 만약에 말이야.....내가 없다면....어떡할래..."
사각....사각....
"내가....이 세상에 없거나....다신 너와 함께 있을 수 없어진다면...너 어떡할래..."
작열하는 태양 빛과...아름다운 그의 목소리....
"내가...너 버리고 가면.....어떡할 꺼 냐구...."
사각....사각....
조금...젖어 있는 듯한 그의 목소리...
그리고 떨림....
"은지원!! 대답하란 말이야!! 어떡할 꺼야..."
와락......
아직 마지막 정리를 하지 않아 조금씩 빠져나온 부분이 눈에 띄었지만
개의치 않고 가위를 떨어트렸다.
....아름다워서 슬픈....
마치 손안의 모래알들처럼 허무한 그의 뒷모습을 힘주어 끌어안았다.
"....미안....미안해 지원아....짜증내려던 건 아니었어..."
공중에 떠다니는 그리움....
손에 잡힐 듯....잡히지 않는....외로움....
"하지만.....나 정말 어렵게 찾았는데.....정말 너무 늦게 만났는데...."
무슨 소리야......?
"은지원.....왜 지금 내 인생에 뛰어들었어....?"
내 무릎사이에 안기듯 기대어 있던 그의 어깨를 내 쪽으로 돌려보게 했다.
한없이 아름다운 사람....
모든 것을 주어 사랑해 주어도 모자를 듯한 네 모습...
그리고 얼굴 가득......눈물....
그의 팔이 내 목에 힘주어 감겨왔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왜...우는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나...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나 내 생명 따위 하나도 소중하지 않았단 말이야...."
왜...그를 더 힘주어 안아주지 못했을까....
왜...그런 애처로운 눈물 따위 흘리지 못하게 힘주어 끌어안지 못했을까...
"흑....더 소중히 했을 텐데...이렇게 너 만날 줄 알았다면....이렇게 살지 않았을 꺼야..."
놓치지 않겠다고....
아무데도 보내지 않겠다고...
왜 그렇게 안아주지 못했을까....
"너무 아까워...너 없이 보낸 헛된 시간들이....죽을 만치 아까워...."
이제부터....하나이면 되잖아....
지금부터...영원히 하나이면 되잖아....
난...너를 위해 준비된 나의 시간이었단 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아...
"지원아.....윽....흐윽....나..살고 싶어....."
....?!!
무슨 소리야....?
내 목에 감긴 그의 손이 느슨히 풀어지는 듯 했다...
그리고 그의 뜨거운 입술이 내 입술에 강하게 부딪쳐 온다.
눈물 섞인 키스....
그의 한없이 외로웠던 시선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간절한 키스....
그는 살고 싶다고 했다....
눈물 섞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었다....
무슨 소리냐고...
왜 우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키스가 너무 슬퍼서....
그의 아름다운 외로움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 키스가 너무도 슬퍼서...
아무런 언어도 그에게 전할수가 없었다...
아무런 언어도......
.
.
.
기억의 습작....그 속의 네 모습이란.....
아주 긴 시간을 준비해온 시간들이란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그렇게 긴 시간을 돌아온 것에 비하면....
너와 나.....
너무 짧은 순간을 사랑했다....
- 어릴 때부터..약을 접해온 것 같군요....몸 속이 아주 망가져 있었어요....
그런 상태에서 무리하게 약을 끊은 것이..아무래도 부작용이 생긴 것 같습니다.
뭐...이대로 약을 계속 했었더라면..아마 더 빨리 증상이 일어났을 겁니다만....
여하튼...방법이 없습니다... 안정을 취하면서 기다리십시오....
"지원아...저기로......지평선이 보이는 곳에서...날 보내 줘...."
그의 미소가 서글펐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이 순간만큼...눈물이 나게 고맙다..
그를 안은 체로 밖으로 나와 한참을 걸었다.
하늘과 땅.....
그리고 나의 아름다운 사람.....
"봐봐....지원아.....하나야....너..그리고 나....저렇게 하나가 되는 거야...."
힘겹게 들어올린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끝없는 지평선...
"너무..짧았다고 생각하지마....너하고 나...이렇게 하나가 되기 위해 만난 거야...."
그의 손을 잡아 손가락 하나하나에 키스했다....
경건한 마음으로....
최대한의 진심을 담아....
"미안해...나....널 위해 더 살아주고 싶었어.....더..네 곁에 있고싶었는데...."
그의 손이 내 눈으로 올라온다...
"울지마....너처럼..슬픈 눈...본적이 없어....그래서 나 갈 수가 없잖아...."
아름다운 미소....
슬픈....그래서 가슴이 아픈...미소.....
마지막까지...날 넘어선 그 어딘가를 응시한...네 눈.....
"잊지마.....사랑해......"
한순간도....날 채우지 않았던...너의 시선....
원망스럽진 않아....
지금 이렇게 내 품에 안겨있는 것만으로도.....감사한다....
"......지금의 네 모습....기억하지 않을 꺼야......"
슬프고....또 눈물이 날만큼 슬픈......
"....지금 네 모습을 담지 않는 건 말이야....네가 날 찾아오면....
그때의 너와 다시 사랑할 수 있게....내 기억 속 너의 잔상으로 널 헛갈려하지 않으려고....."
그의 눈 속에 단 한순간도 들어가 있지 못한 내 모습.....
"사랑해 지원아....널....기억할 꺼야......"
그리고....
그의 깊은 심연 속....한순간도 지워지지 않았던.....
바로.............나............
너무도...너무도 짧은 시간 우린 사랑을 했다....
늘...그가 앉아 있던 안락의자에 앉아 지평선을 바라본다...
빙글빙글 돌아가던 그의 미소...
아름다운..그래서 눈물이 날 만큼 슬프던...그의 실루엣...
몇 년이 지나도...
몇 십 년이 지나도....
내 기억 속의 그는 영원한 습작으로 남아있다......
내 모습이 늙어가고....내 삶이 세월을 따라 흘러온 지금 이 순간에도....
그저 기억으로 남을 뿐이다.
그가 사랑한 지평선....
그의 모습을 가득 담은 하늘....그리고 땅.....
너와 내가 하나가 되리라 던....지평선....
그곳을 바라본다.
너와 나.....
그리고......
고지용.....
아름다워서.....슬프던 미소.....
안락의자에 몸을 묻으며 그의 미소를 따라 지어본다.....
내 기억의 습작....
그 속에 네 미소가 가득하다....
예쁘게...
또한 슬프게....
그리고 너무도 가슴 아프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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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짧지만 너무도 소중한 사랑을 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금 그 사랑 속으로.......
영원히 끝나지 않을...........기억의 습작 속으로.............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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